한국에서는 인간의 고통을 야기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 전체가 ‘가해자 vs 피해자’라는 도식으로 환원된다. 이 도식은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학교 폭력, 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 아동 학대같이 개인이 개인에게 가하는 직접적 폭력은 물론 노동 사고, 대규모 참사, 전쟁 범죄, 식민주의적 착취같이 개인적 수준을 벗어난 사건에도 적용된다.객관적 구조의 실종폭력 사건에는 당연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지만, 사건 전체를 이 두 행위자 사이의 상호관계로 환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건은 폭력을 용인하거나 방조하는 객관적 구조와 환경 아래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학교 폭력은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거기에는 학교라는 폐쇄적 사회관계, 교육 제도가 만든 폭력적 구조, 사회경제적 불평등, 괴롭힘과 학대를 사회적 관계의 하나로 활용하는 가학적 문화 등이 개입된다.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가해자-피해자 도식은 오로지 사...
1521호2023.03.24 1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