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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대승의 소수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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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24)가해자-피해자 도식을 넘어
    (24)가해자-피해자 도식을 넘어

    한국에서는 인간의 고통을 야기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 전체가 ‘가해자 vs 피해자’라는 도식으로 환원된다. 이 도식은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학교 폭력, 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 아동 학대같이 개인이 개인에게 가하는 직접적 폭력은 물론 노동 사고, 대규모 참사, 전쟁 범죄, 식민주의적 착취같이 개인적 수준을 벗어난 사건에도 적용된다.객관적 구조의 실종폭력 사건에는 당연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지만, 사건 전체를 이 두 행위자 사이의 상호관계로 환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건은 폭력을 용인하거나 방조하는 객관적 구조와 환경 아래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학교 폭력은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거기에는 학교라는 폐쇄적 사회관계, 교육 제도가 만든 폭력적 구조, 사회경제적 불평등, 괴롭힘과 학대를 사회적 관계의 하나로 활용하는 가학적 문화 등이 개입된다.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가해자-피해자 도식은 오로지 사...

    1521호2023.03.24 12:5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23)문제는 문해력이 아니다
    (23)문제는 문해력이 아니다

    우연히 대한민국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대통령의 말과 글’이란 메뉴가 있다. 이곳에 올라온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 연설문을 읽다 보면 ‘한국에서 말과 글의 기능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하게 된다. 대통령은 분명 말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의미가 담긴 언어적 표현이라기보다 물리적 소리와 문자의 무의미한 연쇄에 가깝다. 이건 그저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일정 시간을 채우기 위해 말을 하고, 정해진 지면을 채우기 위해 글을 쓰지만, 아무런 의미도 전달하지 않는 언어 사용자가 많다. 교장 선생님 훈화, 주례사, 기관 홈페이지의 대표 인사말, 학술대회 개회사, 정치인의 연설, 저명인사의 신문 칼럼 등 비슷한 사례는 여기저기에 널렸다. ‘어쩌고저쩌고’나 ‘중얼중얼’로 대체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말과 글을 듣거나 읽다 보면 리터러시(literacy)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1517호2023.02.24 11:16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22)‘돈의 논리’에 빠진 한국사회
    (22)‘돈의 논리’에 빠진 한국사회

    한국에서는 하루건너 사건 사고가 터지고, 언론과 여론은 현재를 따라가기에 바쁘다. 과거는 곧 잊히고, 미래를 내다볼 여유는 없다. 가끔 제 자리에 멈추어 현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미 알려진 사실 몇 가지를 재확인하자.한국은 살 만한 곳인가?한국 경제는 급속히 성장해왔다. GDP는 세계 10위권에 근접했고, 1인당 GDP는 2000년에 비해 세 배 가까이 올라 유럽연합 평균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은 말 그대로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OECD 최신 통계를 보면, 한국의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율은 38개국 중 34위다. 사회 보장에 관한 지표도 대체로 낮은 수준이다. 빈곤율은 높은 편이고, 특히 노인빈곤율은 가입국 중 가장 높다. 소득 불평등(지니 계수)도 큰 편에 속한다.성별 임금 격차는 지난 30년간 세계 1위를 기록 중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OECD 가입국 중 독일에 이어 두 번째이고, 성차별...

    1514호2023.02.03 11:25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21)노동운동의 위기이자 민주주의의 위기다
    (21)노동운동의 위기이자 민주주의의 위기다

    작년 말 화물연대 파업은 패배로 끝났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조합을 탄압하기 위해 온갖 기발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제 ‘노조 때리기’ 말고는 지지율을 유지할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많은 사람이 현 정부를 규탄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조합의 자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시민들이 등을 돌린 노동운동은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다.왜 노조가 국민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가?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려면 대중의 지지가 필요하다. 이는 현 상황에 대한 객관적 묘사다. ‘살기 위해서는 물을 마셔야 한다’와 마찬가지로 부정하기 힘든 사실 판단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자체가 정상적인지는 다른 문제다. 노동자가 파업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국민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상황이 과연 정상적인가?오로지 자기 조합원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노조가 실제로 존재한다. 비정규직 차별을 묵인하는 정규직 노...

    1511호2023.01.06 14:17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20)감정 중독 사회의 한계
    (20)감정 중독 사회의 한계

    한국인은 2022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이태원 참사의 슬픔일까, 월드컵축구 16강의 행복일까? 개인의 삶과 마찬가지로 사회도 무수한 감정을 거치며 살아간다. 새로운 감정이 과거를 대체하기도 하고, 집단적 감정 사이의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감정의 변화는 그냥 그렇게 일어나는 것이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슬픔에 빠졌던 사회가 한 달 만에 축제 분위기로 바뀐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감정의 운동이 사회의 모든 것이 될 때다. 이런 사회는 겉으로만 역동적으로 보일 뿐, 실제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기억보다 중요한 것 반지하 주택이 폭우에 침수돼 일가족이 사망한 것이 불과 4개월 전이다. 충격적 사건이었고, 현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는 공분을 일으켰다. 이 사건이 주거권 보장을 위한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감정은 흘러가고 기억은 흐려진다. 슬픔과 분노는 강렬하지만 실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미미...

    1508호2022.12.16 11:3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19)폭력과 노동자의 죽음
    (19)폭력과 노동자의 죽음

    노동자의 죽음이 끊이지 않는다. 흔히 생각하듯이, 이윤을 위해 노동현장의 안전을 희생하는 데 첫 번째 이유가 있다. 이런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어떻게 인간의 생명을 소모품처럼 취급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소모품은 일종의 비유인가 아니면 실제 사실인가.폭력과 사고 폭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전쟁이나 살인이다. 인간이 물리적 힘으로 다른 인간의 신체를 파괴하고 생명을 빼앗는 행위, 여기에 폭력의 원초적 의미가 있다. 교통사고도 인간의 신체를 파괴하지만, 폭력이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폭력과 사고의 차이는 무엇일까? 인간의 의지가 개입됐다면 폭력, 아니라면 사고라고 답할 수 있다. 사고는 인간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 것, 따라서 인간이 완벽히 막을 수 없기도 하다. 여기에는 인간과 자연의 구별이 전제돼 있다. 즉 폭력은 인간의 행위이지만, 사고는 자연적 사건의 일종이다. 자동차는 인간의 발명품이지만, 교통사고는 길 가다 ...

    1503호2022.11.11 15:05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18)누가 윤리적 인간이 될 수 있는가
    (18)누가 윤리적 인간이 될 수 있는가

    얼마 전에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우영우는 현금입출금기 특허 재판에서 의뢰인 측 증인의 거짓말로 재판에서 이긴다. 얼마 후 상대편 기업 대표로부터 편지를 받고, ‘권모술수’ 권민우와 언쟁을 벌인다. 우영우는 진실과 거짓이 무엇인지 질문하지만, 권민우는 어처구니없다는 식으로 반응한다. 권민우에게 중요한 것은 재판에서 이겼다는 사실뿐이다. 이 장면은 꽤 흥미롭다. 만일 우영우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천재 변호사가 아니라 평범한 비장애인 신입 변호사였다면, 그는 이른바 고구마 캐릭터로 보이지 않았을까? 로펌이라는 조직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무지하고 순진한 소리만 늘어놓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시청자는 권민우가 아니라 우영우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일까?윤리적 인간 우영우우영우가 ‘이상한 변호사’인 이유는 그의 장애가 아니라 그가 윤리적 인간이라는 사실에 있다. 드라마에 ...

    1499호2022.10.14 14:51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17)민주화 이후의 역사
    (17)민주화 이후의 역사

    요즘 한국 어디를 봐도 무기력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가지만, 공동체는 변화의 동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라는 의문은 우리의 시선을 역사로 돌린다.집중과 흩어짐한국의 20세기를 ‘민주주의를 향한 전진의 역사’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일단락된 1987년 이후의 35년은 어떤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대략 노무현 정부 초기까지는 민주당의 집권이 곧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간주됐다. 군사 독재의 잔재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대결구도는 20세기 역사의 연장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지난 35년의 정당정치는 어떤 경향을 가진 역사적 흐름이라기보다는 국가권력을 주고받는 핑퐁게임에 가깝다. 모두의 기대를 받으며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지만, 약속한 개혁은 이뤄지지 않고, 결국 실패한 정권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정권을 내준다. 이른바 &ls...

    1493호2022.08.26 15:17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16)복수극에 열광하는 사회
    (16)복수극에 열광하는 사회

    왜 한국사회는 처벌 강화에 이토록 집착하는가? 죄와 벌의 등가교환이라는 판타지를 현실에서 구현하고 싶은 것인가? 강력한 처벌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죄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닌가?복수극은 대중문화의 주류 콘텐츠다. 권력 집단의 악행으로 고통받은 피해자가 치밀하게 복수를 실행하는 이야기는 지겨울 정도로 많다. 법의 무력함에 절망한 피해자가 폭력적 방법으로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도 흔하다. 어느 경우든 복수극은 판타지다. 이는 복수의 현실적 불가능성 때문만은 아니다.죗값의 의미 인류학은 사회관계의 기본 형태를 탐구하기 위해 이른바 ‘원시’사회에 집중해왔다. 그곳의 관계는 무언가를 주고받는 행위로 유지된다. 물건, 상징, 언어 등 모든 것이 그 대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 사이에 사람을 주고받는 행위, 즉 혼인이다. 원시사회의 혼인제도는 인류학의 주요 주제 중 하나였다. 핵심 문제는 주고받음이 교환관계와 부채관계 중 무...

    1489호2022.07.29 14:16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15)정치적 올바름은 쓸모없다
    (15)정치적 올바름은 쓸모없다

    한국에서는 정체불명의 언어가 수시로 튀어나와 정치적 대화를 방해한다. 이런 현상은 미국도 한국에 못지않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이라는 말이다.말의 기원PC는 어떤 학자가 이론적으로 정의한 개념이 아니라 정치 운동과 사회적 논쟁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말이다. PC는 두 단어의 기이한 조합으로 이뤄진다. 일단 ‘올바름’은 어떤 규칙이나 조건에 부합하는 상태(정확·교정·적절 등)이며, 윤리적 ‘옳음(right)’과 구별된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정치적 규칙이나 지침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 의미를 이해하려면 PC의 역사적 기원을 살펴봐야 한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20세기 초반 공산주의자들이 PC를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누군가 공산당의 지...

    1486호2022.07.08 1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