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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대승의 소수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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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34)외국인은 누구인가
    (34)외국인은 누구인가

    지난 칼럼에서 이민에 관한 내용을 다뤘다. 이민을 확대하든 말든, 그에 관해 논의하려면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외국인이라는 범주를 재검토하는 작업이다.국적법과 실제의 차이한국에서 ‘우리나라 사람 vs 외국인’은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인식 틀 중 하나로 작동한다. 외국인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 ‘한국 국적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고 답할 것이다. 국적법 역시 그렇게 정의한다. 그런데 저 말이 사용되는 실제 사례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행정안전부는 매년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을 발표한다. 이 통계가 사용하는 세부 범주를 보니 흥미로운 점이 있다. ‘외국인 주민’은 다음 세 가지 하위 범주로 나뉜다. 1)한국 국적을 가지지 않은 자 2)한국 국적 취득자 3)국내 출생한 외국인 주민 자녀. 그런데 방금 말한 외국인의 정의에 따르면, ‘한국 국적 취득자’는 한국인 아닌가?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이 왜 ‘외국인 주민...

    1557호2023.12.11 07:05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33)이민자는 노동력이 아니라 사람이다
    (33)이민자는 노동력이 아니라 사람이다

    한국 인구는 2020년을 기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인구 절벽’을 경고하며, 대규모 이민의 필요성을 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그중 상당수는 ‘일할 사람 없으니, 수입해오자’ 정도의 단순하고 유치한 경제적 논리에 갇혀 있다. 이런 논리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 ‘외국인 가사 근로자 도입’ 사업이었다. 이민 정책에 관한 최근의 논의가 보여주는 사실은 분명하다. 한국은 대규모 이민을 받을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 정치인과 정책 결정권자 중 이민이라는 주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국인에게 이민은 여전히 낯선 주제다.시민인가 노동력인가?이민은 경제적 문제이기에 앞서 정치와 사회의 문제다. 그것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수입하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 존재를 맞이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정치라는 것은 정치 공동체를 운영하는 활동이다. 이 공동체는 일종의 회원제 동아리이고, 시민은 그 동아리의 회원이다. 개인이 정해진 조건...

    1554호2023.11.20 07:12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32)사치품과 명품, 인간과 상품
    (32)사치품과 명품, 인간과 상품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소비문화가 급격히 확장될 때, 나는 탐탁지 않은 마음이 들면서도,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경제 규모와 소득이 성장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텐데, ‘자본주의 소비문화’를 계속해서 비판만 하는 건 너무 고리타분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럽에서 10년 넘게 생활한 지금은 오히려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의 소비문화는 절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후기 자본주의의 정신이 한국만큼 파괴적으로 드러나는 곳도 드물다.명품의 등장올해 초 여러 외신이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의 분석을 인용하며, 한국의 패션 명품 소비 경향을 보도한 적이 있다. 한국의 1인당 평균 명품 소비액은 325달러로, 미국 280달러와 중국 55달러를 훨씬 뛰어넘는 세계 1위라고 한다. 한국에서 명품으로 번역한 말은 럭셔리 굿즈(luxury goods)다. 이는 생활에...

    1552호2023.11.03 11:12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31)재앙은 미래 아닌 현재에서 온다
    (31)재앙은 미래 아닌 현재에서 온다

    모두가 위기에 관해 말한다. 위기 아닌 것이 없고, 위기 아닐 때가 없었다. 지난 모든 칼럼의 주제 역시 한국 정치와 사회의 위기였다. 그런데 위기란 무엇인가?맹목적 보수주의위기의 사전적 의미는 ‘위험한 시기나 고비’다. 여기서 시기와 고비가 구별된다는 점에 주목하자. 위기란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시기’이면서, 이 시기의 진행 방향에 따라 미래의 좋고 나쁨이 결정되는 ‘고비’이기도 하다. 흔히 ‘위기’로 번역하는 서구어(영어 crisis, 프랑스어 crise, 독일어 Krise)도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이 단어들의 원래 의미는 ‘결정적 시기’인데, 이는 ‘결정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고대 그리스어 크리시스(krsis)에서 온 것이다. 현대로 오면 여기에 ‘위험한 시기’라는 의미가 추가된다. 의...

    1548호2023.10.06 11:06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30)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불편이다
    (30)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불편이다

    한국에서 절대적 명령처럼 작동하는 규칙이 있다. ‘남에게 불편을 끼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분쟁과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첫 번째로 소환되는 것이 이 규칙이다. 그런데 불편이란 도대체 무엇일까?불편의 모호함불편의 의미는 극도로 넓다. ‘불편을 끼치지 말라’는 규칙에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면 안 된다’, ‘타인에게 괴로움을 주면 안 된다’, ‘타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 따위가 모두 혼재돼 있다. 말 그대로 ‘편안하지 않은 상태’를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모호함에서 여러 혼란이 발생한다.성차별적 농담을 한 직장 상사가 “불편을 끼쳤다면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불편이라는 말은 그의 잘못을 휘발시켜 버린다....

    1543호2023.08.25 10:54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29)교권이 아니라 시민, 노동자의 권리다
    (29)교권이 아니라 시민, 노동자의 권리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은 예외적 사건이 아니다. 권리 없는 사회의 일상적 폭력이 복합적으로 축적되는 곳이 바로 학교다.권리 없는 사회근대의 인간관계는 권리와 의무라는 형식을 따른다. 내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에 관한 공통 규범이 공동체의 토대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근대적 관계가 한국에 실질적으로 뿌리내린 적은 없다.권리-의무 관계에 기초한 사회를 상상해보자. 이곳에서 권리 주장은 마땅한 것이고, 권리 침해는 무조건 부당한 것이다. 공통의 규범 위에서 각자의 권리와 의무가 세부적으로 규정된다. 노동자는 고용자에게 ‘안전 물품은 노동자의 권리이니 당신은 지급할 의무가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정시 퇴근은 권리이므로 ‘칼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교사는 부당한 요구를 하는 학부모에게 ‘당신은 그런 요구를 할 권리가 없고, 나는 그것을 수용할 의무가 없...

    1539호2023.07.28 11:06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28)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28)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얼마 전 한 아파트 시행사가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광고를 걸었다가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해당 아파트의 분양가는 100억원에서 4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저런 광고 문구를 생각해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는 사실 역시 놀랍지 않은가?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은 주변 어디에나 널려 있기 때문이다.SNS에는 ‘상류층’과 결혼하려는 사람을 모집한다는 결혼 정보 회사 광고가 뜬다. 결혼과 계급 차이는 익숙한 주제지만, 결혼 상대방의 ‘스펙’을 하나씩 따지며 인간의 등급을 분류하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주거지에 따른 차별은 일상적 사건이 돼 별다른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기괴한 외국어 이름이 붙은 이른바 브랜드 아파트를 보라. 아파트단지 입구에 서 있는 저 흉물스럽고 거대한 아치는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자기 존재 증명 같은 것이...

    1536호2023.07.07 11:29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27)노키즈존과 일상의 무례함
    (27)노키즈존과 일상의 무례함

    이른바 ‘노키즈존’을 둘러싼 논란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노키즈존은 차별적 공간임이 확실하지만, 탄생 이유에 대한 별도의 분석은 필요하다.노키즈존은 차별이다2016년 제주시에서 노키즈존 식당 이용을 거부당한 어린이와 부모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적이 있다. 당시 인권위는 “특정 집단을 특정한 공간 또는 서비스의 이용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방식으로 구현되는 경우에는 그에 합당한 사유가 인정돼야만 한다”라고 밝히며, 해당 식당의 조치가 아동 차별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여기서 합당한 사유에 관해 좀더 생각해 보자.서비스 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이 배타적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는 흔하다. 미성년자는 술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화관은 영상물 연령 등급에 따라 운영된다. 여성 전용 헬스장이나 외모를 기준으로 입장객을 받는 클럽도 있다. 공간마다 배제의 합당한 근거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청소년의 유흥업소 출입금지는...

    1532호2023.06.09 11:23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26)종말과 위기 감각
    (26)종말과 위기 감각

    영화 <돈 룩 업>은 과장된 블랙 코미디가 아니다. 지금 인류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라. 혜성 충돌이라는 사건이 실제로 발생한다면, 현실의 인류가 영화 속 바보들보다 현명하게 대처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적 본성’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지만, 이런 본성은 경우에 따라 작동을 멈춘다.위기감의 실종현시대의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인류가 종말의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의 재앙적 결과를 경고하는 목소리는 이제 익숙해졌고, 위기의 감각을 가진 사람은 여전히 소수다. 이미 적지 않은 학자들이 이런 기이한 현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해왔다. 여기서는 한국적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몇 가지 분석을 추가해보자.위기의 감각은 시간에 의존한다. 위험은 항상 미래의 위험으로 등장한다. 남은 시간 동안 그 위험을 어떻게 회피할 것인지가 문제다. 신체적 감각이 인지할 수 있는 순...

    1528호2023.05.12 14:33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25)부채감으로 유지되는 사회
    (25)부채감으로 유지되는 사회

    한국사회에서 정의의 첫 번째 의미는 ‘가해자의 죗값을 받아내는 것’이다. 이 과정은 가해자-피해자 도식과 복수극의 형식을 따라 실현된다(‘박이대승의 소수관점’ 16회와 24회 참고). 여기에는 ‘피해자를 위한 정의’를 주장하는 제3자가 개입하는데, 이들을 움직이는 힘은 부채감이다.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부채감은 말 그대로 ‘내가 타인에게 빚지고 있다’는 감정이고, 이는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이어진다. 부채감은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일반적인 감정 중 하나지만, 문화권마다 형태가 다르다. 예컨대 한국의 부모 자식 관계는 늘 눈물을 동반할 정도로 절절한데, 이들은 끊임없이 서로에게 미안해한다. 미안함은 부채감의 일종이다. 이들의 사랑은 부채감으로 유지되고, 서로에 대한 의무도 부채감에서 나온다. 이러한 의무는 책임감이 부과하는 의무와 미...

    1525호2023.04.21 1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