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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대승의 소수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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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40)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40)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유럽,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연구자들이 참여한 학술대회에서 한국의 근대화와 탈식민에 관해 발표한 적이 있다. 발표의 핵심 질문은 ‘한국은 어떻게 탈식민의 문제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었는가’였다. ‘한국에서는 자본주의의 발전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여겨지므로, 이제 근대화나 탈식민 따위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가 제안한 결론이었다. 이런 발표를 한 것은 비유럽 지역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피해자였던 나라 중 한국 정도의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는 거의 없다. 탈식민과 근대화가 여전히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는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사람들에게 한국은 일종의 대안 근대화 모델로 인식되기도 한다. 과연 한국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한국식 근대화한국 현대사에서 근대화란 곧 서구화를 의미했다. 그런데 이는 단순한 따라하기가 아니라 모방의 모방, 끊임없는 변형과 재변형 과정이었다. 한편으로는 유럽을 모방한 일본을 재모방하고...

    1578호2024.05.10 16:0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 (39)유세차량의 소통법
    (39)유세차량의 소통법

    한국 선거운동의 독특한 풍경 중 하나는 온 거리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유세차량이다. 수십 년 동안 ‘소음 공해’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됐지만, 정당 색깔로 도배된 트럭과 고성능 확성기는 여전히 선거운동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된다. 물론 유세차량이 무조건 좋다 나쁘다 평가하기는 어렵다. 소음에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시민의 정치 참여를 위한 효과적 방법이 될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질문은 남는다. 왜 한국에서는 다양한 정치적 행위가 ‘시끄러움’을 주요 소통 수단으로 사용하는가?시끄러움이라는 소통 방식공개된 장소에서 시끄러움을 활용하는 경우는 다양하다. 광화문 광장을 가보라. 차량에 달린 고성능 확성기에서 ‘예수 믿고 천국 가라’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누군가는 휴대용 확성기를 들고 다니며 설교문을 반복 재생한다. 자신이 증오하는 정치인 집 앞에서 소음 공격을 하는 집단도 있다. 노동조합, 극우집단, 정당, 시민단체, 종교단체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종류의 ...

    1574호2024.04.12 16:0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38)가족을 이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38)가족을 이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구 감소 문제의 어려움 중 하나는 원인을 특정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흔히 불안정 노동과 주거, 사회경제적 불평등, 높은 양육 비용, 열악한 돌봄 서비스, 성불평등, 사교육 부담 등을 원인으로 꼽는데 나열된 것 하나하나가 저출생만큼이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이 문제들은 서로 긴밀히 얽혀 있는 다른 원인에서 비롯한다. 그 원인들의 원인들을 계속 찾다 보면, 결국 한국의 모든 것이 저출생의 원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뿐이다. 흔히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을 먼저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법이 유용한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제 다른 관점의 질문이 필요하다.관계 맺음의 피곤함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저출생 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전제돼 있다. 아이를 낳고 싶은 개인이 많지만 열악한 사회경제적 조건이 그들의 바람을 차단하고 있으며, 그런 조건을 개선할 국가 정책이 시행되면 출산율이 올라가리라는 것이다...

    1571호2024.03.22 16:3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37)민주주의의 진정한 적은 누구인가?
    (37)민주주의의 진정한 적은 누구인가?

    독재자는 민주주의의 도래를 저지한다. 억압적 권력자는 폭력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하지만 이들이 무슨 짓을 하든 민주주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에 대한 상상과 욕망은 더욱 강렬해지고, 끊임없는 저항이 일어날 뿐이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적은 민주화 이후에 등장한다. 한국 민주주의가 상상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의 제도로 구축돼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자, 그 제도를 내부로부터 무너뜨리는 질병도 함께 나타났다. 지금의 거대 양당은 민주주의의 실행자보다 그런 질병을 퍼트리는 병원체에 가깝다. 위성정당은 그들이 만들어낸 최악의 질병이다.공통의 규칙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지만,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오랜 노력의 결실이라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위성정당은 가짜 이름을 내건 빈껍데기 정당이고, 그 결실을 무력화하는 천박한 꼼수다. 이런 꼼수가 실행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다수가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공통의 규칙 따위 무시해도 좋다’...

    1568호2024.03.01 15:3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36)신상 공개라는 공적 규율 체계
    (36)신상 공개라는 공적 규율 체계

    유튜브에서 보이는 흥미로운 경향이 하나 있다.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를 소개하면서 ‘OO라고 무시당하던 주인공이 OO를 참교육하는 이야기’라는 식의 제목을 붙이는 것이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지, 어떤 서사 구조에서 쾌감을 얻는지, 사회관계를 바라보는 기본 관점은 무엇인지가 이 문장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경향은 국가 제도와 법률에 대한 극단적 불신, 정의는 복수극의 형식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그런데 ‘참교육’이라는 말을 이른바 ‘사적 복수’에 대한 열광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저런 믿음에 기초한 일종의 공적 규율체계가 이미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체계의 핵심에 신상 공개가 있다. 가해자, 범죄자 또는 ‘빌런’이라 생각되는 이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하고, 집단적 공격을 조직하는 행위는 정의를 실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인정된다. 실제로 많은 한국인이 법적 처벌보다 신상 공개를 더 두려워하지 않는가? 신상 공개는 단...

    1565호2024.02.07 05:3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35)평범한 사람들의 자리는 어디인가
    (35)평범한 사람들의 자리는 어디인가

    한국에는 ‘보통 사람들’에 관한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 그런 이미지는 현실의 정치사회적 문제를 다룰 때 심각한 걸림돌로 작동한다.연예인과 일반인배우 이선균이 세상을 떠난 후, 이번에도 누구 탓인지를 놓고 수많은 말이 오간다. 피의 사실 공표를 여론전 도구로 사용하는 국가 권력, 사실과 소문을 뒤섞어 뉴스 상품으로 가공하는 언론, 대중의 관심을 자신의 이익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는 미디어 창작자, 이들 모두에게 탓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작성된 ‘빌런들’의 목록은 눈앞의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고,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파편화할 뿐이다. 맥락, 환경, 구조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왜 한국의 국가 권력은 이토록 여론전에 집착하는가? 연예인이라는 직종은 어쩌다 그런 여론전의 도구가 됐는가? 연예인 루머로 장사질하는 악인은 왜 이토록 많은가? 낯선 타인을 공격하고 비난할 거리를 제공하는 정보가 ...

    1561호2024.01.08 06:0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34)외국인은 누구인가
    (34)외국인은 누구인가

    지난 칼럼에서 이민에 관한 내용을 다뤘다. 이민을 확대하든 말든, 그에 관해 논의하려면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외국인이라는 범주를 재검토하는 작업이다.국적법과 실제의 차이한국에서 ‘우리나라 사람 vs 외국인’은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인식 틀 중 하나로 작동한다. 외국인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 ‘한국 국적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고 답할 것이다. 국적법 역시 그렇게 정의한다. 그런데 저 말이 사용되는 실제 사례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행정안전부는 매년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을 발표한다. 이 통계가 사용하는 세부 범주를 보니 흥미로운 점이 있다. ‘외국인 주민’은 다음 세 가지 하위 범주로 나뉜다. 1)한국 국적을 가지지 않은 자 2)한국 국적 취득자 3)국내 출생한 외국인 주민 자녀. 그런데 방금 말한 외국인의 정의에 따르면, ‘한국 국적 취득자’는 한국인 아닌가?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이 왜 ‘외국인 주민...

    1557호2023.12.11 07:05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33)이민자는 노동력이 아니라 사람이다
    (33)이민자는 노동력이 아니라 사람이다

    한국 인구는 2020년을 기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인구 절벽’을 경고하며, 대규모 이민의 필요성을 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그중 상당수는 ‘일할 사람 없으니, 수입해오자’ 정도의 단순하고 유치한 경제적 논리에 갇혀 있다. 이런 논리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 ‘외국인 가사 근로자 도입’ 사업이었다. 이민 정책에 관한 최근의 논의가 보여주는 사실은 분명하다. 한국은 대규모 이민을 받을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 정치인과 정책 결정권자 중 이민이라는 주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국인에게 이민은 여전히 낯선 주제다.시민인가 노동력인가?이민은 경제적 문제이기에 앞서 정치와 사회의 문제다. 그것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수입하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 존재를 맞이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정치라는 것은 정치 공동체를 운영하는 활동이다. 이 공동체는 일종의 회원제 동아리이고, 시민은 그 동아리의 회원이다. 개인이 정해진 조건...

    1554호2023.11.20 07:12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32)사치품과 명품, 인간과 상품
    (32)사치품과 명품, 인간과 상품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소비문화가 급격히 확장될 때, 나는 탐탁지 않은 마음이 들면서도,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경제 규모와 소득이 성장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텐데, ‘자본주의 소비문화’를 계속해서 비판만 하는 건 너무 고리타분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럽에서 10년 넘게 생활한 지금은 오히려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의 소비문화는 절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후기 자본주의의 정신이 한국만큼 파괴적으로 드러나는 곳도 드물다.명품의 등장올해 초 여러 외신이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의 분석을 인용하며, 한국의 패션 명품 소비 경향을 보도한 적이 있다. 한국의 1인당 평균 명품 소비액은 325달러로, 미국 280달러와 중국 55달러를 훨씬 뛰어넘는 세계 1위라고 한다. 한국에서 명품으로 번역한 말은 럭셔리 굿즈(luxury goods)다. 이는 생활에...

    1552호2023.11.03 11:12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31)재앙은 미래 아닌 현재에서 온다
    (31)재앙은 미래 아닌 현재에서 온다

    모두가 위기에 관해 말한다. 위기 아닌 것이 없고, 위기 아닐 때가 없었다. 지난 모든 칼럼의 주제 역시 한국 정치와 사회의 위기였다. 그런데 위기란 무엇인가?맹목적 보수주의위기의 사전적 의미는 ‘위험한 시기나 고비’다. 여기서 시기와 고비가 구별된다는 점에 주목하자. 위기란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시기’이면서, 이 시기의 진행 방향에 따라 미래의 좋고 나쁨이 결정되는 ‘고비’이기도 하다. 흔히 ‘위기’로 번역하는 서구어(영어 crisis, 프랑스어 crise, 독일어 Krise)도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이 단어들의 원래 의미는 ‘결정적 시기’인데, 이는 ‘결정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고대 그리스어 크리시스(krsis)에서 온 것이다. 현대로 오면 여기에 ‘위험한 시기’라는 의미가 추가된다. 의...

    1548호2023.10.06 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