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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대승의 소수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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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44) 동성결혼 반대하는 것은 가능한가
    (44) 동성결혼 반대하는 것은 가능한가

    얼마 전 대법원은 동성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그들의 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더라도, 사실혼 관계까지 부정하는 것은 분명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이제 동성결혼에 관한 진지한 논쟁이 시작돼야 한다.동성결혼의 쟁점현대 민주주의의 법적 원리에서 곧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예컨대 태아를 법적 인간으로 볼 것인지 말 것인지, 마약이나 성매매를 허용할 것인지, 국내 체류 외국인에게 어떤 권리를 보장할 것인지 등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그래서 정치적 논의의 결과에 따라 전혀 다른 결정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유럽은 국가마다 성매매에 관한 법 제도가 다르고, 미국의 이민자 정책은 선거 결과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반면 남성과 여성에게 동등한 투표권을 줄 것인지, 피부색에 따라 같은 권리를 보장할 것인지 따위는 애초에 쟁점 자체가 될 수 없다. 차별을 인정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동성결혼 법제화는...

    1590호2024.08.02 16:0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43) 작은 스캔들만 가득한 기이하게 고요한 세상
    (43) 작은 스캔들만 가득한 기이하게 고요한 세상

    최근 한국은 전례 없는 고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작은 사건은 계속되지만, 거대 사건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거대 전선의 실종현 정부도 이른바 보수로 분류되지만, 과거 보수 정부와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이명박은 집권하자마자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 직면했고, 국정원 여론 조작 사건은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대중적 저항을 촉발했다. 탄핵의 직접적 계기는 세월호 참사와 국정 농단이었지만, 보수 정부를 향한 폭발적 저항의 잠재력은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국회 입법 청원이 100만명을 넘겼지만, 예전과 같은 대규모 저항 운동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원인은 다양할 것이다. 현 정부가 보여주는 극도의 무능력과 취약한 지지기반이 오히려 저항의 필요성을 제거하고 있는지 모른다. 굳이 거리로 나가 촛불시위를 하지 않아도 그들을 충분히 저지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또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반감 ...

    1587호2024.07.12 16:0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42) 다른 국가와 정치를 상상하기
    (42) 다른 국가와 정치를 상상하기

    대중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이야기를 사랑한다. 작가의 역량은 상상의 세계를 얼마나 치밀하게 구축할 수 있는지에서 드러난다. 거기서 국가와 정치에 관한 상상이 빠질 수는 없고, 이는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에도 영향을 미친다. 생각나는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종말 이후의 국가<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와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아포칼립스보다 국가의 탄생과 변형에 관한 창조신화에 가깝다. 영화의 세계를 구성하는 세 가지 정치 형태를 구별할 수 있다. 사막을 떠돌아다니는 약탈적 유목민, 시타델이라는 유사 국가, 퓨리오사가 돌아가려는 어머니들의 푸른 땅이다. 유목 집단을 이끄는 디멘투스는 국가의 자원과 권력을 욕망하지만, 그걸 운영할 역량은 없는 비겁하고 포악한 인물이다. 시타델을 지배하는 임모탄 조는 근대적 독재자보다 고대 국가의 왕에 가깝다. 유목민에 맞서 국가를 지키는 것이 그의 첫 번째 임무다. 그의 권력은 억압적 국가기구가 아니라 물과...

    1584호2024.06.21 16:0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41) 인간관계를 양적으로 환산할 수 있는가
    (41) 인간관계를 양적으로 환산할 수 있는가

    결혼 축의금에 관한 사연이 SNS에 종종 보인다. 대부분 ‘축의금 3만원 한 친구와 손절해야 할까요?’ 따위의 내용이다. 액수에 대한 고민은 축의금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이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예전과 미묘한 차이가 있다. 축의금을 일종의 현금 교환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도움과 은혜축의금이나 부조금의 기본 성격은 ‘돕는다’는 데 있다. 도움은 양적 교환이 아니다. 내가 같은 양의 대가를 돌려받을 생각으로 상대방을 돕는다면 애초에 도움이라고 말할 수 없다. 물론 그가 내게 무언가를 돌려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주었던 도움과 그가 돌려주는 것의 가치가 동일할 수는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움을 ‘돌려받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만일 그가 은혜를 갚기 위해 나를 도와준다면, 이는 받았던 도움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게 새로운 도움을 주는 것이다.도움이나 은혜는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고, 이는 사라지지 않는 부채 관계를 남긴다...

    1581호2024.05.31 16:0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40)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40)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유럽,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연구자들이 참여한 학술대회에서 한국의 근대화와 탈식민에 관해 발표한 적이 있다. 발표의 핵심 질문은 ‘한국은 어떻게 탈식민의 문제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었는가’였다. ‘한국에서는 자본주의의 발전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여겨지므로, 이제 근대화나 탈식민 따위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가 제안한 결론이었다. 이런 발표를 한 것은 비유럽 지역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피해자였던 나라 중 한국 정도의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는 거의 없다. 탈식민과 근대화가 여전히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는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사람들에게 한국은 일종의 대안 근대화 모델로 인식되기도 한다. 과연 한국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한국식 근대화한국 현대사에서 근대화란 곧 서구화를 의미했다. 그런데 이는 단순한 따라하기가 아니라 모방의 모방, 끊임없는 변형과 재변형 과정이었다. 한편으로는 유럽을 모방한 일본을 재모방하고...

    1578호2024.05.10 16:0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 (39)유세차량의 소통법
    (39)유세차량의 소통법

    한국 선거운동의 독특한 풍경 중 하나는 온 거리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유세차량이다. 수십 년 동안 ‘소음 공해’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됐지만, 정당 색깔로 도배된 트럭과 고성능 확성기는 여전히 선거운동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된다. 물론 유세차량이 무조건 좋다 나쁘다 평가하기는 어렵다. 소음에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시민의 정치 참여를 위한 효과적 방법이 될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질문은 남는다. 왜 한국에서는 다양한 정치적 행위가 ‘시끄러움’을 주요 소통 수단으로 사용하는가?시끄러움이라는 소통 방식공개된 장소에서 시끄러움을 활용하는 경우는 다양하다. 광화문 광장을 가보라. 차량에 달린 고성능 확성기에서 ‘예수 믿고 천국 가라’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누군가는 휴대용 확성기를 들고 다니며 설교문을 반복 재생한다. 자신이 증오하는 정치인 집 앞에서 소음 공격을 하는 집단도 있다. 노동조합, 극우집단, 정당, 시민단체, 종교단체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종류의 ...

    1574호2024.04.12 16:0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38)가족을 이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38)가족을 이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구 감소 문제의 어려움 중 하나는 원인을 특정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흔히 불안정 노동과 주거, 사회경제적 불평등, 높은 양육 비용, 열악한 돌봄 서비스, 성불평등, 사교육 부담 등을 원인으로 꼽는데 나열된 것 하나하나가 저출생만큼이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이 문제들은 서로 긴밀히 얽혀 있는 다른 원인에서 비롯한다. 그 원인들의 원인들을 계속 찾다 보면, 결국 한국의 모든 것이 저출생의 원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뿐이다. 흔히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을 먼저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법이 유용한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제 다른 관점의 질문이 필요하다.관계 맺음의 피곤함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저출생 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전제돼 있다. 아이를 낳고 싶은 개인이 많지만 열악한 사회경제적 조건이 그들의 바람을 차단하고 있으며, 그런 조건을 개선할 국가 정책이 시행되면 출산율이 올라가리라는 것이다...

    1571호2024.03.22 16:3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37)민주주의의 진정한 적은 누구인가?
    (37)민주주의의 진정한 적은 누구인가?

    독재자는 민주주의의 도래를 저지한다. 억압적 권력자는 폭력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하지만 이들이 무슨 짓을 하든 민주주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에 대한 상상과 욕망은 더욱 강렬해지고, 끊임없는 저항이 일어날 뿐이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적은 민주화 이후에 등장한다. 한국 민주주의가 상상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의 제도로 구축돼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자, 그 제도를 내부로부터 무너뜨리는 질병도 함께 나타났다. 지금의 거대 양당은 민주주의의 실행자보다 그런 질병을 퍼트리는 병원체에 가깝다. 위성정당은 그들이 만들어낸 최악의 질병이다.공통의 규칙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지만,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오랜 노력의 결실이라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위성정당은 가짜 이름을 내건 빈껍데기 정당이고, 그 결실을 무력화하는 천박한 꼼수다. 이런 꼼수가 실행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다수가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공통의 규칙 따위 무시해도 좋다’...

    1568호2024.03.01 15:3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36)신상 공개라는 공적 규율 체계
    (36)신상 공개라는 공적 규율 체계

    유튜브에서 보이는 흥미로운 경향이 하나 있다.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를 소개하면서 ‘OO라고 무시당하던 주인공이 OO를 참교육하는 이야기’라는 식의 제목을 붙이는 것이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지, 어떤 서사 구조에서 쾌감을 얻는지, 사회관계를 바라보는 기본 관점은 무엇인지가 이 문장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경향은 국가 제도와 법률에 대한 극단적 불신, 정의는 복수극의 형식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그런데 ‘참교육’이라는 말을 이른바 ‘사적 복수’에 대한 열광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저런 믿음에 기초한 일종의 공적 규율체계가 이미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체계의 핵심에 신상 공개가 있다. 가해자, 범죄자 또는 ‘빌런’이라 생각되는 이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하고, 집단적 공격을 조직하는 행위는 정의를 실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인정된다. 실제로 많은 한국인이 법적 처벌보다 신상 공개를 더 두려워하지 않는가? 신상 공개는 단...

    1565호2024.02.07 05:3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35)평범한 사람들의 자리는 어디인가
    (35)평범한 사람들의 자리는 어디인가

    한국에는 ‘보통 사람들’에 관한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 그런 이미지는 현실의 정치사회적 문제를 다룰 때 심각한 걸림돌로 작동한다.연예인과 일반인배우 이선균이 세상을 떠난 후, 이번에도 누구 탓인지를 놓고 수많은 말이 오간다. 피의 사실 공표를 여론전 도구로 사용하는 국가 권력, 사실과 소문을 뒤섞어 뉴스 상품으로 가공하는 언론, 대중의 관심을 자신의 이익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는 미디어 창작자, 이들 모두에게 탓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작성된 ‘빌런들’의 목록은 눈앞의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고,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파편화할 뿐이다. 맥락, 환경, 구조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왜 한국의 국가 권력은 이토록 여론전에 집착하는가? 연예인이라는 직종은 어쩌다 그런 여론전의 도구가 됐는가? 연예인 루머로 장사질하는 악인은 왜 이토록 많은가? 낯선 타인을 공격하고 비난할 거리를 제공하는 정보가 ...

    1561호2024.01.08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