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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대승의 소수관점
  • 전체 기사 64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54) 어디에서 다시 시작할 것인가?
    (54) 어디에서 다시 시작할 것인가?

    윤석열의 파면 여부가 조만간 결정될 예정이다. 그가 대통령직에 복귀한다면 예측 불가능한 극단적 정세가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한다고 해도 모든 것이 정상화되지는 않는다. 애초에 한국은 ‘정상적’ 상태가 아니었다. 어디에서 정상화를 위한 출발점을 찾아야 하는가?실천의 출발점그동안 이 칼럼은 해당 시기에 필요한 여러 주제를 다루어왔지만, 모든 글이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고 있었다. 근대 민주주의를 기준으로 삼아 한국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변화의 방향을 제안하는 것이다. 여기서 근대 민주주의란 단순히 선거나 정당 같은 대의 제도와 기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구에서 만들어진 특정한 정치·사회 모델이며, 개인과 집단의 존재 방식, 언어 형식, 지식 체계 등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고유한 방식으로 규정한다. 그것은 ‘서구에서만 실현 가능한 보편적 모델’이라는 역설적 본성을 가지고 있다. 비서구 지역에 정상적 민주주의가 정...

    1622호2025.03.28 14:0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 (53) 팩트체크가 무의미한 시대
    (53) 팩트체크가 무의미한 시대

    얼마 전 기자들과 만나 요즘 한국 상황에 관해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 하나가 요즘엔 팩트체크가 무의미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거짓과 진실의 구별이 중요치 않은 시절을 살고 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믿는다’ 혹은 ‘나는 내가 믿고 싶은 정보를 나 스스로 창조한다’가 이 시대의 규칙이다. 그게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별 상관이 없다. 생각해 보면 충격적인 일이지만, 우리는 이미 이 새로운 규칙에 익숙해지는 중이다.이른바 ‘레거시 언론의 위기’는 이미 식상한 이야기가 됐다. 우리는 ‘위기’ 이전의 시대를 기억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지난 10년간 팩트체크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거짓을 규탄하고 진실을 밝히는 일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고, 바로 여기에 언론의 첫 번째 존재 이유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부정할 수 없다고 믿었던 가치마저 노골적으로 부정당하고 있다. 언론의 위기는 또 다른 위기로 대체되고 있...

    1618호2025.02.28 15:0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52) 윤석열은 한국의 트럼프가 아니다
    (52) 윤석열은 한국의 트럼프가 아니다

    작년 12월 3일 이후, 모두가 던졌던 질문 중 하나는 ‘도대체 왜?’였다. 윤석열은 무얼 위해 그런 짓을 벌였는가? ‘오래전부터 쿠데타를 한번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무속인의 점괘를 믿어서’ 따위의 설명이 농담처럼 떠돌기도 했다. 그동안 밝혀진 전후 상황을 고려하면, 이걸 농담이 아니라 설득력 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성폭력을 저질러 군에서 쫓겨난 노상원이 무속인과 어울리다가 국방부 장관의 비선처럼 활동하고, 현직 군인들이 이런 인물과 함께 롯데리아에서 쿠데타를 모의하고, 대통령은 이들에게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를 공격하라고 명령하고, 심지어 무속인이 국회 증인으로 출석하는 광경을 보면서 과연 쿠데타의 이유라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 ‘비선 실세 최순실’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는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것처럼 이번 사태도 이해 불가능한 어떤 것으로 남을지 모른다.윤석열, 트럼프, 전두환누군가는 윤석열을 ‘한국의 트럼프’라고 부르는데, 이 둘은 전혀 다르다...

    1615호2025.02.07 14:5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51) 어떻게 극우를 제거할 것인가
    (51) 어떻게 극우를 제거할 것인가

    지난해 12월 3일 내란 사태 직후에는 국민의힘과 주변 세력 모두 주춤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윤석열을 적극 방어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들은 제도 정당이기를 포기하고 내란 세력의 일부가 돼버렸다. 지금 그들이 쏟아내는 말 중 멀쩡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고려할 가치가 없는 사실 왜곡, 거짓, 궤변, 헛소리뿐이다. 국민의힘은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위협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안정화와 정상화를 위해서는 이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이때 제거란 어떤 의미인가?극우와 보수의 구별일단 보수와 극우를 구별하자. 보수(conservative)는 말 그대로 보존한다는 의미다. 공동체의 기존 질서와 가치를 지키고 유지하려는 정치이념이 보수다. 이는 근대 민주주의와 함께 출현했고, 지금도 세계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주류 이념 중 하나로 작동하고 있다. 반면 극단적 우파 또는 우파 극단주의의 목표는 민주주의의 파괴다. 그것은 파시즘과 나치즘의 유산에서 태어...

    1612호2025.01.10 15:3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 (50) 뒤처리 전문, 한국 민주주의
    (50) 뒤처리 전문, 한국 민주주의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 강점은 내적 위협이 발생할 때 뚜렷이 드러난다. 윤석열의 내란 직후, 한국 시민이 보여준 반응 속도와 강도를 보라. 세상 어디에도 이런 강력한 방어 장치를 갖춘 민주주의가 없다. 많은 사람이 여기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하지만 감탄만 하기에는 뭔가 찝찝하다. 불과 2년 전 윤석열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도 한국 시민이었다. 외부의 폭력이 개입한 적도 없고, 선거 부정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인민의 일반 의지는 민주주의 선거제도를 통해 그를 선택했다. 물론 ‘난 그를 찍지 않았다’고 원망 어린 항변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별 소용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권력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결정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된 자가 2년 뒤에 군사쿠데타를 시도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민주주의에서 상상 가능한 최악의 악몽은 무엇일까? 광인(狂&...

    1609호2024.12.20 15:0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 (49) 대통령 윤석열의 가벼움
    (49) 대통령 윤석열의 가벼움

    정치인의 기질은 흔한 미디어 상품이다. 정당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 언론은 그의 말투, 성격, 첫인상 따위를 분석하기에 바쁘다. 물론 이런 분석은 한계가 명확하다. 정치인의 행동에 개입하는 요소는 매우 다양하고, 그의 사람됨보다 해당 시기의 정치적 상황, 주변의 권력 구조, 시민의 의지와 요구 등이 더 결정적일 때가 많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일종의 예외로 보인다. 지난 11월 7일에 열린 기자회견을 본 후, 적지 않은 시민이 비슷한 질문을 떠올렸을 것이다. 지금 대통령실 주변에서 벌어지는 기가 막힌 상황은 무엇보다 윤석열이라는 사람 개인의 성격과 기질에서 비롯하는 것 아닌가? 벼랑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면서도, 자기 발밑만 바라보며 신소리를 해대는 예외적인 인물이 이런 난장판의 첫 번째 원인 아닐까?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국식 위계 구조의 특징을 살펴보자.위계적 공간 배치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미장센이 있는데, 바로 ‘ㄷ(디귿)’ 모양의 ...

    1606호2024.11.29 15:5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48) 공과 사를 둘러싼 전쟁
    (48) 공과 사를 둘러싼 전쟁

    미디어의 연예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콘텐츠가 이른바 “사생활 논란”이다. 이 말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사건이 사생활에 속한다면 공적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공적 공간에서 다루어져야 할 사건이라면 애초에 사생활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에 등장한 미묘한 문제 중 하나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관계다. 한국사회는 이 관계를 다룰 정교한 규칙을 수립하는 대신, 오히려 난잡하게 뒤섞으려는 경향을 나타낸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사생활 논란이라는 역설적 표현이다.공사의 구별 한국어 공(公)과 사(私)는 주로 서구어 퍼블릭(public)과 프라이빗(private)의 번역어로 사용되지만, 두 개념 쌍의 의미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퍼블릭은 ‘한 공동체의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것들의 영역’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박이대승의 소수관점(47) ‘한국에 개인들의 공동체가 존재하는가’ 참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1603호2024.11.08 16:0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47) 한국에 개인들의 공동체가 존재하는가
    (47) 한국에 개인들의 공동체가 존재하는가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을 보면, 출연자 에드워드 리가 비빔밥을 영어로 설명하면서 “저는 이 흔한 요리를 특별하게 만들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흔한 요리”는 영어 “such a common dish”를 번역한 것이다. 이걸 보며 문득 생각했다. 한국에 커먼(common)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는가?‘커먼’의 의미영어 ‘커먼’은 라틴어 ‘communis’에서 온 말이고, 다른 서구어 대부분에도 비슷한 철자와 의미를 가진 단어가 존재한다. 메리엄 웹스터 영어사전이 이 말의 핵심 의미를 잘 정의해 놓았는데, ‘한 공동체나 그룹의 모든 구성원에게 공유되고 있는 것’ 정도로 옮길 수 있겠다. 여기에 정확히 일치하는 한국어 단어는 없다. 흔히 ‘공통’, ‘공동’, ‘일반’, ‘보통’ 등으로 번역하는데, 이런 단어에 원래 의미를 온전히 담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커먼에는 ‘널리 퍼져 있는 것’이라는 의미도 있으니, 에드워드 리의...

    1600호2024.10.18 16:0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46) 모두가 평등하게 막말하는 사회
    (46) 모두가 평등하게 막말하는 사회

    지난 4월 민희진 어도어 당시 대표의 기자회견이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는 공적 공간에서 사용 가능한 표현의 한계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막말과 욕설을 쏟아냈는데, 오히려 이 점이 대중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한국사회는 막말에 관대한 것일까? 이 문제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막말의 기능‘막말’의 사전적 의미는 ‘말을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말의 내용과 표현 모두가 포함된다. 예컨대 처음 만난 사람에게 ‘당신의 외모는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아름답지는 않군요’라고 말한다면, 이건 막말일까? 표현은 정중하지만, 발언 내용의 무례함 때문에 막말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반면 평범한 일상어에 습관적으로 욕설과 비속어를 덧붙이는 사람, 나이 어린 사람에게 다짜고짜 반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들의 발언은 내용이 아니라 표현 방식 때문에 막말로 간주된다.많은 사회에 ‘품위 있는 언어를 써야 한다’는 관습적 규칙이 존재하는데, 이 규칙이 일차적으로 다루는...

    1597호2024.09.27 16:00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45) 뉴라이트의 헛소리가 가능한 이유
    (45) 뉴라이트의 헛소리가 가능한 이유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가 거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뉴라이트 인사들은 계속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광복절의 의미광복절을 다시 생각해 보자. 이날은 한국만의 기념일이 아니다. 여러 나라가 독일과 일본이 항복한 1945년 5월 8일과 8월 15일을 기념하고 있다. 기념일의 명칭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전쟁 승리와 해방의 의미를 담고 있다.기념일은 역사적 사건을 지시하는 숫자의 조합이 아니라 후세에 전하는 일종의 메시지다. 5월 8일과 8월 15일은 어떤 메시지를 남기는가? 역사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거의 모두가 합의하는 한 가지 메시지가 있다. 반파시즘, 즉 파시즘의 존재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절대적 원칙이다. 두 기념일이 지시하는 일차적 사실은 ‘우리 연합군이 독일과 일본에 승리했다’는 것이고, 이는 미래세대를 향해 ‘앞으로도 전 세계적 반파시즘 연대가 파시스트에게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를 요구한다...

    1594호2024.08.30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