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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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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옥’에서 온 편지](3)법원의 선고보다 무서운 형벌
    (3)법원의 선고보다 무서운 형벌

    ‘법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뜻은 법무부의 자식이라고 합니다. 내가 당분간 지내야 하는 세계에서는 위생용품, 의류, 간식 등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모든 수용자에게 배급되는 필수용품이 있지만, 왠지 손이 가지 않습니다. 구매품에 비해 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바깥세상에서 누렸던 호화스러운 소비 습관을 재현함으로써 지난 삶과의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히고픈 욕심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라면 사먹을 영치금도 없는 법자의 몫으로 남겨두자는 말은 선의보다는 조롱에 가깝습니다. 돈을 부쳐줄 가족이 없으면 누구도 자립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관계가 단절돼 돌봄을 받을 수 없는 이를 겨냥한 ‘자식’이라는 은유는 몹시 차별적입니다. 그나마 속옷까지 사제 명품으로 들여오던 시절에 비해 나아진 건 있답니다. 적어도 겉모습만으로는 한사람이 짊어진 가난을 식별할 수 없도록 대부분의 물품을 반입하지 못하도록 한 점입니다....

    1438호2021.07.23 15:04

  • [‘감옥’에서 온 편지](2)‘닭장’ 속에서 떠올린 쪽방촌의 얼굴들
    (2)‘닭장’ 속에서 떠올린 쪽방촌의 얼굴들

    격리실은 가난한 사람의 주거지로 쓰이는 쪽방과 매우 흡사했고, 쪽방과는 달리 칸막이로 구분된 화장실이 있다는 점에서 책상과 침대를 뺀 고시원과도 닮았습니다.이 세계에 첫발을 디딘 날은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지난 3월 어느 오후였습니다. 수갑이나 포승줄을 차지 않은 채 검찰 호송차에서 내려 제 발로 걸어들어온 게 신기했는지, 하얀 방호복으로 온몸을 싸맨 교도관 너덧이 둘러싸고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병역법 위반으로 수감되는 사람은 앞으로 없을 줄 알았다는 말과 함께 어딘가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구차한 설명 따위에 쏟을 마음이 부족했습니다. 법원이 내 신념, 내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이유를 직접 말하는 건 스스로 파괴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여호와의 증인이 아닙니다.’ 내가 답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입소 절차를 마치고 신입 수용자를 2~3주간 격리하는 건물로 인계됐습니다. 십수년 전, 수감된 병역거부자의 회고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1436호2021.07.12 15:15

  • [‘감옥’에서 온 편지](1)‘평화적 신념’ 허하라
    (1)‘평화적 신념’ 허하라

    편집자 주 손편지 도착 이후인 지난 6월 24일, 대법원은 여호와의증인 신도가 아닌 비폭력·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현역 입영을 하지 않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A씨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에서 비폭력·평화주의 신념을 이유로 현역 입영을 하지 않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확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끄적일 만한 주제를 찾을 수 없어 눈을 감습니다. 눈을 감으니 귓속을 파고드는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 가만히 몸부림칩니다. 몸을 꼼지락거리는 것도 여의치 않은 이곳은 함께 먹고 자고 일하는 여섯사람이 일자로 누우면 빽빽해지는 좁은 방입니다. 천장에는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게 엉긴 시멘트 가루가 즐비하고, 벽면에는 오랜 세월을 먹고 자란 곰팡이를 감추려 덕지덕지 붙인 흰색 용지가 울어 있습니다. 창문에 매달린 녹슨 철조망은, 페인트칠이 여기저기 벗겨진 투박한 건물 모서리에 저무는 노을...

    1434호2021.06.25 1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