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말이 나를 수식할 단어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병역거부를 결단한 후에도 기꺼이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양심이란 단어가 지니는 무게를 견딜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냥 병역거부자이고 싶었습니다. 수많은 인터뷰에 나서야 할 때면, ‘여호와의 증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스스로를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로 소개했습니다. 어설프게 병역거부자의 얼굴 역할을 도맡았기에 병역거부 운동 전체를 욕보이기 싫었습니다. 극렬한 혐오를 내뿜는 사람들의 비위를 조금이라도 덜 거스르기 위해, 기사를 읽을 사람들의 극히 일부라도 설득하기 위해 최대한 언어를 정제했습니다. 그래도 악플을 수만개나 받았습니다. 병역거부자의 정형에 들어맞는 외모나 말투는커녕 누구라도 감동할 만한 극적인 서사를 갖추지도 못한 탓입니다. 그래서 흔들렸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불릴 자격이 부족...
1469호2022.03.11 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