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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못 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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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23)판단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
    (23)판단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

    2021년 현재 판사는 2900여명으로 국민 1만명당 1명도 되지 않는다. 판사들은 평소 모르는 사람과 거의 만나지 않는다. 시민은 언론이 전하는 기사나 법정에서 본 이미지를 피상적으로 떠올린다. 형사사건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피고인이나 변호인 또는 검사이고, 판사는 배경 인물이다. 베일에 가린 판사의 일상과 삶을 들여다보자.사람들은 법정에서 재판이 판사 업무의 거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매일 판사는 판사실에서 사건기록을 검토하고 판례나 법리를 연구하며 판결문을 쓰느라 여념이 없다. 일주일에 한두 번 법정에 가는데, 그 전에 당사자가 제출한 문서와 증거를 꼼꼼히 살펴 물어보거나 확인할 사항을 체크한다. 어려운 사건을 만나면 판례의 경향은 어떤지, 학계의 관련 논문은 있는지 찾아본다. 심리를 마치면 다시 기록을 완독하고 판결문을 작성한다. 판사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업무시간은 대체로 기록 검토, 판결문 작성, 재판 진행 순이다. 내부 조사에서, 판사들은 직무의...

    1439호2021.08.02 11:26

  •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22)열정도, 무관심도 아닌
    (22)열정도, 무관심도 아닌

    시민의 신뢰 없이는 법원이 설 수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도처럼 신뢰는 결코 오지 않는다. 판사는 법정에서 엄중한 권한이 있음을 인정하고, 마음속 깊이 끊임없는 회의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1988년 10월 16일 호송 도중 탈출한 미결수들이 서울의 한 가정집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였다.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인질극은 자살하거나 사살되며 10시간 만에 끝났지만, 지강헌이 팝송 ‘홀리데이’를 들으며 외쳤던 말은 사람들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다.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 76억원을 횡령한 전 대통령 동생은 징역 7년을 받았는데, 몇백만원을 훔친 자신은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의 무거운 형을 받아 나온 말이다. 2000년 대법관을 지낸 이용훈 변호사를 찾아온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판사가 상대방에게 넘어갔다”고...

    1436호2021.07.12 15:15

  •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21)판사에겐 두개의 양심이 있다
    (21)판사에겐 두개의 양심이 있다

    우리나라 헌법에서 ‘양심’을 규정한 부분은 시민에게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제19조), 국회의원이 직무를 행할 때 요구되는 양심(제46조), 법관이 재판할 때 요구되는 양심(제103조)이 있다. 제46조는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후에는 법적으로 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독자적인 양식과 판단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시민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법전문가들은 풀이한다. 하지만 시민에게 양심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할지, 법관의 양심에 따른 재판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생각이 다르다. 몇년 전부터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서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면서, 어느 언론은 <판사와 두 개의 양심>이라는 제목의 연재물로 증언 내용을 상세하게 보도하고 비판한다.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가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는데,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rsq...

    1434호2021.06.25 16:20

  •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20)판사는 ‘핵인싸’가 아니다
    (20)판사는 ‘핵인싸’가 아니다

    1999년 9월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지를 두고 정부와 검찰이 충돌했다. 이 회장은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기업의 주식을 사자면서 ‘바이코리아 펀드’ 판매를 했는데, 기업의 주가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언론은 ‘단군 이래 최대 사기사건’이라고 보도했다. 구속수사를 주장했으나 청와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박순용 검찰총장은 마지막으로 고검장회의를 소집한 후 전부 찬성했다고 설명하며 영장 청구를 강행했다.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기록을 보니 혐의는 소명됐다. 결과를 기다리다 참지 못한 한 기자가 불쑥 들어오더니 “혹시 청와대나 대법원장으로부터 연락받거나 지시받지 않았나요”라고 물었다. “아,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까지 전화를 받지 못했네요”라고 응수했다. 기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사무실을 나갔고, 필자는 바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중...

    1432호2021.06.11 14:41

  •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19)권력 제한과 인권 보장이 곧 법치주의다
    (19)권력 제한과 인권 보장이 곧 법치주의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탄핵사건의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를 낭독했다. 우리 역사상 최고 권력자가 사법절차에 따라 권력을 잃은 첫 번째 사례다. 조선시대 왕이 신하들의 반정으로 물러나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혁명과 정변으로 하야하거나 사망한 사례가 있긴 했다. 시민은 최고 권력자도 법을 어기면 재판으로 자리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됐다.세계사를 보면 공동체가 크게 변화하는 시대에 법이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에서는 진나라가 법가사상으로 춘추전국시대를 끝냈다. 로마공화정은 법으로 평민과 귀족의 갈등을 조정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근세 초 서유럽 왕들은 로마법을 계수해 영주와 농민의 반발을 억누르고 국가의 기본틀을 형성했다. 17~18세기 영국과 미국, 프랑스에서 일어난 근대 시민혁명은 올바른 체제와 권력에 관한 논쟁에서 비롯됐고, 시민의 뜻을 반영하는 ...

    1429호2021.05.21 13:34

  •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18)전문가 아닌 판사가 판단하는 법
    (18)전문가 아닌 판사가 판단하는 법

    평소 알고 지내는 의사에게 질문을 받았다. “의사가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일하려면 전공을 선택해 박사 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판사는 그 많은 재판을 해낼 수 있나요. 특허나 조세 전문변호사처럼 전문판사가 없어서 재판을 믿지 못하는 것 아닌가요.” 학사 학위밖에 없어 당황했지만 이렇게 답변했다. “재판은 민사·형사·행정·가사재판으로 나뉘고, 전문분야를 담당하는 전문재판부가 수십개 있습니다. 다만 의사처럼 평생 하나의 전문분야만 하는 게 아니고, 몇년마다 바꾸지요.” 그러자 다시 물었다. “바꾸는 이유가 뭐죠. 한 판사가 그 많은 전문분야를 어떻게 알아서 판단하나요.”우리나라에서 특허법원과 가정법원, 서울행정법원을 제외한 모든 법원의 판사는 다양한 소송사건을 맡는다. 일반사건도 판사의 법적 지식과 경험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의 시가나 권리금을 정해야...

    1427호2021.05.07 11:19

  •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16)공정한 절차가 재판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16)공정한 절차가 재판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아주 이따금 친구나 지인이 재판받고 있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묻는다. 절차가 어떻게 진행될지 알려주면 “그건 알겠는데 이기는지 지는지, 집행유예로 나올지 궁금하다”고 재촉한다. 어쩔 수 없는 경우 “당신 말이 옳다면 이럴 가능성이 많다”라고 말한 뒤 바로 단서를 붙인다. “재판은 양쪽 말을 다 들어야 하는데, 상대방 말은 듣지 못했다. 담당 판사가 보는 기록에는 당신에게 불리한 내용이 많을 것이다.”돈에 관한 민사재판이든 죄인을 처벌하는 형사재판이든 재판은 절차에서 시작해 절차로 끝난다. 아무것도 몰랐던 판사는 양쪽이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찾아내고 결론을 내린다. 재판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될까? 민사재판은 원고가 법원에 소장을 내면서 시작된다. 원고는 소장에 피고에게 무엇을 구하고(청구취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청구원인) 적어야 한다. 소장을 받은 피고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거나 ...

    1425호2021.04.23 11:28

  •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16)화성에서 돌아온 판사
    (16)화성에서 돌아온 판사

    “이들의 머릿속에는 법으로 만든 가상세계가 들어 있을 것이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다르게 불린다. 가령 떨어지는 나뭇잎은 ‘분리되는 토지의 정착물’이라고 해야 한다. 사람이 토끼를 잡는 것은 ‘선점’, 토끼를 동네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은 ‘인도’라고 해야 한다. 그로 인해 동네사람에게는 ‘부당이득’이 발생해야 한다고 해야 한다. 동네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자기들끼리 주고받으면서 키득거린다.”이들은 누구일까? 대부분 대한민국 법학전문대학원생이거나 법률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오답은 아니지만, 김희균 교수는 서양 중세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 대학’에서 로마법을 공부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법학박사의 생각과 대화를 상상했다. 평균 수명이 50세도 안 되던 시절, 20년 가까이 유학생활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은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

    1423호2021.04.09 11:40

  •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15)법정 문을 여는 열쇠, 법리와 판례
    (15)법정 문을 여는 열쇠, 법리와 판례

    우리는 초등학생 때부터 삼권분립 이론을 배운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와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 및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법부로 나누고, 견제하게 해 국가권력의 남용을 막는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엇갈리는 사건에서 판결이 선고되면, 어떤 사람은 “법대로 판단하라”고 말한다. 수학공식처럼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되는데, 판사가 요령을 피워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판단하지 마라”고 말한다. 법규정이 너무 모호해 판사 마음대로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판결을 보도하는 기자는 법률가의 주장과 논리가 생소해 와닿지 않고, 판결문에 적힌 법리와 판례가 어려워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대체로 시민은 법률이 완전하고 흠결이 없어 판사가 그대로 적용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육법전서만 암기하면 된다거나, 판사를 못 믿으니 ‘AI(인공지능) ...

    1421호2021.03.26 12:58

  •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14)판사는 판결로 말한다
    (14)판사는 판결로 말한다

    판결문을 쓴 지 30년이 지났다. 전부 모아놓으면 책 100권 분량은 넘을 텐데, 판결문 쓰는 일은 여전히 힘들고 어렵다. 세상만사가 복잡해지고 변호사의 주장이 다양해지면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고 판결문 쪽수는 늘어났다. 처음 접했을 때 껄끄럽기만 했던 용어와 문체로 요즘 일주일에 6~7개 판결문을 작성하면서 어느새 푹 물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판결문에 대한 시민과 전문가의 평가는 박하기만 하다. 일본식 한자투성이인 법률용어, 읽다가 숨넘어가는 문장의 난삽함, 이해되기를 포기한 듯 얽히고설킨 추론에 대한 불평은 끊임없이 나온다. ‘문장이 아니다’는 혹평도 있다. 판사는 재판의 꽃이자 열매로 생각해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하면서까지 판결문을 작성하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데, 그렇게 중요한 말이 시민에게 잘 이해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오래전 법원을 출입하는 기자에게 질문을 받았다. &ldqu...

    1419호2021.03.12 1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