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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현장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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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 현장 속으로](10) 긴장을 늦출수 없는 ‘개와 늑대의 시간’
    (10) 긴장을 늦출수 없는 ‘개와 늑대의 시간’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려고 결심한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이른 새벽과 늦은 오후의 시간대를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한다. 무척 문학적인 표현이다. 또 지역 경찰의 현장을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교대근무를 하는 지역 경찰은 주간근무 때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고, 야간근무 때는 저녁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에 퇴근한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면서 내가 처리하는 신고와 민원 하나하나가 개인지 늑대인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확인해야만 한다. 단순해 보이는 주민 간의 갈등이 칼부림으로 이어지는 늑대가 될 수도 있고, 경찰관을 괴롭히던 악성 민원인이 별안간 우호적인 개로 변할 수도 있다(사실 이 경우는 거의 겪어보지 못했다). 매 순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대기하느라 퇴근 후엔 온몸이 녹초가 된다. 야간근무가 끝날 때쯤 밝아오는 햇살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버텼다는 감정이 벅차오른다...

    1344호2019.09.06 15:33

  • [경찰, 현장 속으로](9) 내팽개쳐진 가엾은 어린 영혼들
    (9) 내팽개쳐진 가엾은 어린 영혼들

    왕복 6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던 세 살배기 여자아기를 발견한 것은 1년 전 어느 날이었다. 티셔츠 하나만 걸친 채 돌아다니던 아이는 아장아장 걷는 속도로 어떻게 차들이 쌩쌩 달리는 왕복 6차선 도로를 상처 하나 없이 건넌 걸까. 이를 본 경찰 선배는 “아기들 목숨은 삼신할머니가 구해주신다더니 정말인가보다”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갖고 있던 스카프로 아기의 하반신을 가려주셨고, 나와 선배는 아이를 안은 채 부모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6차선 도로 무단횡단하는 세 살 아기아이는 자신의 이름도, 집이 어디인지도 말하지 못했다. 근처에 있는 가게에 전부 들어가 “이 아기를 본 적 있으시냐”고 묻고 다니길 수차례. 갑자기 오줌이 마렵다는 아이를 어색하게 안고 급히 주유소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이는 손에 보물처럼 쥐고 있던 떡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화장실 바닥에 뒹군 떡을 버리려는 찰...

    1343호2019.08.30 14:32

  • [경찰, 현장 속으로](8) 찍히지 않을 권리와 지워질 권리
    (8) 찍히지 않을 권리와 지워질 권리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는 쉽다. 하지만 굳이 찍지 않아도 됐던 사진이나 잘못 찍힌 사진을 주기적으로 삭제하며 사진첩을 정리하는 사람은 드믈다. 찍기는 쉬워도 지우는 것은 왠지 귀찮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부터 각종 CCTV에 자신의 모습이 찍히며 살아간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거부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합법적 촬영을 넘어 불법촬영의 위험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화장실, 숙박업소, 지하철, 해변 등 장소를 가리지 않는 가해자의 대범함 앞에 선 피해자는 무력하기만 하다.파출소에 와서도 경찰관을 찍는 사람경찰관도 이런 사진촬영의 늪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제복을 입고 길을 나서는 순간 주목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신고 출동을 나가서도 현장에 집중하기 힘들다. 현장 주위에 시민들이 빙 둘러서서 경찰관이 어떻게 조치하는지, 어떤 실수를 하지는 않는지 카메라 렌즈를 통해 호시탐탐 관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남자 앞...

    1342호2019.08.23 16:04

  • [경찰, 현장 속으로](7)마지막 자살자이기를 소망하며
    (7)마지막 자살자이기를 소망하며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뉴스는 수도 없이 보았지만, 자살률 1위라는 건조한 막대그래프를 보는 것과 실제 자살한 사람을 두 눈으로 목도하는 건 결코 같지 않았다. 사람은 늘 죽었거나 죽고 있으며, 이에 벼락같이 놀랄 필요도 없다. 생과 사는 영화에서 다루는 것처럼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삶의 한 부분이다. 그렇다곤 해도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아침에 눈 떠서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고, 각자의 방법으로 돈을 벌며 중간중간 배설을 하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밤에는 잠드는 일에 사표를 던지다니. 무슨 사연이 있길래 꽉 묶인 신발끈을 풀고 발걸음을 멈추었나.우리나라 10대 사망원인 1위는 자살비트코인이 1000만원을 호가하자 가상화폐 거래소는 투기하려는 사람이 몰려 신규계좌 개설조차 쉽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불과 얼마 전의 일이고 추락했던 비트코인 가격이 최근 회복세를 보인다는 뉴스가 간간이 보이기는 하...

    1341호2019.08.16 15:22

  • [경찰, 현장속으로](6) 술 취해 한 행동은 봐줘도 되나?
    (6) 술 취해 한 행동은 봐줘도 되나?

    현장실습 기간에 일찌감치 깨달은 사실. 술보다 강한 무기는 없다는 것이다.시간당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변호사를 고용해도 이길까 말까 한 재판에서 술을 마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면죄부를 받아가는 사람을 수도 없이 봤다. 단돈 1800원이면 편의점에서 손쉽게 구입 가능한 소주를 마신다면 변호사보다 강력한 무기를 갖게 되다니, 이 얼마나 가성비 넘치는 아이템인가! 어떨 때는 짙은 회의감이 전신을 에워싸기도 한다. ‘이 주취자를 잡아봐야 뭐해. 어차피 재판에서 무죄로 나올 텐데’ ‘적극적으로 경찰행정을 집행해봐야 뭐하나, 그냥 풀려날 텐데’ 머릿속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이성과 감정의 싸움. 결국 술이라는 무기 앞에서는 경찰관도 속수무책이 된다.밤낮을 가리지 않고, 출근해서 하루라도 주취자를 만나지 않았던 적이 없다. 그들은 하나같이 경찰관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욕을 했다. 또 숨을 쉬듯 바닥에 침을 뱉고, 옷을 입은 채...

    1340호2019.08.09 14:41

  • [경찰, 현장 속으로](5) “늙었다고 바깥으로 밀어버리면 안 되제”
    (5) “늙었다고 바깥으로 밀어버리면 안 되제”

    순찰을 하면 동네 노인들을 참 많이 만난다. 늙어감은 자연의 순리이고 모두에게는 일상과도 같은 일인데 그들에게서 듣는 늙음은 내가 아직은 겪어보지 못한, 그러나 씁쓸한 맛이 나는 경험이다. 이 글은 그들이 내게 들려준 말을 그대로 적은 것이다. 노인이 내게 했던 그 말들을 그의 입을 빌려 옮겨본다.사람은 태어나면 온갖 것을 입에 넣는 것부터 배웁디다. 애들 어릴 때는 입에 뭘 집어넣는지 감시하는 게 일이었지요. 먹고사는 게 힘들다곤 하지만 갓난이들한테까지 그 비명이 전해졌는가. 눈에 보이는 건 전부 입에 집어넣고 오물거리고 있어. 이도 제대로 안 난 것들이. 그런 애들이 자라서 나 같은 늙은이가 되면 또 입에 음식을 집어넣고 오물거리게 돼. 우리도 이가 없거든. 아기나 죽을 날 받아 놓은 노인들이나 비슷한 점이 퍽 많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 요즘은 기저귀 찬 노인들이 그렇게 많다잖아. 어쨌거나 이 한 많은 세상에 한 번 태어난 이상 죽을 때까지 늙어가는 건 똑...

    1339호2019.08.02 14:52

  • [경찰, 현장속으로](4)가난의 무게에 짓눌린 처절한 비명
    (4)가난의 무게에 짓눌린 처절한 비명

    저는 한때 좋은 중·고등학교를 나와 좋은 대학을 다닌 소위 학벌이 좋은 사람은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노력한 결과물일 테니까요. 그러나 한 소년가장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 생각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소년은 “하루 종일 공부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현실은 먹고살기 위해 어린아이에게도 노동을 강요합니다. 공부가 욕심인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서울의 명문대에 갈 수 있었지만 집이 가난해서, 챙겨야 할 부모와 동생들이 있어서 집 근처 지방 국립대에 입학해야 했던 사람이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물론 명문대에 간 사람이 집에서 뒷받침을 잘해줘서 운 좋게 들어갔다고 폄훼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능성까지 미리 짓밟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그저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만 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이번 기회에 드리고 싶을 뿐입...

    1338호2019.07.26 17:56

  • [경찰, 현장 속으로](3) 대한민국 경찰과 공권력의 현실
    (3) 대한민국 경찰과 공권력의 현실

    최근 인기리에 상영된 영화 <걸캅스>에서 형사역의 배우 이성경씨가 범인을 향해 총을 쏘는 대신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많은 관객들이 웃었지만 나는 차마 웃을 수 없었다. 씀바귀를 삼킨 것처럼 씁쓸한 맛이 입에서 떠나질 않았다. 경찰관들 사이에서 총은 ‘쏘는’ 것이 아니라 ‘던지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경찰관의 대처가 사실은 결코 웃어 넘길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관객들은 알고 있을까.끊임없이 나오는 경찰과 관련된 뉴스를 볼 때마다(경찰관 개인의 위법·일탈 행위에 관한 보도를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UFC 경기장을 떠올린다. 경찰관은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그렇다고 공격할 힘도 없이 링 위에 올라가 있고 상대방은 연신 경찰관을 두들긴다. 심지어 한 명이 아니다. 그 수는 셀 수도 없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공격을 ...

    1337호2019.07.19 15:26

  • [경찰, 현장 속으로](2)“이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럴까?”
    (2)“이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럴까?”

    파출소에 출근해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도시 곳곳에 흘러넘치는 범죄를 목격하는 것이다. 집에는 부인을 폭행하는 남편이 있고, 거리에는 욕을 하며 노상방뇨를 하는 주취자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일련의 풍경들이 지긋지긋할 때가 많다. 범죄는 치우고 치워도 사라지기는커녕 치우는 만큼 더 생긴다. 도대체가 끝이 없다. 인간의 밑바닥이란 밑바닥은 다 본 것 같은데, 매일매일 그 사람을 넘어서는 밑바닥 인간이 등장한다. 엔딩이 없는 이 게임에서 이제 그만 ‘로그아웃’하고 싶을 때도 있다.택시기사님이 승객이 택시 안에 놓고 간 휴대폰을 맡기고 가셨다. 잠시 후 연락을 받은 휴대폰 주인이 파출소에 왔다. 이 사람이 진짜 주인인지 확인을 해야 했기 때문에(간혹 주인이 아닌 사람이 주인인 척 가져가는 경우가 있다) 이름과 연락처를 물었다. 그러자 갑자기 나를 째려보는 게 아닌가? 개인정보를 왜 꼬치꼬치 묻냐는 것이다. 그는 나를 잔뜩 노려보다가 돌아갔다...

    1336호2019.07.12 14:31

  • [경찰, 현장 속으로](1)툭하면 화내고 싸우는 ‘분노 사회’
    (1)툭하면 화내고 싸우는 ‘분노 사회’

    경찰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하지만 ‘경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저마다 다르다. 어쩌면 부정적 이미지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경찰관이 바라본 우리네 삶은 어떤 모습일까. <주간경향>은 현직 경찰관이자 필명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원도’의 글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그는 경찰의 눈으로 일터에서 겪은 수많은 경험을 우리에게 전해줄 예정이다. 가난은 어떤 모양인지, 죽음의 무게는 얼마인지 등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통해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나는 경찰관이 되기 전까지, 그리고 되고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112 신고를 해본 적이 없다. 살면서 누군가를 향해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주먹을 휘둘러 본 적도 없다. 그렇게 자랐고, 그런 사람들만 봐온 나는 어리석게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기준을 잡을 때 ‘나’를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내가 신고를 해본 적이 없으니 ...

    1335호2019.07.05 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