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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목 내시경]동묘공원 골목
    동묘공원 골목

    이곳에 문을 연 지 13년 됐다는 젊은 주인은 “엎어치나 메치나 그게 그거다. 버리면 쓰레기, 주워서 길바닥에서 팔면 헌옷, 옷걸이에 걸면 구제옷, 가게 안에 들어가면 빈티지다”라고 설명했다.도시의 물건들이 한 생을 끝마치고 모여 다음 생을 기약하는 곳이 있다. 동묘공원 주변 골목길, 지금은 동묘벼룩시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본디 벼룩시장은 그 길 건너 황학동에 있었다. 황학동 마지막 시장이 지금 동묘벼룩시장의 원형인 셈이다. 고물장수들이 고물상으로 몰리는 오후 무렵 마지막으로 장이 열린다 하여 마지막 시장이라 불렸다. 청계천 정비사업으로 시장은 동대문운동장 풍물시장으로 옮겼다가 다시 신설동 풍물시장으로 이동했다.세상만사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동묘 주변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행정가들과 도시계획자들은 그럴듯한 장마당을 열어주면 모두 옮겨가 주변이 깔끔해질 것을 기대했을 터이나, 마지막 시장의 장 주인들은 본래 가게도 닻도 없...

    1333호2019.06.21 15:16

  • [골목내시경]귀국동포와 월남민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귀국동포와 월남민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해방촌은 돌연한 광복과 분단과 전쟁, 그리고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떠나야 했던 산업화의 시대가 만들어낸 공간이다. 이곳이 또 다른 해방의 시대를 바라는 새로운 공간이 될 수 있을까.조국이 광복되자 마을이 생겼다. 해방촌이다. 귀국동포들이 일본군 관사에 임시거처를 마련했고, 일본 호국신사가 있던 자리에 대부분 평북 선천군 출신의 월남민들이 천막을 치고 터를 잡았다. 남산 아래 행정구역상 용산2가동인 해방촌은 그렇게 시작됐다. 오늘의 해방촌은 영문 약자를 따서 HBC라 부르고, ‘리틀 이태원’으로 알려졌다. 70여년을 두고 해방촌도 여러 겹의 옷을 갈아입었다.아무런 예고도 대책도 없이 해방을 맞았듯이 해방촌도 대책 없이 생겼다. 남산 서남쪽 가파른 경사를 따라 천막이거나 미군부대에서 주워온 박스로 대충 지은 집들이 경계 없이 들어섰다. 당시 해방촌은 이범선의 소설 <오발탄>에 생생히 묘사돼 있다. “산비탈을 도려내고...

    1331호2019.06.10 10:00

  • [골목내시경]1000개의 한약 업체, 세계 최대 규모 자랑
    1000개의 한약 업체, 세계 최대 규모 자랑

    지하철 1호선 제기역을 나서면 건강한 냄새를 물씬 맡을 수 있다. 서울약령시장을 알리는 높다란 문을 지나 골목골목 약 1000개의 한약 관련 업체가 밀집해 있다. 행정구역상 제기1·2동과 용두동에 자리잡은 약령골목. 공식 명칭은 서울약령시 한방산업특구, 사람들은 ‘한약골목’이라고 부른다. 스스로 세계 최대 규모를 주장하는 한약재와 그에 얽힌 이들이 모인 골목이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한약재의 절반 이상, 절대다수가 이 골목 일대에서 유통된다.이 지역에 한약재상들이 밀집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부터라고 한다. 인근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과 청량리역을 통해 지방 약초상들이 드나들고, 종로 일대의 한약방들이 모인 것이 시초였다는 것이다. 1970년대에 거의 지금과 같은 대규모 단지가 이루어졌다. 당시 문을 열었던 이들 대부분은 거의 은퇴했고, 지금은 2대에 이어 3대째 자리를 지키는 이들도 나오기 시작했다.1960년대 말부터 한약...

    1329호2019.05.24 16:49

  • [골목내시경]창신동엔 얼마나 많은 봉제공장이 있을까?
    창신동엔 얼마나 많은 봉제공장이 있을까?

    봉제협회나 인근 부동산에 물어봐도 대답은 한결같이 “잘 모른다”는 한마디. 그 많은 집들이 살림집과 공장 구분 없이 밀집돼 있기 때문이다. 대략의 셈법으로 대강 900여개 정도가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동대문 바로 옆 낙산을 따라 오르는 성곽이 있다. 성곽 바깥 비탈을 따라 촘촘히 이어진 골목이 창신동 봉제골목이다. 한때 국내 의류시장 7할이 동대문과 남대문 일대에서 팔렸고 그 옷의 상당량이 창신동 봉제골목에서 만들어졌다. 지금도 골목을 따라 걸으면 미싱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노찾사’의 민중가요 <사계> 중 봄의 노랫말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가 생생한 길이다.한류의 한 부분으로 국내 패션산업의 중심에 선 동대문 의류시장은 한국전쟁의 산물이다. 전쟁 이후 구제품 옷시장이 열렸고 그 뒤를 평화시장 등 봉제공장이 뒤따랐다. 피난민들이 낙산 비...

    1327호2019.05.10 17:17

  • [골목내시경]북촌-가장 한국스러운 골목, 한류 관광의 시발지
    북촌-가장 한국스러운 골목, 한류 관광의 시발지

    관광객 행렬을 지켜보던 가게 주인은 “진짜 이 동네를 느끼고 싶다면, 비 오는 날 오라. 우산을 쓰고 고요한 골목길을 걷다보면 사람들에 가려져 보지 못한 북촌의 진짜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엔 서울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골목이 있다. 소위 ‘북촌(北村)’, 좁게는 원서동, 가회동, 계동, 재동, 소격동, 팔판동 등 오래된 동네의 집과 집들 사이를 좁고 길게 누비는 골목들이다. 북촌은 북악산에 기대 있는 서울의 북쪽 마을이라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하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북촌마을의 집과 골목은 생각만큼 오래되지 않았다. 서울에서 한옥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가회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일종의 부동산 개발로 급조된 마을이다. 그러니 고풍 넘치는 가회동의 골목길도 겨우 100년을 넘겼을 뿐이다.북촌 골목을 대표하는 것은 한옥들이다. 좁은 공간에 갖은 형태로 지어진 가옥은 아름답거나 낡았다. 대부분...

    1325호2019.04.29 11:02

  • [골목 내시경]대학천 책방 골목-발길 끊긴 지 오래, 인접 생선골목만 ‘북적’
    대학천 책방 골목-발길 끊긴 지 오래, 인접 생선골목만 ‘북적’

    대학천 책방골목과 생선구이 골목, 군용물품 시장골목, 백년시장 골목은 우리 현대사의 압축판이다. 세월은 흐르고 길은 변해간다. 어제 마주쳤던 골목의 모습을 내일 또 보리라는 약속은 없을 것이다.북악에서 흘러내린 실개천이 성균관 앞을 지나 대학로를 거쳐 청계천과 합류한다. 그 개천의 옛 이름은 흥덕동천, 주변의 대학들을 거쳐 흐른다 하여 대학천으로 불렀다. 한국전쟁 이후 대학천은 개천보다 주변 책방 상가를 부르는 이름이 됐다. 종로6가와 청계천 사이 대학천 상가 골목에는 100여개 이상의 도서총판 도·소매상이 몰려 있어 국내에서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책은 이 골목을 거쳐 전국의 크고 작은 서점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종로6가 일대와 대학천 주변의 덕성상가 사이에 난 좁은 골목이 그 많던 책방이 번성하던 대학천 골목이다.대학천 골목의 서점들은 이제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겨우 예닐곱 남은 서점이 오랜 습관처럼 문을 열고 닫을 뿐 책을 사러 오는 지방 총판...

    1323호2019.04.16 09:32

  • [골목 내시경]장사동 전자골목-없는 게 없는 전자제품 부품의 천국
    장사동 전자골목-없는 게 없는 전자제품 부품의 천국

    장사동 일대에서 취급하는 제품의 종류와 품목은 다양하다. 거래처도 개인부터 국가 연구소까지 다양해서 장사동이 문을 닫으면 우리나라 산업이 멈춘다는 이야기도 있고 “장사동 청계천에서 부품을 모아 인공위성 로켓도 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청계천4가 일대에 개발자들의 천국이 있다. 청계천에서 종로까지 가로세로로 촘촘히 이어진 골목길, 장사동 전자골목이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려는 이들은 부품과 재료를 찾아 이곳으로 온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산업의 가장 비밀스런 몫을 담당한 곳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신제품들이 이곳에서 잉태됐다고 볼 수 있다.개발자들이 장사동 전자골목을 사랑하는 이유는 개발에 필요한 대부분의 부품을 한 번에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부품을 찾지 못한다면 대강의 사양만으로 어느 가게에 있다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가게 주인들은 웬만한 부품의 사양은 모두 외우고 있고 유...

    1321호2019.04.01 14:59

  • [골목 내시경]광희동 중앙아시아 거리
    광희동 중앙아시아 거리

    중앙아시아의 평원에서 살 만한 곳을 찾아 멀리 대륙의 마지막 땅까지 온 이들이 광희동에서 장마당을 열고 있다. 그들을 따라서 초원의 음식과 문화도 자연히 흘러들어왔다.을지로6가. 지하철 2호선과 지하철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사이의 골목길, 이곳을 동대문 러시아·몽골 타운으로 부른다. 지자체에서 붙인 공식 명칭은 광희동 중앙아시아 거리지만 러시아 골목, 러시아·몽골 골목, 동대문 실크로드 등 부르는 사람마다 명칭은 다양하다. 한글 간판보다 러시아 키릴문자가 더 눈에 띄고 거리에서 들리는 대화는 러시아말이 흔하다. 그래도 골목에서 마주친 우즈베키스탄 사람은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란 인사를 자연스럽게 건넨다.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쟁반 가득 러시아빵을 담아 골목을 오가는 우즈베키스탄 여인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식품점에는 보드카가 빼곡하고 호밀빵과 둥근 밀가루 빵인 이뾰시카, 양고기를 채워 넣은 사모, 러시아식...

    1319호2019.03.18 14:11

  • [골목 내시경]인사동길-한국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거리의 미술관’
    인사동길-한국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거리의 미술관’

    인사동이 문화의 거리로 불린 것은 구한말부터 1960~70년대까지 만들어진 이야기다. 인사동에는 골동품상, 표구사, 고서점, 화랑이 즐비하고 뒷골목 막걸리집에는 시인이며 기자에 그림쟁이들이 득실거렸다.서울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길, 한국의 일상을 엿보고 싶은 외빈이 오면 으레 들르는 곳, 인사동이다. 서울의 구도심이 그렇듯 인사동에는 여러 골목길이 구석구석 숨어 있다. 그리고 골목마다 사연과 역사가 감춰져 있다.안국동 교차로부터 종로2가에 이르는 인사동 큰길은 아침부터 밤까지 나들이객들이 점령한다. 길가의 가게에는 중국어, 일본어 안내판이 당연히 붙어 있고 노점상이나 호객꾼도 외국어 한두 마디는 거침없이 한다. 큰길 가게들은 대부분 관광객 상대의 기념품이 주종이거나 구색을 갖추고 있다. “분위기가 이렇게 바뀐 것은 대략 2000년 이후부터인 것 같다. 그 전에도 외국 관광객들은 오갔지만 이렇게 많지는 않았다. 지금은 하루에 관광버스 100여대...

    1317호2019.03.04 14:41

  • [골목 내시경]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병행하는 골목 영상 컨텐츠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병행하는 골목

    우사단길은 토박이와 이방인이 함께 사는 곳이기도 하다. 우사단길 주변 골목골목마다 무슬림뿐 아니라 아프리카 출신, 미국, 동남아 등 각지에서 온 외국인들이 섞여 살고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방값이 싸기’ 때문이다.서울 이태원 보광초등학교에서 이슬람 중앙성원을 지나 도깨비시장까지 이르는 곳이 우사단길이다. 왕이 기우제를 지내던 ‘우사단(雨祀壇)’이 지명의 유래다. 산 정상의 능선을 따라 이어진 길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좁고 가파른 골목길에 주택이 이어져 있다. 그리고 서울의 어느 곳에서도 보기 어려운 낯선 풍경이 펼쳐진 곳이다.한때 우사단길은 한창 뜨는 동네로 관심과 구경꾼의 발길이 이어지던 곳이다. 명물인 우사단 골목장이 열렸고, 작은 마을축제가 들뜬 분위기를 만들었다. 7~8년 전부터 젊은 예술가와 청년창업자들이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몰리면서 우사단길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신선한 감각과 색다른 가게는 골목에 생...

    1315호2019.02.18 1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