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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목내시경]건너수먹방길-새로 작명한 골목, 부흥 계획은 성공할까
    건너수먹방길-새로 작명한 골목, 부흥 계획은 성공할까

    길 하나가 유명해지면 줄줄이 꼬리가 생긴다. 가로수길 옆 세로수길, 그 건너에 건너수먹방길이 있다. 지하철 3호선 신사역을 중심으로 이어진 골목들이다. 건너수먹방길이란 야릇한 이름은 다른 골목처럼 명소를 중심으로 자연히 지어진 명칭이 아니다. 근래에 이 지역상권 부흥을 위해 마케팅 전문가를 동원해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낯설고 생뚱맞다. 건너수란 가로수길 건너편이란 뜻이고, 먹방길이란 먹을거리가 줄을 이었다는 것으로 짐작된다. ‘먹방’이란 최근 유행하는 먹는 방송이다. 한류를 타고 유튜브를 통해 먹방은 이미 세계어가 됐다. 그렇다면 이 길은 먹방에 자주 나왔다는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먹방을 하라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길이 없다.가로수길 건너편 옛 간장게장골목신사역 4번 출구 뒤편 나루터길 일대 골목의 좀 더 오래된 이름은 간장게장골목이다. 간장게장과 아구찜집이 번창해 게장을 팔아 빌딩도 올리고 문어발 확장으로 돈을 끌어모은 ...

    1353호2019.11.18 14:56

  • [골목내시경]방산시장 골목-청계천 지게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방산시장 골목-청계천 지게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국전쟁 이후 한동안 방산시장 일대는 청계천 지게꾼들의 본거지였다. 아침으로 이곳에 모여 일을 맡았다. 봉제공장과 식자재 상가의 일감을 지고 나르는 일은 모두 그들의 일이었다.도시의 실핏줄이 골목이라면 혈관이 모이고 흩어지며 생명을 유지하는 곳은 시장이다. 서울 중구 방산시장 일대 골목길은 아직도 서울 구시가가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을지로 5가에서 청계천 사이 주교동 대부분과 방산동 일부에 걸쳐 방산시장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이어진다. 그 중심에 방산상가가 있다. 도심에서는 보기 힘들게 비교적 넓직한 터를 상가가 깔고 앉아 있는 까닭은 그곳이 초등학교가 있던 자리였기 때문이다. 1922년 개교한 방산초등학교는 1970년 2월, 45회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학생들은 인근 학교로 흩어졌고 터는 팔려서 상가가 됐다. 수출산업이 고도성장을 이끌던 때 방산상가는 포장재를 대던 공급처였다. 박스부터 비닐, 각종 포장재를 이곳에서 구할 수 있었다.수제 화장...

    1351호2019.11.01 15:52

  • [골목내시경]강남 가로수길 세로수길
    강남 가로수길 세로수길

    골목인 듯하면서 골목이 아닌 것도 같은 골목길, 강남의 골목들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대로와 압구정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가로수길이 있고, 그 좌우로 뻗힌 길이 세로수길이다. 강남 개발이 1970년대부터 이루어졌으니 그 길의 역사도 그만큼이다. 개발 이전엔 넓은 황무지거나 과수원이 있거나 배추도 못심는 모래땅이었다. 뽕밭이 변해 바다가 된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고사가 바로 이곳에 어울린다. 강남은 그야말로 이름 없는 땅이라 한강 남쪽이라는 통칭으로 불릴 뿐이었고, 또 다른 명칭인 영동 또한 영등포 동쪽이라는 뜻에 불과했다.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던 곳이 이제는 부의 상징과 유행의 대명사가 됐다.1970년대 강남 개발로 생긴 골목길가로수길이라는 이름 또한 속절없이 얻은 것이다. 1980년대 중반쯤 가로수로 심은 은행나무들이 유명해 길 이름이 됐다고 전해진다. 물론 가을이 되면 그 열매는 기피와 미움의 대상이 되고 만다. 본격적인 골목은 가로수길에서...

    1349호2019.10.18 16:02

  • [골목 내시경]‘없는 게 없어요’ 세상구경하기 좋은 곳
    ‘없는 게 없어요’ 세상구경하기 좋은 곳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을 나오면 중앙시장이 있다.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골목길이 개미굴같이 퍼져 있고 각각의 골목과 구역마다 장거리가 펼쳐져 있는데, 가구골목도 그 중 하나다. 새 가구를 만들고, 고쳐 재생하고, 중고가구를 모아 파는 곳이 황학동 가구골목이다. 골목을 따라서 전시장이 있고 더 깊이 들어가면 만들고 고치는 공장들이 있다. 몇몇 새로 지은 건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낡고 오래된 모습이다.서울에는 가구를 파는 거리가 이곳 말고도 두어 곳 더 있다. 아현동 가구골목은 침대나 옷장 등 살림가구를 주로 다루고 있고, 사당동 가구거리는 사무용 가구를 전문으로 취급한다. 황학동을 기웃거리는 이들은 대부분 업소 주인들이다. 의자를 둘러보던 손님에게 상인은 대뜸 “업종이 뭐냐?”고 묻는다. 상품과 가격대가 업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원목 느낌의 고전적인 분위기 주점이다”라는 말에 주인이 보여준 것은 기본형 나무...

    1347호2019.10.07 14:11

  • [골목 내시경]종로 귀금속골목-한 평짜리 보석매장도 임대료는 ‘금값’
    종로 귀금속골목-한 평짜리 보석매장도 임대료는 ‘금값’

    서울 종로4가 종묘공원 서쪽부터 종로3가 옛 단성사극장 뒤편 지역, 봉익동과 묘동 일대를 꼬불꼬불 꿰뚫고 있는 곳이 종로 귀금속골목이다. 아마도 국내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물건들이 쌓여 있고 흘러가는 지역이 이 일대일 것이다. 구시가지 뒷골목의 특징 그대로 골목은 좁고 굽었고 제멋대로 뻗어나가 또 다른 골목으로 이어졌다. 그 작은 샛길 하나에도 상가와 건물이 들어서 있고 보석과 금과 은을 판다. 전시된 금을 다 꺼내서 깔면 귀금속골목 모두를 덮고도 남아 아마도 일대의 큰길까지 모두 금과 보석으로 덮을 수 있을 것이다.업자들은 아침에 가게를 열면 가장 먼저 그날의 시세를 확인한다. 금은 국제거래가격이 매일 고시되고, 국제분쟁이나 경기지표에 따라서도 가격이 좌우된다. 그에 따라 도·소매가격이 결정되고 유통 형태에 따라 다양한 격차가 있게 마련이다. 업자들은 그 격차에 따라 이익이 늘고 주는 셈이니 시세야말로 장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지표이다. 금 시세뿐 아니...

    1345호2019.09.23 14:23

  • [골목 내시경]을지로 3가 골뱅이 골목
    을지로 3가 골뱅이 골목

    을지로를 사이에 두고 북쪽은 건축자재상 일색이고, 남쪽은 작은 인쇄소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 노동자들이 하루의 끝을 즐기는 방법도 서로 달랐는데, 북쪽 골목이 노가리 골목이라면 남쪽 골목은 골뱅이 골목이다.지하철 2호선 을지로 3가역을 나서면 이 시대 건축자재의 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타일·도기 특화거리다. 건물을 치장하는 건자재와 철물에서부터 페인트와 조명, 욕조와 수도꼭지, 문손잡이에서 타일까지 모든 것이 있다. 그 뒷골목도 태반은 그와 관련된 가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을지로 3가 건물들은 아주 오랜 세월의 무게를 덮어쓰고 있었다. 간간이 남아있는 빌딩의 초석들은 대개 1960년대 혹은 1970년대 첫 기둥을 세운 날을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 3층에서 5층 정도인 빌딩들은 거리의 명성답게 대체로 타일로 외벽을 덮고 있다. 군데군데 타일은 떨어져 나갔고 외벽에 쌓인 먼지들은 벽보다 견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 골목에서 더 이상 영광의 흔적은 엿볼...

    1343호2019.08.30 14:32

  • [골목내시경]신당동 골목길-중년이 되어 다시 찾은 신당동 떡볶이집
    신당동 골목길-중년이 되어 다시 찾은 신당동 떡볶이집

    1970년대나 지금이나 신당동 떡볶이 메뉴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때 떡볶이집을 드나들던 청소년들이 배 나온 중년이 되어 찾아와 추억의 맛을 즐긴다. 새로운 세대에겐 신기한 먹을거리일 것이다.광희문 바깥에 신당동이 있다. 서울 팔대문 중 동남문에 해당하는 광희문은 그 현판의 이름보다 ‘시구문(屍口門)’이라는 속명이 더 자연스러웠다. 도성 안 사람이 죽어 마지막 여행길을 나서던 문이 시구문이다. 그러니 문 밖 신당동이 어떤 곳이었을지는 자연히 상상할 수 있다. 망자들이 묻히고 귀신을 부르며 생로병사의 마지막 맺음이 신당동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더러 길 잃은 귀신을 위해 벌이는 굿판도, 돌림병이 돌면 그 주검을 쌓아 두는 일도 신당동에서 있었다.동네의 이름에 지금은 새로울 신(新)을 쓰지만, 본디 귀신 신(神)자를 썼다고 한다. 신을 모시는 당집들이 빼곡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아직도 신당동 골목 곳곳에 푸른 대나무에 높게 매단 무당의...

    1341호2019.08.16 15:21

  • [골목내시경]혜화동 골목길-동촌으로 불린 한양도성의 동북쪽 마을
    혜화동 골목길-동촌으로 불린 한양도성의 동북쪽 마을

    한양도성의 동북쪽 마지막 마을이 혜화동이다. 서촌, 북촌에 대비해 동촌으로 불린 때도 있었다. 전차가 다니고 경성제국대학이 인근에 있었으니 일제강점기 중·상류층이 모여 살던 고급주택가가 혜화동 일대였다.한양 성곽의 여덟 문 중 동북방에 혜화문(惠化門)이 있다. 혜화동은 혜화문 주변 마을이다. 혜화문의 본디 이름은 홍화문(弘化門), 조선 성종 임금이 창경궁 동문을 홍화문으로 일컬으면서 이름을 빼앗겼고 중종 때 혜화문이라는 이름을 새로 얻었다. 흥인지문을 동대문이라 부르듯 혜화문의 속칭은 동소문이다.혜화동이 지금과 비슷한 모습으로 생긴 것은 대략 1930년대쯤이라 한다. 당시 전차 종점이 혜화동에 있었고, 이후 돈암동까지 연장되면서 결국 혜화문은 헐리고 만다. 한양도성이 고스란히 품고 있던 동북쪽 마지막 마을이 혜화동인 셈인데, 서촌, 북촌에 대비해 동촌으로 불린 때도 있었다. 전차가 다니고 경성제국대학이 인근에 있었으니 일제강점기 중·상류...

    1339호2019.08.02 14:52

  • [골목내시경]회현동 골목길-근대와 현대가 뒤섞인 어진 선비들의 마을
    회현동 골목길-근대와 현대가 뒤섞인 어진 선비들의 마을

    현명하고 어진 이들의 마을 회현동. 선비들이 살다가, 분칠한 일본 게이샤가 거쳐 갔다가, 육신 하나로 도시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사람들이 곡절 깊게 그 골목길을 지나쳐 갔다.서울 남대문시장 건너 남산에 기댄 마을이 회현동이다. 회현동의 골목길은 제멋대로다. 굽이졌고 좁으며 더러는 가파르다. 아마도 오래된 마을 골목의 생김새가 구부러진 것은 당연할 것이고, 산자락에 들어선 마을길이니 가파른 것도 순리일 것이다. 남대문시장 앞길에서 조금 깊이 들어가 집과 집 사이를 걸어보면 도심에서 만나기 힘든 고요함에 놀라게 되고, 집들이 안고 있는 오랜 풍경들이 경이롭다. 회현동 골목은 근·현대사의 시간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회현동(會賢洞)은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어질 현을 쓰니 현명하고 어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고을이라는 뜻을 지녔다. 조선시대에는 남인(南人)들이 모인 남촌으로 불렸고 선비골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남인은 주로 퇴계 이황의 학맥을 잇고 안동지역 ...

    1337호2019.07.19 15:25

  • [골목 내시경]서촌-옛 모습·현대 모습이 조화로운 왕궁 옆 동네
    서촌-옛 모습·현대 모습이 조화로운 왕궁 옆 동네

    한옥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현대식 쇼윈도를 볼 수 있는 놀라움. 계획하지 않은 것이 계획한 것보다 더 다양하고 아름다운 조화, 혼돈 속의 평화가 서촌 골목길의 생명이다.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의 흔적들을 가로지르면 서촌마을의 골목길이 있다. 인왕산 아래 경복궁 서쪽의 마을, 행정구역상 종로구 체부동 통의동 옥인동 신교동 효자동 궁정동 등을 아울러 서촌으로 통칭한다. 지도를 보면 하나의 모둠으로 엮기에는 거대한 지역이다. 왕궁의 옆이라 세도가들이 살았다 하고 우대 또는 웃대, 북리 또는 장동이라는 오랜 이름도 갖고 있었다. 요즘에는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이 그 어름 어디쯤이라는 이유로 세종마을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을 얻었다.서촌은 요사이 가장 번화한 마을로 주목받는다. 역사문화지구로 가꾸려는 노력도 꾸준하고, 한옥이 무려 722채나 밀집해 있어 새로운 관광지로 떠올랐다. 우선 골목길 어디를 걸어가도 작은 미술관이며 문학가를 기념하는 공간을 만날 수 있다. 경복궁 돌...

    1335호2019.07.05 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