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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목내시경]동교동 골목-주택가와 출판 유통업체들의 공존
    동교동 골목-주택가와 출판 유통업체들의 공존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4번 출구를 나서면 동교동과 서교동, 연남동 골목이 있다. 넓게는 홍대 문화권이지만, 홍대 인근과는 색다른 풍경과 문화가 있는 곳이다. 홍대 인근의 유동인구는 대략 10만명선. 국내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 사람들의 밀집지역이고, 그 대부분은 젊은이들이다. 그러니 이 근처를 얼씬거리면 오늘의 젊은 문화를 눈여겨볼 수 있다.홍대 인근 골목길의 경향이 소비문화가 중심인 반면, 양화로 건너편 지역의 골목은 그 결을 달리한다. 골목마다 카페와 음식점이 있는 것은 비슷하지만 주류라기보다 조연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 골목의 주인은 대부분 사무실과 주택들이다.홍익대학교와 서교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상수역까지 이어지는 골목길이 청년문화의 중심이 된 것은 오래전부터이다. 인디밴드와 청춘 주점들, 버스킹과 힙합문화. 담장마다 스프레이로 그린 벽화들이 홍대 앞 골목의 색깔을 보여준다면 서교동에서 동교동 그리고 연남동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점잖다...

    1393호2020.08.28 14:21

  • [골목내시경]청량리시장 골목-청과·양곡·수산물… ‘없는 게 없는 시장’
    청량리시장 골목-청과·양곡·수산물… ‘없는 게 없는 시장’

    서울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제기동 쪽 출구로 나가면 청량리종합시장이 있다. 서울에 남은 전통시장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종합시장이란 말 그대로 청과, 양곡, 수산물, 공산품 도매시장이 모두 몰려 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 직전에 시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는데 당시 반듯한 골목을 갖춘 개량 한옥 주택지구에 자연스럽게 시장이 생겼다. 상인들이 점령한 큰길에서 비켜나 골목으로 들어서면 옛 주택가가 고스란히 숨어 있다. 청량리종합시장과 그 사이 골목길들은 아직도 활발하게 번성하고 있다.자본주의는 시장에서 이루어지고, 도시는 필연적으로 시장에 의지해 번영한다. 오늘 내가 가진 돈의 가치를 알고 싶다면 주식시장의 전광판이나 환율 시세를 살피는 것보다 시장에 나가 무, 배추, 감자를 사보면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다. 시장은 길바닥 자본주의의 모세혈관이고, 청량리종합시장은 골목길 자본주의의 첨단이다.중년을 훌쩍 넘긴 시장 상인들청량리종합시장은 골목을 따라 다양하...

    1391호2020.08.14 14:23

  • [골목내시경]중림동 골목-약현성당 뒤로 숨어 있는 쪽방촌·여인숙
    중림동 골목-약현성당 뒤로 숨어 있는 쪽방촌·여인숙

    서울역 뒤편에 서부역이 있고, 프랑스대사관 쪽 완만한 비탈길에 중림동이 있다. 중림동엔 천주교 약현성당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1891년에 착공해 그 이듬해 완공된 조선 최초의 공식적인 가톨릭 성당이다. 조선 사람으로 최초로 세례를 받았던 이승훈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이 근처에서 참수를 당했다. 때문에 약현성당과 서소문공원은 천주교 성지가 됐다. 중림동은 약현성당을 중심으로 길고 어둡고 구부러진 골목길을 펼치고 있다.시대가 시대인지라 중림동 골목의 상당 부분은 사라졌다. 그리고 곧 남은 흔적마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아마도 약현성당과 비슷한 나이를 가졌을 기와집들은 그 긴 수명을 다할 날이 왔다. 골목길과 비탈과 담벼락에 쓴 ‘철거’란 붉은 글씨가 한 시대와 골목의 종말을 알리는 부고장으로 보인다. ‘당신의 흔적은 곧 이 도시에서 철거될 예정입니다.’ 철거라는 단어 하나가 아직도 버티고 있을 골목 주민들을 강렬히 압박한다....

    1389호2020.07.31 15:53

  • [골목내시경]성수동 뚝섬 골목-아직도 버티고 있는 황혼의 산업 구두공장
    성수동 뚝섬 골목-아직도 버티고 있는 황혼의 산업 구두공장

    서울지하철 2호선 뚝섬역과 성수역 사이에 한참 전부터 떠오르는 골목길이 있다. 성수동 뚝섬 골목길. 오래된 공장과 새로 생긴 카페, 그리고 젊은 작가들의 공방이 혼재돼 있다. 옛 지명은 살곶이벌, 태조 이성계가 날린 화살을 태종이 된 이방원이 기둥 뒤에 숨어 피했다 하여 화살이 날아 꽂힌 벌판이란 전설이 전한다. 좀 더 널리 알려진 이름은 뚝섬. 홍수 때면 모래땅 곳곳에 물길이 생겨 섬처럼 보였다 하여 그런 이름을 지녔다고 한다. 왕의 행차 때 커다란 둑기(纛旗·행렬 앞에 내세우는 깃발)를 세운 연유로 둑이 뚝으로 변하여 지명이 됐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뚝섬에는 섬이 없다.성수동 뚝섬 일대는 옛 모습을 완전히 벗었다. 지금의 골목길을 걸으면서 아무도 이곳이 조선시대 활을 쏘고 말 달리던 병사들의 훈련장이며 왕의 사냥터였음을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한강의 범람으로 퇴적된 땅이라 토질이 비옥해 근세에는 서울 일대에 채소를 공급하는 채마밭이 있었다. 한국전쟁 ...

    1387호2020.07.17 15:52

  • [골목내시경]대조동 골목-활기차고 번화하고 풍요로운 시장 골목
    대조동 골목-활기차고 번화하고 풍요로운 시장 골목

    서울 서북부의 아주 오래된 마을 대조동. 그 골목엔 동네 이름 그대로 대추나무가 흔하디흔하다. 오래된 집 마당엔 당연히 그래야 하는 듯 대추나무가 보인다. 이제 막 대추꽃이 피고 난 후라 작은 열매들이 송이송이 맺혔다. 마당뿐 아니라 골목길 곳곳에도 주인 없는 대추나무들이 서 있다. 대추나무는 본디 햇빛이 많고 습하지 않은 곳에서 잘 자라니 대조동은 그야말로 양명한 동네일 것이다.골목에서 유모차를 끌고 지나는 젊은 부부에게 동네가 어떠냐 묻자 “살기 좋다. 북한산도 가까워서 공기가 맑다”고 한다. 동네 골목길에서 멀리 말끔한 바위능선도 보인다. 역촌동으로 이어지는 진흥로와 남북을 관통하는 통일로 주변을 제외하고 뒤편 골목길은 대부분 오래된 주택과 연립주택이 있다. 골목길엔 유난히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주변의 불광초등학교와 대조초등학교, 대은초등학교는 서울에서 학생 수가 많기로 유명하다. 아이들이 대추처럼 바글바글 골목길을 훑고 지나는 모습은 보기...

    1385호2020.07.03 17:22

  • [골목 내시경]노량진 골목-공시족에 의한, 공시족을 위한, 공시족 터전
    노량진 골목-공시족에 의한, 공시족을 위한, 공시족 터전

    서울 노량진역을 나서면 학원이 보인다. 대입재수학원부터 공무원 시험학원까지 학원의 수와 종류는 셀 수 없을 정도다. 마치 젊은 시절의 대부분은 시험으로 보내야 한다는 듯 학원은 그렇게 노량진을 점령하고 있다. 정면에 우뚝 선 동작경찰서를 에워싸고 경찰직 공무원 학원이 있는 것도 이채롭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보통 수백 대 1을 넘어서고 있고,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는 젊은이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노량진으로 향하는 이들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세상은 먹고살기가 어려워졌고, 미래는 불확실해졌다는 방증일 것이다.사법시험이 폐지되면서 신림동 고시촌을 전전하던 이들도 노량진으로 몰렸다. 입시시장에서 성공한 학원들이 공무원 시험시장에 눈독을 들여 노량진에 뿌리를 내렸고, 잘나가는 1타 강사들도 줄을 바꿔 섰다. 불황에 대한 두려움이 길어질수록 공무원이 되려는 이들이 늘어간다. 학원도 점차 세분화되어 영어·일어·중국어·공기업&mi...

    1383호2020.06.19 15:23

  • 망원동 골목길

    지하철 6호선 망원역 2번 출구에서 한강공원으로 이어지는 긴 주택가 골목은 그야말로 화제가 몰리는 ‘힙’한 곳이다.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의 단골 촬영지가 됐고, 맛집 탐방객들과 소위 ‘인싸’들의 놀이터가 됐다. 경리단에 빗대 망리단길이란 새로운 길 이름도 생겼다. 외부인의 발길을 빼고서도 이 일대 골목길은 주민들로 붐비고 길목 장터가 북새통을 이룬다.역 주변에서 두릅을 파는 행상에게 장사는 어떠냐 묻자, “요새 잘 된다. 물건들이 다 잘 팔린다”고 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이 풀린 효과는 골목 장바닥 가장 낮은 곳부터 확실히 보였다. 겨우 비를 피할 만큼 반자를 얹은 반 평짜리 가게에서 잡곡을 파는 상인은 “장사 안 된다는 얘길 한숨처럼 달고 살았는데, 요즘엔 잘 된다. 예전엔 구경꾼만 많았는데 이젠 손님이 많다”고 웃는다.맛집 탐방객과 ‘인싸’들의 놀이터주택가 골목에...

    1381호2020.06.05 16:49

  • [골목 내시경]대림동 골목-조선족·중국인은 왜 대림동에 몰려들까
    대림동 골목-조선족·중국인은 왜 대림동에 몰려들까

    서울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대림역, 12번 출구를 나서면 보고 들리는 것이 달라진다. 휴대폰으로 목청 높여 통화하는 젊은이는 중국말을 쓴다. 간판엔 중국식 간자체가 보이고, 용어도 중국식이다. 좌판에서 파는 간식은 해바라기씨와 호박씨이고, 빵집에선 중국식 호떡과 꽃빵, 튀긴 꽈배기를 판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는 어느새 작은 중국이 됐고, 우리 이웃이 된 중국인들이 골목골목 살고 있다.대림동에 조선족 동포와 중국인들이 몰려든 것은 대략 20여 년 전부터다. 가리봉동 일대 쪽방촌에 살던 이들이 그 동네가 개발되면서 시나브로 대림동으로 이동했다. 처음 800명 정도이던 중국 출신 거주자들은 이제 대림동에만 2만여 명이 산다고 한다. 이 지역을 선호하는 이유는 첫째가 일자리고, 둘째는 주거비, 셋째로 편리한 교통을 꼽는다.대림동은 아직도 2~3층의 오래된 주택이 많고 대부분은 집 전체의 방을 나누어 세를 놓고 있다. 처음에는 반지하방과 옥탑으로 이사했...

    1379호2020.05.22 14:40

  • [골목 내시경]배추·참외밭이 고급 주택으로 상전벽해
    배추·참외밭이 고급 주택으로 상전벽해

    양재역 5번 출구를 나서면 말죽거리라는 거대한 간판과 만난다. 말죽거리에는 말(馬)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양재역은 존재하나 말들은 근처 과천경마장에나 가야 볼 수 있다. 그래도 말죽을 끓이던 거리라는 강렬한 이름은 이 일대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말들이 콧김을 불며 서 있던 역참과 황토에는 골목골목 집들이 들어섰고, 바삐 살아가는 도시사람들의 터전으로 변했다. 말죽거리 일대는 강남 개발과 함께 만들어진 오래된 골목길이 있다.지금이야 지하철 3호선과 신분당선의 한 역에 불과하지만, 양재역은 영남으로 이어지는 관문 역참으로 중요했던 곳이다. 과거에 급제해 영남의 현령이나 고을 원님으로 임명되면 한강나루를 건너 하룻밤을 묵고 말을 빌려 출세의 벼슬길을 시작했던 곳이 양재역이라 한다. 전국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번창하던 역이니 말먹이로 끓여대는 말죽의 양이 대단했으리라. 공식적으로 양재역이 사라진 것은 갑오개혁 때다.양재역, 말죽 끓이던 전국 최대 역참1970년...

    1377호2020.05.08 15:34

  • [골목 내시경]공덕동 골목-아파트에 둘러싸인 ‘시간의 단층지대’
    공덕동 골목-아파트에 둘러싸인 ‘시간의 단층지대’

    공덕동에는 오거리가 있다. 강 건너 여의도와 광화문 종로통을 잇는 남북을 관통하는 큰길, 용산과 신촌을 이어주는 동서로 난 길이 있고, 그 사이 서울역으로 가는 만리재길이 오거리를 이룬다. 20여 년 전부터 시나브로 변화하던 일대의 모습은 10년 전 확연히 달라졌다. 비탈에 줄줄이 보이던 낮은 시멘트 블록집은 모두 사라져 아파트단지와 대형 오피스텔 빌딩이 들어섰다. 길게 구획을 나누어 관통하던 경의선 철길도 어느 사이 사라지고 대신 넓은 공터와 공원이 자리를 차지한다. 오래전 이 언덕 달동네에 살던 이들은 어디론가 흩어졌을 터이다.공덕역은 지하철 5·6호선, 인천공항철도, 경의중앙선이 촘촘히 이어진 거대 환승역이고 앞으로 신안산선도 이곳을 지날 예정이다. 그러니 사람이 모이고 돈이 흐르는 요지가 됐다. 돈이 넘쳐나는 덕분에 공덕역 일대는 말끔히 정비됐다. 땅값은 치솟고 주변은 세련된 모습으로 변했다. 오거리를 둘러싸고 빌딩들이 앞다투어 하늘을 향해 치솟고 ...

    1375호2020.04.24 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