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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목 내시경]정릉동-북한산 아래 재개발 아파트·달동네 공존
    정릉동-북한산 아래 재개발 아파트·달동네 공존

    북악 능선의 북쪽 사면을 따라 흘러내린 곳에 정릉이 있다. 정릉은 조선을 연 태조 이성계의 둘째 왕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이다. 본디 지금의 덕수궁 주변에 있었다고 하는데 태조가 죽자 태종은 능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정릉 울타리를 둘러싸고 오래된 집들이 골목을 이룬다.정릉은 북악산길을 따라가다가 교수단지 마을을 지나는 샛길로 내려오던가, 아리랑고갯길에서 갈라져 들어갈 수 있다. 정릉으로 가는 골목은 아리랑시장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과거의 영화는 어떠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동네 식당들이 이어진 흔한 식당 골목이다. 골목은 꽤 넓고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통로가 되고 있으나 팬더믹 사태로 풀 죽은 모습이 역력했다.북악의 완만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비탈길을 거슬러 오르면 정릉 출입문이 보인다. 정릉을 둘러보려면 입장료 1000원을 내야 한다. 그래도 제법 많은 이들이 느린 걸음으로 능 유람을 하고 있었다.한국전쟁 직후 피란민들 몰려들어정릉과...

    1416호2021.02.19 14:41

  • [골목 내시경]금호동 골목-지금은 사라진 달동네의 희미한 그림자
    금호동 골목-지금은 사라진 달동네의 희미한 그림자

    매봉산과 대현산, 응봉산은 모두 서울 성동구 금호동을 감싸고 있는 산이다. 매봉산 능선의 서쪽으로 북악까지 서울 강북의 대부분이 내려다보이고, 남쪽으로 한강과 그 건너 강남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 금호동은 산과 비탈을 깔고 앉은 동네이다.금호동의 옛 이름은 무수말이고, 무쇠 마을이란 뜻이거나 물가 마을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한자로는 수철리(水鐵里)인데 그 또한 비슷한 뜻이다. 금호동의 남쪽 기슭이 한강과 연이어 있고, 한때 대장간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지금의 금호동은 다리 건너 강남이 가까우며 지척에 서울 시내가 있어 꽤 매력적인 주거지로 주목받는다. 그런 입지에 힘입어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금호동의 주인이 됐다. 아파트가 있는 자리는 대개 블록집들이 어지럽던 비탈진 마을이었다. 금호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 중 한곳이었는데, 지금 그 자취는 찾아보기 어렵다.예전 모습 그대로 간직한 골목도금호동 재개발 사업은 하늘과 가까운 구역부터 진행됐다....

    1414호2021.01.29 17:09

  • [골목 내시경]화양동-한때 강북에서 알아주던 ‘불타는 화양리’
    화양동-한때 강북에서 알아주던 ‘불타는 화양리’

    서울 광진구 화양동은 서울 동부의 거점지역이다. 화양동이란 공식적인 이름을 따로 두고 사람들은 아직도 그 마을을 화양리라 부른다. 한때 강북에서 좀 놀아본 사람이라면 ‘불타는 화양리’의 기억이 있을 터이다. 폭주족 오토바이들의 집결지기도 했고, 화양극장에서 보던 동시상영 영화를 추억으로 간직한 이도 있다. 그러나 지금 화양리는 고요하다.화양리(華陽理)란 지명은 ‘볕 들고 꽃 피는 곳’이란 뜻이 담겨 있다. 세종대왕이 왕실 목장이 있던 이 일대에 정자를 짓고 ‘화양정(華陽亭)’이라 했다 하여 지명의 유래가 됐다는 설이 있다. 화양정은 조선이 사라질 때쯤에 벼락을 맞아 불탔고,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화양리가 단종의 귀양과도 연관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요즘 애들’ 취향과 유행 보여줘역사적인 사실을 뒤로 두고 오늘의 화양동 골목길은 1970년대에 만들어졌다. 1967...

    1412호2021.01.18 10:53

  • [골목 내시경]사당동 남성시장 골목
    사당동 남성시장 골목

    서울 지하철 4호선과 7호선 이수역을 나서면 강남 3구에서 활기차기로 이름난 골목이 있다. 남성사계시장, 대략 5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시장 골목이다. 변화를 주고 더 유명하게 만들겠다고 골목마다 봄·여름·가을·겨울을 붙여 공식적인 이름이 남성사계시장으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사당동 남성시장으로 부른다.사당동은 동작구에서도 번화하고 잘 정비된 곳이다. 교통도 좋아 지하철 2·4·7호선이 지나고, 수원과 경기도 지역으로 가는 급행버스들도 사당동을 거쳐간다. 이수역 인근에는 백화점도 있고 강남 개발 이후에 지어진 아파트단지와 말끔한 주택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기억하는 이들은 적지만 남성시장이 생길 무렵 이 인근은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가 있던 곳이다. 남성시장은 달동네로 향하는 어귀에서 찬거리를 사던 장터였다. 사당동에 공자를 모신 사당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가 흔치 않듯이, 당시의 사당...

    1409호2020.12.28 11:33

  • [골목 내시경]문래동 골목-문래동은 오늘도 쇠망치 소리가 들린다
    문래동 골목-문래동은 오늘도 쇠망치 소리가 들린다

    문래동은 아마도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흔적을 지닌 동네일 것이다. 이곳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일제강점기의 일이고, 지금의 골목길과 집들의 자취는 그때에 비해 크게 변하지 않았다. 방직공장과 그 노동자들을 위한 주택으로 지어진 후 몇차례 주인을 바꿔 1960년대부터 청계천 등지에서 이주한 철공소들의 집단지역이 됐다. 갈대밭을 밀어내고 반듯하게 줄을 그어 만든 골목길은 네모난 구역으로 집과 공장 사이를 구분 짓는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제일 컸다던 방림방적과 경성방적 공장이 문래동에 있었다. 문래동이란 이름은 실 공장의 물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실을 잣던 물레는 사라졌어도 이름은 그 사연을 기억하고 있다.실을 잣던 물레는 옛이야기로문래동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쩌다 이렇게 넓은 지역이 시간의 호리병 속에 고스란히 갇혀 있을까 신기하다. 신도림역 북쪽으로 도림천을 맞대고 경부선 철길을 따라 문래역까지 그 너른 땅은 대부분 낮은 단층 공장에서 쇠...

    1407호2020.12.11 14:11

  • [골목 내시경]월계동 골목- 모과나무길부터 탱자나무길까지
    월계동 골목- 모과나무길부터 탱자나무길까지

    서울 전철 1호선 광운대역을 나서면 월계동이 시작된다. 월계동은 이곳부터 북으로 이어져서 월계역과 녹천역 근처까지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중랑천과 우이천이 흘러내려 만나는 사이에 끼어 있는 지형이 반달을 닮았다 하여 월계동이란 이름을 지녔다고 한다. 서울 사대문 밖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곳도 큰 규모의 아파트단지로 빼곡하다. 중랑천을 끼고 있고, 그린벨트로 묶인 산들이 군데군데 자리를 지키고 있어 환경 좋은 주거지로 인기가 높다. 아파트가 밀고 들어오지 못한 산 주변 사이사이로 옛 동네의 골목길이 아직도 살아 있다. 골목은 대부분 옛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아련한 기억을 일깨운다.광운대역으로 이름 바꾼 성북역광운대역의 옛 이름은 성북역이다. 월계동 일대가 성북구였던 시절을 지나 행정구역이 노원구로 바뀌면서 성북역은 자연히 이름을 잃었다. 성북역은 지금의 50·60대에겐 특별한 장소이다. 최백호의 노래 <입영전야>나 김광석의 <이등병...

    1405호2020.11.27 15:51

  • [골목 내시경]안양 골목-젊은이 도시로 탈바꿈한 일번가 골목
    안양 골목-젊은이 도시로 탈바꿈한 일번가 골목

    안양은 극락이란 뜻의 불교 용어이다. 관악산 남쪽 기슭 안양천을 끼고 자리 잡은 땅이다. 이 땅에 안양이란 이름이 붙은 유래는 관악산이 흘러내린 삼성산에 안양사란 절이 있어 그 이름을 따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조대왕이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과 지명이 얽혀 연유했다는 설도 있다.예전 안양을 대표하던 명소는 1930년대에 만든 안양유원지였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막아 지은 수영장은 지금으로 말하면 놀이공원쯤의 휴양시설이었다. 그 주변의 딸기밭과 포도밭도 안양의 명물이던 시절이 있었다. 평촌 신시가지가 생기면서 안양은 더 크고 넓어졌다. 안양을 관통해서 경부선과 전철 1호선이 지나고, 평촌에는 지하철 4호선이 지난다.안양역을 나와 길을 건너면 안양에서 가장 번화했다는 안양일번가 골목길이 펼쳐진다. 골목은 높은 건물들을 끼고 네모반듯하게 잘 그어졌다. 일번가 골목을 걸으면 안양이 젊은 도시로 느껴진다. 온통 젊은 취향의 옷가게와 주점, 식당과 카페가 ...

    1401호2020.10.30 15:39

  • [골목 내시경]신길동 골목-힘겹고 고단한 노동자들의 삶이 깃들다
    신길동 골목-힘겹고 고단한 노동자들의 삶이 깃들다

    서울 1호선 전철 신길역을 나오면 북으로 샛강이 흐르고 남쪽으로 신길동이 펼쳐진다. 신길동은 그 범위가 몹시 넓은 동네다. 신길동에 자리 잡은 전철역만 해도 신길역과 대방역이 있고 영등포역이 지척이다. 지하철 7호선 신풍역과 보라매역도 관내를 지난다.신길동이란 이름은 새터를 뜻하는 신기(新基) 또는 ‘새롭게 길하다’는 신길(新吉)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신초등학교의 역사가 100년이 넘었고, 신길역 인근에 방학곳지부군당이라는 부군 할아버지·할머니를 모신 신당과 도당(禱堂)이라는 마을 사당도 남아 있다. 신당 중 부군당(府君堂)은 서울에서 당산동·보광동 등 한강을 끼고 도는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신당이다. 옛 신길동 일대는 한강을 오가는 배들이 정박하는 주요 포구였다고 한다.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쉼터 ‘꿀잠’신길동은 거대한 주택가다. 골목과 골목이 그물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1940년...

    1399호2020.10.16 15:48

  • [골목 내시경]보광동 골목-아직도 구멍가게가 있는 ‘토박이들 동네’
    보광동 골목-아직도 구멍가게가 있는 ‘토박이들 동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완만한 경사지에 보광동이 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탁 트인 한강이 보인다. 강가로 경의중앙선이 지나고 있어 가끔 기차가 지나는 정경도 볼 수 있다. 보광동이란 지명은 신라 진흥왕 무렵 이곳에 보광도사란 이가 보광사를 지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지금 그 보광사는 찾을 수 없고 제갈공명을 모신 사당이 같은 이름으로 남아 있다.수십 년째 보광동에서 살고 있다는 주민에게 이곳의 좋은 점을 물었다. “뭐든지 다 있다. 버스·기차·전철 다 있고, 시장·학교가 있어서 멀리 나설 것 없이 이 안에서만 지내도 모자란 것이 없다”고 답한다. 나쁜 점은 무엇이냐 묻자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풀 꺾인 목소리로 “동네가 좀 시끄럽다. 낮이고 밤이고 시끄러운데다가 집마다 개를 안 키우는 집이 없어서 이놈들이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면 머리가 아프다”고 답한다. 하긴 개를...

    1397호2020.09.24 16:40

  • [골목 내시경]응암동 골목-아직도 오일장 열리는 ‘서민들의 동네’
    응암동 골목-아직도 오일장 열리는 ‘서민들의 동네’

    백련산 아래 불광천을 옆에 끼고 응암동이 있다. 지하철 6호선 응암역과 새절역, 3호선 녹번역이 지척에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명지대를 비롯해 초·중·고등학교가 골목길 군데군데 자리를 잡아 교육도 나쁘지 않은 동네다. 응암동 전체가 기대 있는 백련산은 잘 꾸며진 공원이 됐다. 멀리 북한산이 거대한 조각상처럼 크고 희게 서 있어 환경 좋고 여가를 즐기기도 편하다. 불광천을 따라 갖가지 운동시설과 산책로가 한강공원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택가로서는 최적의 여건을 갖춘 셈이다.응암동이란 지명은 백련산의 기슭에 매가 앉은 모습의 바위가 있어 ‘매바위골’이라고 부르다가 한자명으로 응암동이 되었다. 백련산 주변 언덕 위는 대부분은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그럼에도 응암동 일대는 서울이 한참 활기차던 시절의 골목길을 안고 있다.백련산 아래 오래된 시립병원응암동의 중심은 응암오거리다. 응암동우체국을 끼고 동서로 가좌로가 관통하...

    1395호2020.09.11 1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