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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목내시경]낙성대-격정은 없지만 평온한 변화, 파스텔풍의 골목
    낙성대-격정은 없지만 평온한 변화, 파스텔풍의 골목

    낙성대(落星垈)는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졌다. ‘별이 떨어진 자리’라는 뜻의 그 이름은 얼핏 모르고 지나치기 좋아 요즘 서울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은 강감찬이란 이름을 함께 써두고 있다. 남부순환로는 강감찬대로라는 명예 이름표를 달았다. 낙성대역을 나와 샛길로 접어들면 서울대학교를 돌아오는 관악 02번 마을버스가 있다. 역을 나와 그 골목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가는 이들은 서울대학생인 경우가 많다. 낙성대 인근은 그만큼 서울대와 관련된 사람과 기관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대생들은 낙성대학교 다닌다는 썰렁한 농담도 한다. 동네 이름은 봉천동이지만 대부분은 그냥 낙성대를 마을 이름인 양 불렀다.지하철 낙성대역과 서울대입구역을 잇는 권역의 골목길은 샤로수길로 유명해졌다. 서울대가 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학생들이 하교 후에 모여드는 골목에 통째로 주점과 식당들이 밀집해 있어 젊은 명소가 됐다. 근처에 있는 녹두거리도 학생들이 주로 모이...

    1438호2021.07.23 15:03

  • [골목 내시경] 합정동-가볍고, 경쾌, 유쾌, 청춘의 여백과 쉼표가 좋다
    합정동-가볍고, 경쾌, 유쾌, 청춘의 여백과 쉼표가 좋다

    역세권이란 말처럼 지하철역은 생활과 지역문화의 중심이 됐다. 서울 마포구 합정역은 출구마다 다른 표정의 골목으로 이어진다. 대체로 합정동의 대부분이 합정역 생활권에 포함되지만, 동쪽과 남쪽 방면으로 당인동과 상수동, 북쪽으로는 서교동과 홍대 입구까지 그 생활문화권이 확장된다. 양화로를 사이에 두고 동과 서의 골목길이 눈에 띄게 다르고, 독막로를 경계로 남과 북은 완연히 다른 풍경이다.합정역 일대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5·6번 출구와 이어진 서교동과 홍대 근처로 통하는 골목길이다. 골목 입구부터 온통 식당과 식당의 간판 메뉴판들이 이어졌다. 오후 시간인데도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있어 코로나19 팬데믹에 지친 다른 골목길들과는 분위기가 달랐다.부지런히 약속장소를 향해가는 젊은이의 대화가 들린다. “홍대 입구보다 이 동네가 더 낫다. 비슷하지만 그래도 이쪽이 덜 상업적이라 요즘은 합정동에서 주로 모인다”는데 상업적이기는 홍대와 별 차이...

    1437호2021.07.19 10:37

  • [골목 내시경]마장동-고기에 의한, 고기를 위한, 고기의 마을
    마장동-고기에 의한, 고기를 위한, 고기의 마을

    서울 지하철 5호선 마장역을 나서면 마장축산물시장을 알리는 이정표를 만난다. 마장동은 축산물시장을 중심으로 펼쳐진 동네다. 종로구 숭인동 일대에 있던 도축장과 우시장이 마장동으로 옮겨온 지 50년이 지났다. 그때부터 이 일대의 골목은 ‘고기에 의한, 고기를 위한, 고기의 마을’이 됐다.길가의 갈빗집과 고깃집들을 대충 지나쳐 골목으로 들어가면 집과 집, 건물과 건물 모두가 축산물과 관련 있는 업체로 가득 찼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정육을 차치하고도 선지, 소머리, 우설, 수구레, 우족과 꼬리까지 소 한마리가 남긴 흔적은 이 동네 골목 사람들을 모두 먹여 살린다. 돼지는 또 어떤가. 돼지머리부터 껍질과 비게, 등뼈와 족발 등 이루 말할 나위 없이 많은 부위로 나뉘어 골목골목 전문점에서 거래되고 있다. 한마리 가축이 얼마나 알뜰살뜰 해체되고 정리돼 사람들을 먹이고 있는지 마장동에 오면 알게 된다.시장 안에는 1000개 이상의 가게마장역에서...

    1434호2021.06.25 16:20

  • [골목 내시경]천호동 골목에서 마주친 기억 너머 영원의 시간
    천호동 골목에서 마주친 기억 너머 영원의 시간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던 곳이 천호동이다. 서울 시내에서 보면 천호동은 아주 먼 곳이었으나 이제는 지하철 5호선과 8호선이 지나고 곳곳으로 길이 뚫린 교통 편한 부도심이 됐다. 동서울의 대표적인 요지일 뿐 아니라 한참 성장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강을 낀 한적한 농촌 마을이 지금처럼 북적이게 된 것은 한국전쟁 직후부터라고 한다. 피란민이 몰려오고 구호시설과 관공서가 들어서면서 지금 천호동의 바탕이 됐다. 천호동이 본격 개발된 것은 1960년대 말 택지개발과 1980년대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라 할 것이다. 그런 탓에 천호동 골목은 반듯반듯 잘 정리돼 있다. 골목이 끝나면 또 반듯한 찻길이 넓게 구역과 구역을 경계 짓고 있어 도심처럼 미로를 헤매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된다.길이 새로 나면 도시의 축은 길을 따라 옮아가게 된다. 광진교를 축으로 번져가던 천호동의 번영은 천호대교가 생기고 넓은 천호대로로 교통이 몰리면서 천호사거리가 천호동...

    1432호2021.06.11 14:41

  • [골목 내시경]서초동 법조타운
    서초동 법조타운

    서울 서초동에 법조타운이 있다. 법원과 검찰청, 등기소를 중심으로 변호사만 4000명 가까이 둥지를 틀고 있다. 그밖에 법무사, 행정사, 속기사, 공인회계사, 변리사 등 법과 관련된 이들이 골목골목을 지킨다. 서울 지하철 2호선과 4호선 교대역 개찰구를 나서자마자 교통사고, 이혼, 파산면책, 민사 형사 등 갖가지 전문 분야를 내세운 변호사들의 광고판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법은 또 다른 상품이다.반포대로를 중심으로 북쪽은 검찰청과 법원이 자리 잡고 있어 그 앞 골목들은 간간이 식당과 문구점이 보이고 대부분 변호사사무실과 법무법인이 차지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등기국 앞 한때 세상 이목을 끌던 청계재단과 영포빌딩이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를 비롯한 각종 단체도 이곳에 자리 잡았다. 골목은 한가한 행인은 볼 수 없어 한적했지만, 서류봉투를 들거나 가방을 둘러맨 이들이 부지런히 길을 오간다. 한눈에도 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 또는 법의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사...

    1430호2021.05.28 11:32

  • [골목 내시경]천연동 일대
    천연동 일대

    서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에서 3호선 독립문역 사이, 서울역에서 무악재를 잇는 의주로를 따라 길게 펼쳐진 동네가 천연동이다. 예전의 냉천동, 옥천동, 영천동, 현저동 등이 천연동으로 묶여 있다. 북쪽으로 독립문이 있고, 동네가 기대 있는 안산을 뚫고 이대와 연대로 이어진다. 그 길은 동쪽으로 광화문이 연결되니 교통의 요지인 셈이다. 동쪽으로 길 건너편은 천지가 개벽해 싹 밀고 말끔한 아파트촌이 들어섰다. 독립문과 마주 선 영천시장 부근도 지금 한창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천연동이란 이름은 무악재로 향하는 길목에 천연정이란 정자가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천연정은 의주로 길가에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푯말로만 남았다. 그 곁에 과거 이곳에 경기도 군사를 지휘하던 중군 군영이 있었다는 표석도 함께 있다. 땅과 이름에 묻힌 대부분의 자취는 잊히고 만다. 다만 문학 속 동네와 생활의 자취들은 어느 시점에 박제돼 이어지게 되는데, 현저동과 독립문 그리고 천연동과 안...

    1428호2021.05.17 15:06

  • [골목 내시경]서래마을-프랑스 분위기 물씬, 서울 속 몽마르뜨
    서래마을-프랑스 분위기 물씬, 서울 속 몽마르뜨

    서울 서초구 반포동 뒤쪽 긴 언덕을 끼고 서래마을이 있다.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 이름은 몽마르뜨길, 언덕 위엔 몽마르뜨공원이 있다. 서울에 낯선 이름의 길과 공원이 있는 까닭은 이곳에 프랑스 사람들의 거주지와 학교가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기가 휘날리고 담벼락엔 프랑스 출신 시인의 낯선 이름이 명패로 붙어 있다. 색다른 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화제가 된다. 서래마을은 서릿마을 또는 서애마을로 불렸다는데 마을 앞 개울이 굽이진 모습이 서리서리 흘러내려 붙은 이름이다. 서양인들이 많이 와 사니 차라리 서래(西來)마을이라 해도 다르지 않을 듯하다.강남 개발 막바지에 서래마을 일대는 강을 건너온 부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부유층과 연예인들이 모여 부촌을 이루었다. 넓은 대지를 가진 양옥이 들어서 강남의 평창동이란 별명을 가졌다. 1981년 프랑스 학교가 이곳으로 이사 오고, 고속철 공사를 위해 한국에 온 프랑스 기술자들이 모여 살면서 지금과 같이 프랑...

    1426호2021.04.30 11:27

  • [골목 내시경]동숭동 대학로
    동숭동 대학로

    이름 속엔 장소가 가진 기억이 담겼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 일대 대학로는 과거 이곳에 대학교가 있었다는 표식이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과 법과대학이 관악산으로 이사한 후 학교는 사라졌고 이름은 남았다. 서쪽으로 아직 의과대학과 병원이 남아 있어 서울대학교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24년 경성제국대학으로 시작해 1972년 옮길 때까지 머리 좋다는 이들이 모여 배웠던 곳이다. 주인공이 바뀌어 지금 대학로와 주변 골목은 예술가들의 것이 됐다.옛 서울대학교 본관, 그러니까 경성제국대학 본관 건물이었던 곳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예술가의집’으로 쓰고 있다. 학교가 있던 곳 대부분은 공원과 야외공연장 등으로 바뀌었다. 학교의 옛 모습은 모형으로 남아 지박령이 됐다. 공원 이름은 마로니에공원, 학교 교정에 마로니에 세그루가 서 있었기 때문이란다. 마로니에는 서양 칠엽수라 하고 가로수로도 종종 심는다는데 공원에서 그 나무를 찾는 일은 번거...

    1423호2021.04.09 11:40

  • [골목 내시경]부천시 원미동-소설 속 풍경 사라지고 깔끔한 신도시로
    부천시 원미동-소설 속 풍경 사라지고 깔끔한 신도시로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원미동은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로 유명한 곳이다. 부천의 옛 이름을 딴 전철 1호선 소사역에서 원미산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원미동이 있다. 길 한 편엔 ‘원미동 사람들 거리’라는 푯말도 걸려 있다. 하지만 소설 속 골목의 풍경은 어디에도 없다. 그 시절은 오로지 지금도 꾸준히 팔린다는 소설 속에만 박제돼 있다.서울에서 넘쳐나는 사람들을 위해 막 신도시가 생겨나던 때 원미동이 만들어졌다. 지금도 그 시절의 이층집과 연립주택이 골목에 간간이 보이지만, 대부분 새로 지은 높은 공동주택과 상가주택들이 지금의 원미동 골목을 이루고 있다. 구석구석 소규모 아파트단지도 보이고 골목길은 신도시답게 반듯반듯 깔끔하다.원미동 골목을 걷다 보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양귀자는 소설에서 “원미동 아이들은 집 안에서 틀어박혀 지내는 법은 애시당초 배운 적이 없다. 아침 눈뜨면서부터 집 앞으...

    1420호2021.03.19 14:04

  • [골목 내시경]신설동 골목엔 레트로와 보물이 있다
    신설동 골목엔 레트로와 보물이 있다

    신설동은 우리말로 새말이다. 숭신방이란 지명을 신설계라 고친 후 갑오개혁 이후 신설동으로 불린다. 당시에는 한양이 확장돼 새로 들어선 신도시였다. 서울은 이후에 더 커져 동쪽 방면의 길들은 대부분 신설동을 거쳐 동대문을 통해 시내로 이어진다. 안암동 방향의 북쪽으로 향한 길과 청량리, 장안동을 거쳐 송파구로 이어진 도로가 만나는 신설동오거리는 늘 차가 막히는 교통의 병목이다. 지나치는 차량은 많지만, 어제의 새 마을은 오늘의 헌 마을이 됐다. 신설동의 골목 대부분은 고색을 입고 있다.서울 지하철 1호선 신설동역과 2호선 신설동역 주변부는 큰길가에 새로 세운 오피스텔과 상업용 빌딩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수십년 전과 비교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큰길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일제강점기에 지은 개량한옥들이 밀집된 미로를 만날 수 있다. 서울에서 흔치 않은 과거의 섬이다.서울서 흔치 않은 과거의 섬한옥 사이로 비좁은 골목은 그다지 길지 않아도 방향을 잃을 만...

    1418호2021.03.05 1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