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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목 내시경]모래내시장-작아진 시장…그래도 사람 냄새가 난다
    모래내시장-작아진 시장…그래도 사람 냄새가 난다

    경의중앙선 가좌역을 나서면 모래내라는 옛 이름을 가진 동네가 있고, 그곳에 모래내시장이 있다. 시장은 한때 서울의 4대 시장으로 불릴 만큼 번영했으나 지금은 겨우 골목에 깃들어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이마저도 곧 시들어버릴 형편이다. 모래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홍제천의 이름에서 유래했고, 그 흔적은 모래내시장 인근 홍제천 교량인 사천교(沙川橋)에도 남아 있다. 모래내는 늘 범람하기 일쑤였고, 홍제천에 둑을 쌓아 막으면서 비로소 사람 살 만한 곳이 됐다고 한다. 토박이에게 이곳은 장화 없이는 살 수 없는 땅이었다는 오래된 기억으로 남아 있다.모래내 인근 남가좌동과 북가좌동 일대가 가재울 뉴타운 사업이 시작되자 달동네는 정비돼 사라지고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옹기종기 무질서하던 집들과 골목이 사라진 대신 높고 거대한 아파트가 가재를 잡던 개울가의 주인이 됐다. 덩달아 모래내시장은 잘리고 부서지고 토막이 났다. 과거의 영광은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고, 시장은 골목 하...

    1461호2022.01.07 15:26

  • [골목 내시경]잠실본동-방값 싸고 먹거리·즐길거리 가득한 ‘청춘들의 명당’
    잠실본동-방값 싸고 먹거리·즐길거리 가득한 ‘청춘들의 명당’

    서울 잠실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신천이다. 지금은 잠실새내역으로 이름이 바뀐 지하철 2호선 신천역을 중심으로 먹고 마시고 즐길거리가 있는 골목이 신천 일대에 있다. 신천이란 이름엔 곡절이 있다. 잠실이 섬이던 시절 잠실 위쪽 한강의 이름이 신천이었다. 뽕밭에 누에 키우는 일이 주업이었다는 잠실이 육지로 변할 때 섬의 북쪽 마을이던 신천부락이 사라지면서 그곳 마을 사람들이 이주해온 지역이 지금의 신천 일대라고 한다. 예전 잠실 대부분이 모래밭이라던가 한뼘 농사짓던 토지였던 시절의 일이다. 여름철 한강이 종종 범람할 때가 되면 농토와 주택까지 물에 잠겨 간혹 헬기로 구조되는 장면도 가끔 뉴스로 볼 수 있었다. 신천은 땅이름이 사람을 따라 옮아온 예인데, 지금 옛 시절의 신천 사람 중 남은 이는 몇 되지 않는다고 한다.서민의 백화점 ‘새마을시장’잠실새내역, 옛 신천역이 있는 곳은 법정동명으로 잠실본동이고 정작 신천동은 송파대로를 ...

    1458호2021.12.17 13:23

  • [골목 내시경]미아사거리-어느 동네보다 살기 좋은 서민 골목
    미아사거리-어느 동네보다 살기 좋은 서민 골목

    세월 따라 길이 새로 나고, 그 때문에 지역의 이름이 변하는 곳도 있다. 미아사거리, 아주 예전엔 삼거리로 부르던 곳이다. 의정부 방면으로 가는 도봉로와 도심 방면으로 빠지는 동소문로, 안암동 쪽 종암로가 삼거리를 이루다가 장위동 방향 골목길이던 월계로가 확장되면서 사거리로 바뀌었다. 때문에 서울 지하철 4호선 미아삼거리역도 미아사거리역으로 이름이 변했다. 서울 동북쪽 부도심 중 번화하기로 이름났던 지역이라 백화점이 두군데나 있고 대형마트도 들어서 있다. 예전 이 지역 명소였던 대지극장은 복합상영관으로 바뀌고 간판도 달라졌다. 대지극장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세대는 더는 극장을 드나들지 않는다.역 주변의 동네도 대부분 미아동이었으나 미아4동과 9동은 송중동, 미아5동과 8동은 송천동, 미아6동과 7동은 삼각산동으로 바뀌었다. 지하철역 주변은 송중동과 송천동이 가장 넓다. 삼각산동 대부분은 재개발이 완료돼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송중동 골목길은 미아삼거리 시절의 옛 모...

    1456호2021.12.03 15:13

  • [골목 내시경]이 계절엔 필동을 걸어야 한다
    이 계절엔 필동을 걸어야 한다

    서울지하철 3·4호선 충무로역에 내리면 남쪽 어느 출구로 나서도 남산으로 이어진다. 붓골이라는 필동. 그 이름마저 잘못 붙여졌다고는 하나 남산골 아래 필동은 꽤 오래된 동네다. 필동은 붓과는 거리가 먼 마을이었지만, 아직도 붓골이라는 오해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조선시대에 이곳 출신 문인들이 제법 있었다고 하니 그로써 붓골 이름값을 대신하면 될 것이다.한국 문화영화를 싹틔운 동네어느 한 시절 필동 골목 곳곳에는 독재와 군사문화의 잔재가 숨어 있었다. 1970년대 계엄군이 출동하던 수도경비사령부(현 수도방위사령부) 시절 병영은 한옥마을로 바뀌었다. 당시의 흔적은 한옥마을 입구에 있는 불교 법당 하나만 남아 있을 뿐 하늘을 향해 뻗은 한옥지붕을 보고 군 주둔지의 삼엄함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 주변 골목의 수경사 가옥들 자리에 사무실이나 인쇄소가 들어선 지 오래됐다.한옥마을에서 더 남산을 향해 올라가면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있었다. 이...

    1453호2021.11.12 12:02

  • [골목 내시경]이태원-이방인의 마을, 관광은 주춤 삶은 계속
    이태원-이방인의 마을, 관광은 주춤 삶은 계속

    서울에서 외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곳을 꼽자면 용산구 이태원을 들 수 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부터 녹사평역까지 이태원로를 중심으로 각종 상권과 이태원 특유의 문화가 펼쳐진다. 큰길에서 골목으로 들어서면 이방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나, 가게에서 파는 이국의 식자재에서 이태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영어 또는 아랍어 간판과 화려한 색깔의 스프레이 낙서도 서울의 다른 골목과는 차이가 있다.이태원에 이방인이 정착한 것은 꽤 뿌리가 깊다. 고려말 거란족과 여진족이 정착했던 곳이라는 설도 있고, 임진왜란 때 귀화한 일본인이 정착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남산 기슭에 배나무가 많아 그런 이름을 얻었다는 설도 있다. 어쨌거나 가깝게는 일본군과 미군의 군사기지가 있었고, 그들이 드나들던 흔적도 엿볼 수 있으니 이역의 자취가 이태원 곳곳에 배어든 것은 오래된 일이다.이태원은 해밀턴호텔을 기점으로 동서남북의 골목길이 서로 다른 모습이다. 해밀턴호텔 뒤편 ...

    1451호2021.10.29 14:27

  • [골목 내시경]갈현동-‘아, 세월이여’ 삶의 주름살이 있는 골목
    갈현동-‘아, 세월이여’ 삶의 주름살이 있는 골목

    서울지하철 3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곳에 연신내역이 있다. 연신내는 연서천(延曙川)의 옛 지명인데, 행정구역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인근 주민들은 대충 어디가 연신내를 일컫는지 알고 있다. 연신내역을 나와 통일로를 기준으로 동쪽에는 불광동, 남동쪽으로 대조동과 역촌동, 서쪽으로 갈현동이 있다. 북한산을 곁에 두고 있어 굽이굽이 언덕과 고개가 많은데, 칡고개와 박석고개로 이어지는 곳이 갈현동이다.갈현동은 앵봉산 자락 비탈을 따라 꼬불꼬불 복잡한 골목길을 만들고 있다. 역 가까이는 대개 2000년대 이후 새로 지은 말끔한 공동주택들이 보이고, 산비탈로 다가가면 아직도 1970년대 블록집들이 줄지어 있다. 연신내에서 출발한 마을버스는 이 일대 골목을 이리저리 누비다가 앵봉산 중턱쯤에서 마지막 손님을 내려놓는다.오래된 연립주택이 숲을 이룬 사이로 한뼘 작은 마당을 갖춘 단층집들이 보이고 뜰 대부분에는 감나무가 서 있다. 갈현동의 감들은 대체로 길쭉한 대봉 품종인데 나무...

    1449호2021.10.15 13:51

  • 신정동-SNS 맛집은 몰라도 ‘주민 맛집’은 있어요

    서울지하철 5호선 목동역에서 나와 북쪽과 서쪽으로 쭉 이어지는 길을 따라 신정동이 있다. 신정동은 1동에서 7동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동네라 신정역과 2호선 지선인 양천구청역과 신정네거리역이 모두 그 안에 있다. 양천구에서 가장 오래된 뿌리를 가진 마을이다. 신정역에는 20세기 초에 찍은 신정동 그러니까 당시 은행정의 사진이 걸려 있다. 지금과 달리 평지 대부분은 논과 밭이었고, 산자락을 따라 마을이 들어선 모습이 예스럽다. 지금도 신정동 대부분은 구릉을 따라 이어져 골목을 걸으면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이어져 있다.칼산 비탈에서 최근 구석기 유물과 유적지가 발굴된 것을 빼면 옛 흔적은 그다지 남아 있지 않다. 간간이 60년대쯤 지어진 1층과 2층 벽돌집이 보이고, 다시 70년대에 유행했던 3층짜리 다세대주택이 골목 어느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아주 근래에 지은 5층짜리 공동주택들은 한참 새집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골목에서 만난 주민들은 대체로 오래도록 이 마...

    1446호2021.09.24 14:58

  • [골목내시경]답십리-‘오래돼 더 귀한’ 골동품을 닮은 골목
    답십리-‘오래돼 더 귀한’ 골동품을 닮은 골목

    서울시 동대문구 답십리는 이름부터가 오랜 시간의 흔적을 보여준다. 조선을 세울 무렵 무학대사가 동대문 인근부터 십리를 걷고 살폈다는 설도 있고, 인근 십리가 논과 밭으로 펼쳐진 땅이라 그리 불렀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아직도 ‘답십리’라는 옛 이름을 동명에 달고 있는 곳이다. 그 이름 덕인지 서울지하철 5호선 답십리역을 나서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이 골동품을 취급하는 고미술 상가다.답십리에 고미술 상가가 들어선 것은 1970년대부터라 한다. 1980년대 청계천을 정비하면서 황학동과 아현동, 인사동과 이태원 등지에 있는 골동품 상인들이 모여들어 고미술 전문상가를 이루었다. 이면 도로의 주상복합건물 여러채에 고미술 상가가 연이어 있다. 길을 걸으면 작은 석상부터 돌탑이며 오래된 장롱과 문짝, 하다못해 짚으로 짠 멍석과 망태기까지 옛 물건을 두루 볼 수 있다.상가 안에는 각기 전문적인 가게들이 있어 어떤 곳은 가구를, 또 다른 곳은 그림과 ...

    1444호2021.09.03 15:36

  • [골목 내시경]청담동-은밀하고 화려하게 펼쳐진 ‘그들만의 세상’
    청담동-은밀하고 화려하게 펼쳐진 ‘그들만의 세상’

    서울 강남구 청담동, 명품거리와 비싼 땅값으로 알려진 곳이다. 서울 지하철 신분당선 압구정역을 나서면 청담동의 명품거리가 시작된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물건. 옷과 장신구와 가방 따위가 물건만큼이나 비싸 보이는 매장에서 행인을 유혹한다. 청담동 명품매장의 판매고는 전 세계에서 수위에 든다고 알려졌다. 그만큼 돈이 차고 넘쳐흐르는 곳이다. 거리는 조용하고 깨끗하며 도도하다.청담동은 한강을 끼고 맑은 호수가 있던 데서 유래했다. 맑은 못을 끼고 있던 마을은 청수골이라는 이름도 가졌다고 한다. 강남 개발 초기부터 청담동은 고급 주택이 들어섰다. 한강변 구릉지에는 저택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고, 강가로 아파트들이 강변을 내려보며 들어섰다. 이곳의 땅값과 집값은 서민에겐 비현실적인 숫자로 다가올 뿐이다.청담사거리까지 이어진 명품거리는 다시 연예인거리로 이어진다. 청담동 골목 곳곳에 국내 굴지의 연예기획사들이 있다. 골목 어귀엔 케이스타 로드라는 간판이 걸렸다. 스타 단...

    1442호2021.08.20 14:41

  • [골목 내시경]명동-한류로 번성했지만 코로나로 쇠퇴의 길
    명동-한류로 번성했지만 코로나로 쇠퇴의 길

    명동은 서울에서 땅값과 임대료가 가장 비싼 곳으로 꼽힌다. 가장 번화하고 화려하며 최근까지 국내외 인파가 몰리던 곳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터지고 급격히 변한 곳을 들라면 단연 명동을 꼽을 수 있다. 곳곳에 관광객과 유람객으로 붐비던 골목과 가게는 모두가 버리고 떠나버린 도시의 모습으로 보였다.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을 나와 북쪽으로 뻗어 을지로까지 통하는 완만한 내리막길이 명동의 중심 골목이다. 화려하게 들어섰던 유명 상점들이 하나같이 철수해 빈 가게에 붙은 임대표지만이 눈에 띈다. 유리문 안으로 고지서와 급전 알선 광고들이 가득 쌓여 문을 닫은 것이 어제오늘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골목 안 상점의 열에 일곱은 문을 닫았다. 유명 스포츠 의류매장이 건재한 채 있는데, 들고 나는 손님은 눈에 띄지 않았다.“명동은 한류 때문에 엄청 번성했다가, 코로나로 망했다”는 것이 약국 주인의 이야기다. 예전에도 패션과 미용, 유행과 유통...

    1441호2021.08.13 1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