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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체 기사 354
  • [취재 후] 남 일이 아닙니다
    남 일이 아닙니다

    청소년 도박 문제에 관한 기사가 나오기 시작한 건 2014년 무렵이다. 이후 10년 넘게 여러 언론사가 잊을 만하면 이 문제를 다뤘다. 기사가 나오면 처방이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상황이 나아진 것 같진 않다.남 일 보듯 하기 때문이 아닐까. 내 자식에게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모두가 무의식중에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청소년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다르다. A씨의 아들은 현재 도박으로 범죄에도 손을 댔지만, 이전에는 동물을 좋아하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중학교 때부터 도박 사이트 총판을 맡아 친구들의 사이트 가입을 독려한 B씨도 “소위 말하는 일진들의 비율이 높긴 하지만, 공부 잘하는 애들이 하는 것도 많이 봤다”고 했다. 교실을 숙주 삼고 있는 이상 누구도 도박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어쩌면 정부도 남 일 보듯 이 문제를 다루는 듯하다. 학교에는 학생들이 도박하다 걸렸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매뉴얼이 없다. 수사기관은 해외에...

    1654호3시간 전

  • [취재 후] 여전히 ‘혹’ 하는 나이
    여전히 ‘혹’ 하는 나이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 ‘불혹(不惑)’이 훌쩍 지났는데 여전히 이것저것에 혹한다. ‘강남 부동산 오른다’는 뉴스를 보며, 우리 부부가 ‘영끌’해 마련한 경기 부천의 아파트값도 올랐나 부동산 앱을 켜본다. 각종 학원 전단에 혹해 ‘큰아이 학원 어디를 보내야 할까’ 고민하고, 강남의 부자들은 자녀를 한 달에 수백만원이 드는 영유(영어 유치원)에 보낸다는 기사에 혹해 ‘우리 둘째는 영유가 아니더라도 원어민 있는 영어학원에는 보내야겠다’고 다짐한다.온라인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자동차 계급 피라미드’에서 우리 집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밑에서 두 번째에 있는 것을 보면서 ‘한 단계 더 높은 차를 구매해 ‘품위’를 유지해야 하나’ 잠시 흔들리기도 한다. 10년 전 ‘트렌드에 민감하고 자기 관리에 적극적인 소비 주체인 40대’를 겨냥해 만들어진 조어 ‘영포티’는 이렇게 미혹당하는 나 같은 40대를 간파하고 나온 단어가 아닐까.그런 단어를 이제...

    1653호2025.11.12 06:00

  • [취재 후] 노인 1000만명의 얼굴
    노인 1000만명의 얼굴

    “저희는 ‘노인 문제’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노인이 곧 문제인 것처럼 인식될 수 있는 말이어서요.”노인인권기본법 입법 대표 청원을 한 지은희 전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 원장이 말했다. 빈곤, 고립, 자살, 디지털 격차 등 노인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노인 문제’로 줄여 표현한 것이었는데, ‘아차’ 싶었다. 노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뭉뚱그려 생각한 것은 아닌지 자문했다.탑골공원에 오는 노인들을 만날 때 어떤 호칭을 쓸지 고민했다. 흔히 ‘어르신’이라는 표현을 쓴다. ‘어르신’은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1998년 공모를 통해 ‘노인’의 대체 호칭으로 선정한 말이다. ‘노인’이라는 말이 사전적 의미 외에 ‘무기력하다’, ‘병약하다’ 등의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다는 지적에 따라 대체어로 바꿔 썼다고 한다. 인터뷰 때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썼다. 지난 3월 춘천남부노인복지관이 이용자 호칭 선호도 조사(496명 대상)를 했을 때, 당사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호칭은 ‘어르신’(92...

    1652호2025.11.05 06:00

  • [취재 후] 나는 되고, 너는 또 안 되고?
    나는 되고, 너는 또 안 되고?

    시작은 들끓는 한강벨트 부동산의 이야기였다. 하루가 멀다고 신고가가 터져나오는 부동산 광풍을 취재하고 마감하려던 차에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이 나왔다. 시장 분위기가 급변했고, 사람들의 말도 달라졌다. ‘정부 대책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던 이들도 입장을 바꿨다. 그만큼 10·15 대책의 충격은 컸다. 기껏해야 서울 몇 곳을 투기지역으로 묶고, 대출이나 더 죌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예측은 빗나갔다.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광범위하게 지정하면서, 말 그대로 부동산시장을 일거에 멈춰 세웠다.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장에서 광풍을 목격했던 입장에서 정부의 선택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지방선거를 앞둔 여당이 오죽하면 이런 선택을 했을까 싶기도 했다.문제는 그다음이다. 들끓는 민심을 가라앉히겠다며 쏟아져나온 여당 정치인과 관료들의 발언이 상식적이지 않았다. ‘강도 높은 대책을 갑자기 내놔서 송구하...

    1651호2025.10.29 06:00

  • [취재 후] 울컥한 추미애, 답답한 조희대
    울컥한 추미애, 답답한 조희대

    지난 10월 15일 오후 9시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국정감사가 끝날 무렵, 추미애 위원장이 발언 도중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앞에 두고 추 위원장은 이번엔 질타가 아닌 호소를 했다. 자신들이 대법원까지 찾아온 것은 사법독립을 침탈하려는 게 아니라 대선 개입 의혹을 낳은 초고속 이재명 판결 경위를 규명하기 위한 것임을 이해해달라는 말이었다.그러면서 추 위원장은 이재명 판결의 반대의견 한 대목을 언급했다.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초고속 판결에 반대하면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보석 세공 과정에 비유했다. “대법관들은 전원합의에서 설득과 숙고로 이뤄지는 가치의 상호침투와 화학작용을 통한 변용과 결단을 통해 각 사안에서 구체적 타당성의 확보와 정의실현이라는 보석을 세공한다. 설득과 숙고의 과정이 치열할수록 얻게 되는 보석은 더 찬란하며 견고하다.” 추 위원장은 “판결문을 읽으며 눈물이 났다”며 “이것이야말로 국민의 마음”이라고 했다.조 대법원장...

    1650호2025.10.22 06:00

  • [취재 후] 붉은 여왕의 나라
    붉은 여왕의 나라

    10년 전 열린 SK하이닉스 임원 워크숍의 연구 주제는 ‘삼성’이었다. 하이닉스가 치열하게 일하는데도 삼성을 제치지 못하는 건 결국 삼성이 더 치열하게 일하기 때문이며, 그러니 삼성을 제치려면 두 배로 일해야 한다는 ‘붉은 여왕 가설’에 임원들이 무릎을 ‘탁’ 쳤단다.<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는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해. 어딘가 다른 데로 가고 싶으면 적어도 그보다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해.” 이후로 하이닉스 임원들의 조기 출근 결의가 이어졌다. 한 부문에선 임원들이 새벽 5시 반에 출근했다. 삼성 임원들이 오전 6시 반에 출근한다고 하니, 그보다 한 시간은 먼저 출근해야 따라잡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하이닉스 임원들이 조기 출근하며 삼성을 따라잡겠다고 할 때, 삼성은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부문에서 TSMC를 따라잡겠다고 나섰다. 애플 아이폰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물량을 두고 TSMC와 수주...

    1649호2025.10.08 06:00

  • [취재 후] ‘케데헌’의 글로벌 성공 후 K콘텐츠의 미래
    ‘케데헌’의 글로벌 성공 후 K콘텐츠의 미래

    어쩌다 보니 공개 직후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를 봤습니다. 퇴근 후 리모컨을 켰는데, 넷플릭스에 새로 올라온 영화라고 나오더군요. <케데헌>은 TV모니터 앞을 지나가던 딸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이튿날 딸은 엄마에게 한번 보기를 ‘강권’했는데, 영화를 끝까지 보기는 했지만 아내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디테일한 고증 같은 건 꽤 잘됐지만, K팝 아이돌 가수들의 진짜 직업이 알고 보니 괴물 사냥꾼이었다는 설정이 참신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당장 떠올랐던 것이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알고 보니 ‘뱀파이어 헌터’였고, 미국 남북전쟁도 뱀파이어들의 ‘음모’ 때문에 일어났다는 역사 판타지 소설이었습니다.<케데헌>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이후 많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지난주 제가 쓴 “‘케데헌’은 왜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도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많이 나온 주제였습...

    1647호2025.09.24 06:00

  • [취재 후] 민낯을 마주하는 괴로움
    민낯을 마주하는 괴로움

    그 어떤 밥벌이가 괴롭지 않겠는가. 기자로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일 역시 늘 고통스럽다. 지난 호 ‘공장장 가라사대-팬덤 권력’ 기사는 또 다른 차원의 괴로움이었다. 언론인 김어준을 비평한다는 것은 기자 개인으로서, 또 경향신문과 언론계 구성원으로서 나와 내가 속한 조직, 업계의 민낯을 직시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박영흠 성신여대 교수는 경향신문을 비롯한 한국의 언론이 정파적이었으며, “이런 정파성을 극대화하고 진화시킨 인물이 김어준”이라고 했다. 기존의 정파적인 언론 생태계가 김어준을 만들었다는 그 말에 공감한다. 기사의 품질을 높여 경쟁력을 갖기보다는, 정파성을 강화하며 생존을 모색하려는 경우가 많았고, 동료 언론인들이 정치권으로 직행하는 모습을 나 역시 수없이 목격했다. ‘관점 있는 시사 뉴스’를 표방한 김어준이 인기를 얻은 것은 그런 언론 생태계에서 비어 있는 뉴스 시장의 가능성을 꿰뚫은 김어준의 천부적인 감각과 재능이 맞아떨어진 결과였으리라.팟캐스트 <...

    1646호2025.09.17 06:12

  • [취재 후] 이상기후 못 막아도 재난은 막을 수 있다
    이상기후 못 막아도 재난은 막을 수 있다

    우려했던 일이 결국 벌어졌다. 지난 8월 극심한 가뭄으로 50% 제한급수에 돌입했던 강릉시가 불과 열흘 만에 수도계량기의 75%를 잠그는 제한급수에 들어갔다. 강릉시민의 식수원인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13%대까지 떨어져 식수 공급의 마지노선이 사실상 무너졌다. 수도검침원이 다녀간 가정에선 평소 4분의 1밖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 샤워나 빨래, 요리 같은 일상이 강릉 시민들에게는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됐다.가뭄 상황 취재를 위해 방문했던 음식점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는 휴업을 당연히 예상한다는 듯 “문제는 과연 언제까지 문을 닫느냐”라고 했다. 주방 이모도, 서빙을 보는 아르바이트생도 휴가를 준다고 했다. 당연히 무급이다. 불편쯤으로 치부됐던 가뭄은 이제 강릉 시민들의 생계까지 위협하고 있다.강릉 지역 가뭄의 일차적인 원인은 이상기후다. 한 번씩 큰비를 뿌려주며 영동 지역 가뭄 해갈에 도움을 줬던 태풍이 올해는 오지 않았다. 여름내 역대급 폭염을 만들어낸 뜨...

    1645호2025.09.10 06:00

  • [취재 후] 여전히 눈물을 타고 흐르는 전기
    여전히 눈물을 타고 흐르는 전기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은 10GW의 전력을 필요로 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이중 3GW를 LNG발전으로, 7GW를 호남권 재생에너지와 장거리 송전선로를 통해 충당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전북 완주, 정읍, 진안 등지에 신규 송전탑 건설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주민들은 뒤늦게 이러한 사실을 통보받았다. 입지선정위원회에는 주민대표가 일부 포함됐으나 최적 경과대역 선정 5개월 후에야 관련 사실을 알게 됐다.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 백지화 전북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켜서 해당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8월 14일 방문한 전북 정읍시·완주군 곳곳에는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정읍시민 생존 위협하는 신정읍변전소 반대한다” 등의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완주군 소양면에서 만난 박성래 완주군 송전탑건설백지화추진위원회 위원장은 “송전탑이 우리 동네 앞으로 지나가도 문제이고, 다른 동네로 보내도 문제이고 그야말로 외통수에 걸린 셈”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1644호2025.09.03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