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빨갱이’라는 단어가 힘을 얻었던 이유는 통일정책의 영향이 크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시작된 냉전 시기, 한국은 무력을 통해서 북한과 통일을 이루겠다고 했다. 이른바 북진통일론이다. 이에 따라 북한과 내통한다는 뉘앙스를 담은 빨갱이는 내부의 적이었다.40여년이 지난 1990년대, 냉전에서 승리한 미국을 중심으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강화됐다. 한국은 북한과 교류·협력을 늘려가면서 북한의 체제 전환을 꾀한다는 전략을 짰다. 한국은 북한의 우호국인 중국·러시아와 수교를 맺었지만, 북한은 미국·일본과 수교에 실패했다. 궁지에 몰린 북한은 한국의 손을 잡았다.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등 교류·협력 성과도 있었다.다시 30여년이 지난 2020년대, 미국 일극체제는 약화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패권국이지만 그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다. 북한은 한국과 남남으로 살면서 핵보유국이 되겠다는 전략을 짰다. 북한은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반기를 든 중...
1687호2026.07.15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