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주간경향

연재

취재 후
  • 전체 기사 362
  • [취재 후] 달콤한 귤, 시큼한 탱자
    달콤한 귤, 시큼한 탱자

    지방소멸, 수도권 일극화 대응 논리로 나온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해 취재하면서 지난해 봄 방문한 독일·프랑스 농촌 마을을 떠올렸다. 지역에서 고령인구가 늘고 청년들이 떠나는 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 국가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오죽했으면 독일은 3년마다 ‘우리 마을은 미래가 있다’는 경연대회를 열 정도다. 직전 대회 최고상을 받은 후글핑 마을을 지난해 4월 방문했다. 2864명의 주민이 사는, 우리로 치면 면이나 읍에 해당하는 마을(게마인데)로, 17세 이하의 ‘미래세대’가 575명(20.1%)에 이른다.이 마을은 6년에 한 번씩 주민투표로 뽑는 면장과 마을의회, 주민들이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한다. 기차 역사를 사서 1층에 카페와 공유오피스를 만들고, 다락 공간은 난민 가족에게 내줬다. 빈집도 사들여 공공 임대주택으로 쓴다. 인근 마을과 함께 체육시설을 짓고 공동으로 사용한다. 면장이 말했다. “주민들이 마을의 문제를 얘기해주죠. ‘이웃이 차를 잘못 주차해요...

    1662호2026.01.14 06:00

  • [취재 후] 쓰레기 기억상실증
    쓰레기 기억상실증

    우리는 쓰레기를 너무나도 빨리 치우고, 잊는다. 나의 본가는 옛 난지도 동네다. 십수년 전만 해도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으면 거의 허허벌판이었는데, 이제 이곳은 세련된 방송사 건물이며 빌딩, 아파트, 공원으로 가득하다. 하늘공원을 걸을 때면 종종 발밑에 얼마나 막대한 쓰레기가 여전히 묻혀 있을까 생각에 빠져들곤 했다.기사를 작성하며 임태훈의 신간 <쓰레기 기억상실증>을 읽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쓰레기 기억상실증”이란 쓰레기를 일상적으로 생산하고 버리면서도,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 누가 그것을 처분하는지는 외면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야 자본주의하에서 소비자들은 더 많은 쓰레기를 생산하면서도 죄책감을 갖지 않고, 계속 ‘새 상품’(빠르게 쓰레기가 될수록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을 노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기억상실은 대신 대가를 치러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세련된 도시 중산층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수시설, 공장식 축산시설, 살처분, 쓰레기 ...

    1661호2026.01.07 06:00

  • [취재 후] ‘노동자의 몫’에 봄은 오려나
    ‘노동자의 몫’에 봄은 오려나

    임금이 깎이고, 공사 기간은 줄고, 위험은 아래로 내려간다. 그 틈에서 숙련은 빠지고, 고용은 저숙련 외국인 노동자로 이동한다. 건설 현장의 불법·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반복적인 공사비 삭감을 유발하고 이로 인해 안전, 품질, 고용 환경 전반을 동시에 저하시킨다.만약 단가 후려치기 대신 ‘적정임금’이 지급된다면 건설 현장은 어떻게 변할까.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발주한 한 건설 현장은 적정임금제가 적용된 사례다. 이 현장을 연구해온 심규범 건설고용컨설팅 대표는 공사비 삭감이 건설 현장 문제의 출발점이라고 진단한다. 단가가 반복 삭감되고, 공기 단축과 속도 압박이 가해지면서 안전과 품질이 동시에 저하된다는 것이다. 그는 적정임금제가 적용될 경우 임금 하한선이 설정돼 단가 후려치기와 하도급 단계에서의 삭감 여지가 줄어들고 숙련 인력 이탈이 줄어들며 시공 품질과 안전 대응이 개선된다고 분석했다.적정임금제는 일부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시행하고 있으나 대개는...

    1660호2025.12.31 06:00

  • [취재 후] 쿠팡의 공범
    쿠팡의 공범

    “소비자도 공범으로 만든 거야.”지난주 쿠팡 기사에 달린 한 줄 댓글은 현 상황을 아주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결국 국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국회 쿠팡 청문회는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미국인 쿠팡 대표의 동문서답 속에 맹탕으로 끝났습니다. 쿠팡 대응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쿠팡 입장에서 본다면 이해가 갑니다. 역대급 개인정보 유출 사고라지만 쿠팡의 이용자 수는 큰 변동이 없습니다. 쿠팡에 영업정지라도 해서 제재를 가하자는 목소리도 분출됩니다만 우려도 만만찮습니다. 이미 이익을 실현한 김 의장 등 대주주들이 아니라 물류센터 노동자나 배송 기사들, 입점 업체 관계자들의 비명이 커질지 모른다는 겁니다. ‘어떻게 쿠팡 없이 살았을까라고 말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김 의장의 미션은 이미 완수된 것만 같습니다. 별 잘못도 없는 우리 모두 쿠팡의 공범이 됐다는 게 틀린 말 같지 않은 이유입니다.이커머스 등 플랫폼 기업이 한국에 뿌리내리던 시기 전문가들은 플랫...

    1659호2025.12.24 06:00

  • [취재 후] 알리·테무 싫으니 쿠팡 힘내라?
    알리·테무 싫으니 쿠팡 힘내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터진 뒤 온라인의 뉴스 댓글창,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갑자기 ‘알리·테무’ 이야기가 올라왔다. 쿠팡이 망하면 중국 전자상거래(e커머스) 플랫폼인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한국을 장악할 텐데,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쿠팡 개인정보 털린 것은 화나지만, 그렇다고 알리·테무 쓸 순 없잖아. 쿠팡 배송 기사님들, 힘내십시오”라고 집 앞에 써붙였다는 글도 있었다. 개인정보 유출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기도 전에 유력 용의자 국적이 중국이라는 뉴스가 도배되더니, 중국 플랫폼을 막기 위해 역대급 개인정보 유출을 초래한 기업의 책임을 면해줘야 한다니. 탈팡(쿠팡 탈퇴)을 막는 혐중(중국 혐오) 정서에 놀랐다.정작 기자가 취재한 쿠팡 입점 판매자(셀러)들은 이런 이야기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은 이미 우리 일상에서 뺄 수 없고 쿠팡에도 중국 제품, 중국 판매자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쿠팡은 중국에서 판매자 모...

    1658호2025.12.17 06:00

  • [취재 후] 이젠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이젠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소멸시킬 수 있으면 소멸시켜야죠. 그게 안 되니까 문제지….”12·3 불법 계엄 1년 후를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였다. 물론 국민의힘 얘기다. 취재 중 만난 전문가들은 진영을 떠나 극단으로 내달리는 정치 현실을 걱정했다. 걱정의 중심에는 ‘대체 국민의힘을 어찌하오리까’가 있었다.계엄 1년을 맞은 지난 12월 3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12·3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정부의 심판을 호소했다. 불법 계엄을 사과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단절을 요구하던 당 안팎의 기대와 목소리를 또 뭉갰다. 누가 뭐래도 국민의힘의 본체는 윤석열과 ‘계몽령’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다시 선언한 것이다. 본체의 커밍아웃 뒤에서 “반헌법적 계엄에 사죄”한다며 고개를 숙인 25명의 의원은 조연으로 밀려났다.‘견제 세력이 없어져서’, ‘극우 정당이 또 수권할까봐’ 저마다 생각은 달랐지만, 전문...

    1657호2025.12.10 06:00

  • [취재 후] 내가 사랑‘했던’ 동네 책방
    내가 사랑‘했던’ 동네 책방

    어렸을 적, 집에서 걸어서 30분 거리 큰 길가에 있던 커다란 2층짜리 A책방이 내 삶의 첫 동네 책방이었다. 책방은 ‘문제지 파는 책방’, ‘문제지 말고도 파는 책방’ 정도로 인식했는데 A책방은 후자였다. 당시 집 근처에는 도서관 같은 문화시설이 없었다. 부모님은 한 달에 한두 번씩 나와 동생을 데리고 A책방에 가서 마음에 든 ‘한 권’을 고르게 했다. A책장은 부모님의 서가 대신 내가 접할 수 있었던 바깥 세계의 첫 서가였다. 초등학생 시절 어슐러 K. 르 귄과 오에 겐자부로, 한비야를 만난 곳도 A책방이었다. 뭣도 모르면서 왠지 표지가 멋지게 생겼다는 이유로, 제목이 신기하다는 이유 등으로 중고등학생이 돼서도 읽을 책을 차곡차곡 사 모았다.이번에 동네 책방들을 취재하면서 ‘장소’와 ‘물성’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하게 됐다. 공개된 서가에 꽂힌 책들은 훔쳐볼 수 있다. 마치 빵집서 풍기는 고소한 빵 냄새를 마음껏 맡을 수 있는 것처럼. 책을 공짜로 들고 갈 수는 없지만, 책...

    1656호2025.12.03 06:00

  • [취재 후] ‘이세돌 배출국’을 넘어서려면
    ‘이세돌 배출국’을 넘어서려면

    페이페이 리 미국 스탠퍼드대학 교수는 2006년부터 꽃, 개, 자동차 등의 이미지 수천만장을 수집하고 라벨링해 ‘이미지넷’이라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그는 2010년부터 수천만장의 이미지를 어떤 시스템이 잘 인식하는지 겨루는 ‘이미지넷 챌린지(ILSVRC)’를 열었는데, 2012년 3회 대회에서 딥러닝 기반의 AI인 ‘알렉스넷’이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했다.알렉스넷을 만든 건 당시 제프리 힌튼 교수가 이끄는 캐나다 토론토대팀이었는데 중국의 바이두, 미국의 구글·마이크로소프트, 영국의 딥 마인드가 이 팀을 영입하려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영미권 기업은 그렇다 치더라도 중국 기업이 일찌감치 AI 경쟁에 끼어든 게 놀라울 정도인데, 사실 바이두는 AI 분야 석학인 앤드루 응을 수석 과학자 겸 부사장으로 영입할 정도로 AI에 진심이었다.이미지넷 구축부터 지금까지의 AI 발전에 기여한 이들을 배출한 국가는 어떤 곳일까. 케이드 메츠 뉴욕타임스 IT 전문기자가 지난 60년간 진행...

    1655호2025.11.26 06:00

  • [취재 후] 남 일이 아닙니다
    남 일이 아닙니다

    청소년 도박 문제에 관한 기사가 나오기 시작한 건 2014년 무렵이다. 이후 10년 넘게 여러 언론사가 잊을 만하면 이 문제를 다뤘다. 기사가 나오면 처방이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상황이 나아진 것 같진 않다.남 일 보듯 하기 때문이 아닐까. 내 자식에게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모두가 무의식중에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청소년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다르다. A씨의 아들은 현재 도박으로 범죄에도 손을 댔지만, 이전에는 동물을 좋아하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중학교 때부터 도박 사이트 총판을 맡아 친구들의 사이트 가입을 독려한 B씨도 “소위 말하는 일진들의 비율이 높긴 하지만, 공부 잘하는 애들이 하는 것도 많이 봤다”고 했다. 교실을 숙주 삼고 있는 이상 누구도 도박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어쩌면 정부도 남 일 보듯 이 문제를 다루는 듯하다. 학교에는 학생들이 도박하다 걸렸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매뉴얼이 없다. 수사기관은 해외에...

    1654호2025.11.19 06:00

  • [취재 후] 여전히 ‘혹’ 하는 나이
    여전히 ‘혹’ 하는 나이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 ‘불혹(不惑)’이 훌쩍 지났는데 여전히 이것저것에 혹한다. ‘강남 부동산 오른다’는 뉴스를 보며, 우리 부부가 ‘영끌’해 마련한 경기 부천의 아파트값도 올랐나 부동산 앱을 켜본다. 각종 학원 전단에 혹해 ‘큰아이 학원 어디를 보내야 할까’ 고민하고, 강남의 부자들은 자녀를 한 달에 수백만원이 드는 영유(영어 유치원)에 보낸다는 기사에 혹해 ‘우리 둘째는 영유가 아니더라도 원어민 있는 영어학원에는 보내야겠다’고 다짐한다.온라인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자동차 계급 피라미드’에서 우리 집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밑에서 두 번째에 있는 것을 보면서 ‘한 단계 더 높은 차를 구매해 ‘품위’를 유지해야 하나’ 잠시 흔들리기도 한다. 10년 전 ‘트렌드에 민감하고 자기 관리에 적극적인 소비 주체인 40대’를 겨냥해 만들어진 조어 ‘영포티’는 이렇게 미혹당하는 나 같은 40대를 간파하고 나온 단어가 아닐까.그런 단어를 이제...

    1653호2025.11.12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