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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우리시대의 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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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0년대, 우리시대의 뿌리를 찾아서]-‘에로, 그로, 난센스’ 여성혐오의 방식
    <마지막회>-‘에로, 그로, 난센스’ 여성혐오의 방식

    ‘에로 그로 난센스’의 콘텐츠 안에서 모던걸이나 직업여성은 사치와 허영의 화신 또는 ‘에로서비스’ 제공자로서 재현되었다. 남성들은 이러한 콘텐츠를 구매하면서 여성들을 맘껏 조롱하거나 성적인 자극을 은밀히 즐겼다.근대 이후 ‘여성해방’이라는 신조어가 출현하고 ‘여자도 인간이다’라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여성운동의 주체들은 남성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부르주아 엘리트 ‘백인’ 남성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근대사회의 짜임새를 주도해나간 제국주의 국가의 여성들은 남녀차별을 비판하면서 남성과 동등한 교육과 정치 차명의 기회를 쟁취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보도 듣도 못한 조선사회 신여성들반면 식민지 조선에서 ‘여성해방’이라는 신조어를 선전하는 데 열심이었던 사람들은 남성 지식인들이었다. 실력을 양성하여 문명개화에 도달하는 것으로 제국에 대한 열패감을 만회하려던 자들이었다. 이들은 ‘미개’의 영역에 속해 있다고 여겨지는...

    1256호2017.12.12 11:33

  • [1930년대, 우리 시대의 뿌리를 찾아서]풍기문란 통제, 입신과 처세의 논리가 되다
    풍기문란 통제, 입신과 처세의 논리가 되다

    남성 엘리트의 도덕과 본분이 입신을 통해 출세하고 양명하는 일이었다면 여성들에게는 가정에 몸을 두는 처신만이 할당되어 세상으로 나아가거나 이름을 날리는 일은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졌다.법 앞에서 나의 선량함을 입증할 필요가 있을까? 도덕과 윤리가 아닌 법 앞에서 말이다. 한국에서는 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계속 법 앞에서 나의 선량함을 입증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선량함의 이름으로 법적으로 심문당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선량한 풍속을 침해하는 행위’와 ‘선량한 풍속을 해하는 행위의 동기가 되는 행위’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풍속 통제 법제는 일제 시기 만들어져 현재까지 기본 골자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관련 법제 없이 자의석 해석으로 활용일제 시기 만들어진 풍속 통제 법제는 식민통치, 군사독재를 거쳐 현재까지도 강고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강고한 영향’은 풍속 통제 법제나 작동방식이 강고하고, 철저하고, 체계적인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1253호2017.11.21 11:41

  • [1930년대, 우리 시대의 뿌리를 찾아서]전쟁 속의 학문, 식민지 경성제대의 현실
    전쟁 속의 학문, 식민지 경성제대의 현실

    1930년대 경성제대가 식민지 조선에서 겪었던 궤적은 1930년대 대학의 특징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의 대학은 1930년대 경성제대가 겪었던 이런 딜레마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졌을까.1931년 10월 도쿄제대 법학부 교수 야마다 사부로(山田三良)는 번민 끝에 경성제대 총장직을 수락했다. 그는 일찍이 ‘조선합병’의 근거를 마련하는 중요한 법적 조언을 한 바 있는 국제법의 전문가였다. 또 조선총독부가 식민지에 신설대학을 설립할 당시에는 도쿄제대 법학부장으로 있으면서 제자들의 식민지행을 이끌기도 했다. 그런 만큼 식민지와의 인연이 녹록지 않았던 그였다. 하지만 제국대학이라고는 해도 식민지에 세워진 신설대학을 맡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대학의 기틀을 마련했던 초대 총장인 핫토리 우노키치(腹部宇之吉)는 총독부와의 알력 끝에 2년도 못 채우고 그만두었다. 의학부를 만드는 데 산파 역할을 했던 3대 총장 시가 키요시(志賀潔)도 교수들 내부의 갈등과 알력 속에서 임기가 ...

    1251호2017.11.06 18:26

  • [1930년대, 우리시대의 뿌리를 찾아서]식민지 조선의 기독교, 국가주의를 받아들이다
    식민지 조선의 기독교, 국가주의를 받아들이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1930년대는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의 시대였다. 이들은 기독교를 통한 문명화와 근대화를 추진함으로써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는 걸 추구하였다.민주화 이후 한국개신교의 지형도는 변했다. 진보 기독교를 대표하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문호 개방을 통해 점차 보수화되었다. 반면, 한기총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 기독교는 기존의 정교분리 노선을 버리고 광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계기로 보수 기독교는 ‘반공과 친미’를 외치며 반정부 시위를 펼치는가 하면, 기독교 정당을 결성하기도 했다. 2007년 대선에서는 장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소위 ‘한국 기독교 우파’의 탄생이었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주요 이슈에 전면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우익 대중운동의 중요한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한국 기독교 우파의 진면목은 탄핵 반대 집회에서 어김없이 드러났다. 박근혜 탄핵심판 선고기일을 앞두고 태극기와 성조기...

    1245호2017.09.18 18:28

  • [1930년대, 우리 시대의 뿌리를 찾아서]출판 제국의 프로파간다, ‘쿨재팬’으로 진화
    출판 제국의 프로파간다, ‘쿨재팬’으로 진화

    대중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아베의 '쿨재팬(Cool Japan)'은 경제적 효용과 대외적인 프로파간다 효용을 동시에 호힉득할 수 있었던 전략이었다. 리우올림픽에서 마리오가 된 아베는 바로 그 쿨재팬을 실천해 보인 것이다.2016년 리우올림픽 폐막식에 아베 신조 총리가 마리오로 등장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미디어는 일제히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고 표현했고, 도쿄신문 등 소수의 미디어만이 아베 총리를 히틀러에 빗대거나 예산 낭비라며 비판했다. 한국의 많은 미디어도 “유쾌하고 창의적인 퍼포먼스”라며 도쿄올림픽 홍보의 성공을 평창과 비교하며 부러워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를 비롯하여 현재 대중들로부터 광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등 인기 정치인의 공통점은 대중의 기분에 적극 부응하는 극장 정치를 한다는 점이다.유쾌한 프로파간다프로파간다(Propaganda·대중 선전)는 즐거워야 한다. 과거 일본 군부는 강압적이고 지루한 프로파간다에 ...

    1243호2017.09.04 17:44

  • [1930년대, 우리시대의 뿌리를 찾아서]‘빨갱이’ 증오정치의 적폐 청산은 언제쯤
    ‘빨갱이’ 증오정치의 적폐 청산은 언제쯤

    빨갱이 증오정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질서를 정초하고 유지시킨 핵심 기제 중 하나였다. 1980년 ‘5월 광주’도 희생양으로 바쳐졌다. 87년 민주화도 빨갱이 증오정치의 강렬한 구심력을 크게 약화시키지 못했다.2017년 2월 25일 태극기와 성조기가 넘실거리는 ‘태극기집회’ 현장에서 한 여성에 대한 집단 린치가 벌어졌다. ‘노란 리본’을 달고 있거나 태극기 또는 성조기를 들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해진 폭력이었다. 한 언론의 밀착 취재기는 이를 ‘빨갱이 사냥’으로 묘사했다. “나라가 위급한 상황인데” “문재인과 야당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으니 “저런 간첩은 죽여도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국회, 민주노총, 전교조, 언론을 주적으로 삼고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는 플랭카드가 등장했던 집회 현장이라 기사의 선정성에 대한 비판보다 선정적인 현실에 대한 공포가 성큼 다가왔다.한 작자가 태극기와 성조기, ‘빨갱이는 죽여도 돼’가 새겨진 십자가 방패를 들고 태극기집회 현장을 설...

    1239호2017.08.08 10:30

  • [1930년대, 우리 시대의 뿌리를 찾아서]‘공익’ 가장해 관권·자본이 유착한 토지수용
    ‘공익’ 가장해 관권·자본이 유착한 토지수용

    여전히 한국 사회는 ‘공익사업’이라는 명분 아래 희생공간을 찾고 있다. 강정과 밀양의 아픔은 현재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고, 언젠가 내 앞마당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질소비료회사 110㎞ 분기(分岐) 송전선 철탑 건설용지인 함주군 운남면 흥덕리 산 11번지 임야 … 매수 교섭은 수개월을 두고 지주 운남면 운흥리 송재열(宋在烈)씨와 10명이 시종일관하여 문중(門中) 전원의 승낙이 없이는 안 되며 조상의 묘가 있는 곳이니 절대로 팔 수 없다고 하여 드디어 교섭의 결렬로, 지난 16일 회사 당국은 드디어 토지수용령 적용 신청을 제출하여 왔다고 한다. - 1935년 12월 20일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조선질소)는 1927년 일본의 신흥재벌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일본질소)가 함경남도 흥남에 설립한 회사로,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공업화에 중추 역할을 담당하며 일제의 대륙 침략을 뒷받침했다. 조선질소는 조선총독부의 협조를 받아 함경남도 일대에 부전강·장진강 ...

    1237호2017.07.24 17:44

  • [1930년대, 우리 시대의 뿌리를 찾아서]‘식민주의의 그라운드 제로’ 흥남
    ‘식민주의의 그라운드 제로’ 흥남

    흥남은 식민주의적 관계가 자연과 피식민지인을 제압하거나 포섭하는 매일매일의 실천 속에서 재생산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장소이다.한국전쟁에 대한 공식 기억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극적인 이산(離散)의 장면 중에 ‘바람찬 흥남부두’가 있다. 많은 이들에게 ‘흥남’은 ‘철수(撤收)’와 결합되어 한국전쟁의 상흔을 표상하는 심상지리의 한 장소에 고착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흥남이라는 도시도, 그 도시의 이름도 식민지·제국 시기 일본의 한 기업에 의해 192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듯하다.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를 중핵으로 한 전기·화학 콘체른, 창업자 노구치 시타가우(野口遵·1873~1944)의 이름을 따 ‘노구치 콘체른’이라고 불리곤 했던 일본의 신흥재벌 ‘일본질소’는 러일전쟁 무렵부터 일본의 제국주의적 ‘성장’과 함께 사세를 확장해 갔다. 그 자신 도쿄제국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기술 엘리트이기도 했던 노구치는 새로운 기술을 ...

    1235호2017.07.11 10:38

  • [1930년대, 우리 시대의 뿌리를 찾아서]글로벌 위기, 퇴행과 실험의 개발주의
    글로벌 위기, 퇴행과 실험의 개발주의

    1930년대는 개발주의라는 독특한 정치 프로그램이 탄생한 시대이다. 수정자본주의와 파시즘은 물론이고 사회주의에서도 개발은 강력한 사회관리 체제의 수립을 정당화하는 기제였다.1930대는 글로벌 위기의 시대였다. 주요 국가들은 경제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금본위제라는 이미 수명이 다한 국제금융시스템의 재건을 고집했다. 이 퇴행적 선택은 당시 경제학적 상상력의 한계였다. 그럼에도 1930년대에는 수정자본주의, 파시즘, 사회주의라는 3개의 체제 실험을 시도하여 ‘거대한 전환’을 모색했지만, 2010년대의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실패 속에서 복지국가의 재건을 외치거나, 파시즘의 재래를 두려워하거나, 사회주의의 패배를 복기하거나 하고 있다. 후대 사람들에게는 지금 우리야말로 금본위제 복귀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까?대공황과 만주사변, 1930년대의 동아시아1930년대 일본은 세계대공황과 만주사변이라는 두 사건으로 들썩였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 활기에 넘치던 ...

    1233호2017.06.26 18:37

  • [1930년대, 우리시대의 뿌리를 찾아서]탈정치 시대, 식민지 조선에서 민족의 발견
    탈정치 시대, 식민지 조선에서 민족의 발견

    1930년대 대중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볼셰비즘과 파시즘이 부딪혔고 포퓰리즘적 수정자본주의가 등장하였다. 식민지·주변부에서는 민족이라는 주체가 저항과 이념의 전선을 형성하였다.세계 정치가 들썩이고 있다. 의회정치, 정당정치를 집어삼킨 대중정치의 파도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탈정치의 정치는 때로는 극우로, 때로는 극좌로 향한다. 온건이나 중도를 표방하고 나선 지도자들조차 기존 정치와 인연이 옅은 이가 대부분이다. 한국 사회를 들었다 놓은 촛불혁명도 정당정치를 뒤에서 떠민 대중정치에 의해 가능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 대중은 어디서 왔는가. 식민지 조선의 1930년대로 눈을 돌려보자.대중정치의 기원, 1930년대지하운동을 벌이던 조선공산당 주류는 1926년 11월에 합법적 정치운동으로의 진출을 주장하는 정우회 선언을 발표한다. 1925년 일본에서 보통선거 법안이 통과되어 혁신정당의 약진 가능성이 점쳐지던 상황이었다. 정우회 선언...

    1231호2017.06.13 0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