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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바쁨이 미덕인 사회
    바쁨이 미덕인 사회

    “식사 하셨어요?”가 인사말처럼 쓰이던 시절이 있었다. 먹는 일이 사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던 가난한 시절의 모습이었다. “먹고 살기 힘들다”며 유독 먹는 일을 강조해서 말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경제성장으로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언제부턴가 “요즘 많이 바쁘시죠?”가 인사말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서로의 근황조차 잘 모르는 처지임에도 다짜고짜 “요즘 많이 바쁘시죠?”라고 물으며 말문을 여는 것이 마치 새로운 대화 예절처럼 자리 잡았다.대체 왜 이런 인사법이 생겼을까? 아마도 한창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에 바쁨은 곧 ‘활력’을 의미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지금처럼 청년실업과 조기 퇴직자가 넘치는 경제 정체기에 바쁨이란 ‘건재’함을 나타내는 상징이기 때문이리라. 바쁨이 상대방의 사회적 능력을 인정하는 찬사이자 동시에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표현수단인 것이다. 그래서 삶이 힘들 때조차도 이제는 “바빠 죽겠다”며 악착같이 바쁨을 ...

    1239호2017.08.07 16:02

  • [칼럼]늦은 코스모스 씨를 뿌리며
    늦은 코스모스 씨를 뿌리며

    서울살이 35년여 만에 노원구 아파트 밀집지역에서 마포구 성미산 자락 다세대주택으로 집을 옮긴 지도 2년이 넘었다. 집은 좀 허술했지만 산자락이라 주변이 온통 초록이어서 나는 좋았다. 아내도 모기 등 벌레가 많다느니 불평이 제법이더니, 그래도 창만 열면 푸른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오고 문만 나서면 언제나 가벼운 등산도 할 수 있어 점점 정이 붙어가고 있다. 거기다가 아내를 더욱 기쁘게 한 것은 집 옆의 조그만 빈 땅이었다. 집 옆으로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제대로 흐르게 배수구를 만들었는데, 그 배수구와 우리 집 벽 사이에 좁고 길쭉한 아무 쓸모없는 땅 두어 평이 생긴 것이다.청소를 하던 아내가 여기에 꽃이나 채소를 심으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참 좋겠다고 했다. 그 다음 해 봄에 공사 폐자재와 돌 등이 엉겨서 척박한 땅을, 산 흙을 가져다 메우고 나뭇잎 썩은 거름도 가져다 넣고 해서 몇 고랑 보자기만한 밭을 만들었다. 그리고 꽃씨도 뿌리고 상추나 열무 씨도 뿌리고, 고추, 가지, ...

    1238호2017.07.31 14:29

  • [칼럼]입시제도와 공정성
    입시제도와 공정성

    대중이 능력주의를 담보하는 절차적 공정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오히려 사회 시스템 전반에 대한 냉소와 회의가 들어설 수도 있다.최근 새 정부에 대한 매우 호의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예상되는 대입제도 변화에 대한 반응은 꽤 나쁜 편인 듯하다.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을 유지·확대하고 정시전형을 축소한다거나 절대평가를 도입하는 정책방향에 대한 반감은 ‘심상치 않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이다. 교육전문가도 아닌 내 생각인즉 그저 한 세대 전의 입시생, 그리고 지금은 학부모로서의 경험철학(?)일 따름이라는 한계를 먼저 자백한 다음, 몇 가지 논점들에 관해 지적해보려 한다.먼저 교육기회의 평등을 주장하는 이들이 막상 자기 자녀는 이른바 좋은 학교에 보낸다는 흔한 비판이 있다. 사실 위계화한 학벌 시스템 속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은 대중적 호소력은 있을지언정 현실성은 전혀 없는 것이다. 굳어진 구조 앞에서 홀로 분연히 맞서는 지사가 되기를 요구해서...

    1237호2017.07.24 16:52

  • [칼럼]위험사회의 황금률
    위험사회의 황금률

    최근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우리나라에서 삼겹살이 대중적으로 널리 소비된 역사적 배경을 알고 적잖이 놀랐다. 1970년대에 경제성장으로 육류 소비수요가 늘어난 일본에 수출을 하기 위해 대형 양돈산업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장려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은 안심과 등심만 수입해 갔기 때문에 나머지 부위, 즉 삼겹살, 족발, 머리, 껍데기, 내장 등은 헐값으로 국내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일본에서 대형 양돈을 하지 않고 고기를 수입해 간 이유였다. 돼지 배설물 처리가 너무 고약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우리나라 사람은 돼지 배설물 치우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우리나라 물과 땅은 오염되어도 괜찮다는 말인가?그렇게 일본의 이기적인 행태에 대해 부아가 치밀다가 조금 지나지 않아 낯 뜨거운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이 밀려왔다. 얼마 전에 돼지 배설물 치우는 일을 하다가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소식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1236호2017.07.17 16:15

  • [칼럼]비트겐슈타인과 개소리
    비트겐슈타인과 개소리

    입에 올리기도 민망스럽지만, ‘개소리(bullshit)’라는 비속어가 있다. 언어에 강박적일 만큼 엄정했던 비트겐슈타인이 그의 러시아어 개인교사가 입원하자 병문안을 갔다. 환자가 “차에 치인 개같이 아프다”고 하자 비트겐슈타인은 “개소리!”라고 외치며 불같이 성을 냈단다. 개도 아닌 주제에, 그것도 차에 치인 개의 고통이 어떤지 당신이 알기나 해? 그런데 어찌 이런 표현을 한단 말인가.‘개소리’는 우리말 사전에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지껄이는 당치않은 말을 욕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그 뜻풀이가 되어 있다. 점잖은 유사어로는 ‘횡설수설’이나 ‘막말’을 들 수 있겠다. ‘막말’ 하면 바로 연상되는 대한민국 제1야당의 대표는 자신의 발언을 막말이라고 지칭하는 여론과 언론을 향해 “가장 솔직한 말을 막말로 매도”한다며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사람이 개가 아닌 다음에야 가장 솔직한 말이라고 하는 것이 고작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지껄이는 당치않은 말’이라면, 다른 무엇보다도 비트겐슈타인으로...

    1235호2017.07.10 16:28

  • [칼럼] 같이 살자
    같이 살자

    지난 12월 31일 저녁, 한 해를 보내는 칼바람 속에 광화문광장은 촛불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박근혜 즉각 퇴진과 조기 탄핵을 부르짖는 ‘송박영신’ 제10차 범국민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날은 서울만 80만이 모여 연인원 1000만을 돌파하는 날이기도 해서, 모인 시민들은 실질적인 승리를 확인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헛헛했다. 박근혜가 퇴진하면 뭐가 달라지는 건데? 박근혜가 탄핵되면 우리 삶이 어떻게 변하지? 알 수 없는 찜찜함이 환호와 박수의 뒷자리에서 그림자처럼 일렁이고 있었다.2부 문화제의 초청가수로 나온 솔가와 이란이 등장할 때도 그냥 무덤덤했다. 그러나 기타 하나씩을 메고 나와 라는 노래를 차분히 부르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노래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바로 이것이로구나.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게, 바로 이렇게 같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구나.바람과 물을 따라/ 여기에 모인 우리/ 볶아먹고 비벼 먹고/ 무쳐먹고 지져먹고방귀 뽕 트...

    1234호2017.07.03 16:16

  • [칼럼]반지성주의와 민주주의
    반지성주의와 민주주의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지니고 있다. 인정받고픈 영역이 다를 뿐이다. 정치판의 이전투구를 보면 나름 고고한 체할 수 있는 학자가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알고보면 학문의 세계만큼 인정욕구가 날것으로 맞부딪히는 곳도 드물다.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누군가의 논문을 꼼꼼하게 읽어 티끌만한 논리적 허점이라도 찾아낼 때 기쁨을 느끼는 일이야말로 연구의 첫걸음이다. 자신의 생각과 똑같은, 논리적 허점도 없는 논문이 먼저 발표되었음을 알 때 느끼는 허탈감은 설명하기 어렵다. 이때 빠지기 쉬운 유혹이 남의 생각을 마치 자기 것인 양 슬쩍 갖다 쓰는 것이다.가장 대표적인 유형은 연구비 등을 타내기 위해 무리하게 연구결과를 부풀리고 복제하다가 발생하는 표절이다. 이른바 ‘자기표절’이라는 형용모순의 개념이 성립하는 것도 대부분 이 경우일 것이다. 또 하나, 흔히 말하는 폴리페서들 중에 연구실적이 뛰어난 이들도 의외로 많은데, 그 중에는 “나는 정치도 하지만 ...

    1233호2017.06.26 18:00

  • [칼럼]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보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보험

    일자리 정책과 소득주도 경제성장은 새 정부의 핵심 경제 의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최저임금 1만원을 2020년까지 달성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지자체나 자영업자 모두 걱정이 태산같다. 단기적으로는 이들의 염려가 수긍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대기업 독점이 아니라 공정한 거래와 합리적인 경쟁이 이뤄지는 시장을 만든다면, 정규직 전환이나 최저임금 1만원도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유명한 일화가 있다. 헨리 포드 2세가 미국 자동차노조위원장 월터 루터와 함께 자동화된 공장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헨리 포드 2세가 월터 루터에게 “앞으로 이 로봇들에게도 노조회비를 걷을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사장님은 앞으로 저 로봇들에게도 차를 팔거냐”고 되받아쳤다. 노동자들의 소득이 올라 구매력이 늘어나면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 최저임금 1만원 정책과 기본소득 정책이 함께 동반된다면 사장님들의 염려는 좀 더 빨리 사라질 수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창의적인 발상이 나올...

    1232호2017.06.19 15:31

  • [칼럼]우리 안의 적폐
    우리 안의 적폐

    “비워야 채워지고, 곁을 내줘야 새 사람이 오는 세상 이치에 순응하고자 합니다.” 이 말을 남기고 홀연히 먼 길을 떠난 대통령의 복심 양정철이란 사내는 알고 보니 나의 고등학교 선배였다. 꽤 오래 전 두어 번 가벼운 인사 정도 나눈 사이였지만 그때만 해도 그가 고교 선배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그와 내가 학연으로 얽힌 사이였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은 대선이 끝난 직후다. 그를 두고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이자 새 정부의 실세가 될 것이라는 기사가 한창 쏟아지던 바로 그 즈음, 연락이 뜸했던 지인들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와 양정철 사이에 친분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소개를 부탁했다. 정작 나도 모르고 있던 양정철과의 학연을 그들이 먼저 알아내서 연락을 해왔고, 그 덕에 비로소 그가 나의 고교 선배였음을 알게 된 셈이다. 세상에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당연히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 없었건만, 이런 전화는 한동안 하루에도 ...

    1231호2017.06.12 16:21

  • [칼럼]아직도 감옥과 법 밖에 있는 사람들
    아직도 감옥과 법 밖에 있는 사람들

    지난 대선 때 후보자들의 토론 중 엉뚱하게도 ‘주적’ 논쟁이 있었지만, 박근혜 정권의 실질적 주적은 민주노총과 전교조였다.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 때, 박근혜 후보는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종북세력이고 문재인 후보는 종북세력과 한 편이라고 몰아붙였다. 남북분단과 6·25의 비극을 이용한 이념과 안보논리에 수구세력은 결집했다. 정권을 잡은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 등 가짜 공약을 스스로 폐기한 후, 민주노총과 전교조로 대표되는 진보 개혁세력을 탄압하는 데 열을 올렸다. 결국 전교조는 고용노동부를 앞세워 ‘노조 아님’의 행정처분을 통해 법 밖으로 쫓아내고, 민주노총은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나 민중총궐기대회의 주도 책임을 물어 한상균 위원장을 구속함으로써 감옥에 가두었다. 그 과정에서 백남기 농민은 경찰의 물대포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그 분노와 정의에 대한 갈망은 최순실·박근혜의 희대의 국정농단과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 등이 드러나면서 촛불로 타오르기 시작했고, 거대한...

    1230호2017.06.05 1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