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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노벨상은 월드컵이 아니다
    노벨상은 월드컵이 아니다

    북유럽을 여행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다는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을 막 지나칠 무렵 스마트폰 창에 뜬 속보를 통해 노벨문학상 선정자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고은 시인이 또다시 노벨 문학상 수상에 실패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연관 검색어에 이끌려 며칠 앞선 기사를 검색해 봤다. 고은 시인이 영국의 도박 사이트에서 배당률 4위로 급상승해 수상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설레발치던 뉴스가 눈에 띄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에는 고은 시인의 수상 실패 요인을 진단하고 향후 한국 문학이 노벨문학상을 타기 위해 필요한 전략까지 제시하는 야심찬 분석기사들이 잇달아 인터넷에 올라왔다. 우리 언론이 노벨상을 다루는 방식이 대략 이렇다. 노벨상을, 그것도 문학상 수상 가능성을 판돈이 오가는 도박판 배당률 따위에 근거해 점치고, 결과가 발표된 후에는 마치 스포츠 경기가 끝난 것처럼 승패를 기준으로 파헤친다. 노벨상은 월드컵이 아닌데도 말이다.때마침 며칠 후 스웨덴에서는 룩셈부르크와의 월...

    1249호2017.10.23 15:34

  • [칼럼]오늘도 우리 하빈이는 안녕할까
    오늘도 우리 하빈이는 안녕할까

    긴 한가위 연휴가 끝나갈 무렵 불현듯 하빈(가명)이 생각이 났다. 서른 중후반의 청년, 자부심 강한 연기예술가다. 소극장에서 공연한 여러 편의 연극에 출연했고, 영화 출연도 꾸준히 모색했으나 제대로 된 역은 아직 맡아보지 못했다. 불문학을 전공해 파리 유학까지 다녀오고야 연기가 예술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숨겨져 있던 자기 욕구임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대학로 극장가에서 연기를 공부하고 출연도 하면서, 재미있고 보람찬 날들을 보냈다. 그러나 수입은 한푼도 없었다. 처음에는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나 그것도 한두 해였다. 자립을 조건으로 월세 반지하방 보증금을 지원 받으며 부모로부터 독립했다.알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오전에는 지자체 부설 문화센터의 불어 회화교실의 강사, 저녁에는 주류회사의 판촉 도우미로 뛰었다. 오전 알바는 전공도 살리고 큰 힘도 들지 않았으나, 재능기부 차원의 봉사활동으로 차비 정도 받는 수준이어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저녁 알바는 수...

    1248호2017.10.16 17:12

  • [칼럼]시급한 원전 적폐의 청산
    시급한 원전 적폐의 청산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에 대해 공론화위원회에서 숙의가 진행 중이다. 찬반토론은 비교적 차분하게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사회적 논의가 시급한 사안은 따로 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원전 적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우리나라 원전의 역사는 처음부터 온갖 비리와 부패의 추문으로 얽혀 있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러하다. 적폐가 쌓인 이유는 여러 가지다. 복잡한 과학기술과 안보 상황이 맞물려 비밀주의가 횡행하다 보니 감시와 견제 자체가 어려웠으며, 원전 건설과 운영에 막대한 금액이 소요되고, 여기서 발생하는 이익을 내부 구성원 간에 나눠먹는 카르텔 구조가 오랫동안 고착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납품업체에 금품 향응을 받는다든지, 시험성적서를 조작하는 등의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이명박 전 대통령은 현대건설 회장 시절인 1988년에 영광원전(한빛원전) 3·4호기 권력형 비리의혹으로 국감장에 증인으로 섰던 일이 있다. 2012년 고리 1호기 정전사고와 관련해서는 발...

    1247호2017.10.10 14:46

  • [칼럼]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얼마 전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우연히 화제가 되었던 두 종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나는 식민지 시대 경성의 여성 공산주의자들의 삶을 다룬 라는 소설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 황석영의 이라는 자전이다. 전자는 이리저리 알려져 있는 사실들에 허구를 덧붙인 것이고, 후자는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보는 회고록이니 분명히 장르가 다르다. 그러나 어차피 모든 팩트는 화자나 관찰자의 상상력과 해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법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항간에 떠도는 가짜뉴스와 이른바 공영방송의 더없이 신실해 보이는 앵커가 읽어주는 뉴스 사이에 별반 차이가 없음이 낱낱이 밝혀지는 요즈음이라면, 진실과 허구의 거리는 얼핏 생각하듯 그리 멀지 않음을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어쨌거나 나는 두 책을 읽으며 하나로 수렴되는 교훈을 얻었다. 이를테면 서구형 미모의 흑백사진 속 인물로 기억되는, 박헌영의 아내이자 비련의 생애를 살다 간 공산주의자 주세죽이 막상 극한적 실존 상황에서 “오, 주여”를 ...

    1246호2017.09.25 15:59

  • [칼럼]자유의 어두운 그늘
    자유의 어두운 그늘

    88서울올림픽 폐막 직후였다. 1988년 10월 8일 일단의 수감자들이 이송 도중 탈출을 감행하여 주택가에서 인질극을 벌였다. 이들은 흉악범이 아니라 그야말로 ‘개털’(잡범)이었는데, 자신들이 ‘보호감호제’ 때문에 징역형을 마치고도 보호감호 처분을 받아야 하는 것과 500만원 상당의 절도를 저지른 자기들에 비해 70억원을 횡령한 전경환의 형기가 더 짧은 것이 너무 억울했다. 이런 부조리를 만천하에 폭로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한 것이 주요 탈주 동기였다. 이들은 경찰과 대치 끝에 자살하거나 사살당하는 비극적 결말을 맞고 말았다. 이른바 지강헌 사건. 이 사건이 던져준 사회적 반향은 적지 않았다. 한동안 비지스의 ‘홀리데이’라는 노래가 유행했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신조어는 오늘날 보통명사가 되었다.마침 바로 그즈음, TV와 라디오에서는 연일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

    1245호2017.09.18 17:01

  • [칼럼]김태호의 길과 나영석의 길
    김태호의 길과 나영석의 길

    김태호와 나영석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대표 예능 PD다. MBC의 과 KBS의 로 예능계를 양분한 이후 지금까지 10년 넘게 최정상 예능 PD로서의 지위를 이어오고 있으니 그 세월이 참으로 대단하다. 두 사람은 종종 비교의 대상이 되곤 했다. 안에서 매회 새로운 기획으로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는 김태호 PD와 안에서 여행과 잠자리 복불복 게임이란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면서도 매회 차별화된 웃음을 뽑아내는 나영석 PD의 연출 스타일은 많이 다르다. 여간해서는 카메라 앵글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출연진들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며 돌발상황조차 감수하는 김태호 PD와 수시로 카메라 앵글 속으로 들어와 출연진들과 소통하고 조율하는 나영석 PD의 캐릭터도 대조적이다. 김태호 PD는 여전히 에 남아있고, 나영석 PD는 진작에 을 떠났다는 점도 큰 차이점이다.요즘 두 사람의 엇갈린 상황은 또 다른 비교의 대상이 되고 있다. KBS를 떠나 tvN으로 자리를 옮긴 나영석 PD는 , , , ,...

    1244호2017.09.11 15:24

  • [칼럼]다시 광화문 뒷골목에서
    다시 광화문 뒷골목에서

    광화문광장에서 세종문화회관 옆길로 빠져 나가면 변호사회관이 있고 그 뒷골목에 간재미 무침을 잘하는 막걸리집이 있다. 오랜만에 우리는 거기서 다시 만났다. 마침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성큼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지난겨울 주말마다 촛불집회가 열려 광화문광장이 붉게 타오르면서, 청와대 앞까지 진격을 마치고 되돌아와 마지막으로 자주 찾았던 길거리 막걸리집을 오랜만에 들른 것이다.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과 끓어오르던 분위기 얘기는 이제 안줏거리가 아니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지도 100일이 훌쩍 지났으니 까마득한 옛일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촛불혁명 완수의 첫 번째 과제는 적폐청산이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적폐는 무엇인지, 각 분야의 적폐가 어느 정도 청산되고 있는지, 이런 얘기를 하는데 빈 술병이 늘어날수록 목소리는 커져가고 대화 내용은 뜨거워지고 있었다.우리들의 잠정적인 결론은 이랬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좋은 평가가 국민의 75%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1243호2017.09.04 15:23

  • [칼럼]소득주도성장에 관한 불편한 진실
    소득주도성장에 관한 불편한 진실

    80% 박스권에 갇혀 있다는 농담이 나올 지경으로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게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서서히 정권의 실질적 성과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할 것이고, 그래서 소득주도성장은 관심의 초점이 된다. 일부 보수적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소득주도성장이 ‘족보 없는’ 이론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사항은 짚어 둘 필요가 있을 듯하다.첫째, 소득주도라는 말의 모호함이다. 케인스나 칼레츠키에 근거를 두는 경제학 이론의 원래 명칭은 임금주도성장이다. 요컨대 임금과 이윤으로의 분배가 성장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장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수라는 주장이다. 자영업자의 비중이 여전히 전체 취업자의 30%에 이른다는 한국적 특수성, 그리고 아마도 임금만을 강조할 때 예견되는 색깔론 비슷한 반발 등을 감안하면 소득주도성장이 무난하기는 하다. 그러나 소득은 예를 들어 임대소득이나 배당소득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소득’ 주도 성장을 강조함으로써 발...

    1241호2017.08.28 15:46

  • [칼럼]역사를 기록하는 자의 책임
    역사를 기록하는 자의 책임

    최근 영화 ‘택시운전사’가 화제가 되면서 독일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외신기자 중 가장 먼저 광주에 들어가서 취재 후 우여곡절 끝에 필름을 국외로 보냈고, 다시 목숨을 걸고 광주에 들어가서 계엄군이 물러간 평화로운 광주 시내의 모습을 담았다. 그가 남긴 영상은 광주 민주화운동이 폭도들에 의한 만행이고 광주 시내가 아비규환 상태여서 진압할 수밖에 없었다는 계엄군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명백한 증거로 작용하였다. 군홧발에 언론이 짓밟혀 광주 밖에서는 아무도 광주의 비극을 알 수 없었을 때, 역사의 진실을 기록하려는 그의 용기 덕분에 우리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우리 독일인이 2차 대전 때 했던 만행을 기억하는 만큼 5·18도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무거운 책임을 동반한다. 많은 언론인들이 모범으로 삼았던 리영희 선생은 한국 현대사의 모순들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이를 기록함으로써 언론인의 역사적 책임이 무엇인지를 명확하...

    1241호2017.08.21 14:51

  • [칼럼]폭력, 사랑의 이름으로
    폭력, 사랑의 이름으로

    중학교 때 음악시간은 끔찍한 공포의 시간이었다. 실기에서 음정 하나 삐끗하거나, 질문에 즉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했다가는 아비규환의 매타작이 작렬했다. 류 아무개 음악선생은 깡마른 데다 생김새마저도 흉악하기 그지없었는데, 몽둥이질은 기본에 주먹과 발길질이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지금도 이태리 가곡 “카로 미오 밴 크레디욜 맨 센자디테…”를, 헨델의 “옴부라 마이 푸 디 훼게타빌레…”를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곤 한다. 교실 가득 울려 퍼지는 그 아름다운 음률의 고전음악이 침 넘어가는 소리조차 굉음으로 들릴 만치 압착된 공포와 버무려져 내 10대의 기억창고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이 진저리칠 만한 기억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다름 아닌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영화 ‘4등’이었다. 엔딩크레딧이 올라오는데 배경음악이 예의 그 “카로 미오 밴…”이 아닌가. 영화는 내게 묻는다. 류 아무개 음악선생은 나에게 고마운 분이었을까. 그 매질이 아니었으면 이 부박한 삶에 감히 이태리 가곡 같은 ...

    1240호2017.08.14 1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