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주간경향

연재

칼럼
  • 전체 기사 149
  • [칼럼]보수와 모리배
    보수와 모리배

    “정치를 하면 무엇부터 하시렵니까?”라는 자로(子路)의 물음에 공자는 단 한마디로 “正名(이름을 바로 잡고자 한다)”이라고 답한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엉클어지게 마련이고, 말이 엉클어져 소통이 안 되니 정치가 제대로 될 리 없으며, 결국 형벌(刑罰)이 바르게 적용되지 못해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정의롭지 못한 것을 정의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바르지 못한 이름(不正名)이기에, 불의(不義)라고 바로 잡겠다고 한 것이다. 불의한 것에는 불의를, 정의로운 것에는 정의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정명이고, 이것이 곧 정치의 기본사명이라는 말이겠다. 논어 자로편 제3장의 내용이다.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 중에 부정명(不正名)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보수’다. 프랑스대혁명 시기 공화파와 왕당파, 이후 자코뱅당과 지롱드당이 각각 좌우에 착석한 이래 서구에선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민주공화주의를 함께 ...

    1259호2018.01.02 15:25

  • [칼럼]진보정부와 시장경제
    진보정부와 시장경제

    세 번째 진보정부인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200여일이 지났다. 진보정부와 시장경제 사이에는 언제나 긴장이 발생한다. 모든 진보정부는 기본적으로 시장 기능이 불완전하다고 믿으며 시장에 개입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진보정부는 시장경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낯설고, 시장은 어떤 변화를 직면하게 될지 불안하다.문재인 정부는 시장경제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을까? 이런 철학적 문제에 정부가 입장을 밝히기를 기대할 수는 없고, 다만 여러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서 그 입장을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몇 달을 지켜본 나의 판단은 이렇다. 이번 정부는 시장경제 바깥의 개입으로는 불충분하고, 시장 내에 일부분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시장 바깥의 개입은 무엇이며, 시장 내의 개입은 무엇인가? 바깥의 개입은 사후 개입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시장경제가 작동한 후 나타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입이다.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세금을 인상하거나 저소득층 복지를 확대하...

    1258호2017.12.26 18:59

  • [칼럼]일흔 즈음, 또 한 해가 간다
    일흔 즈음, 또 한 해가 간다

    내 나이 내년이면 일흔, 언제나 젊은 교사인 줄만 알았는데 어언 고래희가 돼버렸다. 하루 가고 한 달 쌓이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여러 계절이 겹치고 겹쳐 그리 됐을 텐데, 문득 돌아보니 어느 날 갑자기인 듯 나는 노인이었다. 당혹스럽고 혼란스럽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돌아보기로 했다.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다시 추스르기로 했다. 새로운 다짐으로 나를 더욱 긴장시키고 단련해서 다시 칼날 위에 세우고 싶었다. 그러므로 나는 나에게 끊임없이 속삭인다. 좋은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부디 지쳐서 넘어져서도 안 된다. 반드시 그 날은 오리니, 네가 부지런히 살고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어느 날 갑자기 어깨가 아프고 팔을 뒤로 젖힐 수가 없어, 내가 뭘 잘못했지 후회와 반성이 먹구름처럼 몰려오는데, “제발 몸 관리 좀 해요. 운동도 좀 하고 아프면 병원도 얼른 가요.” 아내의 살가운 잔소리가 두려워 아닌 척 더듬거리며 윗옷을 입다가, “악!”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와 ...

    1257호2017.12.19 11:08

  • [칼럼]다시 세월호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다시 세월호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인천 영흥도 앞바다에서 336톤 급유선과 10톤 낚싯배가 충돌하여 안타깝게도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사고 직후 한 시간이 되지 않은 시간 안에 대통령에게 보고가 되고, 조금 혼선은 있었지만 바로 구조대가 출동하여 뒤집힌 배의 에어포켓 안에 생존해 있던 승객들을 구출해냈다는 점이다. 좀 더 조사가 진행되어야 명백해지겠지만 사고 원인도 대체로 밝혀졌다. 박근혜 정부가 아직 있었다면 어떤 사달이 났을지 등골이 오싹하다. 촛불혁명 이후 들어선 정부 덕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5월 이후 북한에서는 11번의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한 번의 핵실험도 감행했다. 이전 정부 같았으면 군수산업의 이해관계와 비리가 난마처럼 얽혀서 최소한 국지전 정도는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수능 전날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한 것도 그렇다. 이전 정부는 허울뿐이지만 원칙 고수를 운운하며 그대로 수능을 실시했다가 큰 혼란을 빚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편파적인 판단이긴...

    1256호2017.12.11 17:04

  • [칼럼]가치투쟁과 인권의 정치
    가치투쟁과 인권의 정치

    칼 마르크스는 인간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했다. 세상은 이익투쟁의 장이라는 말이겠다. 이익(권리)투쟁은 반드시 가치(이념)투쟁을 낳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가치투쟁의 결과가 세력(헤게모니)투쟁의 판세를 결정하고, 세력투쟁에서 우위를 차지한 집단이 정책의 주도권을 쥔다. 권리-이념-세력-정책이라는 정치(과정)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치과정에서 지배집단은 정책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빙자해 기득권을 확대재생산한다. 그래서 종종 가치전도의 정당화가 이뤄진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 것과 같은 계급배반의 행태가 그 대표적 사례이다. 우리가 선거제도 개혁이나 정책정당, 이념정당을 그토록 바라는 까닭도 이런 왜곡을 막기 위해서다. 정치가 가치투쟁의 사명을 저버리면 세속주의 정치가 활개를 친다. 세속주의 정치의 특징은 당선을 지상목표로 삼아서 표만 좇는 것이다. 정치를 왜 하려는지, 정치의 본질적 사명이 무엇인지는 안중에도 없다. 흔히들 정...

    1255호2017.12.04 14:20

  • [칼럼]인공지능 시대의 교육을 묻는다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을 묻는다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가장 큰 사회적 관심사는 ‘직업’과 ‘교육’ 문제에 집중된다. 이 두 가지 현안은 상호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상당수 직업들이 사라질 것이며, 이에 따라 교육에도 근본적인 혁신과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의식 속에는 교육이란 직업을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암묵적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교육이 직업을 위해 복무하게 된 것은 인류의 장구한 역사 중 고작 근대 이후부터의 일이다.수렵 채취 시대나 농경 시대의 초창기까지만 해도 인류에게 교육이란 생존을 위한 과정이었다. 불 피우는 방법을 배우고, 사냥을 배우고, 독버섯과 식용버섯을 구분하는 요령을 배우고, 농사짓는 방법과 가축을 길들이는 방법을 배우는 모든 교육과정은 인간에게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중세 시대로 접어들자 교육은 신분 분화에 따른 정체성 형성으로 초점을 옮겼다. 왕족과 귀족들은 자신의 신분에 부여된 예법을 배우고, 글을 익히며 지배층으로서의 정체...

    1254호2017.11.27 14:55

  • [칼럼]‘갑질문화’ 유감
    ‘갑질문화’ 유감

    최근 한 병원 간호사들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병원재단 체육대회에서 선정적인 옷을 입고 춤을 추라는 요구를 받는가 하면, 결혼한 간호사들 사이에 임신의 순번까지 정하는 관행이 있다고 한다. 뒤이어 비슷한 사례들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일들이 어디 간호사들에게만 벌어질까?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이런 불쾌한 일들을 흔히 직장 내 ‘갑질문화’라고 부르는데, 나는 이 갑질문화라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영 편치 않다. 우선은 이것이 지시하는 내용 자체가 불쾌한 것들이고, 또 뒤에 붙은 접미사 ‘질’이 주는 부정적 어감 때문일 것이다.그런데 사실 내가 불편해 하는 더 큰 이유는 ‘문화’라는 단어에 있다. 갑질에 ‘문화’가 붙어 널리 사용되게 된 것은 대통령이 몇 달 전 부처에 갑질문화 근절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하면서부터다. 당시 육군 사령관 부부가 공관병에게 부당한 지시를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우선 대통령이 비속어에 가까운 갑질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쓰...

    1253호2017.11.20 17:58

  • [칼럼]다시 혁명을 생각한다
    다시 혁명을 생각한다

    11월이 되며, 루터의 종교(가톨릭)개혁 500주년, 러시아 혁명 100주년, 우리나라 촛불시민혁명 1주년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아기 둘인 우리 딸네는 강원도 어느 농촌으로 귀농을 결심하고 땅을 마련하고 집을 짓는 등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루터가 주창한 가톨릭 개혁은 프로테스탄트(개신교)를 탄생시켰으나, 500년이 지난 우리나라의 개신교는 그 당시 면죄부를 팔던 가톨릭 못지않게 대형교회를 세습하는 등,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한 공산주의 정부를 탄생시키며 깃발을 세운 러시아 혁명의 소련 체제는 20세기 내내 전 세계를 뒤흔들었으나, 혁명의 주체가 보수화되면서 74년 만인 1991년 해체됐다.우리나라 촛불시민혁명은 1년 만에 오만하고 부패한 정권을 몰아내고 새 정부를 세웠다. 촛불혁명 정신을 잇겠다는 새 정부는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혁명과업’의 완수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청와대, 국가정보원, 검찰 등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

    1252호2017.11.14 11:38

  • [칼럼]선거법 개정, 공론화를 통해 결정하자
    선거법 개정, 공론화를 통해 결정하자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끝나자 정부에서는 이를 민주주의의 승리로 규정하였다. 이어서 대선 공약에서 언급했던 탈핵 로드맵도 발표했다. 이런 모습은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참여정부 시절 중저준위 방사성페기물 처분장 부지를 선정하기 위해 3000억원 이상의 막대한 지원금을 내걸고 주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찬성률이 가장 높게 나오는 지역으로 부지를 선정한다는 발표를 했다. 치열한 경합 끝에 경주가 최종적으로 결정되자 정부는 이를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두 정부 모두 정치적으로 부담이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민주주의라는 방편을 이용한 것이다.물론 차이도 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주민투표를 실시해서 형식적으로는 민주적인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민주주의가 지원금에 좌우됐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숙의민주주의의 한 형태인 공론조사를 활용했기 때문에 적어도 민주주의가 다른 의도로 이용되었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물...

    1251호2017.11.06 15:10

  • [칼럼]동맹의 재구성
    동맹의 재구성

    한반도 전쟁 가능성에 대한 국제 사회의 긴장과는 달리, 국민의 일상엔 별다른 동요가 없다. 냉전수구세력의 안보마케팅에 이골이 난 탓일 수도 있고, 하루 평균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하는, 사실상 전시수준의 참사(연간 1만5000여명이다!)가 일상이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소위 ‘안보불감증’에도 맥락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안보불감증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위기에 대응할 ‘자기주도력’이 부재한 것이다. 안보를 남의 나라에 맡겨버린 다음에야 안보무력증에서 헤어날 길이란 없다. 핵무장 전략폭격기와 항공모함이 한반도로 집결하고, 민족절멸의 대참사가 단지 ‘군사적 옵션’이라는 세련된 언어로 운위되고 있는데도 그야말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북핵은 제네바 합의 때만 해도 핵 동결과 평화협정, 북·미수교가 일괄타결 방식으로 등가교환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선을 넘어 버렸다. 즉 북한은 ?이미 보유한 핵무기(몇 기나 되는지 가늠도 안 된다) ?현재 개량 중인 핵무기와 이를 지원...

    1250호2017.10.31 1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