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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체 기사 149
  • 왜곡된 상징, 태극기와 자유

    삼일절 오후 서울 도심은 보수단체의 태극기 집회로 교통체증에 시달렸다. 흔히 ‘태극기 집회’라 부르지만 태극기 숫자만큼이나 수많은 성조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간간이 이스라엘 국기도 눈에 띄었다. 심지어 일부 현수막에는 일장기가 등장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한·미·일 동맹 강화와 박근혜 탄핵 무효를 외쳤다. 일제에 항거했던 역사를 기념해야 할 자리건만 자주는 사라지고 외세 의존의 목소리만 한껏 드높았다. 독립운동 중에 희생된 선조들을 추모해야 할 자리건만 국정을 파탄내고 감옥에 간 친일파의 후예를 옹호하는 기괴한 광경만 펼쳐졌다.이 날의 태극기는 1919년 3월의 태극기와 의미가 달랐다.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에서 젊은이들의 다양한 패션 소품으로 등장했던 태극기와도 의미가 달랐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까지 평창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의 왼쪽가슴에 찬란히 새겨져 있던 그 태극기와도 전혀 의미가 달랐다. 태극기라는 상징이 촛불의 ...

    1269호2018.03.19 14:43

  • [칼럼]트럼프와 레이건의 같은 문제 다른 대응
    트럼프와 레이건의 같은 문제 다른 대응

    국내의 인플레이션 압력 때문에 긴축적 통화정책이 필요하고 공화당 정부의 보수주의 성향 때문에 감세 등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치게 된 것은 레이건과 트럼프 정부 모두 같다.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정책이 세계 경제의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국가안보를 핑계로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공격적인 통상정책은 물론이고, 재정과 통화정책에서도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말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파격적으로 인하했다. 지난달에는 1조5000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인프라 투자계획과 국방비 대폭 증액이 담긴 예산안을 발표했다. 세금은 깎고 지출은 대폭 늘리니 재정적자 확대는 불가피하다. 그리고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올해 금리를 3~4차례 인상할 것으로 예상돼 세계 금융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결국 무역에서는 공격적인 보호주의를, 재정에서는 확장정책을, 그리고 통화에서는 긴축정책을 보이고 있다. 이 세 가지 정책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 지금까...

    1268호2018.03.12 16:42

  • [칼럼]굴뚝 위 까치집
    굴뚝 위 까치집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 위, 자기 집에서 쫓겨난 까치 두 마리 얼기설기 집을 짓고 모진 겨울 지나고 봄을 맞고 있다.촛불혁명은 전진하고 있는가? 시민들은 묻는데 그래도 새해가 됐다. 1월 초 어느 날 그날도 흐리고 추웠다. 젖은 어깨를 세우며 서초동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 앞 건널목, 빨간불 앞에 엉거주춤 섰는데 맑은 까치소리가 들렸다. 도심 잎 떨린 가로수 플라타너스 높은 가지 사이에 까치 한 쌍, 한 놈은 꽁지를 깝죽대며 까악거리고 마른 잔가지 물고 막 한 놈이 내려앉는데… 아, 까치집을 짓고 있었다. 얼기설기 바닥 공정이 제법 진행되고 있었다. 겨울 걱정만 하며 “봄은 아직 멀었구나” 하고 있었는데 이 도회의 회색 거리 어디에서 물고 왔을까 저 나뭇가지들, 까치 한 쌍 새끼 기를 둥지를 준비하고 있었다. 새봄을 만들고 있었다.우수 날 얼음도 풀린다는데, 온갖 소음 매연 인간 군상의 허위 위선 비밀까지도 굴뚝 연...

    1267호2018.03.05 16:35

  • [칼럼]사람과 자연을 계속 속일 수는 없다
    사람과 자연을 계속 속일 수는 없다

    사람이 자연을 기만한 죗값을 결국에는 치른다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망이 점차 좁혀지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주변의 전문가들이 이 사실을 마주할 날이 임박했다.수에즈 운하를 완성시킨 기술자이자 외교관인 페르디낭 드 레셉스(Ferdinand de Lesseps)가 파나마 운하 건설사업에 착수한 것은 그가 일흔 넷의 고령이었을 때다. 1879년, 니카라과와 파나마 중 어디에 운하를 건설할 것인가를 두고 국제적인 논쟁이 벌어졌을 때, 파나마로 결정된 것은 레셉스가 해수면과 표고의 높이가 같은 운하를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수에즈 운하의 성공으로 명성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그의 회사는 쉽게 사업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그는 공사 비용 대비 편익을 높게 작성해 사업의 수익성을 부풀렸다. 열대우림 구간을 통과하는 공사에서 나타날 전염병이나 질병에 대한 걱정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그곳 기후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일축해버렸다. 실제 공사가 진행되자 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1266호2018.02.26 18:36

  • [칼럼]1987. 그리고 수치스러운 기억
    1987. 그리고 수치스러운 기억

    아들은 를 보자고 했다. 내가 짐짓, ‘무슨 그런 황당한 영화를? 보려면 을 봐야지. 내가 저 나이 땐 공의(公義)로 피가 끓었건만!’ 노골적인 핀잔은 가렸다지만, 영 마땅찮아 하는 기색을 눈치 챈 아들은 “1987이 뭐지?”하면서도 자기주장을 거뒀다. 그야말로 ‘경건한 마음’으로 을 봤다.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은 분명 한 시대를 가로지르는 집단경험이지만,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아낸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 하나하나의 기억과 에피소드들이기도 할 것이다. 공적 기억이란 기실 사적 경험의 총화가 아닌가. 어쩌면 사람들은 ‘나’의 경험을 통해 투사된 기억으로 역사적 사건을 제 나름대로 불러내는지도 모르겠다. 고백하자면 나의 에는 무덤까지 가져가고픈 부끄러운 기억이 얽혀 있다. 최루탄과 화염병과 투석이 일상이었고, 투신과 분신이 끊이지 않던 때였다. 모두들 눈에 핏발이 곤두 서 있었다. 나는 운동권 선배랍시고 공공연하게 4인용 기숙사 방을 혼자 쓰는 호사를 누렸다...

    1265호2018.02.12 15:54

  • [칼럼]공동체적 가치가 절실할 때다
    공동체적 가치가 절실할 때다

    한국은 치열한 경쟁사회다. 경쟁은 일상의 소소한 영역에서도 반복된다. 운전자들은 다른 차량의 추월을 용납하지 않는 카레이서가 되어 속도 경쟁을 벌이며 도로를 질주한다. 좋은 공연을 관람하려면 입장권이 매진될까봐 혹은 같은 값이면 남보다 더 좋은 좌석을 얻으려고 예매 사이트에 접속해 클릭 경쟁을 벌인다. 맛집에서 밥 한끼를 먹으려 해도 긴 대기 줄에 시간 낭비를 하지 않으려면 서둘러 달려가 순위 경쟁을 벌여야 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복지국가를 상징하는 표현이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산후조리원에서 장례식장까지’ 삶의 하나하나가 모두 경쟁의 과정이다.사회적으로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만연해 있는 경쟁구도 속에서 개인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상황에 놓이게 된다. 첫째, 개인을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고독한 존재로 전락시킨다. 개인에게 가장 큰 경쟁자는 학교 친구나 직장 동료 혹은 이웃 등 같은 공동체의 내부 구성원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

    1264호2018.02.05 16:27

  • [칼럼]최저임금 인상 부담 나누어져야
    최저임금 인상 부담 나누어져야

    최저임금 인상이 여전히 논란거리다. 벌써 잊혔지만 지난 대선 때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모든 후보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다. 여기에는 득표전략을 넘어 다른 더 깊은 원인이 있다. 디지털 혁명이라는 기술변화가 그 원인이다. 인공지능이 아니라도 디지털 기술은 이미 많은 인간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자동차 조립은 로봇으로 대체되고 은행원 업무는 인터넷 뱅킹으로 대체되고 있다. 자동차 생산은 사상 최대라지만 고용규모는 그대로다. 동네의 은행지점은 자고 일어나면 사라진다. 그 결과 괜찮은 일자리는 줄어들고 단순한 그래서 임금이 낮은 일자리만 늘어난다. 이런 일자리로 사람이 몰리니 임금 하락 압력은 더 강해진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부분 선진국이 벌써 최저임금 인상에 나섰다. 우리 대선 후보들도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그런데 우리나라는 몇 가지 요인 때문에 상황이 더 어렵다. 로봇 이용과 기계화에 우리나라가 제일 발 빠르다. 제조업 종사자 대비 로봇의 숫자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

    1263호2018.01.29 14:50

  • [칼럼]카트만두의 작은 희망을 위하여
    카트만두의 작은 희망을 위하여

    정초에 귀촌해서 살고 계신 오충일 목사님께 새해 인사도 드릴 겸 양구를 다녀왔습니다. 누굴 기다리며 차도 한 잔 마시려고 양구 버스터미널 가까운 찻집에 들어갔지요. 실내가 깔끔했고 찻값도 착했습니다. 차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주문 받는 종업원이 조심스럽게 특별한 안내판을 가리키며 읽어보라는 눈치였습니다. 거기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우리 찻집은 장애인과 함께 일하고 있어서 차가 조금 늦게 나올 수도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그러고 보니 같이 일하는 젊은이의 몸이나 표정이 조금 어색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무척 진지하고 정성스러웠습니다. 우리는 자리에 앉으며 누구라 할 것도 없이 표정으로 “예, 괜찮아요. 우리 늙다리들은 많은 게 시간이랍니다. 염려 마시고 천천히 하세요” 하면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치 우리가 무슨 대단히 훌륭한 일이라도 하는 분위기였습니다.그러면서 며칠 전 보내온 제자 류흥주의 카톡 메일이 떠...

    1262호2018.01.22 16:43

  • [칼럼]문재인 정부, 환경에는 유독 취약하다
    문재인 정부, 환경에는 유독 취약하다

    ‘환경영향평가제도’는 토건개발 주도 경제성장이라는 파도에 맞서서, 미약하나마 환경보호를 위해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치명적 약점이 있다.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처음부터 있었다. 파괴적인 개발사업을 정당화하는 면죄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만들었던 ‘국민의 정부’나 뒤를 이었던 ‘참여정부’에서도 이런 약점은 크게 고쳐지지 않았다.국가를 수익모델로 생각했던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 약점이 적극 이용되었다. 4대강 사업에서 보듯이 환경영향평가는 졸속, 날림, 형식적 절차였을 뿐이었다. 박근혜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창 동계올림픽 스키 활강경기장 건설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분산 개최하자는 의견도 많았으나 결국 단 며칠 열리는 경기를 위해 500년도 넘은 원시림 5만 그루의 나무를 베어내었다. 물론 복원하겠다고는 했다. 그러나 1972...

    1261호2018.01.15 15:25

  • [칼럼]갈등의 재해석
    갈등의 재해석

    갈등의 어원은 갈(葛)을 뜻하는 칡나무와 등(藤)을 뜻하는 등나무가 덩굴이 도는 방향이 서로 반대라 마치 매듭처럼 얽혀 있는 모습에서 비롯됐다. 칡나무와 등나무 넝쿨이 가운데 끼여 있는 다른 나무 줄기를 깊이 파고들면서 서로를 휘감고 있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있다. 숲 해설가 설명에 따르면 가운데 낀 나무는 깊게 파인 상처를 안고 꽁꽁 묶인 채 고통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사회적 갈등도 마찬가지다. 갈등이 만연하다보면 그 피해는 당사자들뿐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갈등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증오와 대립이 깊어지고,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계속되는 갈등 상황으로 인한 피로감과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사회 전체가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모두가 상처받고 피해자가 된다.사회학에서는 갈등의 원천을 크게 두 가지 맥락에서 찾는다. 먼저 부, 권력, 명예와 같은 사회적 희소 자원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경쟁과정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260호2018.01.08 1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