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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대답하지 못한 질문
    대답하지 못한 질문

    지금은 보통명사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네티즌’이란 단어는 1997년에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미국의 저술가이자 연구자인 론다 하우벤(Ronda Hauben) 여사가 당시 컬럼비아대학 학부생이던 자신의 아들 마이클 하우벤(Michael Hauben)과 함께 쓴 책 <Netizens>에서 이 단어를 고안해 제목으로 처음 사용했다. 얼마 전 론다 하우벤 여사로부터 한국을 방문 중인데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필자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의 특성을 분석해 외국 저널에 기고했던 글을 인상 깊게 읽었다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느덧 노인이 된 그녀는 남편과 함께 필자의 연구실을 방문했고, 우리는 저녁 도시락까지 배달시켜 먹으면서 무려 4시간이 넘는 긴 이야기를 나눴다.<Netizens>란 책을 썼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녀의 관심사는 네티즌의 정치 참여와 민주주의였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목적도 이 주제로 후...

    1279호2018.05.28 14:01

  • [칼럼]통일비용의 혹세무민
    통일비용의 혹세무민

    한반도에 평화의 봄기운이 들기 시작하자, 벌써부터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통일비용이나 남북경협 비용으로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될 것이라는 우려들이다. 몇 년 전 금융위원회는 북한 개발에 500조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그리고 국회 예산정책처는 통일비용이 23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영국 어느 기관도 통일비용이 20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계산을 내놓았다. 일부에서는 이런 수치를 열거하며 남한이 엄청난 비용을 떠안게 될 것이라는 정치적 공격까지 하고 있다. 한마디로 혹세무민이다.이런 모든 추정은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일하고 그 부담을 남한이 전적으로 떠맡는다는 가정 하에서 계산된 것이다. 우리 정부 기관이 내놓은 앞의 두 추정치는 박근혜 정부 시기 ‘통일대박론’에 편승하여 계산된 것인데, 오히려 흡수통일을 가정한 박근혜식 통일이 얼마나 현실성 없는 것인지 방증할 뿐이다. 영국 기관의 수치 역시 서독이 동독을 일시에 흡수한 독일식 통일을 가...

    1278호2018.05.21 16:07

  • [칼럼]스스로 감옥을 찾는 사람들
    스스로 감옥을 찾는 사람들

    4월 1일, 부활절을 즈음하여 78세 고령의 문정현 신부님께서 스스로 감옥에 갔습니다. 2011년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 해고사태에 항의한 것이 약식기소돼 벌금 80만원이 확정됐습니다. 신부님은 벌금 대신 하루 10만원씩 8일간의 감옥살이를 선택한 것입니다. 당시 촛불혁명에 앞장섰던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3년째 감옥에 있었고, 쌍용자동차 김득중 지부장은 단식 25일의 목숨을 건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길 위의 신부라 불릴 만큼 투쟁에 앞장서 온 신부로서 벌금이나 물고 편안히 지낼 수가 없었던 거지요.4월 13일에는 핸드백을 하나 훔치고 벌금 150만원을 선고 받은 한 사내가 스스로 서울구치소로 들어갔습니다. 기초생활 수급자인 그는 150만원을 감당할 수가 없어 15일간의 감옥살이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신부전증 환자였습니다. 돈이 없어 병원 진찰도 겨우 받는 그에게 의사는 수술을 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의료진은 기초생활 수급자가 받을 수 있는 긴급지원 내...

    1277호2018.05.14 13:52

  • [칼럼]한반도의 생태적 발전
    한반도의 생태적 발전

    한반도의 봄이 시작되었다. 감격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내심 걱정스럽기도 하다. 평화를 바라지 않는 세력이 여전히 강력하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우리가 추진해온 발전 방식과 그 결과들 때문이다. 사람과 자연을 고려하기보다 경제성장을 앞세운 발전, 개발이득의 사유화와 개발비용의 사회화를 당연시하는 토지이용, 투기가 만연한 부동산 시장, 농업(소농)을 경시하고 산업화와 도시화를 지향하는 발전 패러다임은 오랜 기간 한국 사회를 지배했다. 그 결과 경제규모가 커졌고 사회 인프라가 양과 질에서 확대되었으며, 문화 역량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왔다.그러나 동시에 다수가 비정규직에 내몰리고 빈부격차가 커졌다. 자살률은 OECD국가에서 압도적 1위이다. 토지와 부동산은 소수에 의해 독점되었고, 자연환경은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이는 국내요소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적으로 진행되어온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남한의 발전 패러다임을 북한에 이전시키...

    1276호2018.05.08 10:18

  • [칼럼]다시 4·16, 그리고 어버이날
    다시 4·16, 그리고 어버이날

    이른 새벽, 잠에서 깼습니다. 언제부턴가 부쩍 잠자리가 편치 않아졌습니다. 불면에 시달리는가 하면,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라치면 거의 어김없이 꿈을 꿉니다. 무언가에 쫓기거나 길을 헤매는 꿈입니다. 가위 눌려 소리를 지르다 깨는 경우도 잦습니다. 4년 전 ‘그 날’ 이후 나타난 변화입니다. 20대 들어서자마자 겪은 광주의 충격 이래 제 삶에 드리운 또 하나의 음영인 셈입니다. 어디 저뿐이겠습니까. 잠이 돌아오질 않아 하릴없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데, 메시지가 옵니다. 떨어져 지내는 아들녀석이 곧 어버이날이 다가온다고 보내온 거네요. 평소 통화조차 쉽지 않았는데 웬일로 이번에는 장문의 편지입니다.“한국은 어버이날이 멀지 않았네. 가끔 동영상 보다보니 ‘부모님한테 꼭 했어야 할 말이 있는데, 못했던 게 가장 마음에 걸린다.’ 이런 말들이 자주 나오더라고.” 아들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어 “부모님처...

    1275호2018.04.30 14:32

  • [칼럼]혐오의 언어, 꼴·빠·충
    혐오의 언어, 꼴·빠·충

    꼴·빠·충. 인터넷 공론장에 자주 등장하는 혐오의 언어들이다. ‘꼴’은 머리가 나쁘거나 고집이 세서 대화나 타협이 안 통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꼴통’에서 유래한 접두사다. 극우적 정치 성향을 ‘꼴보수’, 비타협적 페미니즘을 ‘꼴페미’라 부르듯 상대방의 극단성을 강조할 때 사람들은 ‘꼴’이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꼴’이라는 접두사가 붙는 순간부터 가까이 하기에 꺼려지는 대상으로 간주된다. ‘꼴’이라고 낙인 찍힌 사람들은 장벽을 높이 쌓고 그 안에서 더욱 극단적인 정서를 공유하며 대응한다. 그래서 ‘꼴’은 분열과 대립의 언어이다. ‘꼴’들이 많아질수록 공론장은 파편화되고 건강한 상식과 건전한 합리성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1274호2018.04.23 14:37

  • [칼럼]신남방정책은 어디로?
    신남방정책은 어디로?

    신남방정책은 현 정부의 가장 중요한 외교·통상정책 중 하나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아세안(ASEAN) 및 인도와 교류 및 협력을 강화해 4강 외교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올바른 방향일 뿐만 아니라 서둘러야 할 일이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마당에 당장은 외교자원을 여기에 쏟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경제 및 통상협력을 위한 노력은 서둘러야 한다.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에서 비롯된 미·중 간 무역마찰로 이런 노력이 더욱 시급해졌다. 하지만 신남방정책을 구체화한 정책들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부처들이 이를 조직 확대의 기회로 삼기 위해 서로 맡겠다며 경쟁한다는 소리만 들린다. 국제경제 관계는 기본적으로 기업활동의 결과지만,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경제협력정책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 차원에서 신뢰와 관계 강화가 먼저 이루어지면 기업의 투자와 무역이 뒤따라 확...

    1273호2018.04.16 14:44

  • [칼럼]우분투와 전태일
    우분투와 전태일

    ‘우분투’라는 말이 있습니다. JTBC 손석희가 앵커 브리핑에서 소개하기도 했지만, 아프리카 어느 작은 부족의 말이랍니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김현정 위원장이 ‘불평등 양극화 해소를 위한 대안모색 토론회’ 인사말을 하면서 소개한 우분투는 다음과 같습니다.“어느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한 부족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게임을 제안합니다. 달콤한 과일바구니를 놓고 가장 먼저 바구니까지 뛰어간 아이 한 명에게 과일을 모두 다 주겠노라 약속합니다. 게임이 시작되면 저마다 1등을 하려고 달려갈 것이라 예상했으나 아이들은 손을 잡고 함께 달렸습니다. 인류학자가 물었습니다. 1등에게 모두 주겠다고 했는데 왜 손을 잡고 같이 달렸지? 오히려 아이들이 묻습니다. 다른 사람이 슬픈데 어떻게 혼자 기쁠 수가 있죠? 그리고 아이들은 이구동성 우분투를 외칩니다. 우분투, 나는 곧 우리, 네가 있어 내가 있다.”우리나라 민주노조운동에...

    1272호2018.04.09 16:49

  • 미세먼지와 새로운 정치

    지난 3월 20일 서울시의회에서는 촛불혁명으로 어렵사리 진전시켜놓은 민주주의를 여지없이 짓밟는 폭거가 발생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야합해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안을 자기들 이해관계에 맞게 수정해서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심지어 저지하려는 동료의원들에게 폭언을 한 의원도 있었다. 이로써 서울시에서는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 비해 2인 선거구와 3인 선거구가 늘어나고, 4인 선거구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제 2개의 거대정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후보는 서울시의회에 진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또한 국회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치개혁소위원회는 3월 15일 회의에서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 선거에 두 번 참여해 두 번 모두 의석을 얻지 못하거나 100분의 1 이하의 유효득표를 하지 못한 경우 정당 등록을 취소한다는 내용의 정당법 개정에 합의했다고 한다. 정당 등록 취소는 과거 군사정권에서 소수정당을 탄...

    1271호2018.04.02 15:17

  • [칼럼]미투 운동과 인권혁명
    미투 운동과 인권혁명

    미투 운동은 체제 안에 잠복한 차별을 폭로하고 그 자체를 변혁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래서 미투 운동은 21세기형 인권혁명이다.‘아주 작은 차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독일 페미니즘 잡지 <엠마>의 창간자 알리스 슈바르처가 여성 13명과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유럽 68혁명의 사상적 진지 역할을 했던 프랑크푸르트학파. 그 중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한 비판이론가의 아내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일상적으로 남편으로부터 구타를 당해왔다는 사실을 토로한다. 오래전 이 책을 읽을 당시 나는 가정폭력을 ‘젠더 관점’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폭력의 관점’에서만 봤던 것 같다. 소통을 그리 역설하는 진보사상가가 제 아내조차 말로 설득을 못해?68혁명 당시 파리에서 바리케이드를 쌓고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운동의 지도부 안에서 다반사로 성폭력이 일어났다. 이 문제를 놓고 “적들과 ...

    1270호2018.03.26 1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