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주간경향

연재

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
  • 전체 기사 51
  • [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항저우…위대한 문호 소식, 백성을 위해 ‘소제’를 쌓다
    항저우…위대한 문호 소식, 백성을 위해 ‘소제’를 쌓다

    황저우에서의 유배 생활이 끝나고 5년이 지난 뒤 소식은 두 번째로 항저우에 부임했다. 성숙한 그로부터 나오는 글도 정치도 삶도 성숙 그 자체였다. “구제불능의 낙천가, 위대한 인도주의자, 백성의 친구, 위대한 문호”, 이게 바로 소식이다.소제춘효(蘇堤春曉), 곡원풍하(曲院風荷), 평호추월(平湖秋月), 단교잔설(斷橋殘雪). 서호의 봄·여름·가을·겨울의 절경을 표현한 말이다. 같은 계절이라도 서호의 아침·낮·저녁 풍경이 다르다. 어디 그뿐인가, 맑은 날과 궂은 날의 풍경도 다르다. 그리고 그 다른 모습들이 제각기 아름답다. 북송의 대문호 소식(蘇軾, 1037~1101)은 이런 서호를 중국의 대표적인 미인 서시(西施)에 비유했다.물빛 찰랑찰랑 반짝반짝 맑으니 좋고,산색 희뿌여니 비 내려도 훌륭하구나.서호를 서시에 빗댄다면,옅은 화장 짙은 화장 모두 잘 어울리는구나.- 언제 찾아가더라도 아름다운 서호지만, 요즘처럼 푸른 수양버들과 붉은 복숭아꽃이 어우러진...

    1173호2016.04.18 15:34

  • [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항저우…인간세상의 천당, 남송시대 중심이 되다
    항저우…인간세상의 천당, 남송시대 중심이 되다

    송나라는 북중국을 금나라에 내주고 그 옛날 오월의 수도 항저우로 천도한다. 북중국의 수복을 염두에 두었기에 항저우는 임시 수도일 수밖에 없었다. 남송은 항저우 덕분에, 그리고 항저우는 남송 덕분에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된다.“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蘇州)와 항저우(杭州)가 있다.” 송나라 범성대(范成大)의 에 기록된 말이다. 지상의 천당에 비유된 쑤저우와 항저우는 강남, 즉 창장(長江) 중하류 이남을 대표하는 곳이다. 당나라 때부터 강남은 종종 천당에 비유되었다. 당나라 시인들은 이렇게 노래했다. “사람들은 그대가 강남에서 왔다고 하는데, 나는 그대가 천상에서 왔다고 하겠네.”(임화(任華), 회소상인초서가(懷素上人草書歌)) “다들 강남이 좋다고 말하니, 나그네는 마땅히 강남에서 늙어가야지.”(위장(韋莊), 보살만(菩薩蠻) ‘다들 강남이 좋다고 말하니’) 풍요로움과 아름다움, 바로 이것이 강남 특히 쑤저우와 항저우를 인간세상의 천당에 비유한 이유다. 지금부터 둘러볼...

    1172호2016.04.11 17:14

  • [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카이펑… 사대부 기개 품은 국화의 도시 마침내 지다
    카이펑… 사대부 기개 품은 국화의 도시 마침내 지다

    카이펑의 시화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국화다. 불의한 권력을 향해 포성을 울리는 투사(鬪士)가 존재할 때 송나라는 건강했고, 그 투사가 부재할 때 나라는 병들어 죽어갔다.가을이 깊어갈 무렵이면 카이펑 곳곳에서 국화의 향연이 펼쳐진다. 카이펑의 시화가 바로 국화다. 사군자의 하나이자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국화, 이 국화를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고 표현한다. 오상고절이란, 차가운 서리에도 굴하지 않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를 의미한다. 고고한 선비와 충신을 국화에 빗대는 것도 바로 이런 절개 때문이다. 카이펑에서 국화 재배가 성행하면서 전통이 된 시기는 바로 송나라 때다. 송나라의 사대부는 정치와 관련된 논쟁에 그 어느 시대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자신의 소신을 고수했다. “사대부를 죽이지 말라”는 송 태조 조광윤의 유훈이 바로 이러한 송나라의 기풍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사대부를 죽이지 말라”는 것은 다름 아닌 “자유로운 언론을 막지 말라”는 의미다. 소신껏 밝힌 ...

    1171호2016.04.05 14:47

  • [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카이펑…강철 신념 지닌 ‘철면무사’ 포청천 포증카
    카이펑…강철 신념 지닌 ‘철면무사’ 포청천 포증카

    “후세 자손 가운데 벼슬하다가 뇌물 받은 자가 있으면 본가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라. 죽은 뒤에는 선산에 묻히지 못하게 하라. 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나의 자손이 아니다.” 이 글은 포증이 자신의 후손에게 남긴 가훈이다.“작두를 대령하라!”드라마 에서 사건이 해결될 때마다 쩌렁쩌렁 울려 퍼지던 추상(秋霜) 같은 호령이다. 호령의 주인공은 포증(包拯, 999~1062), 명판관이자 청백리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인물이다. 공정하고 강직하고 사사로움이 없으며 백성의 억울함에 귀 기울였던 그를 백성들은 포청천(包靑天)이라 불렀다. 너무 억울하면 ‘푸른 하늘’에 호소하듯 그렇게 백성들은 포청천을 찾아 억울함을 토로했다.백성이 관아에 고소하려면 대리인에게 부탁해 소장을 작성한 뒤 관아의 하급관리를 통해 그것을 접수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농간을 부리는 자가 어찌 없었으랴. 포증은 억울한 일을 고발하려는 백성이 있으면 직접 그에게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게 했다. 중간에 ...

    1170호2016.03.29 11:39

  • [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카이펑… 송나라 경제적·문화적 번영 꽃피
    카이펑… 송나라 경제적·문화적 번영 꽃피

    에 그려진 송나라 카이펑의 경관을 그대로 재현한 곳이 바로 청명상하원(淸明上河園)이다. 에 등장하는 건물을 재현해 놓은 것은 물론이고, 송나라 때의 복장을 한 직원들이 당시의 생활상을 재연하고 다양한 공연도 펼친다.“도성의 배수로는 매우 깊고 넓어서 도망자가 그곳에 많이 숨었는데, 도망자들 스스로 그곳을 ‘무우동(無憂洞)’이라고 불렀다. 심지어는 여자를 납치해서 숨겨두기도 했는데, 그곳을 ‘귀번루(鬼樊樓)’라고 한다.”(육유(陸遊)의 )사람이 숨어 지낼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배수로, 거기서 지내면 잡힐 걱정이 없었으니 도망자들은 그곳을 ‘걱정 없는 동굴’이라는 의미의 무우동이라 불렀다. 저지대인 카이펑에서 1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살아가려면 대규모 배수로는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도망자들이 여자를 납치해서 숨겨두기도 했다는 ‘귀번루’는 ‘번루(樊樓)’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번루는 송나라 때 가장 번화했던 술집인 백반루(白礬樓)를 가리킨다. 백반루의 장사가 어찌나 잘 되...

    1169호2016.03.21 18:10

  • [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카이펑… 태평성대를 꿈꾸던 세종, 도시를 확장하다
    카이펑… 태평성대를 꿈꾸던 세종, 도시를 확장하다

    태조 조광윤의 아들 조덕소가 자살한 해(979), 태종 조광의는 마침내 북한을 멸망시키고 통일을 완성했다. 일찍이 후주 세종이 꾸었던 꿈, 천하를 통일한 뒤 백성을 편히 살게 해주고 궁극적으로 태평성대를 이루겠다던 그 꿈을 태종도 꾸었던 것일까.앞으로 남은 생이 30년이라면? 어떤 이에게는 짧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긴 시간일 수도 있는 30년. 지금으로부터 약 1050년 전, 한 남자의 30년 포부를 들어보자.“30년의 생이 남아 있다면, 과인은 마땅히 10년 동안 천하를 개척하고(開拓天下), 10년 동안 백성을 보살피고(養百姓), 10년 동안 태평성대를 이룩할(致太平) 것이오.”우선 천하를 통일한 뒤 백성을 편히 살게 해주고 궁극적으로 태평성대를 이루길 꿈꾸었던 이 사람은 시영(柴榮), 바로 후주(後周)의 세종이다. 그는 ‘오대의 제일가는 명군’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열다섯에 종군하여 스물넷에 장군이 되고 서른셋에 제위에 오른 세종, 그는 ...

    1168호2016.03.15 13:38

  • [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카이펑… 땅속 층층이 수천년 역사 간직한 카이펑
    카이펑… 땅속 층층이 수천년 역사 간직한 카이펑

    카이펑의 지층 단면은 수천년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가장 아래쪽에는 전국시대의 대량성이 있고, 그 위로 역대의 도시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카이펑 지하에 겹겹이 포개진 도시는 그 존재만 확인되었을 뿐, 그 구체적인 모습은 여전히 상상의 영역이다.나라의 중심인 ‘수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니만큼 먹고사는 일과 안전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안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카이펑은 수도로서 합격점을 받을 수 없다. 카이펑의 지세는 주변에 높은 산조차 하나 없이 탁 트여 있다. 천연의 장벽을 지닌 창안이나 뤄양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오대 때의 왕조 가운데 후당을 제외한 후량·후진·후한·후주 모두 카이펑에 수도를 두었다. 그리고 후주의 뒤를 이은 송나라 역시 카이펑을 수도로 선택했다. 왜일까?도시의 흥망성쇠를 좌우한 변하와 황하카이펑의 가장 큰 특징은 매우 탁월한 내륙 수로 운송망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드넓은 평지에...

    1167호2016.03.08 11:26

  • [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뤄양… ‘뤄양 삼절’과 측천무후와의 관련 일화
    뤄양… ‘뤄양 삼절’과 측천무후와의 관련 일화

    뤄양 삼절은 용문석굴·모란·뤄양수석이다. 용문석굴의 전성기는 바로 측천무후 시기였다. 모란은 측천무후와의 일화가 소설에 등장한다. 그리고 뤄양수석을 무후수석이라고도 하는데, 측천무후 때의 궁중요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측천무후가 황제로 있던 어느 겨울날, 큰 눈이 내렸다. 술에 취한 측천무후가 밖을 내다보니 납매(蠟梅, 섣달에 꽃이 피는 매화)의 꽃이 피어 있다. 흥이 난 그녀가 꽃구경을 가겠노라고 하자 공주가 말린다. 납매는 눈의 기운으로 피어나는 겨울 꽃이지만 다른 꽃들은 각자 꽃피는 시기가 따로 있다는 공주의 말에 측천무후는 이렇게 답한다.“납매가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짐에게 기쁨을 주었으니, 다른 꽃들도 당연히 짐을 기쁘게 해줄 것이다. 옛 사람이 말하길, ‘덕이 있는 천자는 모든 신들이 돕는다’고 했다. 나는 여자로서 황위에 올랐는데, 자고로 몇 명에게나 가능했던 일이냐? 어찌 신들의 도움만 있겠느냐? 꽃을 피우는 작은 일쯤이야 어찌 짐의 뜻대로 되지 않겠...

    1166호2016.02.29 16:55

  • [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뤄양…사회개혁 문화운동 펼친 ‘취음선생’ 백거이
    뤄양…사회개혁 문화운동 펼친 ‘취음선생’ 백거이

    문학운동을 통해 사회를 개조하려던 의지가 꺾인 뒤 백거이는 개인의 감정을 토로하는 시를 짓게 된다. 젊은 시절 백거이의 시에는 사회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담긴 유교사상이 강하게 드러나는 반면,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시기의 시에는 불교적·도교적 색채가 짙다.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부싯돌 불꽃처럼 순간의 삶이거늘.풍족한 대로 부족한 대로 즐겁게 살지니,입 벌려 웃지 않으면 그야말로 바보.-백거이, 인생이란 달팽이 뿔 위처럼 ‘좁은 공간’에서 부싯돌 불꽃처럼 ‘짧은 시간’을 살다 가는 것, 그 무엇에도 연연하지 말고 그저 즐겁게 웃으며 살자. 이 시는 백거이(772~846)가 일흔이던 841년에 쓴 것이다. 이 시를 쓴 지 5년 뒤 백거이는 세상을 뜬다. 당 선종(宣宗)은 그를 애도하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뜬구름처럼 매이지 않으니 이름은 거이(居易, 편안함에 거하다), 조화무위(造化無爲)하니 자는 낙천(樂天)이라. 어린아이도 를 읊조릴 줄 ...

    1165호2016.02.23 13:42

  • [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뤄양…문화재 약탈국은 ‘엘긴의 변명’을 멈추라
    뤄양…문화재 약탈국은 ‘엘긴의 변명’을 멈추라

    그 옛날 숭배와 신앙의 생생한 산물인 용문석굴, 거기에 부조된 부처·보살·제자·역사가 뜯겨져 나가 해외 어딘가에서 전시되고 있다. 잘못 뜯겨진 경우엔 머리와 몸통이 나뉜 채 말이다. 그렇게 뜯겨져 나간 것의 실상은 인류의 양심일 터이다.엘긴 마블스(Elgin Marbles),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으로부터 떼어온 조각물을 이렇게 부른다. 19세기 초 오스만튀르크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토머스 브루스 엘긴은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고 있던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조각을 영국으로 가져갔다. 수많은 조각물이 원래의 자리에서 떼어내어지면서 파괴되었고 운반되면서 유실되었다. 영국박물관의 듀빈갤러리를 채우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 조각물은 바로 이런 약탈의 결과물이다. 듀빈갤러리에 있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 강의 신 일리소스,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는 얼굴이 없다. 다름 아닌 약탈의 흔적이다.용문석굴의 수많은 석조 역시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과 같은 불운을 겪었다. 용문석굴에서 사라진 유...

    1164호2016.02.15 1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