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를 평정한다’는 의미가 담긴 정해사, 일찍이 중국의 강성기에 세워졌던 이곳, 400여년 뒤 중국이 제국주의 열강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시발점이 된 난징조약 회담이 이루어졌던 곳이다.1842년 8월 29일, 영국 군함 콘월리스(Cornwalis)호에서 난징조약이 체결된다. 청나라와 영국 측은 정해사(靜海寺)와 콘월리스호에서 보름이 넘도록 회담을 가졌다. 아편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강철군함을 내세운 영국의 요구가 거의 그대로 관철되었다. 청나라는 더 많은 항구를 개항하고 영국이 원하는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홍콩을 할양한 것도 바로 이때다. 난징조약 조인 이후, 청나라 흠차대신 기영(耆英)과 이리포(伊里布)는 영국군의 노고를 달래기 위한 잔치를 정해사에서 열었다. 영국의 군함에도 술과 음식이 전해졌다. 중국 최초의 불평등 조약이라는 난징조약, 정작 당사자는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서양 오랑캐를 어르고 달래서 성가신 상황을 얼른 끝내려 했을 따름이다.19...
1183호2016.06.27 1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