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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간여적]4·13의 기억
    4·13의 기억

    월요일 아침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특별담화를 발표한다고 했다. 혹시나 기대했다. 필자는 고등학생이었다. 마침 쉬는 시간에 특별생방송을 봤다. 기대는 큰 실망으로 돌아왔다. 순진했다. 그는 그것이 ‘얼마 남지 않은 촉박한 임기와 현재의 국가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내린 ‘중대한 결단’이라고 했다. ‘평화적인 정부 이양’과 ‘서울올림픽’이라는 양대 국가 대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낭비하는 소모적인 개헌 논의를 지양할 것을 선언한다”고 했다.4·13 호헌조치. 말이 좋아 호헌(護憲), 헌법수호이지 당시 야당과 재야단체들이 요구하던 직선제 개헌은 받아들일 수 없고, 자신이 대통령에 등극한 체육관 선거 방식으로 자기 후계자를 뽑겠다는 것이다. ‘선언한다’는 것은 또 뭔가. 자신의 말이 곧 법이니 이걸 어긴 자는 각오하라는 엄포 아닌가. 1987년이었다. 서슬 퍼런 선언에 며칠은 조용한 듯했다. 하지만 다시 불길은 살아났다. 더 크게. 두 달 뒤인 ...

    1173호2016.04.18 18:12

  • [주간여적]정치의 언어
    정치의 언어

    “나는 대한의 가장 천한 사람이고 무지몰각합니다. 그러나 충군애국의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 나라를 이롭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길은 관민(官民)이 합심한 연후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1898년 관민공동회의 첫 번째 연사 백정 박성춘은 이렇게 연설을 시작했다. 신분제의 해체를 알리는 이 상징적 장면에서 박성춘은 백정으로 살아가는 서러움을 말하지 않는다. ‘대한의 미래’를 말함으로써 차별 없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도록 한다. 대한제국 시기 정치집회가 한 역할이었다.총선을 엿새 앞둔 7일, 정의당은 중식이밴드의 노래를 활용한 당의 총선 광고 논란에 대한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여기 사람이 있어. 무너진 건물 당신 발 밑에. 그 아래 난 살아있죠. 부서져 좁은 텅 빈 공간에 날 살려줘요. 제발 살려줘요.”(‘여기 사람 있어요’), “집안도 가난하지 머리도 멍청하지 모아둔 재산도 없지 아기를 낳고 결혼도 하잔 말이지? 학교도 보내잔 말이지? 나는 고졸이고 너는 지방대야”...

    1172호2016.04.12 11:49

  • [주간여적]정치 효능감
    정치 효능감

    “투표가 권리라고 하는데, 투표해도 뭔가를 누린다는 느낌보다는 다들 ‘투표해야 된다’고 떠들어대니까 마지못해 하는 느낌이거든요.”20대 총선을 앞두고 각 지역의 총선 격전지를 찾을 때마다 매번 이와 비슷한 목소리를 듣게 된다. 투표를 해도 자신이 정치에 일정한 영향력을 미쳤는지를 느낄 수 없다는 소리다. 이런 상황에서 후보들이 내건 현수막만큼이나 쉽게 눈에 띄는 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 독려 캠페인은 잔소리를 넘어 강요로까지 느껴진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투표하겠다’고 응답한 비율보다 늘 실제 투표율이 더 낮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전국적으로 유명한 거물 정치인이나 혹은 지역에 오랫동안 뿌리를 박고 여러 차례 도전한 정치인들이 맞붙어 치열한 대결을 펼치는 선거 격전지에서도 후보들에게 관심과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적지않다. 나아가 후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거와 투표라는 제도 자체에 의문을 품는 유권자들의 의견도 많이 듣는다. 기사 작성 방향과는 다소 거리...

    1171호2016.04.05 17:37

  • [주간여적]‘말이 안통하네트’
    ‘말이 안통하네트’

    ‘말이 안통하네트’.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름과 발음이 흡사한 이 표현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을 빗댄 것이다. 한마디로 ‘불통 대통령, 불통 정부’를 가리킨다.박 대통령이 국민과 잘 소통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정부 출범 이후 줄곧 따라다녔다. 지난해 10월 청와대 5인 회동 다음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추미애 최고위원은 이솝우화에 비유해 박 대통령의 불통을 비판했다.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하고 접시에 수프를 담아내서 먹지 못하게 한다는 웃지 못할 회담이었다”고 말했다. 현실감각이 떨어진다거나, 소통이 잘 안 된다는 의미에서 박 대통령이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된 적은 그동안 간혹 있었다.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만 봐도 내용이나 형식의 위헌성 논란을 떠나 기본적인 소통조차 지키지 않았다. 정작 당사자인 할머니들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하기는커녕 사후에 통보하고 설득하는 꼴이었다. 불통이다.지난 2월 박 대통령이 나서서 “전세는 옛날의 ...

    1170호2016.03.29 16:26

  • [주간여적]유류할증료 손질 시늉
    유류할증료 손질 시늉

    유류할증료는 기름값이 비싸져서 항공사 부담이 늘었다고 할 때 고객들이 더 부담해주는 장치다. 항공유가가 갤런당 150센트 이상이면 부과한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유류할증료는 0원이다. 국제유가가 낮아서다. 이 유류할증료가 요금인지 여부와 부과 기준 등을 놓고 말들이 많았다.국토교통부가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올해 5월부터 국적 항공사에 한해 국제선 유류할증료를 거리에 따라 매기도록 했다. 기존 권역별에서 ‘거리비례 구간제’로 바뀌었다. 그동안 거리가 가까운데도 먼 곳보다 유류할증료를 더 내는 불합리함이 컸다. 미주, 유럽·아프리카, 일본 등지 7대 권역으로만 나눠 부과했다. 예컨대 인천에서 미국 하와이까지는 7338㎞(9시간), 로스앤젤레스 9612㎞(11시간), 시카고 1만521㎞(12시간30분), 뉴욕 1만1070㎞(14시간)로 차이가 큰데도 유류할증료는 같다.항공사별로 기종, 승객 1인당 유류소모량, 유류구입비와 유류 구입에 소요되는 제반비용이 모두 다...

    1169호2016.03.22 16:26

  • [주간여적]인공지능과 신의 한 수
    인공지능과 신의 한 수

    2000년대 초반 한·일 양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바둑만화 (한국어 초판 )에는 ‘신의 한 수’라는 개념이 나온다. 바둑인들은 모두 ‘신의 한 수’를 추구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도달할 수나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이 가는 데 온 생애를 바칠 뿐이다. 이 과정에는 똑같이 ‘신의 한 수’가 목표인 동료가 필요하다. 과거를 기억하고 오늘을 기록하는 행위 역시 후대인들이 조금이라도 ‘신의 한 수’에 가까워지도록 돕는 선대인으로서의 의무다. ‘신의 한 수’가 미지의 영역이라는 점이 만화 속 등장인물들의 존재 이유와 직업윤리의 출발점이다.은 보기 드물게 주인공이 패하면서 끝난다. 주인공 히카루는 한·중·일 바둑대회에서 한국인 기사 고영하에게 패한다. 고영하는 이세돌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둑계의 전통과 위계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과 반상 곳곳에서 거침없는 싸움을 벌이는 스타일이 이세돌과 닮았다. 히카루는 고영하에게 패하고 눈물을 흘리며 ...

    1168호2016.03.15 16:40

  • [주간여적]‘전가의 보도’ 통치행위
    ‘전가의 보도’ 통치행위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소멸시켜도 될까. 이는 정부과 개인의 관계에 심심찮게 충돌하는 지점이 돼 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교전 같은 비상상황이 아니라면 개인 권리는 기본적으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가깝다. 미국 당국의 잠금해제 요청을 거부하는 애플의 대응은 우리로서는 부럽기만 하다. 오히려 ‘민간 영역이 너무 비대해지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들 정도다.그러나 국내는 ‘국가 안위’ ‘국익’ 따위를 이유로 개인 권리를 은근슬쩍 억눌러도 제대로 된 대응이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잇따라 논란이 일었다. 이른바 ‘대통령의 통치행위’ ‘고도의 정치적 판단’ 같은 말로 개인 권리를 눌러 버린다. 1965년 박정희 정부 시절 한·일 청구권 회담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대통령의 판단이 ‘전가의 보도’가 되는 순간 자칫 전체주의로 회귀할 수 있다.‘총선용 의혹’을 일단 옆으로 젖혀두자면, 북핵 능력 강화 징후에 다급해진 정부 입장을 이해하는 여론은 많다....

    1167호2016.03.08 15:20

  • [주간여적]세 모녀 세 모자
    세 모녀 세 모자

    2014년 2월 26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중산층 주택가를 들어가 보았다. 이 집 한 귀퉁이에 9년째 세 들어 살던 50대 어머니와 20대 두 딸이 집세와 공과금 70만원을 남겨놓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칸짜리 방과 부엌은 깔끔하게 잘 정돈돼 있었다. 딸들의 방에는 패닉, 이브, 라르크 엔 시엘의 CD와 테이프, 어머니의 방이자 이들이 함께 최후를 맞은 방에는 송대관의 CD와 테이프가 쌓여 있었다. 또한 딸들의 방에는 만화책 수백 권과 한 박스나 되는 습작노트가 있었다. 주인과 함께 숨진 고양이는 여전히 살아있는 듯했다. 비극이 발생한 방에서 가난한 이들의 취향과 꿈을 봤다.‘송파 세 모녀 사건’은 부실한 사회복지 안전망이 낳은 비극으로 읽힌다.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사회복지 사각지대를 찾아내라는 긴급명령이 떨어졌다. 일선 동사무소는 눈코 뜰새 없이 바빠졌다. 몇 달뿐이었다. 꿈과 취향이 있던 세 모녀 가족은 일자리가 없었고, 기...

    1166호2016.03.02 10:02

  • [주간여적]사각지대
    사각지대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그 원인을 분석한다. ‘사각지대’는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원인 중 하나다. 2013년 송파구 세 모녀 자살사건이 있었다. ‘복지 사각지대’가 핵심 원인으로 지목됐다. 사건 이후 정부는 대대적으로 복지 사각지대를 일제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이후 ‘복지 사각지대’는 빈곤층의 자살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한 번씩 거론되는 단어가 됐다.최근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보도됐다. 큰딸을 폭행해 사망하게 하고 사망한 딸을 야산에 암매장한 친어머니 박모씨의 이야기는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이때도 사각지대라는 말이 거론됐다. 박씨의 범죄가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잇따른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보도되면서 교육부가 사각지대에 대한 조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1월부터 아동학대 사각지대에 있는 장기결석 소재불명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박씨가 둘째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는 게 파악되면서 소재불명인 큰딸에 대한 조사가 이어졌고, 경찰 조사에서...

    1165호2016.02.23 16:30

  • [주간여적]중고차 결함 대책
    중고차 결함 대책

    1160호 보도 이후 정부와 새누리당은 1월에 당정협의를 거쳐 중고차 매매 사기 대책을 내놨다. 3회 이상 불법거래 시나 ‘미끼매물’ 2회 적발 시 매매업체의 등록을 취소하는 등의 적극적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터무니없이 싸고 좋은 중고차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혹하게 된다는 점을 사기꾼들은 호시탐탐 노린다. 기사 소개 이후 또 다른 제보를 받았다.경기 오산시에 사는 전모씨(37·여)는 지난해 12월 26일 인천의 한 중고차 매매단지로 갔다. 인터넷에서 ‘주행거리 1만㎞대 폭스바겐의 더 비틀 2015년형이 700만원’이라는 매물정보에 현혹됐다. 가격이 싼 이유를 물었다. 역시나 “경매차량이어서 그렇다”는 준비된 ‘모범답안’이 돌아왔다. 전씨가 사겠다고 하자 딜러 김모씨는 갑자기 “누나 같아서 하는 말인데, 이건 접합차(사고로 완전히 부서진 뒤 고친 차)로 약해서 친누나가 탄다면 뜯어말리겠다”고 말을 바꿨다. 이어 다른 2000만원대 차량을 사서 몇 개월 타다가 비슷...

    1164호2016.02.16 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