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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역사르포
  • 전체 기사 39
  • (29)세종특별자치시… 노무현 정부 지방분권 정책 핵심 행정복합도시로 ‘운명’ 바뀌다

    2002년 12월 19일의 제16대 대통령선거는 헌정사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낳았다. 16대 대선은 군인 정치시대를 끝내고, 이어진 3김시대를 마무리하는 첫 선거였다. 게다가 김영삼 정부의 3당합당, 김대중 정부의 DJP연대를 넘는 우리 정치사에서 ‘야합’과 ‘연대’를 벗어난 단독 세력의 첫 집권이었다. 또한 3김시대로 일컬어지는 ‘87년 체제’(1987년 체제를 규정·해석하는 것에 대해 다양한 접근·분석이 있지만)를 마무리한다는 의미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87년 체제에서 벗어나길 원했다. 노 대통령이 “구시대를 정리하는 막내가 되고 싶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맏형이 되고 싶다”고 말한 배경도 단독 집권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노무현 대선 후보의 선거공약으로 출발2002년 9월 30일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선후보는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경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와대와 정부 부처를 충청권으로 옮기겠다”는 ‘폭탄’ 선거공약을 발표했다. 사실 서울과 수...

    1145호2015.09.22 10:12

  • [광복 70년 역사르포](28) 개성공단-남북정상회담의 결실 합작품 관계 경색으로 겨우 명맥 유지
    (28) 개성공단-남북정상회담의 결실 합작품 관계 경색으로 겨우 명맥 유지

    남과 북의 정치 권력자들은 서로 비난하거나 경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협상도 했다. 1972년 7월 4일 박정희 대통령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괴뢰’로 비난하던 북한에 보내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이렇게 이뤄낸 7·4 남북공동성명은 남북정상회담의 시작이었고, 이때 합의한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이라는 3원칙은 남북관계의 기본정석이 됐다.전두환 정권인 1985년 장세동 정보부장의 김 주석 면담으로 남북정상회담이 공식화됐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야심차게 북방정책을 추진한 노태우 정권에서 서동권 안기부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는 등 다각도 남북 접촉이 이뤄졌지만 정상회담은 불발로 그쳤다. 1994년 6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통해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됐다. 남북은 부총리급 예비접촉 끝에 1994년 7월 25일 정상회담을 열기로 극적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7월 8일 김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정상회담은 실현되지 못했다.정상회담에 기여한...

    1144호2015.09.15 17:47

  • [광복 70년 역사르포](27)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남대문 시장…경제주권을 잃은 무능한 관료, 금 모아 국난을 극복한 민초들
    (27)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남대문 시장…경제주권을 잃은 무능한 관료, 금 모아 국난을 극복한 민초들

    최근 세계 경제를 뒤흔든 유럽발 경제위기의 진앙지는 그리스다. 그리스는 2010년과 2012년 두 번이나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거액의 자금지원을 받고 긴축재정과 자산 매각을 약속했으나 이행하지 못했다. IMF 구제 프로그램이 종료됐지만 그리스는 부채를 상환하지 못했다. 혹독한 IMF의 요구조건에 맞서겠다며 정권을 잡은 급진좌파연합 시리자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젊음과 국민투표 61%의 긴축 반대 여론을 무기로 유럽연합(EU)과 3차 벼랑 끝 협상에 나섰다.하지만 EU는 냉정하게 긴축재정과 국유자산 매각이 없으면 그리스에 추가 재정지원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리스는 3차 금융지원을 얻어냈지만 실질적으로 연금삭감, 실업 등 혹독한 경제 상황이 이어졌다. 그리스 국민의 입장에서 달라진 것이 없었고, 결국 야심찬 치프라스 총리도 물러나고 말았다.1997년 재벌그룹 12개 줄줄이 도산그리스 사태의 진전을 바라보며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느낀 사람이 ...

    1143호2015.09.07 17:29

  • [광복 70년 역사르포](26)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 사저… 군정을 종식시키고 문민시대를 열다
    (26)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 사저… 군정을 종식시키고 문민시대를 열다

    1992년 12월 2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꽹과리와 장구 소리가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적막한 새벽을 깨웠다. 상도동 마을 주민들이 김영삼 대통령(YS) 당선을 축하하러 온 것이다. YS는 주민들에게 휩싸여 집 아래 마을 놀이터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우리의 대통령 김영삼 만세’라는 급히 만든 피켓을 든 주민들과 격의없는 축하잔치를 벌였다.당시 그 현장에 있던 기자는 ‘현직이 아닌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지만 저렇게 경찰이 경호를 하지 않아도 되는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그로부터 23년이 지난 지금, 마을 잔치가 벌어졌던 상도동 그 놀이터에는 경찰 캠프가 들어서 있다. 그리고 상도동 골목 처음과 끝에도 경찰 초소가 있다. 이곳을 경비하던 경찰은 “사진촬영을 할 수 없다”며 제지한다. 아마 집에 있는 YS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요즘 도로명 주소로 매봉로 2가길 11. 흰색 바탕의 문패에는 한자 이름 ‘김영삼’이 선명하다....

    1142호2015.09.01 16:49

  • (25) 여의도 대하빌딩 옛 평민당사…꺼져가던 지방자치에 불 지핀 단식투쟁

    대통령선거가 2년 넘게 남았지만 여론조사기관은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그 결과를 보면 대체로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1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김문수 전 경기지사, 남경필 현 경기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등이 10위권 안에 든다.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배경으로 대통령이 된 이후 서울시장이나 경기지사 등 광역자치단체장, 특히 수도권 광역자치단체장은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차기 대권주자의 반열에 오른다. 광역자치단체장은 직접 행정경험을 쌓았다는 점에서 정치적 중요인물로 꼽아주는 것이다. 그래서 광역자치단체장은 웬만한 초·재선 국회의원 경력으로는 되지 않는다. 기초자치단체장인 안상수 현 창원시장은 4선 의원에 집권당 대표를 지낸 경력의 인물이다.지방의회 일시에 해산시킨 5·16 쿠데타그동안 정치인이 되는 방법은 유력 정치인에게 아부하거나,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지역구 공천을 받거나, ...

    1141호2015.08.24 16:20

  • [광복 70년 역사르포](24)잠실종합운동장…독재 합리화와 동서화해 88서울올림픽의 양면성
    (24)잠실종합운동장…독재 합리화와 동서화해 88서울올림픽의 양면성

    최근 관심을 끄는 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민들이 생각하는 역사적 사건’을 조사한 결과, 한국전쟁이 72.2%(복수응답)로 1위에 올랐다. 관심을 끈 것은 2위가 바로 서울올림픽 개최(64.1%)라는 것이다. 88서울올림픽은 3위인 8·15 광복(62.7%)보다 높았다.(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과 한·일 월드컵 대회 개최는 나란히 62.6%를 얻어 공동 4위)88서울올림픽을 중요 역사적 사건으로 꼽은 계층은 60대 이상, 여성에게서 높게 나타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금 60대들이 인생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던 30대 중·후반의 기억을 가장 인상 깊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보통 ‘왕년에’ ‘좋았던 시절’은 절정기인 30~40대를 연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올림픽을 오래 기억하는 것은 전쟁이나, 광복, 노무현 대통령 사망과 같은 ‘불행’보다 축제나 ‘즐거움’을 더 오래 기억하는 경향 때문으로 풀이된다....

    1140호2015.08.18 14:57

  • [광복 70년 역사르포](23)남영동 대공분실~연세대… 박종철·이한열, 6·10항쟁 불씨가 되다
    (23)남영동 대공분실~연세대… 박종철·이한열, 6·10항쟁 불씨가 되다

    기자는 고등학교 시절인 1976년 서울역에서 전철을 타고 학교가 있는 용산역까지 통학했다. 그 중간 남영역 앞에 한 건물이 신축 중이었다. 검은 벽돌로 창문도 좁게 짓는 이 건물은 마치 토치카를 쌓는다는 느낌을 줬다. 물론 이 건물이 무슨 용도이며, 누구의 소유인지도 몰랐다. 이 건물의 정체가 드러난 것은 한참 후다.1987년 1월 15일 한 신문에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목으로 “경찰은 박군의 사인을 쇼크사라고 검찰에 보고했다. 그러나 검찰은 박군이 수사기관의 가혹행위로 인해 숨졌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중이다”라는 2단짜리 기사가 실렸다.(중앙일보 1987년 1월 15일자)이 기사는 제5공화국 보도지침을 뚫고 신문에 실렸다.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이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연행된 것은 1월 13일 밤. 수배된 대학선배의 소재를 대라며 혹독한 물고문이 계속됐다.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을 최근...

    1137호2015.07.28 10:38

  • [광복 70년 역사르포](22) KBS와 여의도 광장…전세계를 울린 혈육찾기 생방송
    (22) KBS와 여의도 광장…전세계를 울린 혈육찾기 생방송

    “9시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똔~ 똔~ 똔~ 땡! …(9시 뉴스 타이틀 음악) 안녕하십니까? 오늘 전두환 대통령 각하께서는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 그날 가장 중요한 TV 9시 뉴스는 이렇게 시작됐다. 9시를 알리는 ‘땡’ 소리와 함께 ‘전두환’이 나온다고 해서 ‘땡전뉴스’라고 불렀다. 당시 2개밖에 없던 TV채널 KBS와 MBC는 대통령 동정을 먼저 보도하기 위해 전용 편집실까지 뒀다. “땡전뉴스는 목불인견의 수준이었다. 이 땡전뉴스는 심한 경우 총 뉴스시간 45분 가운데 30분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방송사끼리 누가 오래 대통령 동정을 다루느냐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곤 했다.”(강준만, 한국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신군부는 1980년 7월 31일 등 정권에 비판적인 172개 정기간행물 등록을 취소했다. 신군부는 이어 11월 14일 방송과 통신, 신문을 통·폐합하고 언론인 강제해직의 칼을 휘둘렀다. 방송 통합에서만 200여명이 해...

    1136호2015.07.21 15:51

  • [광복 70년 역사르포](21) 전남대 정문~금남로…5·18광주민중항쟁,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빛이 되다
    (21) 전남대 정문~금남로…5·18광주민중항쟁,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빛이 되다

    1980년 5월 17일 밤 9시. 총에 대검을 낀 군인이 중앙청 일대를 경비하는 가운데 국무위원들이 국무회의장에 도착했다.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안건을 의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국무회의에서 여성 국무위원인 김옥길 문교부 장관이 잠시 이의를 제기했으나 계엄 확대를 의결하고 8분 만에 끝났다. 그날 밤 11시40분 이규현 문화공보부 장관은 “17일 24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계엄사령관의 포고령 10호가 발령되고, 전국 대학에는 군인이 진주했다. 시위와 파업금지 조치가 내려지는 한편 밤새 야당 정치인과 재야인사, 비판적 대학교수와 학생들이 연행되기 시작했다.1980년대를 저항하는 시위의 메카, 광주5·18광주민중항쟁(2002년 1월 광주민주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 이후 공식 명칭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이지만 보통 이렇게 부른다)의 발원지는 전남 광주에 있는 전남대학교 정문이다. 과거 대학 정문은 가두시위에 나서려는 대학생들과 이를 봉...

    1135호2015.07.13 16:59

  • [광복 70년 역사르포](20)12·12 군사반란 현장… 국가권력 찬탈을 노린 정치군인들의 하극상
    (20)12·12 군사반란 현장… 국가권력 찬탈을 노린 정치군인들의 하극상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 정문 안쪽에 ‘전쟁기념관’이라는 표석이 있다. 그런데 이 휘호를 쓴 사람이 ‘1993년 12월 25일 대통령 노태우’로 돼 있다. 1993년 12월이면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데 어찌 이런 오류가 발생했을까. 이 전쟁기념관을 계획하고 추진했던 노 대통령이 표석 휘호를 미리 써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1988년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이곳에 있던 육군본부를 이전하고 전쟁기념관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공사도 그의 임기 중인 1992년 10월 말로 끝내기로 했다. 하지만 공사가 늦어지고 전시물 준비로 개관은 1993년 12월에야 이뤄졌다.육군본부 자리에 전쟁기념관 들어서사실 이 전쟁기념관의 ‘오류 표석’은 전·현직 대통령의 보이지 않은 힘 겨루기의 산물이다. 노태우 후임 김영삼 대통령은 전쟁기념관 대신 광화문에 있는 국립박물관을 이전하거나 민족기념관으로 바꾸려고 했다. 세계적으로 ‘전쟁을 기념하는 기념관을 세운’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래 ...

    1134호2015.07.07 1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