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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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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에는 꼭 이기게 해주세요

    나는 요즘 꼭 이기고 싶은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 ‘감히’ 주권자인 국민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버티고 있는 허수아비 대통령과 그의 부역자들을 물러나게 하려고 주말마다 광장이라는 전쟁터로 출동한다.많은 ‘일못’들이 단지 일만 못하는 건 아니다. 다른 것도 세트로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 중 싸움을 지지리도 못한다. ‘싸움’ 하면 선명하게 기억나는 풍경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선생님이 정한 음악에 맞춰 조별로 율동을 창작하여 발표하는 과제가 있었다. 틈만 나면 함께 모여 율동을 만들었는데 Y는 항상 불참했다. 다들 불만이 가득했지만, 키도 크고 영향력 있는 친구였던지라 아무도 드러내놓고 불평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우리는 모였는데 Y는 한쪽에서 놀고 있었다. 잔뜩 열 받은 ‘하룻강아지’ 내가 Y 귀에 들리도록 말했다. “야~ 쟤 빼고 우리끼리만 발표해버리...

    1206호2016.12.13 15:07

  • 박 대통령을 ‘미스 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대통령의 잘못은 비혼 여성이라는 사실과 무관하므로 그런 표현을 사용해선 안 된다고 하자, 상대는 “대통령의 미숙함과 유아적임 때문에 ‘미스 박’이라고 부른 건데, 그게 뭐가 문제냐”고 반문했다.미스. 결혼하지 않은 여성 앞에 붙이는 명사.나는 87년생, 05학번이다. 이렇게 오래되고 낡은 언어는 1970~80년대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처음 ‘미스 리’라는 말을 들었던 건 대학생 때 민주노동당이라는 당의 지역모임에 나갔을 때였다.한 중년의 남성이 농담조로 나를 ‘미스 리’라고 불렀고, 사람들은 웃었다. 나는 노골적으로 불쾌해했다. 불쾌감을 표현하자 중년 남성들이 당황해 하는 것이 선연하게 느껴졌다. 당시 그 당의 지역위원장은 그 중년 남성들에게 나를 ‘동지’라고 부르도록 정정했다. 그 후로 나는 그 지역모임에서 언제나 동지라고 불릴...

    1205호2016.12.06 17:03

  • “대통령은 인정하고 일못유니온 가입하라”

    대통령이 몇 달 만에 ‘일못’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심지어 그녀 스스로는 아무것도 결정하기 못했으며, 임기 동안 오랜 친구의 대리인 역할만 해 왔다는 말도 들린다.나는 요새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 대통령을 무척 좋아하셨던 할아버지는 그녀가 텔레비전 화면에 나올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운 피부는 언제나 찬사의 대상이었고, 가끔 그녀가 중국어나 영어로 연설을 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할아버지는 그녀의 불굴의 의지와 성실함에 대한 찬양을 멈추지 않으며 내 표정을 살피셨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내가 아는 지지자 한 사람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선거기간 동안 박근혜 후보의 지지자들은 그녀가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가져오고, 북한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제어해줄 것이라고 공언했다. 어쩌면 대통령 자신도 자기가 가진 능력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1204호2016.11.28 18:11

  • 병원에 가기 싫어서 안 가는 줄 아세요?

    끔찍한 산업재해를 겪은 노동자들 중에는 나와 같은 여성이며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조금 아픈 것으로는 병원에 가지 않고 일터에 남아야 하는 서러운 사람들이었다.“광장에 엄청 모였어!”지난주 토요일, 광장에 먼저 도착한 친구의 전화였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전철을 타려고 플랫폼으로 올라가는데,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어서 광장에 가야 해!’ 하며 에스컬레이터 위를 뛰었다.“헉!”아뿔싸, 발목이 또 꺾였다. 에스컬레이터 위를 붕 날아서 넘어졌다. 양쪽 무릎에는 피가 고였다. 너무 아팠다. 그래도 광장에 가고 싶었다. 상식적인 나라에서 살기 위해 뭐든 해야 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결국 광장에 서지 못했다.발목이 약해진 건 4년 전부터였다. 당시 수습직원이었고, 일을 잘 해야 정규직이 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내 딴에는 열심히 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뛸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다가 다쳤...

    1203호2016.11.22 16:00

  • ‘무조건 1번만 찍는 60대 남성’이 달라졌다

    저녁 뉴스를 보던 어느 날 아빠 입에서 드디어 ‘하야’라는 말이 나왔다. 나는 최대한 아빠의 변화를 환대했다. “와~ 아빠랑 내 생각이 오랜만에 일치했네! 반가워!”아빠와의 정치적 견해를 좁히기 어렵다고 판단한 어느 때부터 정신 건강을 위해 집에서는 뉴스를 안 본다. 어쩌다 불가피하게 함께 뉴스를 볼 때면 아빠는 나에게 시비를 걸듯 거친 논평을 쏟아내지만 애써 대응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아빠와 정치적 견해가 달랐던 건 아니다. 사실 아빠는 오랜 민주당 지지자였다. 덕분에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 수 있었고, 그 영향을 받아 일찍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러던 아빠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경험하며 갑자기 여당 지지자로 변신했다. 아빠의 배신에 실망했지만, 아빠도 나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고생하며 어렵게 고등교육까지 시켰더니 사사건건 아빠를 무시하고 가르치려 드는 딸이 괘씸해서...

    1202호2016.11.15 14:36

  • 그때 “이러시면 안 돼요”라고 말해야 했다

    내가 웃어넘긴 수많은 순간들은 세상을 만드는 데 명백하게 기여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여성들을 그렇게 대해도 괜찮다는 확신을 주었을지도 모른다.이 지면에서 지금껏 나는 ‘일을 못한다는 것’의 긍정적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눈치 없이 툭 불거져 나오는 사람, 덜렁거리는 사람, 시킨 대로 잘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했다. 나는 삶의 대부분을 일을 못하며 살아왔지만, 그게 그렇게 부끄럽지는 않았다. 이 지면을 쓰면서부터는 더욱 그랬다. 일 못해도 괜찮다고, 어쩌면 일을 못하는 나 때문에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나도 가끔은 일을 잘한 때가 있었다. 오늘은 내가 ‘일을 잘했던’ 순간들을 부끄럽게 고백하려고 한다.얼마 전 SNS에서는 ‘#ㅇㅇ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가 돌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피해경험을 고백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느 성추행에...

    1201호2016.11.08 19:19

  • 임신에 대한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임신에 대한 권리는 당사자에게 없고 그저 저출산을 해소하기 위해 또는 부모님의 노후를 위하는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사실이 절망적이었다.요즘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자궁의 권리’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된다. 결혼 1~2년 차에는 ‘신혼’이라는 면죄부가 주어져 임신에 관한 주변의 걱정과 비난에서 자유로웠지만 2년 차 이후부터는 그 면죄부가 적용되지 않았다. 나는 그토록 피하고 싶던 ‘임신을 강요하는’ 현실과 직면하게 되었다.잠정적으로 난 임신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나의 배우자는 그 의견에 80% 동의를 하였다. 우리 부부의 결정을 설득하려는 사람들의 자세는 그들 나름대로의 친절과 배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주변의 안부인사는 임신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 되었고, 심지어 산부인과를 찾아서도 간호사에게 임신을 설득당하고 있는 꼴이다. 그 중 가장 힘든 건 역시 부모를 설득하...

    1200호2016.11.01 16:49

  • 남성권력의 쩨쩨한 사회에 안녕 고하자

    남성권력이 해체되어야만 비남성 존재들에 대한 오해와 차별이 종식될 것임을 안다. 생리휴가 또한 남성권력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여성 노동자의 인권이다.조물주에 성별이 있다면 그의 성별은 여성이 아닐 거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생리를 속된 말로 지랄 맞게 만들지는 않았을 거라고, 언젠가 조물주를 만나면 괘씸죄로 지옥에 가더라도 그의 뺨따귀를 세게 후려치겠다며 SNS 계정에 적은 적이 있다. 많은 이들이 공감했고, “우리는 생리할 때마다 생명의 탄생과 자신의 실존을 고찰하게 되는 듯” “남자도 지랄 맞게 만든 걸 보면 아마 생식기관이 없을 듯” 등의 인상적인 댓글을 달아주는 친구들도 있었다.그렇다. 나는 다양한 여성들 중 소위 말하는 종족의 세부 특성으로 1년에 약 3개월, 평생에 10년 정도는 생리라는 고난의 주간이 프로그래밍 된 몸으로 태어난 것이다. 왈칵 쏟아지는 선지 모양의 핏덩이들부터 한여름에 땀과 피가 뒤엉켜 나는 시큼하고 불쾌한 냄새와 피부 짓무름, ...

    1199호2016.10.24 17:13

  • 우리 사회에 ‘허드슨강의 기적’은 없는가

    우리가 현재 가장 잘 하고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책임지지 않는 것’, ‘책임 돌려막기’인가 싶다. 일을 잘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잘못에 책임을 지는 시스템을 바라는 것은 이번 생에서는 바라지 말아야 할 욕심일까?지인이 ‘설리’를 꼭 보라기에 연예인 그 ‘설리’인 줄 알고 ‘내가 그녀를 왜 봐야 하나’ 혼자 고민했다. 알고 보니, 영화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을 보라는 말이었다. 설리(체슬리 설리 설렌버거)는 2009년 1월 15일 샬롯으로 향하기 위해 이륙한 US AIRWAYS 1549편 기장 이름이다. 비행기는 이륙하자마자 새 떼와 충돌하여 엔진이 멈춰 추락 위기에 놓였고, 설리와 부기장은 208초 사이 빠르게 판단하여 허드슨강에 비상착륙한다. 기장을 포함은 승객 155명은 침착하게 침수된 비행기를 탈출했고, 4분 만에 도착한 첫 구조선 등 무려...

    1198호2016.10.18 11:05

  • 아플 수가 없게 되어버린 ‘필수인력’

    내가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은 정리해고에 계산되어 있지 않았다. 이 계산식 안에서 두셋이 해야 할 업무를 혼자 다 맡고 있는 나는 아프면 안 되는 존재다.어릴 때부터 환절기만 되면, 휴지를 코에 달고 살았다. 올해도 가을 날씨는 변함이 없고, 그저께 출근 준비를 하다가 화장대에 살짝 기대서 재채기를 했다. 재채기를 하자마자 비명을 지르면서 화장대 앞으로 고꾸라졌다. 느닷없이 허리에 격통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사무직 노동자 대부분이 그렇듯이 나 역시 허리가 썩 건강한 편은 아니었다. 걸핏하면 아팠지만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아픈 건 평생을 두고 처음이었다. 화장대에 엎드려 숨을 헐떡이다 침대로 가서 도로 누웠다. 도무지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고, 걸을 수도 없었다.그래도 출근은 해야 했다. 발을 질질 끌면서 간신히 머리를 말리고 약간 늦게 집을 나섰다. 고양이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서 배웅을 했다. 무게 중심이 잘 분...

    1197호2016.10.11 1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