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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식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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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상식의 사회]국가라는 이데올로기적 장치
    국가라는 이데올로기적 장치

    국가가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먹고사는 문제까지야 몰라도 최소한 삶의 물리적 위협으로부터는 지켜주리라는 생각, 그 자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라면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서울행 기차를 타러 허겁지겁 환승 끝에 도착한 대전역 광장은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자면, 마치 할리우드 재난영화에 나오는 대피행렬과도 같았다. 남쪽 지방에 갑작스레 쏟아졌다는 기록적인 폭우 탓이었다. 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검색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헤드라인을 믿은 것이 잘못이었을까? 분명 대구 이북 구간에서는 정상운행 중이라 떠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열차는 적어도 한두 시간은 연착할 예정이며, 어떤 열차는 아예 운행이 취소되었음을 알리는 전광판의 글자들만 어지러이 흔들리며, 엄청나게 중요한 약속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되 뭔지 모를 절망적 분위기를 연출하기에는 충분했다.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 매표소인 듯 꼬불꼬불 돌아가는 기나긴 행렬에 잠시 서 보았으...

    1199호2016.10.24 15:11

  • [비상식의 사회]무능한 국가와 불안한 국민
    무능한 국가와 불안한 국민

    예전에야 몰랐다고 쳐도 활성단층이 존재한다는 보고서를 받고서도 어떻게 위험한 활성단층이 있는 곳에 새로운 핵발전소를 계속 짓겠다는 결정을 할 수 있을까?이제 한국 사회에는 위기의 물결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만연한 것 같다. 물론 각자의 입장에 따라 판단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국가를 수익모델로 생각하고 국토건 경제건 마음껏 농단했던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국가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더 심각한 것은 박근혜 정부는 국가의 위기를 수습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발표하는 대책이라고는 국민들의 정신무장 강화에 맞춰져 있고, 실질적이거나 전문적인 대책은 극소수 정책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세계 11위였던 국가 경쟁력은 이번 정부에 들어서 26위로 추락하였다. 더욱 더 나쁜 것은 이 정부가 진실을 은폐하고, 비위를 옹호하며,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1197호2016.10.17 18:03

  • [비상식의 사회]백남기 농민, 애도 받지 못하는 죽음
    백남기 농민, 애도 받지 못하는 죽음

    사인을 가리기 위해 굳이 부검을 하는 것은 백남기씨를 두 번 죽이는 일과 다를 바 없다. 물대포를 맞고 뇌사상태가 되어 한 번도 깨어나지 못했던 사람이다. 사망 직전에 다른 합병증이 무엇이 있었는지 검찰의 눈으로 확인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호메로스의 서사시 의 마지막에는 아들 헥토르를 죽인 아킬레우스를 찾아간 프리아모스 왕의 얘기가 나온다.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킬레우스와의 대결에 나섰던 헥토르는 결국 창에 맞아 숨진다.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헥토르에게 복수의 원한이 사무쳤던 아킬레우스는 그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끌고 돌아다니며 욕보인다. 그러자 프리아모스는 죽음을 무릅쓰고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아들의 시체를 돌려달라고 간청한다. “아킬레우스여! 신을 두려워하고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여 나를 동정하시오.”아들 잃은 아버지의 간절한 얘기를 듣던 아킬레우스도 함께 통곡하고 말았다. 프리아모스는 아들 헥토르를 위해 꺼이꺼이 울었고, 아킬레우...

    1197호2016.10.11 11:25

  • [비상식의 사회]국가가 사과하는 올바른 방법
    국가가 사과하는 올바른 방법

    국가가 국민에게 올바르게 사과하려면 적절한 타이밍, 진정성 있는 태도, 그리고 책임감 있는 처리라는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여태 아무런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지난해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기 하루 전날, 프랑스 파리는 IS의 폭탄 테러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때 나는 바로 이 지면을 빌려 ‘그날 파리와 서울은 닮은 듯 달랐다’는 제목의 글을 썼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다시 꺼내 본 그 글의 일부를 한 번 더 여기에 옮겨 본다. “그날 파리와 서울의 모습은 아주 많이 달랐다. 파리에선 IS가 시민들을 테러했고, 서울에선 정부가 국민들을 테러했다. 파리는 총격에 피를 흘렸고, 서울은 캡사이신 물대포에 눈물을 흘렸다. 파리는 쓰러진 사람에게 응급조치를 취했고, 서울은 쓰러진 사람에게 또 물대포를 쏘았다.” 당시는 이름을 적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문장에 쓰러진 사람이라 칭했던 이가 다름 아닌 백남기 농민이었다.백남기 농민의...

    1196호2016.10.04 15:40

  • [비상식의 사회]경주 지진, 거기에도 정부는 없었다
    경주 지진, 거기에도 정부는 없었다

    세월호 때와 달리 학생들은 교사의 말을 듣지 않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지진 대비 매뉴얼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내진 설계가 안 된 학교가 지진 피난처인 경우도 많았다. 대통령은 무려 8일 만에 현장을 찾았다.곰과 돌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곰을 돌로 오인하면 어떻게 될까. 대체로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인류가 곰을 돌로 오인한다면 종족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반대로 돌을 곰으로 오인하면 어떻게 될까. 뭐 자주 놀라긴 하겠지만 큰 피해를 입지는 않을 것이다.경북 경주 일대에서 진도 5.8의 큰 지진이 났고 수백 차례의 여진이 있었다.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 한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지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다. 마치 곰을 돌로 오인하기로 작정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지진이 나고 있는데 더 이상의 큰 지진은 없을 것이라고 서둘러 말한다. 지진 지역에 위치한 신고리원전 5·6호를 계속 건설하겠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만들어진 국민안전처는 경주지진 재난문자...

    1195호2016.09.27 11:02

  • [비상식의 사회]루스벨트의 뉴딜정책에서 배우기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에서 배우기

    ‘소외된 사람을 위한 새로운 정책’으로 불린 이 정책은, ‘부유한 사람을 더욱 부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풍요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보의 기준이다’라고 할 정도로, 그 방향성을 확실히 하고 있다.우리는 루스벨트 대통령이라고 하면 워싱턴, 링컨 등과 함께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으로 알고 있다. 소아마비 장애인임에도 미국이 가장 어려운 시기인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잘 극복하며 4선이라는 전무후무한 기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하다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운명했으니, 그 애틋함이 더 클 수밖에 없으리라 충분히 이해가 된다.그가 대공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시행한 정책이 뉴딜정책이라는 것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우리는 뉴딜정책 하면 많은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국가재정을 투여해 댐 공사 등 대단위 토목공사를 실시하는 등 공공분야 사업을 확대하여 산업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침체한 경기를 되살아나게 하는 것 정도로 알고 있으나 핵심과 본질...

    1194호2016.09.12 17:04

  • [비상식의 사회]정치 양극화를 넘어 경제민주주의로
    정치 양극화를 넘어 경제민주주의로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는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도 사라질 권력은 사라지고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낼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다시금 양극화 해소니 경제민주주의니 하는 경제학적 수사가 모습을 드러내는 주기가 찾아온 셈이다.공자는 나이 50에 하늘의 뜻을 알았다(知天命)고 하였는데, 사석에서 농담 삼아 늘 하는 말이거니와, 그것은 실증적 명제라기보다는 규범적 명제인 것만 같다. 진짜로 하늘의 뜻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깨우쳐야 한다는 당위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언감생심 공자와 맞수가 될 꿈을 꾸겠냐만, 이 나이 정도 되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우칠 법도 한데 왜 이리 세상은 내가 무엇을 상상하건 항상 그 이상을 보여주는지 좌절하기 일쑤기 때문이다.‘가치없이 잘라내기’와 ‘악착같이 버티기’인류 역사를 보면 온갖 변혁 속에서도 예외 없이 극에서 극으로 흐르는 정치성향의 주기적 변동 같은 것이 있었던 법한데, 어쩌면 경제만 주기적 경기변동을 겪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

    1193호2016.09.05 16:55

  • [비상식의 사회]전기료 초과이윤 시민에게 돌려줘야
    전기료 초과이윤 시민에게 돌려줘야

    기후불의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정부의 강력한 개입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사회가 지혜롭게 시장에 개입하여 시장 메커니즘을 규제할 수 있다면 효과적인 방식으로 중산층을 확대시킴으로써 불평등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무더위가 오랫동안 기승을 부렸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5월 23일 이후 8월 15일까지 온열질환자가 1800명이며, 사망하신 분들도 14명이나 된다고 한다. 정확한 통계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온열질환자나 더위로 사망하신 분들의 소득분위 혹은 사회·경제적 지위는 대체로 그리 높지 않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되는 분들이 주로 피해를 본 것이다. 기후변화가 본격화되면서 폭염은 단순한 자연재해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사회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불평등의 구조를 따라 기후변화 피해가 가중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관성을 포착하여 등장한 용어가 ‘기후불의’(climate injustice)이다. 사회적 불평등이 기후변화 취약성을 확대·재생산한다는 것...

    1192호2016.08.29 18:33

  • [비상식의 사회]눈치가 없거나, 눈치를 안 보거나
    눈치가 없거나, 눈치를 안 보거나

    초호화 만찬에 대해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거나 혹은 아예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전자가 국민 정서에 대해 무심히도 눈치가 없는 것이라면, 후자는 국민 정서 따위는 무시하고 눈치를 안 보겠다는 오만함이다.대통령이 신임 여당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먹였다는 송로버섯 때문에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서민들은 경제가 어려워 살기 힘들건만 대통령과 여당 대표라는 사람이 이런 값비싼 음식으로 초호화 식탁을 누렸다는 것이 비판 여론의 핵심이다. 그러자 청와대 측에서는 만찬 식탁에 올라간 송로버섯은 향을 내기 위해 조금만 사용했으며 개인당 560원어치밖에 안 되는 비용이라고 해명했다. 당면한 국가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먹는 것 가지고 며칠씩 이런 정치적 공방이 이어지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만찬 메뉴까지 발표하는 청와대 의도는솔직히 대통령이 이런 음식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제일 반가운 사람을 식탁에 초대했으니 가급적 좋은 것 ...

    1191호2016.08.22 17:37

  • [비상식의 사회]최경희, 김영란, 그리고 박근혜
    최경희, 김영란, 그리고 박근혜

    외교전략의 미숙과 불통 리더십의 발현으로 국민들은 수년 만에 찾아온 더위와 함께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도 이화여대 사태에서 보여준 학생들의 ‘느린 민주주의’ 투쟁 방식을 배워야겠다.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공부한 최경희씨는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 노무현 정부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을 거쳐 현재 이화여대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교육 주체와의 소통이나 동의 없이 정부의 일방적 방침을 무리하게 시행하려다가 학생들의 저항으로 결국 항복하고 그 사업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투쟁에 참여한 학생들은 처음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최경희 총장의 용납할 수 없는 행태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사퇴를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문제의 발단은 교육부였다. 교육부는 탁상행정이나 학위장사의 의심이 있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을 제안했고, 학교는 학생 등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관심 있는 학...

    1190호2016.08.16 1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