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전태일의 유언이 떠올랐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건물 외벽 ‘박근혜 퇴진’ 떼어낸 자리에 그 보다 더 크게 써서 걸기로 했다. ‘지난겨울 그 촛불을 헛되이 말라.’지난겨울은 주말마다 촛불로 온 거리와 광장을 밝혔지만, 그래도 몹시 춥고 길었다. 3월이 되고 경칩도 지났지만, 10일 탄핵이 인용돼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고서야, 비로소 봄이 왔다.헌법재판소 이정미 재판관이 차분히 읽은 판결문의 마지막 부분,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백기완 선생님과 함께 통일문제연구소 사무실에 있었다. 선생님은 말이 없었다. 표정도 굳어 있었다. 묘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백 선생님은 박정희 유신 독재와 맞서 싸우시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출옥하실 때, 그 좋으시던 풍채가 피골이 상접해 몸무게가 40㎏도 안 나갔다니, 그 고통을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암살했...
1219호2017.03.21 1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