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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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연중기획
  • 전체 기사 51
  • 계엄군 총소리, 겁에 질려 울었다

    1980년 광주. 기자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그해 5월, 두 가지를 처음으로 알게 됐다. 하나는 최루탄. 이러다가 숨이 막혀 죽는 게 아니냐는 공포감이다. 또 하나는 진짜 총소리다. 같은 TV 프로그램 속 효과음과 ‘진짜’는 달랐다. 무지막지하게 큰 소리였다.5월 18일은 일요일이었다. 교회를 다녀온 뒤 광주 시내를 쏘다녔다. 이상한 복장의 군인들을 봤다. 대인시장 옆 시민극장에서 본 영화 속 제국군대 같은 복장이었다. 그들이 쓴 투구는 기자가 다니던 초등학교 지붕 밑 다락에 먼지 쌓인 채로 방치된 일본 무사의 투구 같기도 했다. 전투경찰이었다. 충장로 파출소 앞, 한국은행 앞 시내 곳곳에 그들이 배치돼 있었다. 어디선가 대학생들이 뛰어왔다. 그들은 금남로와 중앙로가 마주치는 사거리에 주저앉았다. 100~200명 규모였다. 전남대 앞에서 군인들이 학생들을 닥치는대로 잡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불안과 공포. 전투경찰들이 몰려왔다. 최루탄이 터졌다. 구경하다가 최루...

    875호2010.05.12 16:18

  • [2010 연중기획] 5·18 광주항쟁의 역사적·사회적 의미
    5·18 광주항쟁의 역사적·사회적 의미

    5월이다. 「Weekly 경향」의 연중기획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는 이제 광주로 간다. 30년 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 현대사의 뜨거운 상처다. ‘광주’라는 이름 앞에 사람들은 울거나 분노했다. 그 분노와 슬픔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견인해 한국 사회 민주화의 기름진 밑거름이 됐다. 김호기·박태균 교수가 4회 동안 ‘5·18’의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돌아보는 글을 기고한다. 김호기 교수가 5.18국립묘지를 방문한 소감을 정리했다. 지난 2005년 한국방송공사(KBS)에서 광복 60주년 기념 프로그램으로 제작한 진행을 맡은 적이 있었다. 프로그램 타이틀을 나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그 가운데 제3부는 나의 대학시절로 시작된다. 그때 대학 동기인 기형도의 시 ‘대학시절’을 인용했다.기형도의 ‘대학시절’“돌층계 위에서 /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 시를 쓰던 후배는...

    875호2010.05.12 15:26

  • “계엄군 양쪽에서 버스에 집중 사격”

    1980년 5월 광주. 광주 도심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던 공수부대와 계엄군은 작전명령 변경에 따라 5월 21일 도심에서 철수했다. 이튿날인 22일부터 광주는 ‘해방구’가 됐다. 시민군은 차량에 ‘계엄철폐’ ‘전두환 처단’ 등이 적힌 펼침막을 걸고 시내를 누비며 승리의 기쁨을 드러냈다. 전남도청 앞에서는 날마다 시민궐기대회가 열려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온갖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무렵 광주 외곽에서는 또 다른 참혹한 희생의 그림자가 광주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버스에 탄 18명 중 17명 사살 당해5월 23일 광주에서 화순 방향으로 4㎞ 지점에 있는 주남마을. 당시 주남마을 뒷산에는 5월 21일 조선대 뒷산을 따라 철수한 11공수부대와 7공수부대가 매복하고 있었다. 오후 2시쯤 전남도청에서 출발한 소형버스 한 대가 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이 버스는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공수부대가 물러난 뒤 도청에는 수습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항쟁 기간에 ...

    875호2010.05.12 15:23

  • [2010 연중기획]“다시 일어나서는 안될 불행한 사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될 불행한 사건”

    5월이다. <Weekly 경향> 연중기획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는 이제 광주로 간다. 30년 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 현대사의 뜨거운 상처다. ‘광주’라는 이름 앞에 사람들은 울거나 분노했다. 그 분노와 슬픔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견인해 한국사회 민주화의 기름진 밑거름이 됐다. 김호기·박태균 교수는 앞으로 4회 동안 ‘5·18’의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돌아보는 글을 기고한다. 이번 호에서는 박태균 교수가 당시 경향신문 보도를 통해 5·18의 시작과 끝을 정리했다. <편집자 주>그날로부터 30년이 지났다. 벌써 30년이다. 지금의 20대들에게 30년 전 ‘그 사건’은 3·1운동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지는 사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386세대에게 1980년 광주는 언제나 살아 있는 삶 그 자체였다...

    874호2010.05.06 10:26

  • [2010 연중기획]“계엄군 진입 총소리 잊지 못해”
    “계엄군 진입 총소리 잊지 못해”

    1980년 5월 공수부대와 계엄군이 광주로 들어가는 길목을 차단하고 학살극을 벌이던 당시 광주는 철저하게 고립된 섬이었다. 막힌 건 길목만이 아니었다. 언로도 차단됐다. 주요 신문과 방송은 무자비한 국가 폭력의 현장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보도하는 경우라도 사실은 묻히고 맥락은 비틀렸다. 외부와의 소통이 차단된 자리는 ‘유인물’로 채워졌다. 당시 학생과 노동자들은 각종 유인물을 발간해 광주 시민들의 눈과 귀 역할을 했다. 언론이 사라진 자리에서 언론 구실을 한 셈이다. 당시 광주 YWCA 건물을 근거지로 유인물 제작과 배포에 참여한 김태종씨(51·당시 전남대 국문과 4학년)를 4월 29일 오후 광주에서 만났다. 김씨는 현재 ‘5.18 30주년 기념 뮤지컬 추진위원회’ 추진위원으로 있으면서 5월 15일 막을 올리는 뮤지컬 <화려한 휴가>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5월 18일 광주에 공수부대가 투입되면서 열흘간의...

    874호2010.05.06 10:26

  • [2010 연중기획]‘사북항쟁’ 노동자 인권을 외치다
    ‘사북항쟁’ 노동자 인권을 외치다

    역을 나서니 사방이 산이다. 앞으로는 모텔이 즐비하다. 역전 시계탑에는 ‘가정의 행복까지 배팅하지는 마십시오’라고 쓰여 있다. 이곳 강원랜드 카지노를 찾는 이들에게 보내는 소박한 경고다. 읍내는 ‘노래마당’ ‘가든’ ‘한의원’ ‘안과’ ‘갈비’ ‘리프트 할인’ 간판으로 가득하다. 30년 전에 광원들이 기업과 어용노조, 경찰력을 상대로 전쟁 같은 투쟁을 벌인 사북의 오늘이다.서울의 봄을 맞아 서울에서 정치적 해빙의 기대와 신군부에 대한 우려가 교차하던 1980년 4월, 사북에서는 동원탄좌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을 내걸고 시위를 벌이다 공권력과 충돌했다. 지난 4월 22일 당시 지도부였던 이원갑 사북항쟁명예회복 추진위원장(70)과 함께 동원탄좌 노조 사무실을 찾았다. 형체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쓰는 이도 없고 찾는 이도 없는 건물...

    873호2010.04.28 13:53

  • [2010 연중기획]‘서울의 봄’과 1980년대 민주화운동
    ‘서울의 봄’과 1980년대 민주화운동

    <Weekly 경향>은 현대사의 분수령을 이룬 역사적 사건들의 현장을 찾아 그 의미를 짚어보는 2010년 연중기획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를 연재한다. 1980년, 한국 사회는 박정희 정권 시절의 오랜 ‘겨울’에서 깨어나 마침내 ‘서울의 봄’을 맞았다. 그러나 민주화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은 신군부에 의해 또다시 배신을 당했다. 1980년 5월 15일 10만여 명의 대학생들이 서울역 광장에 운집해 민주화를 요구했지만 불과 이틀 뒤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 조치와 뒤이은 광주에서의 민간인 학살이 ‘서울의 봄’을 산산조각낸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서울의 봄을 통해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궤적을 반추했다. <편집자주>1979년 3월,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서울 북부 지역과 도심에서 학교를 다닌 나는 서대문과 이화여대를 지나 처음으로 서울 서부 지역에 입성했다. ...

    873호2010.04.28 13:53

  • [2010 연중기획]희망과 절망이 교차한 1980년 ‘서울의 봄’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 1980년 ‘서울의 봄’

    <Weekly 경향>은 현대사의 분수령을 이룬 역사적 사건들의 현장을 찾아 그 의미를 짚어보는 2010년 연중기획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를 연재한다. 1980년, 한국 사회는 박정희 정권 시절의 오랜 ‘겨울’에서 깨어나 마침내 ‘서울의 봄’을 맞았다. 시민들의 가슴은 손에 잡힐 듯 보였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터질 듯 부풀어 있었다. 그 열망은 신군부에 의해 또 한 번 배신 당했다. 1980년 5월 15일 10만여 명의 대학생들이 서울역 광장에 운집해 계엄 철폐를 요구했다. 그러나 불과 이틀 뒤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 조치와 뒤이은 광주에서의 민간인 학살은 ‘서울의 봄’을 산산조각냈다. 박태균 교수가 서울역 광장을 찾아 희망과 절망이 교차했던 1980년 봄의 역사적 의미를 돌아봤다. <편집자주>4·19 혁명, 벌써 반세기가 됐다. 4·...

    872호2010.04.20 15:05

  • [2010 연중기획] “신문 지면 군인에게 검열 받아”
    “신문 지면 군인에게 검열 받아”

    봄은 짧다. 1980년 ‘서울의 봄’은 더 그랬다. 박정희 정권의 갑작스런 종말로 찾아온 짧았던 서울의 봄은 그해 5월 광주 시민들의 저항이 군홧발에 짓밟히면서 순식간에 소멸했다. 신군부는 서울의 봄을 끝장내는 데 언론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유리한 보도는 내보내고 불리한 보도는 막았다. 신군부는 언론을 어떻게 이용하고 억압했을까. 4월 15일 오후 <한국의 언론통제>(리북·2008)를 통해 권력의 언론통제 실상을 재구성한 김주언 언론광장 감사(56)를 만났다. 그는 1980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기자로 일했고, 1986년 9월 <말> 특집호를 통해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했다.당시 언론 상황은 어땠나“서울시청에 검열단이 상주했다. 대부분 군인들이 검열했다. 당시 신문은 활판인쇄 방식이었는데, ‘시쇄판’이라고 부르는 초판 대장이 나오면 그 대장을 갖고 검열단이...

    872호2010.04.20 14:59

  • [2010 연중기획]시민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현장’
    시민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현장’

    <Weekly 경향>은 현대사의 분수령을 이룬 역사적 사건들의 현장을 찾아 그 의미를 짚어 보는 2010년 연중기획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를 연재한다. 2·28 대구 의거와 3·15 마산 의거가 예비한 혁명의 기운은 마침내 1960년 4월 19일 혁명의 불길로 치솟았다. 50년 전 그날 학생과 시민으로 이뤄진 시위대는 세종로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많은 희생자를 냈지만 정권으로 하여금 결국 시민권력의 힘 앞에 무릎을 꿇게 했다. 박태균 교수에 이어 김호기 교수가 세종로를 찾아 ‘거리의 사회학’ 관점에서 4·19 혁명의 현재적 의미를 반추했다. <편집자주>몇 년 전 세종로 지역의 복원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을 때 이에 대해 모 일간지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당시 내 견해는 역사의 복원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세종로 일대가 서울시민, 나아가 우리 국민 전체의 역사...

    871호2010.04.15 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