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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연중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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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연중기획]한국전쟁 발발 60년,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가다
    한국전쟁 발발 60년,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가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이 38선을 넘어 진격했다. 전쟁은 광복 후 분단이 낳은 비극의 정점이자 이후 발생한 모든 분단 비용의 시발점이었다. 남과 북의 정권은 상존하는 전쟁 위협과 체제 경쟁을 빌미로 민중의 자유를 억눌렀다. 1990년대 이후 힘겹게 쌓아 올린 남북 화해와 통일의 가능성은 전쟁 발발 60년을 맞은 지금 급속도로 닫혀 가고 있다. 전쟁의 기억은 여전히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박태균 교수가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찾아 전장의 포화 속에 가려져 있던 전쟁의 비극성을 반추했다. 한국전쟁 발발 후 60년이 지났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거제도다. 왜 하필 거제도인가. 왜 거제도에서부터 전쟁을 이야기하려 하는가.처음에는 육로로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부산과 거제도를 잇는 다리가 아직 미완성이어서 육로를 택할 경우 2시간 넘게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배를 탔다. 부산에서 거제도까지 50분이 걸린다. KT...

    880호2010.06.16 14:53

  • [2010 연중기획]‘전쟁의 진실’ 성찰의 눈으로 보다
    ‘전쟁의 진실’ 성찰의 눈으로 보다

    전쟁을 경험한 국가들은 ‘종전’을 기념한다. 한국은 예외다. ‘발발’을 기념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아직 종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그 성격과 의미를 끊임없이 따지고 물어야 하는 현재진행형 사건이다.  정치 권력은 전쟁의 기억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끼워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는 선명한 이분법을 좋아한다. 경계에 선 사람들이 설 자리는 없다. 학자들은 다르다. 전쟁이 사회에 미친 영향을 두루 살핀다. 이념의 잣대로 포착할 수 없는 전쟁의 진실을 성찰의 그물로 건져 올린다. 학자들은 한국전쟁을 어떤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을까. 계간지 과 가 마련한 한국전쟁 60주년 특집호를 통해 살펴봤다.은 남북이라는 경계를 넘어선 부분에 눈길을 줬다. 전쟁은 한반도 남쪽과 북쪽에 살던 민중에게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화교와 재일조선인들도 전쟁의 자기장 안에서 제 운명이 극단적으로 뒤바뀌는 경험을 했다.화교·재일조선인 운명에도 영...

    880호2010.06.16 14:38

  • [2010 연중기획] 6·15공동선언 ‘지금은 부재 중’
    6·15공동선언 ‘지금은 부재 중’

    6·15 공동선언에는 분단 이후 전쟁으로까지 치달았던 남북한의 이념적 갈등, 쌍생아처럼 닮아 있던 남북한의 경직된 지배체제, 냉전기 남북한 민중이 치러야 했던 고통 같은 ‘분단비용’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5개 항의 합의 사항이 담겨 있었다. 6·15공동선언 10주년을 맞아 공동선언에서 합의된 사항들의 현재 좌표를 따져봤다.이명박 정부서 이산가족 단 한차례 상봉6·15공동선언의 첫 2개 항은 ‘자주적 통일’(제1항)과 ‘남한의 연합제와 북한의 낮은 연방제 사이의 공통성 인정’(제2항)이라는 원칙적 내용이다. 남북한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교류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3항과 4항이다.제3항은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흩어진 가족·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

    879호2010.06.09 15:00

  • [2010 연중기획]6.15 10주년에 돌아보는 한반도의 분단과 미래
    6.15 10주년에 돌아보는 한반도의 분단과 미래

    연중기획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첨예한 문제의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6월에는 6·15공동선언 10주년과 한국전쟁 60주년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5월 20일 천안함 침몰 조사결과 발표 이후 한반도에 불어닥치고 있는 신냉전의 기류는 분단의 상처가 결코 과거의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시퍼렇게 살아 있는 현재라는 사실을 날카롭게 입증하고 있다. 김호기 교수는 6·15공동선언 10주년을 맞아 한반도 통일의 미래에 대해 사색했다. <편집자주>1990년 여름이었다. 내 나이 서른, 그때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독일 베를린을 방문했다. 동과 서를 나누던 장벽이 무너진 직후 베를린에는 여러가지 느낌이 공존하고 있었다. 사회주의가 퇴장하고 자본주의가 승리했다는 어떤 복합적인 느낌은 물론 무너진 장벽이 상징하는 통일 독일의 기대감이 도시 곳곳에 넘쳐흐르고 있었다.베를린자유대학에서 공부하는 친구와 함께 브란덴...

    879호2010.06.09 11:45

  • [2010 연중기획] 평화를 위한 등대 ‘6·15공동선언’
    평화를 위한 등대 ‘6·15공동선언’

    연중기획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는 이제 우리 역사에서 가장 첨예한 문제의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6월에는 6·15공동선언 10주년과 한국전쟁 60주년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5월 20일 천안함 침몰 조사결과 발표 이후 한반도에 불어닥치고 있는 신냉전의 기류는 분단의 상처가 결코 과거의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시퍼렇게 살아 있는 현재라는 사실을 날카롭게 입증하고 있다. 박태균 교수가 2003년에 평양을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6·15공동선언 10주년의 의미를 되새겼다.<편집자주>2003년 8월 평양을 방문했다. 난생 처음 밟은 평양. 와, 내가 평양을 갈 수 있구나.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내린 순안공항에 내렸고, 6·15공동선언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가 순안공항인가 하고 믿기지 않기도 했지만 공항 건물 전면에 걸려 있는 커다란 김일성의 사진은 내가 있는 곳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그러나 ...

    878호2010.06.02 20:06

  • [2010 연중기획]“현 대북정책 군사정권보다도 미흡”
    “현 대북정책 군사정권보다도 미흡”

    올해는 6·15공동선언 10주년을 맞는 해다. 그러나 축제는 없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갈수록 긴장의 수위를 높여 가던 남북관계는 천안함 침몰과 함께 지난 10년 이래 가장 차갑게 얼어붙었다. 남북한이 함께 치러온 6·15공동선언 기념 공동행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무산될 위기다. 지난 5월 27일 서울 서대문 기독교사회연구소에서 민간통일기구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김상근 목사를 만났다.남북교류가 모두 끊어질 기미다. 올해 6·15공동선언 10주년 기념행사는 어떻게 되나.“올해 남북 공동행사는 실질적으로 좌절됐다. 지난해 겨울 중국 선양, 올해 3월 평양에서 6.15민족공동위원회 위원장 회의를 갖고 북측 인사들과 만났다. 나는 북측 안경호 위원장에게 10주년 행사를 서울에서 하자고 제안했다. 북측은 반대했다. 남한 정부가 서울 행사를 허용할 리 없다는 것이다. 북측은 또...

    878호2010.06.02 20:06

  • [2010 연중기획] 5·18 광주항쟁은 무엇을 지켜 내려 했는가
    5·18 광주항쟁은 무엇을 지켜 내려 했는가

    「Weekly 경향」의 연중기획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는 5월 한 달 동안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뤘다. 30년 전 5월에 있었던 광주시민들의 항쟁은 지금도 여전히 한국 현대사의 뜨거운 상처로 남아 있다. ‘5월 광주’는 그 자체로 밀도 높은 분노와 슬픔을 불러일으키며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견인했다. 5월 광주의 기억이 한국 사회 민주화를 위한 비옥한 토양이었다는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4회에 걸친 5·18 연재를 마무리하는 이번 기고에서 김호기 교수는 광주항쟁은 결국 인간 존엄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표출이었다고 평가한다. <편집자주>올해 광주항쟁 30주년은 여러 가지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역사적인 30주년 기념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공식 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외된 일도 당혹스럽다.외교 행사 일정이 잡혀져...

    876호2010.05.26 17:40

  • [2010 연중기획] ‘5월의 광주’를 담은 불멸의 음악
    ‘5월의 광주’를 담은 불멸의 음악

    박기순. 1976년 전남대 역사교육학과에 입학해 1978년 시국사건에 연루돼 징계를 당한 뒤 낮에는 노동자, 밤에는 야학 교사로 일하던 여성. 그는 1978년 12월 어느날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했다. 겨우 스물 한 살이었다.윤상원. 다니던 은행에 사표를 내고 1978년부터 광주에서 노동자이자 야학 교사로 일하던 청년. 1980년 광주민중항쟁 당시 도청에 꾸려진 항쟁지도부의 일원이던 그는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도청에 진입할 때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산 자에게 보내는 격려와 연대 메시지1981년 2월, 망월동 묘지에서 두 사람의 영혼결혼식이 치러졌다. 윤상원과 박기순은 전남대 선후배 사이였고, 당시 광주시 광천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들불야학’의 동지였다. 당시 전남대 4학년이던 김종률씨가 이 영혼결혼식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든 노래가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가사는 소설가 황석영씨가 백기완씨의 ...

    876호2010.05.26 17:36

  • [2010 연중기획]  5·18 진상 규명, 미완의 성과
    5·18 진상 규명, 미완의 성과

    1987년 이전까지 한국 사회 공론장에서 ‘5·18’은 금기어나 마찬가지였다. 5·18이 거론될 경우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대부분 ‘폭동’이나 ‘소요’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1987년 6월항쟁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그해 치러진 대선에서 신군부의 핵심 실세인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긴 했지만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이미 비등점을 넘은 상황에서 5·18 진상 규명 요구를 거부할 정치적 동력은 없었다.청문회 정략적 이해관계로 중단1988년 13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진 것은 그 뒤 5·18 진상 규명 과정에서 결정적인 변곡점이 됐다. 야당이 정국의 주도권을 쥐면서 그해 6월 ‘5공비리특위’(제5공화국비리조사특별위원회)와 ‘광주특위’(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가 구성돼 ...

    876호2010.05.19 15:18

  • [2010 연중기획]우리는 ‘광주’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광주’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가

    5월이다. 「Weekly 경향」의 연중기획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는 광주로 갔다. 30년 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 현대사의 뜨거운 상처다. ‘광주’라는 이름 앞에 사람들은 울거나 분노했다. 그 분노와 슬픔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견인해 한국 사회 민주화의 기름진 밑거름이 됐다. 김호기·박태균 교수가 4회 동안 ‘5·18’의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돌아보는 글을 기고한다. 박태균 교수가 오늘날 우리 사회가 1980년 광주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편집자주>과연 1980년 광주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1993년 처음 현대사 강의를 시작했을 때 광주는 살아있는 역사였다. 1980년 광주의 직접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또 5월이면 열리는 모든 대학 축제의 화두는 광주였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 ...

    876호2010.05.19 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