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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연중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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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연중기획]“일제피해 개인보상 가능성 없지않다”
    “일제피해 개인보상 가능성 없지않다”

    지난 8월 10일 일본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한반도 강제병합을 인정한 담화를 발표했다. 때마침 한국을 방문한 일본 국회의원이 있다. 민주당 내 대표적 친한파 의원인 오다치 모토유키(尾立源幸) 참의원이다. 그는 간 총리의 사과담화 작성 및 발표 과정에서 막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의 정책보좌관을 15년 동안 지낸 민주당 정권의 실세다.하토야마 전 총리의 3인방 중 한 사람으로 꼽히며, 특히 ‘시와케(代分·정부의 예산을 책정하고 첨삭·분배하는 일)’ 업무를 원만히 수행함으로써 이름이 높다.그를 8월 12일 63빌딩에서 만나 간 총리의 ‘사과담화’의 의미, 재일동포의 지방선거 참정권 추진 경과 등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한·일 차세대 정치인 교류 증진을 위한 ‘한·일 미래구상’의 회원으로 자주 한국을 찾...

    889호2010.08.18 13:58

  • [2010 연중기획]일본 총리 사과담화는 ‘다목적 포석’
    일본 총리 사과담화는 ‘다목적 포석’

    일본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관방장관은 한일병합의 강제성을 인정한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담화 발표를 앞두고 이에 반대하는 야당에게 ‘총리 담화는 전략적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한다. 국제관계 속에서 전략적이지 않은 일은 거의 없는 법이지만, 그렇잖아도 국내에서 간 총리의 담화가 과거보다 다소 진전된 내용이 포함됐다며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두고 설왕설래 중이어서 센고쿠 장관이 밝힌 담화와 관련된 ‘일본의 전략’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센고쿠 장관의 언급 외에도 간 총리의 이번 담화는 다소 이례적인 절차와 과정을 겪었다. 우선 담화의 내용과 관련해 집권 민주당 내부의 의견수렴 과정이 생략됐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교양학부)는 “내각 각의에서 결정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민주당 내 의견수렴 없이 담화를 발표했다”면서 “정치적 판단의 산물”이라고 규정했다. 호...

    889호2010.08.18 13:58

  • [2010 연중기획]“문화재 환수과정 정부 역할 아쉬워”
    “문화재 환수과정 정부 역할 아쉬워”

    “처음에는 주변에서 미친 사람으로 취급당했어요. 일개 스님이 일본 왕실을 상대로 문화재를 환수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보였던 것이죠.”일본 궁내청에 묻혀 있던 조선왕실 기록문화의 꽃인 <조선왕실의궤>가 현해탄을 넘어 8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의궤가 환수된다는 사실은 강제병합 100년을 앞두고 지난 8월 10일 식민지 지배가 한국인의 뜻에 반한 것이었음을 사과하는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담화문에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도서를 가까운 시일에 넘기고자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국내에 알려졌다. 이러한 내용이 담화문에까지 실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환수위원회) 사무처장 혜문스님이 꼽히고 있다.지난 2006년부터 치밀하게 준비지난 2006년부터 의궤를 돌려받기 위해 일본을 수십 차례 드나들었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혜문스님의 목소리에는 기쁨만큼 아쉬움이 짙게 배...

    889호2010.08.18 13:58

  • [2010 연중기획]임진강 넘나들 ‘평화의 바람’ 언제쯤…
    임진강 넘나들 ‘평화의 바람’ 언제쯤…

    20세기 우리 역사는 ‘식민의 시대’이자 ‘분단의 시대’였다. 1945년 해방을 맞이했지만 냉전의 지정학은 해방의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한반도를 둘로 쪼개놓았다. 한국전쟁 발발 60년을 맞는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질서는 또 다시 격랑에 휩싸여 있다. 김호기 교수는 한국전쟁 연재를 종료하는 이번 글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동북아의 평화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올해 2010년은 한국전쟁 60주년과 한일병합 100주년이 겹치는 해다. 지난 100년을 돌아볼 때 일제 식민시대와 한국전쟁만큼 우리 현대사와 우리 사회에 심원한 영향을 준 사건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기획도 이제 한국전쟁을 마무리하고 이어 한일병합을 다룰 예정인데, 필자에게 한국전쟁과 한일병합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노래가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임진강(イムジンがン)’이다.식민의 시대와 분단의 시대‘임진강’은 ‘산제비’로 유명한 카프 시인 박세영에 의해 쓰인 북한 노래다...

    887호2010.08.04 11:48

  • [2010 연중기획]원조자금이 한국재벌 ‘기초 공사’
    원조자금이 한국재벌 ‘기초 공사’

    김치, 한글, 태권도, 소주, 재벌.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미국 웹스터 영어사전에 올라 있는 한국어 일반명사들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이 말해주듯 재벌은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기업 형태다.이 같은 재벌 체제의 맹아가 나타난 것은 1950년대다. 재벌 체제의 형성은 한국전쟁 및 그 뒤 고착화된 분단상황과 무관하지 않다.시작은 일본이 식민지 한국에 남겨놓은 적산(패전국의 재산)이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뒤 남한 내 일본 재산은 미군정의 귀속재산이 됐다. 정부 수립 후 이 귀속재산의 처리 문제가 불거졌다. 정부는 이를 위해 1949년 12월 ‘귀속재산처리법’을 공표했다. 이 법에 따라 규모가 큰 공장은 국유기업으로 지정됐고, 중소규모 기업은 민간에 임대 혹은 매각됐다.정부가 귀속기업 불하 대상을 선정할 때 가장 우선시한 요건은 신청자의 경영능력이었다. 그러다보니 해당 기업에 연고가 있던 이들(경영자 또는 직원)이 1순위였고, 그 다음 순...

    887호2010.08.04 11:48

  • [2010 연중기획]한반도 평화 정착의 ‘초석’ 절실
    한반도 평화 정착의 ‘초석’ 절실

    정전협정은 한반도의 안보와 관련한 유일한 국제법적 규정이다. 정전협정은 지난 60여 년 동안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정전협정은 협정의 당사자가 한국이 아니라는 점과 협정 자체의 불완전한 성격 때문에 여러 가지 한계를 노출했다. 박태균 교수는 천안함 사건으로 정전협정의 한계가 또다시 드러나고 있는 지금 한반도에서 영구적인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협정을 맺기 위한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지금까지도 명절만 되면 실향민들이 모이는 곳이 있다. 군사분계선에 멀지 않은, 서울로부터도 멀지 않은 임진각이다. 그곳에서 실향민들은 고향을 향해 차례를 지내면서 북쪽을 바라본다. 언제 다시 고향 땅을 밟아볼 수 있을까. 거기에 살던 내 가족, 친척, 친구들, 동네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 살고 있을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60년이 지난 지금 그곳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그곳에 지금은 또 다른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886호2010.07.27 16:53

  • [2010 연중기획]잊혀져 가는 비극, 역사교육의 과제
    잊혀져 가는 비극, 역사교육의 과제

    참혹했던 전쟁의 기억도 60년 세월 앞에 노출되면 조금씩 빛이 바랜다. 지난 6월 행정안전부 여론조사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한 정확한 연대를 알고 있는 청소년은 41.3%에 불과했다. 30대 이상 세대와는 확연한 격차가 났다.지난 역사를 아는 것은 오늘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다. 도라산역을 찾은 김호기 교수는 한국전쟁에 대한 세대 간 인식의 격차가 커지고 있음을 우려하며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날마다 켜지던 창에 / 오늘도 램프와 네 얼굴은 켜지지 않고 / 어둑한 황혼이 제 집인 양 들어와 앉았다 / 피라도 보고 온 듯 선득선득한 느낌 / 램프를, 그 따뜻한 것을 켜자 / 얼어서 찬 등피여, 호오 입김이 수심되어 갈앉으면 / 석윳내 서린 골짜구니 뽀얀 안개 속 / 홀로 울고 가는 / 가냘픈 네 뒷모습이 아른거린다.”시인 유정의 ‘램프의 시’(1958)다. 이 시를 처음 읽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유정은 그렇게 널리 알...

    885호2010.07.20 15:42

  • [2010 연중기획]일본 초고속 경제성장 엔진 ‘점화’
    일본 초고속 경제성장 엔진 ‘점화’

    전쟁을 치른 국가의 경제가 온전할 수는 없다. 미국을 상대로 총력전을 펼친 태평양 전쟁 종전 후 일본은 더더욱 그랬다. 전쟁 기간에 일본은 전체 국가 재산의 4분의 1을 날렸다. 도심의 주택은 3분의 1이 파괴됐다. 그러나 일본은 종전 후 19년 만에 수도 도쿄에서 올림픽을 치를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한국전쟁은 이처럼 초고속으로 주행한 일본 경제의 엔진에 불꽃을 피우는 역할을 했다.전후 일본 국민의 생활은 최저 수준을 맴돌았다. 몇 가지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1945년 쌀 생산은 1903년 이래 최저 수준이었다. 필요한 식량의 20%만이 배급됐다. 1946년 도쿄 시민들의 1인당 하루 영양 섭취량은 1352칼로리에 불과했다. 당시 미국인의 경우 3300칼로리였다.물가는 폭등했다. 1945년 도매물가지수는 10년 전에 비해 3.5배 높았다. 이 수치는 1년 뒤에는 16.3배, 2년 뒤인 1947년에는 48.2배가 되고 불과 4년 뒤인 1949년에는 ...

    885호2010.07.20 15:24

  • [2010 연중기획]한국 개신교 반공주의 통해 급성장
    한국 개신교 반공주의 통해 급성장

    전후 한국경제의 눈부신 성장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낳았다. 기적적인 성장을 보인 건 또 있다. 한국 개신교다. 전쟁 중에 천막을 전전하던 한국 개신교는 불과 60년 만에 전 세계 50개 대형 교회 가운데 27개를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했다.한국 개신교는 반공주의를 먹고 자랐다. 한국 개신교에 반공주의의 싹이 뿌려진 것은 일제 식민지 시기다. 1932년 9월 예수교연합공의회 제9회 총회에서 발표된 12개조의 ‘사회신조’에는 “일체의 유물교육 유물사상 계급적 투쟁 혁명수단에 의한 사회개조와 반동적 탄압에 반대”한다는 문구가 들어 있다. 강인철 한신대 교수는 <한국의 개신교와 반공주의>에서 “1930년대 초에 사회교리라는 형식으로 반공주의를 교리의 수준으로 끌어올림으로써 개신교 ‘전체’가 반공주의로 정리된 셈”이라고 평가했다.전쟁은 한국 개신교의 반공주의...

    884호2010.07.14 15:04

  • [2010 연중기획]‘신화’ 객관적 조명 통해 교훈 얻어야
    ‘신화’ 객관적 조명 통해 교훈 얻어야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서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은 북한의 침공으로부터 남한을 구한 전쟁 영웅의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박태균 교수는 그러나 맥아더에 관해 알려져 있는 많은 사실이 잘못된 허구라고 말한다. 그는 군의 지휘계통을 무시하면서까지 한국전을 세계대전으로 확산시키려 한 위험한 군인이었다는 것이다.인천항이 보이는 자유공원에 섰다.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에 있는 자유공원은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조선 고종 25년(1888년) 11월 9일 인천항구 각국 조계장정 제1관에 의해 공원으로 확정됐으며, 도면에 미국·영국·러시아·청·일본 등 각국 외교관이 공동 서명하고 러시아 토목기사 이바노비치 세레딘 사바틴이 측량해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각국공원, 만국공원으로 부르던 것을 1914년 각국 지계제도의 철폐와 함께 일본인들이 서공원으로 호칭했다. 그러다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수복할 당시 맥아더 장군이 ...

    884호2010.07.14 1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