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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연중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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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연중기획]사회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독립운동 재조명
    사회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독립운동 재조명

    청년들에게 꿈이란 그들의 존재 증명서와도 같은 것이다. 나라를 잃고 이 땅에서 꿈을 찾을 수 없었던 조선 청년들은 외국으로 갔다. 일부는 미국으로 눈을 돌렸고, 또 다른 이들은 중국과 소련으로 갔다. 박태균 교수는 이번 글에서 중국과 소련에서 사회주의 이념으로 무장하고 독립운동을 벌이다 해방 후 분단된 조국에서 잊혀지거나 폄하된 이들을 재조명한다. 가팔랐던 20세기 세계사의 흐름은 결국 자본주의의 손을 들어주었다. 조선 독립과 근대화를 추진할 이념적 동력으로 사회주의를 선택했던 식민지 시기 사회주의자들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부족했던 것일까. 박태균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매 학기 한국근현대사 수업을 하면서 가장 곤란한 질문의 하나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질문들이다. 100년 전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후의 발전 양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19세기 말 선교사들이 찍은 서울의 사진과 1920년대 이후 식민지 하에서의 서울의 모습은 거의 ...

    894호2010.09.29 14:31

  • [2010 연중기획]상하이는 신문물·신사상의 중심지
    상하이는 신문물·신사상의 중심지

    어떤 도시의 인상을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다. 상하이는 무엇보다 그 규모로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상하이는 서울 크기의 도시 11개를 수용할 수 있는 면적이다. 인구는 서울의 2배 가까운 1900여만명이다. 지난 8월 19일부터 21일까지 역사연중기획 시리즈 연재를 위해 김호기·박태균 교수와 함께 찾은 거대 도시 상하이는 여러 가지 다채로운 모습이 한데 뒤엉켜 있는 용광로 같은 도시였다.한국인에게 상하이는 무엇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도시다. 상하이 도착 첫날인 8월 19일 오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는 한여름 열기가 엿가락처럼 들러붙어 있는 상하이 도심 한편에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서있었다.임시정부 청사의 주소지는 상하이 루완구 마당루다. 상하이 도심 한복판에 있긴 하지만 대형 마천루들이 늘어선 대로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이어서 차량이나 유동인구가 많지 않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3일 수립됐...

    894호2010.09.29 14:30

  • [2010 연중기획]황푸장 강변에서 생각하는 식민지 시대
    황푸장 강변에서 생각하는 식민지 시대

    지난 8월20일 밤, 김호기 교수는 상하이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동방명주를 바라보며 정태춘의 노래 ‘동방명주’를 떠올렸다. 상하이 푸단 대학에서 박태균 교수, 푸단대 한국학연구소 연구원들, 「Weekly경향」 취재진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혼자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동방명주는 조선족 동포들이 인천과 단둥 사이를 오갈 때 이용하는 여객선 이름이기도 한데, 김 교수는 이 노래를 떠올리며 식민시대 조선인의 아픔을 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김 교수는 이번 글에서 조선총독부가 강력한 감시국가체제를 통해 조선을 지배했다는 점을 밝히면서 여전히 이 땅에 남아있는 식민지의 잔재를 걷어내야만 진정한 현대성을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일병합에서 전태일 열사 분신에 이르는 우리 현대사를 돌아보는 이 기획을 연재하면서 새삼 떠오른 생각 중 하나는 지난 100년 가운데 절반의 역사를 내가 살아왔다는 점이다. 60년대와 70년대까지 10대를 보냈고, 80년대와 90년대에 20~30대...

    893호2010.09.15 10:35

  • [2010 연중기획]망국의 한을 품은 조선 청년들은 왜 상해로 갔나
    망국의 한을 품은 조선 청년들은 왜 상해로 갔나

    상해는 떠오르는 중국의 상징이다. 도심 곳곳에 치솟은 마천루와 명품관으로 즐비한 번화가를 누비는 젊은이들은 중국에 몰려드는 자본의 힘을 웅변한다. 한 세기 전 나라를 빼앗긴 조선 청년들은 바다를 건너 상해로 갔다. 상해는 난징조약 이후 서양 열강의 조계지로 중국 내 서구문화 수용의 근거지이자 중국 공산당의 제1회 전당대회가 열린 장소이기도 하다. 무엇이 망국의 한을 품은 청년들을 상해로 데려간 것일까.그들은 그곳에서 어떤 꿈을 꾸었던가. 박태균 교수는 지난 8월19~21일 상해를 찾아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모색했다. 중국 사람들은 상해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상해는 떠오르는 중국(rising China)의 상징이다. 푸둥 지역의 마천루는 중국인들의 자부심이다. 그래서 푸둥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웨이탄 지역에 가면 관광객보다도 중국인들이 더 많다. 그리고 올해 상해에서는 엑스포가 열렸다.상해에서 만난 한 중국인 제자는 기어코 ‘신천지’를 ...

    892호2010.09.08 17:13

  • [2010 연중기획]한·일 할머니를 짓누르는 ‘전쟁의 기억’
    한·일 할머니를 짓누르는 ‘전쟁의 기억’

    1910년 8월 한일 강제병합. 그리고 100년이 흐른 2010년 8월.한국과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 일본인, 재일조선인, 그리고 애초 북한 국적을 가졌으나 지금은 한국 국적을 갖게 된 탈북자. 이런 다양한 청년 50여명이 침략, 식민, 전쟁, 분단의 역사 현장(일본/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전쟁피해자를 만나면서 ‘역사의 진실을 바로보고 동북아 평화의 미래를 함께 열자’는 뜻을 모아 7박 8일간의 ‘역사캠프’를 떠났다. 한국에서 KYC(한국청년연합)와 동북아역사재단, 일본에서 NPO법인 세이피스프로젝트(SayPeaceProject)와 KEY(재일코리안청년연합)가 함께 한 행사다.오키나와에서 살아난 일본할머니의 기억2010년 8월 3일. 도쿄대학교 정문 근처 조그마한 강의실. 역사캠프 참가자들은 백발에다 허리가 약간 구부정한 가미에다 치요(上江田 千代) 할머니(81)를 만났다. 오키나와 전투의 생존자다. 할머니는 당시 계란 크기의 감자 2개와 소금국으로 버티...

    892호2010.09.08 17:12

  • [2010 연중기획]훙커우 공원에서 생각해 본 윤봉길 의사와 민족주의
    훙커우 공원에서 생각해 본 윤봉길 의사와 민족주의

    한일병합 100주년을 맞이하여 민족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100년 전 상황과 유사성 혹은 위기담론은 이른바 보수와 수구를 넘어 지난 시절 즐겨 사용하던 메타포이기도 했다. 「Weekly경향」 취재팀은 8월 중순 중국 상하이를 찾았다. 윤봉길 의사가 거사를 한 훙커우 공원을 돌아봤다. 세계화 시대에서 민족주의는 아직도 유효한 가치인가. 흔히 글로컬라이제이션으로 일컬어지는 전지구적 경제와 문화적 통합 시대에 ‘민족’은 어디로 가야 할까. 요즘은 다소 뜸해졌지만 마포에 살았을 때 주말이면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바람을 쐬러 간 적이 적지 않았다. 마포에서 당일치기로 갔다 오기에 적합한 곳은 충청남도 지역이다. 당진, 서산, 예산, 그리고 홍성 등이 바로 그곳이다.내포 지방이라 불리는 이 지역이 필자에겐 낯익은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해안 고속도로가 열린 후 적잖이 이곳을 왕래하게 되면서 이 지역 산야와 풍경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리 높지 않은 산들과 그 사이에...

    891호2010.09.01 17:10

  • [2010 연중기획]강제병합 반대 ‘양심있는 일본인’
    강제병합 반대 ‘양심있는 일본인’

    “나는 일본인만을 위하여 합병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한국인을 위해서도 축하한다. 오직 한·일 양 국민을 위해 축하할 뿐만 아니라 ‘신국 발전’을 위해서도 축하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내가 한국인의 주의를 촉구하고 싶은 바는 많이 있으나, 우선 한국이 망국이 되고 자신들이 망국인이 되었다는 천박한 감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관점에서는 한국은 멸망한 것이 아니라 부활한 것이다.”강제병합조약 체결 직후인 1910년 9월 한 일본인이 쓴 글이다. 합병을 ‘망국’이 아니라 ‘부활’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강제병합을 신학적인 차원에서 정당화하고 있다. 글쓴 이의 이름은 에비나 단죠. 조선인에 대한 전도를 통해 내선일체를 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일본 조합교회의 리더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 서구 근대문명의 세례를 가장 폭넓게 받았던 기독교계 인사들의 인식이 대개 이러했다. 식민지배를 강행한 일본 정치인들이나 일반적인 일본 국민들의 인식 수준은 더 말할 나위가 없...

    891호2010.09.01 17:09

  • [2010 연중기획]근대화 유혹을 떨치지 못한 조선 개화파의 오판
    근대화 유혹을 떨치지 못한 조선 개화파의 오판

    100년 전 일본에게 서양은 따라야 할 모범이었다. 조선 지식인들의 눈에는 일본이 바로 그랬다.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국가였고, 도쿄는 그 제국의 수도였다. 도쿄를 찾은 박태균 교수는 당시 조선 지식인들이 민족의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조선의 근대화를 앞당기는 데만 몰두한 나머지 친일과 부일의 정당성을 스스로 내면화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야말로 조선이 가장 빨리 근대화를 달성하는 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한국의 1만원권에 세종대왕이 있다면 일본의 1만엔권에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있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유명한 사람이 아니지만, 한국근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인물이다. 개화기의 유길준과 김옥균에게 사상적 영향을 준 일본의 사상가이자, 일본의 명문 사립대학인 게이오대학을 설립한 인물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조선시대 대표적 군주의 한 사람이라면,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에서...

    890호2010.08.26 14:04

  • [2010 연중기획]욱일승천기는 아직도 펄럭이고 있었다
    욱일승천기는 아직도 펄럭이고 있었다

    일본 취재 첫날인 지난 7월25일, 하네다 공항에 내려서 「Weekly경향」 취재팀이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가나가와현 요코스카(橫須賀)시였다. 미우라(三浦) 반도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미우라는 페리제독의 흑선에서 내린 미국인들이 처음으로 밟은 일본 땅이다.안내를 맡은 모토씨의 설명에 따르면 요코스카는 일제 시대 이래 일관되게 군사도시였다. 일제시대에는 제국해군의 기지가 있었고, 전쟁 후에는 다시 주일미군 해군사령부, 제7함대사령부가 이곳에 자리잡았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기지도 이곳에 있다. 모토씨에 따르면 요코스카는 일본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정치적 고향이기도 하다.바다에 인접해 있는 다이에이 백화점에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친 뒤, 미군기지가 있는 아즈마섬 주변을 일주하는 유람선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배를 탔다. 중국인 관광객도 상당히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안내방송은 유감스럽게도 일본어로만 나왔다. 바다에 정박한 주일미군과 자위대 함...

    890호2010.08.25 23:16

  • [2010 연중기획]진정한 반성 없다면 공존 불가능
    진정한 반성 없다면 공존 불가능

    지난 5월 10일, 한국과 일본 지식인 200여명이 100년 전 한일병합 조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지난 10일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에 대해 사과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삶은 주장과 선언에 포획되지 않는 것이다. 김호기 교수는 이번 글에서 1945년 2월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시인 윤동주를 떠올린다. 김 교수는 식민지배가 한 시인의 영혼에 새겨놓은 상흔을 들여다보면서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반성이 없는 한 소망스러운 한·일관계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편집자주>필자는 1960년에 태어났다. 일제시대 경험이 없는 필자에게 식민지 시대가 어떠했는지는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지난 50년 가까이 간접적으로 체험한 식민지 시대가 필자의 사고에 큰 영향을 미쳤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모더니티에 관심을 두고 있는 연구자로서 식민지 시대에 대한 이해는 우리 모더니티 연구의 출발점...

    889호2010.08.18 1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