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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렌즈로 본 세상] 아물지 않은 ‘아픔’이 묻힌 땅
    아물지 않은 ‘아픔’이 묻힌 땅

    섬이 하나의 큰 무덤이 됐던 때가 있다. 77년 전의 제주도였다. 양민 3만여명이 죽었다. 광기의 피바람이 끝나갈 때쯤 6·25전쟁이 터졌다. 이승만 정부는 인민군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며 미리 잡아둔 예비검속자를 처형하라 지시했다.서귀포시 모슬포 양곡창고에 347명의 양민이 감금돼 있었다. 1950년 8월 20일 밤중이었다. 창고에 있던 250명이 섯알오름 큰 웅덩이로 끌려 나왔다. 총성은 두 차례 울렸다. 해병대와 경찰은 합동으로 새벽 2시와 5시경에 61명, 149명을 총살했다. 가족들은 시신을 수습할 자유마저 빼앗긴 채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 6년 8개월이 지난 1957년에 거의 형체도 알 수 없는 시신 149구의 유골을 수습했다. 132구의 시신은 공동 묘역에 안장했다. 유족들은 묘비를 세워 이곳을 ‘백조일손지묘’라 칭하고 뒷면에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100명도 넘는 사람이 한날 한곳에서 죽임을 당해 같은 곳에 묻혔다. 백조일손은 ‘백 할아버지의...

    1623호2025.04.08 06:00

  • [렌즈로 본 세상] 영남권 덮친 ‘괴물 산불’
    영남권 덮친 ‘괴물 산불’

    경북 의성군의 한 야산에서 3월 22일 발화된 불길이 이튿날인 23일 오후 어둠에 묻힌 야산을 시뻘겋게 집어삼키고 있다. 화마에 발톱을 달아준 것은 거센 봄바람. 27일 찔끔 내린 비로는 이 괴물 같은 산불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괴물은 급기야 하늘을 나는 헬기마저 떨어뜨렸다.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사망자가 27명(3월 27일 기준)이라고 밝혔다. 나이가 많아 민첩하지 못한 고령자들의 피해가 컸다. 대피한 주민은 3만7000여명이다. 피해 산림면적은 3만6009㏊로 집계됐다. 역대 최악으로 기록됐던 2000년 동해안 산불의 피해면적 2만3794ha를 1만ha 이상을 넘어선 것이다.‘괴물 산불’은 의성군의 천년 고찰 고운사마저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영양군의 작은 절 법성사도 덮쳤다. 불에 타 무너진 사찰 건물 안에는 주지 스님이 소사 상태로 발견됐다. 주민들이 “부처 그 자체였던 분”이라던 스님은 연세가 있어 거동이 불편했다고 한...

    1622호2025.04.01 06:00

  • [렌즈로 본 세상] 과거와 현재의 공존
    과거와 현재의 공존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지난 3월 16일 2025학년도 신입생 환영회 ‘2025 신방례’가 열렸다.신방례는 조선시대 과거시험에 합격한 유생들을 위한 환영식이자, 선배들이 신입 유생들을 대상으로 치렀던 일종의 통과의례를 뜻한다.이날 행사는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들에게 유생들이 인사를 올리는 ‘알묘’, 선후배가 서로 인사하며 정식으로 대면하는 ‘상읍례’, 신입생이 선배 유생을 대접하는 ‘소신방례’ 등을 재해석해 진행됐다.행사에 참여한 소프트웨어학과 25학번 신입생 김재빈씨(19)는 “유생 복장을 갖춰 입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전통을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특색 있어서 좋다”며 “대학교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디자인학과 신입생 최서영씨(20)는 “더 넓게 생각하고 배우기 위해 대학에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과 톱’이 되고 싶다”며 “또 통기타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축제 때 무대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

    1621호2025.03.25 06:00

  • [렌즈로 본 세상]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

    보랏빛 팬지와 비올라, 노란 양귀비, 분홍빛 제라늄, 하얀 크리산세멈…. 경기 고양시 덕은양묘장의 비닐하우스에서 봄 향기가 코끝에 묻어났다. 비닐하우스 밖의 무채색 풍경과 대비되는 화사한 꽃 빛깔에 눈도 즐거워진다.축구장 4배 크기의 부지에 80여개의 비닐하우스 시설을 갖춘 덕은양묘장은 고양시가 아니라 서울시가 운영한다. 여기서 자란 어린 꽃들이 때가 되면 서울의 곳곳에 옮겨 심어진다. 10명의 직원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다. 잡초를 뽑고, 물을 주고.서울의 봄은 고양시에서 찾아온다.

    1620호2025.03.18 06:00

  • [렌즈로 본 세상] 큰고니의 설레는 귀향 채비
    큰고니의 설레는 귀향 채비

    삼일절 연휴인 지난 3월 2일.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듯 잔뜩 찌푸려 있었다. 큰고니 사진을 찍기 위해 망원렌즈를 들고 나섰다. ‘혹시나 다 떠났으면 어쩌나?’ 하는 심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착한 곳은 경기 하남시 팔당대교 아래 당정섬. 섬 주변은 겨울 철새인 큰고니가 월동하는 대표적인 장소다. 부산 을숙도에 이어 제법 많은 수의 고니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조류 사진 마니아들에게는 유명한 출사지다.큰고니는 보통 2월 말에서 3월 초면 우리나라를 떠나 북쪽으로 날아간다. 도착해보니 다행히 큰고니는 아직 월동지를 떠나지 않았다. 큰고니 수십 마리가 강물 위에 옹기종기 모여 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한파는 풀렸지만 매서웠다. 큰고니 무리는 연신 자맥질을 하며 깃털을 고르고 있었다. 마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단장을 하는 듯했다. 몇몇은 큰 날개를 연신 퍼덕이며 몸을 풀었다. 날이 풀리고 봄이 서서히 오고 있다. 큰고니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1619호2025.03.11 06:00

  • [렌즈로 본 세상] 봄은 어떻게 생겼을까
    봄은 어떻게 생겼을까

    외지인이 드문 동네에 큰 카메라를 메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신기했던 주민들이 뭐하냐고 물었다. “봄을 찾으러 왔는데요. 봄이 안 보여요.”봄을 찾으러 왔다는 말은 왠지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푸릇푸릇한 무언가를 기대하며 남쪽 땅끝까지 간 것이 무색하게 봄이 꼭꼭 숨어버렸을 때의 기분이란…. 봄은 도대체 어디 있을까? 봄은 초록색일까? 꽃일까? 햇볕일까? 봄이 어떻게 생겼을지 고민하며 지난 2월 26일부터 이틀 동안 남도를 돌아다녔다.영 잘 몰라 보이는 기자를 도와주고 싶었던 주민들의 의견은 다양했다. “이번 주말에 비가 온다는데, 비가 오고 나면 봄이 오겠지”, “입춘이 지났으니까 봄은 봄이야”, “아직 추우니까 한 2주는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모내기할 때는 돼야 봄이지. 아직 꽃도 하나도 안 폈어.”꽃이 하나도 없다고 실망하는 나에게 한 주민은 말했다.“꽃 좀 안 피면 어때? 햇볕이 이렇게 따뜻하잖아요. 이번 주에 안 폈으면 ...

    1618호2025.03.04 06:00

  • [렌즈로 본 세상] 벌써 그립다, 길원옥 할머니 ‘홀로 아리랑’
    벌써 그립다, 길원옥 할머니 ‘홀로 아리랑’

    고백하자면, 기자가 되고 나서야 수요시위를 경험했다. 7년 전 처음 찾아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는 나흘 전 돌아가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기정 할머니의 영정이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길원옥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다시 꺼내 본 사진 속 할머니는 엉성하고 어설픈 앵글 안에서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이따금 찾는 시위 현장에서 할머니는 부채질하며, 때로는 두꺼운 목도리를 두른 채 일본의 사과를 요구했다. 어릴 적 가수가 꿈이었던 할머니는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현장을 지켰다.지난 2월 19일 찾은 수요시위 현장에는 길원옥 할머니의 노랫소리 대신 그의 영정이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 지난 2월 16일 향년 97세로 세상을 떠났다. 수요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은 영정에 헌화하고, 묵념하며 할머니를 추모했다. 일부 시민들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뷰파인더로 할머니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졌다.“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보...

    1617호2025.02.25 06:00

  • [렌즈로 본 세상] 하늘을 볼 때마다 널 기억할게
    하늘을 볼 때마다 널 기억할게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1학년 김하늘양을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하늘양이 다니던 초등학교를 지난 2월 12일 찾았다. 학교의 담장을 따라 하늘양을 추모하는 꽃들이 놓여 있었다.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인형, 젤리, 캐릭터 과자, 초콜릿도 있었다. 우유와 과자를 들고 온 학생들이 우유 팩을 열고 과자봉지를 뜯어 조심스럽게 담장 앞에 놓았다. 이날 국화꽃을 들고 분향소를 찾은 중학교 2학년 학생은 눈물을 흘렸다. 학생이 적은 추모의 쪽지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언니지만 하늘을 볼 때마다 기억할게!”하늘양은 지난 10일 오후 5시 50분쯤 학교 안 시청각실 창고에서 흉기에 찔린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가해자는 이 학교의 40대 교사 A씨로 확인됐다. A씨는 하늘양을 살해하기 전부터 동료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업무용 컴퓨터를 훼손하는 등 이상징후를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질병 휴직에 들어갔던...

    1616호2025.02.18 06:00

  • [렌즈로 본 세상] ‘얼음이 녹는다’…지구의 경고
    ‘얼음이 녹는다’…지구의 경고

    매서운 한파에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 ‘입춘’마저 사라졌다. 입춘인 지난 2월 3일 서울에 올해 첫 한파경보가 발효된 이후로 전국 대부분 지역의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돌았다. 한강의 상·하류에는 유빙이 관측됐고 강변에는 고드름이 맺혔다. 옷을 겹겹이 껴입고 핫팩을 손에 쥔 시민들도 몰아치는 칼바람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한파경보는 영하 15도, 주의보는 영하 12도 이하인 날이 이틀 이상 지속할 것으로 예상될 때 발효된다.절기에 맞지 않는 한파의 주된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북극 온난화다. 북극의 한기는 평소 ‘폴라 보텍스’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갇혀 있다. 차가운 폴라 보텍스를 제트기류가 잡아두고 있었는데, 북극 기온이 오르면서 제트기류가 힘을 잃고 한기가 한반도까지 내려온 것이다.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연구소(C3S)는 지난 2월 2일(현지시간) 북극 기온을 영하 1도로 관측했다. 과거 1991∼2020년 평균보다 20...

    1615호2025.02.11 06:00

  • [렌즈로 본 세상] 엄혹한 시절에도…설레는 ‘설’
    엄혹한 시절에도…설레는 ‘설’

    설 연휴를 이틀 앞둔 지난 1월 23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과 청량리시장을 찾았다. 장터는 북적였다. 상인들은 물건을 정성스럽게 진열한 뒤 손님들을 기다렸고,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은 카트를 끌거나 장바구니를 메고 가게 앞에 서서 신중하게 물건을 골랐다.“생선 한 마리 사가서 누구 코에 붙여요.” 생선가게 상인이 두툼한 굴비 한 마리를 사는 한 노인에게 짓궂은 농을 건넸다. 노인은 웃으며 노련하게 답했다. “아휴 생선만 먹나? 떡국도 먹고, 고기도 먹고 과일도 먹지!” 노인의 카트에는 과일과 떡국용 떡, 나물 등이 담겨 있었다. 시장 입구에서 홀쭉했던 시민들의 카트와 장바구니는 시장 이곳저곳을 돌며 그득하게 채워졌다.시장을 나온 노인들이 버스정류장에 앉아 집에 갈 버스가 오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툼해진 카트와 장바구니를 옆에 두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노인들의 모습이 꽤 정겹게 보였다.

    1614호2025.01.28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