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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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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렌즈로 본 세상]결과 존중하며, 다시 일상으로
    결과 존중하며, 다시 일상으로

    제21대 대통령선거가 막을 내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49.42%(1728만7513표)의 득표율로 당선했다.누군가의 당선이 선거의 끝은 아니다. 선거 기간에 설치한 각종 선거홍보물을 정리하고, 관련 후속 조치가 이뤄져야 비로소 선거가 마무리된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다음 날인 6월 4일부터 전국 각지에서 선거 벽보와 현수막 등 선거홍보물 철거 작업을 시작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현수막과 벽보는 설치한 자가 선거 종료 후 자진 철거해야 한다. 철거 현장에 있던 한 선관위 관계자는 “이번 선거는 유독 벽보와 현수막 훼손 행위가 많았다”며 “선거 문화를 해치는 행위가 반복돼 안타깝다”고 말했다.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선거일 기준 선거범죄 2295건, 총 2565명을 단속했으며, 이중 8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범죄 유형별로는 현수막·벽보 훼손이 1907명(전체의 74.3%)으로 가장 많았다. 선거 벽보가 철거된 자리는 원래 그곳에 있던 평범한 벽으로 돌아...

    1632호2025.06.10 06:00

  • [렌즈로 본 세상] 천천히 먹어, 내일 보자
    천천히 먹어, 내일 보자

    만 19세, 김군의 20세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2016년 5월 28일 오후 5시 57분,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의 강변역 방향 9-4번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노동자가 사망했다. 안전장치 수리 작업은 2인 1조로 해야 하는 게 원칙이지만, 인력 부족과 빠듯한 작업 시간 때문에 지켜지지 않았다. 외주 업체 직원이었던 김군은 혼자 작업하다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숨졌다.사고 9주기였던 지난 5월 28일, 서울 광진구 구의역 승강장 앞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스크린도어 앞에 국화가 놓였다. “천천히 먹어, 내일 보자”라고 쓰인 포스트잇과 함께 컵라면과 도시락이 놓였다. 한 무리의 사람이 국화를 놓고 묵념하는 동안에도 열차는 시간에 맞춰 들어왔다 떠났다. 먹고살려고 일하는 걸 텐데 사람들이 자꾸 일하다 죽는다. 우리는 사람이 일하다 죽은 곳에서 다시 일한다. 이다음엔 또 누가 죽을지 두려워하면서, 추모해야 할 노동자들의 이름이 점점 셀 수 없이 늘어나...

    1631호2025.06.03 06:00

  • [렌즈로 본 세상]20대 표심은 누구에게 향할까
    20대 표심은 누구에게 향할까

    지난 5월 20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2025 봄 대동제가 열렸다. 캠퍼스 곳곳에 설치된 천막에서 학생들은 자기네 학과 특색을 살린 음식을 만들어 팔았다. 중국어과 학생들은 양꼬치를 구웠고, 아랍어과는 두바이 초콜릿이 들어간 와플을, 프랑스어과는 파르페를, 독일어과는 소시지를 만들었다.먹음직스러운 음식들 사이로 투표용지가 보였다. 대동제 선거에 출마한 후보는 단 두 명.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단일화에 성공한 것일까? ‘더불어바나나’ 소속 딸기 바나나 셰이크 후보, ‘국민의핫’ 소속 핫도그 후보가 경쟁했다. 사진 속 학생은 국민의핫 후보 핫도그를 뽑았다. 불닭과 케첩 중에서는 불닭에 투표했다.대선을 2주가량 남긴 날이었다. 학교 밖에는 진짜 후보들의 현수막이 붙었고, 정문에는 커다란 손팻말을 든 선거운동원이 지지를 호소했다. 계엄 이후 국회로, 광장으로, 헌재로 달려갔던 20대는 2주 뒤 투표소에서 누구를 뽑을까?

    1630호2025.05.27 06:00

  • [렌즈로 본 세상]“일 사죄는 언제” 애타는 마지막 배웅
    “일 사죄는 언제” 애타는 마지막 배웅

    뜨거웠던 정오의 볕은 고 이옥선 할머니 얼굴로 쏟아지고 있었다. 부축을 받으며 느릿하게 걸어 나온 이용수 할머니(97)가 오랜 친구의 영정 앞에 다가가 손을 흔들었다. 액자 속의 할머니와 액자 밖의 할머니는 모두 웃고 있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친구의 영정 앞에 카네이션 한 송이를 내려놓으며 이야기했다. 남은 자가 떠난 자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였다.“잘 가게 고생했네.”매주 수요일 정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들은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으로 모여든다. 지난 5월 14일에 열렸던 제1700회 수요시위에서는 사흘 전에 세상을 떠난 이옥선 할머니를 기렸다.이용수 할머니가 물었다. “정부는 우리의 죽음을 기다리는가?” 33년간의 시위에 정부는 침묵했다. 침묵은 국가의 방식이었고, 기다림은 피해자의 몫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이제 6명이다.

    1629호2025.05.20 06:00

  • [렌즈로 본 세상] “바쁘다 바빠” 분주한 선관위
    “바쁘다 바빠” 분주한 선관위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불법 계엄 이후 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 나기까지 사회는 극단적으로 양분돼 혐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헌법의 가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으로 차가운 겨울의 거리를 밤낮없이 지킨 시민들의 노력으로 헌정사상 두 번째 조기 대선을 치르게 됐다.제21대 대통령선거일은 6월 3일이다. 6월 대선은 사상 처음으로 이를 위한 공식 일정도 숨 가쁘다. 5월 10~11일 양일 간 후보 등록에 이어 12일부터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재외 투표는 20일부터 25일까지, 본투표는 다음 달 3일이다. 차기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수위원회 없이 선거 다음 날인 6월 4일 곧바로 임기를 시작한다.지난 5월 8일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종로구 사무실에서 홍보 포스터 등 대통령선거 관련 인쇄물을 점검하고 있다.

    1628호2025.05.13 06:00

  • [렌즈로 본 세상] 내 마음과 세상 밝히는 연등
    내 마음과 세상 밝히는 연등

    불기 2569년 부처님 오신 날을 일주일 앞둔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이 형형색색의 연등으로 물들었다. 불자뿐만 아니라 가족 나들이객과 외국인 관광객은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연등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었다. 연등은 우리의 마음을 밝고 맑고 바르게 하여 불덕(弗德)을 기리고, 등불로 어두운 세상을 밝힌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과 소중한 사람을 위한 소망을 담은 소원지를 함께 매달기도 한다.‘연등 달아드립니다’ 현수막이 달린 지게차가 쉴 새 없이 이곳저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지게차가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건강, 안녕, 행복 등을 담은 소원도 하나씩 저 높이 하늘로 떠올랐다. 연등을 단 사람들은 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해가 지면, 수많은 소망이 담긴 연등이 아름답게 빛나며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있을 것이다.

    1627호2025.05.06 06:00

  • [렌즈로 본 세상] 청계천의 책멍, 물멍
    청계천의 책멍, 물멍

    가을 못지않게 봄도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다. 실내도 좋지만 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야외라면 더 운치가 있다. 졸졸 시냇물이 흐르는 개울가라면 금상첨화다. 때마침 서울시가 운영하는 야외도서관이 청계천에 개장했다. 이름하여 ‘책 읽는 맑은 냇가’다. 모전교와 광통교 사이에 마련됐다. 냇가에 앉아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을 수 있다.세계 책의 날이었던 지난 4월 23일, 점심때가 되자 주변 직장인들이 한꺼번에 야외도서관에 몰려들었다. 10여 분도 지나지 않아 준비된 의자가 모두 동이 났다. 물가에 앉은 시민들은 청계천 물소리와 함께 독서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화창한 날씨에 책 속에 빠져든 시민들의 표정이 여유로웠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청계천에서 책을 읽는 이색적인 장면이 펼쳐지자 눈길을 떼지 못했다. 서울광장에 마련될 ‘책 읽는 서울광장’은 어린이날 연휴인 5월 4일부터 시민들을 맞이한다.

    1626호2025.04.29 10:13

  • [렌즈로 본 세상] 잊히지 않는 그리움, 11번째 봄
    잊히지 않는 그리움, 11번째 봄

    “오랜만에 학교 주변 벚꽃을 구경하라고 엄마 아빠가 벚꽃을 가져왔어요.”경기 안산에서 온 꽃잎이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인근 해역에 흩날렸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유가족은 올해도 어김없이 참사해역을 찾고 추모식을 열었다. 유가족이 사비로 어선을 빌려 시작했던 선상 추모식은 목포해경의 도움을 받아 3000t급 경비함을 타고 오는 것으로 11년째 이어지고 있다. 침몰 시각인 오전 10시 반이면 사고 지점을 표시해둔 노란 부표가 보이는 곳에서 행사가 시작된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이름, 단원고 희생자 250명을 1반부터 10반까지 순서대로 호명한다. 이번엔 특별히 국화와 벚꽃을 같이 헌화했다.고 김빛나라양의 어머니 김정화씨는 “4월에 벚꽃에서 사진을 안 찍은 아이들이 없는데 날리는 꽃잎을 보여주고 싶었어요”라며 꽃을 챙겨 온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처음엔 꼭 이 장소여야 하나 생각했다가 어느 순간 이곳에 오면 온전히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돼 ...

    1625호2025.04.22 06:00

  • [렌즈로 본 세상] 눈물로 일구는 추모의 숲
    눈물로 일구는 추모의 숲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환경단체 활동가들과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 유가족들이 나무를 심으며 환경 참사 피해자들을 추모했다. 지난 4월 8일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아시아직업환경피해자권리네트워크가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서 추모 행사를 열고 가습기 살균제, 석면 등으로 숨진 피해자들을 추모하며 나무를 심었다. 올해 추모 행사에는 지난 2020년 인도에서 발생한 LG화학 가스 누출 참사로 숨진 인도 주민들을 추모하는 나무도 함께 심었다.나무 심기에 대한 간단한 교육을 받은 행사 참가자들은 공원 산책로 옆 비탈길에 쉬나무, 산딸나무, 굴참나무 등 30그루의 묘목을 심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6개월 된 아이를 잃은 김홍석씨는 나무 아래에 영정을 놓으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이자 유가족인 민수연씨는 나무를 심은 뒤 기도하듯 하늘을 응시했다. 환경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 앞에 묵념하며 행사는 마무리됐다.

    1624호2025.04.15 06:00

  • [렌즈로 본 세상] 아물지 않은 ‘아픔’이 묻힌 땅
    아물지 않은 ‘아픔’이 묻힌 땅

    섬이 하나의 큰 무덤이 됐던 때가 있다. 77년 전의 제주도였다. 양민 3만여명이 죽었다. 광기의 피바람이 끝나갈 때쯤 6·25전쟁이 터졌다. 이승만 정부는 인민군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며 미리 잡아둔 예비검속자를 처형하라 지시했다.서귀포시 모슬포 양곡창고에 347명의 양민이 감금돼 있었다. 1950년 8월 20일 밤중이었다. 창고에 있던 250명이 섯알오름 큰 웅덩이로 끌려 나왔다. 총성은 두 차례 울렸다. 해병대와 경찰은 합동으로 새벽 2시와 5시경에 61명, 149명을 총살했다. 가족들은 시신을 수습할 자유마저 빼앗긴 채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 6년 8개월이 지난 1957년에 거의 형체도 알 수 없는 시신 149구의 유골을 수습했다. 132구의 시신은 공동 묘역에 안장했다. 유족들은 묘비를 세워 이곳을 ‘백조일손지묘’라 칭하고 뒷면에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100명도 넘는 사람이 한날 한곳에서 죽임을 당해 같은 곳에 묻혔다. 백조일손은 ‘백 할아버지의...

    1623호2025.04.08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