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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렌즈로 본 세상] 붉은 숨결로 다가오는 가을
    붉은 숨결로 다가오는 가을

    올해 여름은 끝나지 않을 듯 길다. 더위가 물러간다는 절기인 처서도 어느새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낮이면 숨이 턱 막히는 열기가 도시를 뒤덮고, 저녁이 돼도 식을 줄 모르는 더위는 사람들의 지친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한다. 그러나 자연은 묵묵히 계절을 따라가며 가을의 징표를 내어놓는다. 인천 강화군 석모도의 칠면초 군락이 바로 그 증거다.광활한 갯벌 위로 붉게 번지는 칠면초는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다. 봄에는 초록빛으로 자라나 여름의 더위를 견디고, 초가을이면 붉게 물들며 가을의 도래를 알린다. 지금은 마치 와인을 쏟아놓은 듯 진한 색감으로 여행객을 맞는다. 물때를 맞춰 갯벌을 찾으면 붉은 카펫을 깔아놓은 듯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 속에서도 칠면초는 계절의 순환을 증명한다. 더위는 언젠가 물러가고, 가을은 반드시 찾아온다. 붉은 군락 앞에 서면, 그 당연한 사실이 새삼 위로처럼 다가온다.

    1643호2025.08.26 06:00

  • [렌즈로 본 세상] 대남 확성기 철거?
    대남 확성기 철거?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철거에 나선 지 닷새 만인 지난 8월 9일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전방 일부 지역에서 대남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는 활동이 식별됐다”고 밝혔다. 한반도 평화 재건 공약을 내건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대북 확성기를 선제적으로 철거한 것에 대한 호응으로 풀이됐다.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1200㎜ 망원렌즈를 들고 파주 접경 지역으로 향했다. 렌즈를 북쪽을 향해 돌리자 인공기 나부끼는 북 초소가 시야에 들어왔다. 합참의 발표와 달리 대남 확성기가 보였다. 자리를 옮겨 다른 초소들을 살폈지만,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철거’ 소식에 초점을 맞췄으나 이날 확인한 모든 곳에서 대남 확성기를 찾을 수 있었다.“국경선에 배치한 확성기들을 철거한 적이 없고 철거할 의향도 없다.”지난 8월 14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우리 정부의 대북 긴장 완화 조치를 평가 절하했다. 이어 김 부부장은 “한국이 확성기를 철거하든, 방송을 중단하든, ...

    1642호2025.08.19 06:00

  • [렌즈로 본 세상] ‘모른다’는 두꺼움
    ‘모른다’는 두꺼움

    ‘모른다는 것’을 두께로 측정할 수 있다면, 김건희 여사는 매우 두꺼운 사람이다.“저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그는 카메라 앞에서 겸손처럼 들리는 말을 했다. 그러나 진실을 묻는 특검 앞에서는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하거나 모른다고 했다. 주가 조작, 명품 수수, 양평고속도로 개입 의혹 등 수사기관이 제시한 자료 앞에서 그는 자신이 얼마나 몰랐는지를 반복해 강조했다.우리는 종종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그 반대의 방식이 훨씬 더 효과적인 방어 수단처럼 보인다. ‘몰랐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럴 의도는 없었다’ 이 반복되는 레퍼토리는 이제 권력자의 생존 매뉴얼이 된 듯하다. 몰랐기에 책임도 없고, 몰랐기에 죄도 없고, 몰랐기에 무해한 존재일 뿐인가.오히려 그 반복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공감의 부재, 책임의 회피, 권력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이다. 사실과 기록 앞에서도 ‘몰랐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과 ...

    1641호2025.08.12 10:18

  • [렌즈로 본 세상] 뜨거워진 지구의 경고 ‘폭염’
    뜨거워진 지구의 경고 ‘폭염’

    한반도 곳곳이 역대급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의 열대야는 7월 한 달 동안 22일 나타나 1908년 기상관측 이래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기존 최다 기록은 1994년의 21일이었다. 유일하게 폭염특보가 내려지지 않은 지역이었던 강원도 태백도 지난 7월 29일 오전 10시를 기해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 같은 날 인천 하나개해수욕장은 본격적인 휴가철임에도 한산했다. 몇 안 되는 피서객마저 양산을 쓰고 따가운 햇볕을 피했다. 한 피서객은 “바닷물이 너무 미지근해서 놀랐다”라며 “이제 바다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기 쉽지 않을 거 같다”라고 말했다.가축과 양식어류 폐사도 잇따르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5월 20일부터 7월 28일까지 전국에서 128만7694마리의 가축이 폐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9만7079마리와 비교하면 6배다. 어민들은 폭염으로 인한 폐사를 막기 위해 수개월간 키운 물고기 10만마리를 바다에 방류했다. 해수온이 오르며 바닷물을 냉각수로 사...

    1640호2025.08.05 06:00

  • [렌즈로 본 세상] 물폭탄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손길
    물폭탄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손길

    지난 7월 19일 하루 300㎜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진 경남 산청군의 한 주유소. 이곳 직원인 박진주씨는 폭우에 밀려온 토사와 빗물이 사무실 안까지 들이치자 대피를 고민했다. 그 순간 주유소 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려주세요!” 토사에 휩쓸려 뒤집힌 승용차 안에는 할머니, 엄마 그리고 두 명의 어린이가 타고 있었다. 진주씨는 주유소의 다른 직원과 곧장 달려갔지만, 두 사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반쯤 토사에 잠긴 차량은 바위에 막혀 문도 열리지 않았다. 도로가 통제돼 구조대도 제시간에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자신도 위험한 처지였지만 진주씨는 위기의 가족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본인도 자녀를 둔 엄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망치를 들고 애를 쓰고 있을 때, 마침 주유소를 지나던 한 시민이 합류해 힘을 보탰다. 세 사람의 도움으로 일가족은 토사에 묻힌 차량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지난 7월 16일부터 20일까지 전국적으로 내린 폭...

    1639호2025.07.29 06:00

  • [렌즈로 본 세상]맑은 연꽃 향기로 찌든 마음 씻고
    맑은 연꽃 향기로 찌든 마음 씻고

    불볕더위가 연일 이어지던 지난 7월 11일 연꽃문화제가 열리고 있는 경기 양평군 세미원을 찾았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에 조성된 공원의 연못에는 만개한 연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도심의 불볕더위는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이곳에서는 산책로를 따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연꽃을 바라보던 관람객들은 자세를 취하고 사진을 찍었다. 어떤 나들이객은 다리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챙겨온 과일을 먹거나 누워서 낮잠을 자기도 했다.늦봄부터 피기 시작해 햇볕이 가장 뜨거운 7·8월에 만개하는 연꽃은 연못이나 논, 진흙과 같이 물 빠짐이 좋지 않은 곳에서 자라면서도 우아한 자태로 꽃잎을 피워내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한 노부부가 웃으며 말했다. “덥다고 집에만 있는 것보다 이렇게 나와서 물에 발 담그고 연꽃 보면 얼마나 좋아!”

    1638호2025.07.22 08:04

  • [렌즈로 본 세상] “반갑다, 여름” 설레는 휴양도시
    “반갑다, 여름” 설레는 휴양도시

    도시의 여름은 덥다기보다 무섭다. 에어컨 실외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유리창마다 태양빛을 반사하는 빌딩들 사이에서 서울 같은 도시는 인공의 열에 갇힌 큰 섬이 된다. 하지만 여름이 돼야 비로소 진짜 얼굴을 꺼내 보이는 도시도 있다.강원도 속초는 여름이 반갑다. 잘 정돈된 해변과 피서객들, 알록달록한 파라솔과 파도를 가르는 제트스키의 물살 같은 여름의 기세는 이 휴양도시의 풍경을 빠르게 채운다. 해수욕장 옆 관람차는 천천히 돌며 잠시나마 이 여름을 더 오래 보게 한다. 연일 최고 기온을 경신하는 폭염 뉴스조차 이곳에선 왠지 기꺼이 받아들여질 것만 같다.

    1637호2025.07.15 06:00

  • [렌즈로 본 세상]재구성되는 그날 밤 ‘국무회의’
    재구성되는 그날 밤 ‘국무회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외환 혐의를 수사하는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가 지난 7월 2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소환 조사했다. 한 전 총리는 계엄 해제 이후 작성된 계엄 선포문에 서명하는 등 12·3 불법 계엄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내란 특검은 이날 한 전 총리를 비롯해 윤석열 정부의 국무위원인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잇달아 소환해 계엄 전후 국무회의 참석 및 불참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같은 날 김건희 특검과 채 상병 특검도 각각 서울 광화문과 서울 서초동 특검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열었다. 3대 특검 모두 본격 가동에 들어가게 됐다.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16개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는 “지나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게 수사를 진행하겠다”면서 “모든 수사는 법이 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관련 사건을 사수하는 이명현 특별검사는 ...

    1636호2025.07.08 06:00

  • [렌즈로 본 세상] 영롱한 고요
    영롱한 고요

    비가 내린 지난 6월 25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는 연꽃 잔치가 열렸다. 일주문에서 법왕루까지 약 50m 구간에 놓인 수백개의 화분 속 연꽃이 활짝 피어 장관을 이루었다. 이 연꽃 화분들은 봉은사 신도들이 연꽃 공양으로 정성껏 마련한 것이다. 봉은사에서는 해마다 이맘때 연꽃 축제가 열린다.연꽃은 맑은 날보다 비 오는 날에 더 고운 자태를 뽐낸다. 밤새 내린 비로 연잎마다 빗방울이 맺혔고, 넓은 잎 위에는 연잎의 무게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빗물이 고요히 담겨 있었다. 줄기 아래쪽 연잎에 맺힌 작은 물방울들은 서로를 비추며, 마치 거울처럼 영롱한 빛을 더했다.연꽃의 생명이 지속되는 시간은 사흘이다. 첫날에는 꽃잎이 반쯤 피었다가 오전 중에 다시 오므라들고, 이튿날 가장 화려하게 만개해 향기를 내뿜는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연밥과 꽃술만 남긴 채 꽃잎은 하나둘씩 떨어진다. 그래서 연꽃은 가장 아름다울 때 조용히 물러나는, 군자의 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1635호2025.07.01 06:00

  • [렌즈로 본 세상]시작보다 끝날 때 지지율이 더 높길
    시작보다 끝날 때 지지율이 더 높길

    주요 7개국 정상회의, 이른바 G7(Group of Seven)이 캐나다 앨버타주 캐내내스키스에서 열렸다. ‘주요 7개국’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이다. 비록 한국은 7개국에 포함되지 않지만, 초청국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기회였다. 지난 6월 17일(현지시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만난 이재명 대통령은 12·3 불법 계엄과 대통령 탄핵 등 한국 민주주의 회복력을 언급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말했다. “9월에 열릴 유엔 총회에서 이 대통령이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이 대통령은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하며 첫 외교무대에 등장했다. 기대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남은 불발됐지만, 비교적 성공적인 출발이 아니었을까? 공군 1호기에서 깜짝 기자간담회를 열었던 이 대통령에게 한 기자가 질문했다. “임기를 끝낼 때쯤 이 정도의 지지율이라면 대략 성공한, 제법 잘한 대통령이다라고 만...

    1634호2025.06.24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