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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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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렌즈로 본 세상]빛으로 담은 간절한 마음…어둠 속의 고백
    빛으로 담은 간절한 마음…어둠 속의 고백

    충남 아산 송악저수지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풀숲 사이에서 작은 빛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반딧불이입니다. 빛 한 점이 궤적을 그리며 날아오르면, 또 다른 빛이 그 뒤를 따릅니다. 저수지 수면에는 그 빛들이 번져 어둠과 빛이 함께 출렁였습니다.반딧불이는 깨끗한 물과 오염되지 않은 풀밭에서만 삽니다. 그 작은 생명이 켜지기 위해서는 한 계절의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알에서 깨어나 애벌레로 살다가 번데기를 거쳐 마침내 빛을 얻기까지, 길게는 두 해를 땅속에서 보냅니다. 날개를 달고 빛을 내 날아다니는 시간은 고작 보름 남짓입니다.반딧불이의 빛은 사랑을 찾는 신호입니다. 누군가에게 닿고 싶어 온 힘을 다해 빛을 내고, 어둠 속에서 응답을 기다리는 것. 저수지의 밤은 그 간절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1683호2026.06.16 06:00

  • [렌즈로 본 세상] 올라갈수록 멀어지는 내 집
    올라갈수록 멀어지는 내 집

    서울 반포주공 1단지 재건축 공사 현장에 타워크레인 수십기가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있습니다. 크레인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갔습니다. 저렇게 높이 올라가면 마침내 누군가의 집이 될 것입니다. 저 집은 과연 누구의 집이 될까요.반포주공아파트는 1970년대 정부가 서민과 중산층의 내 집 마련을 돕겠다며 지은 공공주택입니다. 누군가의 첫 집이었고, 아이들이 뛰놀던 마당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들어설 새 아파트의 예상 시세는 50억원을 훌쩍 넘습니다.서울에서 집을 산다는 것은 이제 계획의 영역이 아니라 운의 영역이 됐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크레인은 오늘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집도 함께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손에 닿지 않는 높이로.

    1682호2026.06.09 06:00

  • [렌즈로 본 세상]여러 빛깔의 꽃들이 어우러진, 초여름의 합창
    여러 빛깔의 꽃들이 어우러진, 초여름의 합창

    오월의 자라섬이 온통 붉게 물들었습니다. 드넓은 꽃밭을 가득 메운 붉은 양귀비들이 초여름 햇빛을 받아 활짝 피어났기 때문입니다. 한송이 한송이는 여린 꽃잎 4장이 전부지만, 수만송이가 한데 모이자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하는 장관이 펼쳐졌습니다. 붉음이 붉음을 밀어내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더 붉게 만들었습니다.그런데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양귀비만이 아니었습니다. 꽃밭 한편에서는 금계국의 노란빛이 번졌고, 그 사이로 보랏빛 라벤더와 흰 안개꽃이 끼어들었습니다. 저마다 다른 키와 빛깔로 피어난 꽃들이 서로의 자리를 빼앗지 않으면서도 어울렸습니다. 가장 화려한 꽃이 무대를 독차지하지 않았습니다. 작고 수수한 꽃들도 그 곁에서 제 몫의 봄을 살았습니다.꽃밭을 걷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도 이런 것이 아닐까. 가장 크고 붉은 목소리만 가득 찬 광장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빛깔의 목소리들이 서로를 지우지 않으며 함께 피어나는 풍경. 자라섬의 봄은 그걸 이미 알고 ...

    1681호2026.06.02 06:00

  • [렌즈로 본 세상] 천천히 볼수록 더 아름답다, 백사실계곡의 신록
    천천히 볼수록 더 아름답다, 백사실계곡의 신록

    봄날 오후, 서울 종로구 백사실계곡. 숲은 멀리서 보면 그저 초록이 짙어진 계절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저마다 다른 빛의 결을 품고 있다. 바위틈 사이로 스며든 햇살은 나뭇잎 위에 잠시 머물다 떠나고, 그 짧은 순간 잎들은 가장 선명한 초록으로 숨을 쉰다. 어떤 잎은 가장자리가 투명하게 빛나고, 어떤 풀잎은 어둠 속에서 홀로 떠오른 듯 선명하다.빛은 모든 초록을 같은 색으로 비추지 않는다. 갓 돋아난 연둣빛 잎에는 어린 생명의 부드러움이 스며 있고, 깊은 그늘에 놓인 잎들은 짙은 녹색으로 고요한 시간을 견디고 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잎맥 위로 흐르는 빛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그 움직임은 마치 숲이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처럼 느껴진다.숲은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천천히 바라볼수록 더 깊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백사실계곡의 신록은 그래서 ‘보는 풍경’이라기보다 오래 들여다보게 되는 풍경에 가깝다. 눈부시게 밝지 않아 더 편안하고, 조용히...

    1680호2026.05.26 06:00

  • [렌즈로 본 세상] “차별 해소 예산 짜라” 비정규직 간절한 외침
    “차별 해소 예산 짜라” 비정규직 간절한 외침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는 수년째 ‘차별 해소’와 ‘처우 개선’을 약속해왔지만, 노동자들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5월 13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차별 해소 예산을 지금 당장 편성하라”고 요구하며 정부의 반복된 미온적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주먹을 치켜든 노동자들의 외침에는 오랜 시간 누적된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이들은 공공기관과 학교, 지방자치단체, 중앙행정기관 등에서 상시·지속 업무를 맡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정규직 대비 낮은 임금과 부족한 복리후생, 승진·승급 체계 부재 등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공공운수노조는 “공공부문 차별조차 해결하지 못하면서 민간 부문의 변화를 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단순한 예산 요구를 넘어 한국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해온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한 경고이기도 하다....

    1679호2026.05.19 06:00

  • [렌즈로 본 세상] 부처님 품은 봄비
    부처님 품은 봄비

    봄비가 내린 오후. 작은 빗줄기가 떨어져 뭉친 둥근 빗방울이 무언가를 비추고 있다. 하늘을 담기도 하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바쁜 모습을 비추기도 한다. 지난 5월 3일 봄비가 내린 도심 한복판의 자동차 유리창에는 조금 특별한 풍경이 맺혀 있었다. 유리창 너머 흐릿하게 흔들리던 것은 초파일을 앞두고 거리에 내걸린 연등이었다.비 오는 날의 연등은 맑은 날과는 다른 얼굴을 가진다. 선명하게 드러나기보다 빗물 속에서 번지고 겹치며 한층 부드러운 빛을 만들어낸다. 유리창 위에 맺힌 작은 물방울들은 저마다 작은 렌즈가 되어 분홍빛 연등을 잘게 품었다. 5월 24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그날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지만, 봄비에 젖은 연등은 초파일의 풍경을 미리 밝혀 주었다.

    1678호2026.05.12 06:00

  • [렌즈로 본 세상] 괜한 불편
    괜한 불편

    서울 종묘 영녕전에 좌석이 놓였다. 의자의 절반은 외국인 관광객이 채웠고, 나머지 절반쯤은 우리나라 시민들이 앉아 있었다. 지난 4월 26일 종묘에서는 조선시대 국가의례 가운데 여성이 참여한 유일한 의례인 묘현례(廟見禮)를 재현한 공연 <묘현, 왕후의 기록>이 열렸다. 숙종 29년인 1703년, 숙종의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가 치른 묘현례를 새롭게 풀어낸 창작극이다. 공연 안내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국가의 예법과 개인의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와 왕비의 자리에 오른 뒤 딸을 예전처럼 대할 수 없게 된 아버지 김주신과의 애틋한 이야기를 담았다.”공연이 시작되기 전에는 45분짜리 공연을 끝까지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무성영화 변사처럼 공연 안내를 맡은 배우의 대사를 듣고 나는 뒤돌아 영녕전을 나왔다. “이제 이야기가 시작되니, 배역 없이 서 있거나 역할 없는 단역들은 이만 무대에서 내려가라.” 누군가는 웃을 수도 있을...

    1677호2026.05.05 06:00

  • [렌즈로 본 세상] 지구의 날 하루라도 플라스틱 줄여요
    지구의 날 하루라도 플라스틱 줄여요

    ‘지구의 날’은 1969년에 발생한 미국 캘리포니아 해상 원유 유출 사고가 계기가 돼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됐다. 4월 22일이 56회째 되는 지구의 날이었다. 올해 주제는 ‘우리의 힘, 우리의 지구’였다. 국제기구나 정치권과 상관없이 지구를 위해 모두가 힘을 모으자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국제기구의 대응은 느리다. 유엔환경총회에서 177개국이 2024년까지 법적 구속력을 갖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마련에 합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내 폐플라스틱 배출량은 2023년 기준 1463만t이다. 10년 전보다 15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지구의 날을 하루 앞두고 찾은 경기도의 한 자원순환센터에는 플라스틱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쌓이고, 옮겨지고, 다시 분류되는 과정에서 거대한 언덕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드...

    1676호2026.04.28 06:00

  • [렌즈로 본 세상]“사랑해, 잊지 않을게”…12번째 봄
    “사랑해, 잊지 않을게”…12번째 봄

    세월호에 열두 번째 봄이 찾아왔다.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4월 15일 경기 안산시 단원고 4·16 기억교실에는 이른 아침부터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이들은 교실을 둘러보고 책상 위에 놓인 유품을 어루만지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참사에 대한 기억이 없는 초등학생들은 단원고 학생들의 꿈이 머물던 책상에 앉아, 안내 해설사로 활동하는 유가족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칠판 앞에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제주도에 도착했다면 환하게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단원고 학생들의 그림이 나타났다. 추모 영상이 끝나자 어린 학생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잊지 않겠다’라는 약속을 방명록에 적었다.단원고 4·16 기억교실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304명의 꿈과 삶을 기억하고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 사회 건설을 위해 설치됐다. 교실 내부에는 2학년 1반부터 10반까지 당시 학생들이 사용했던 책상과 의자, 교과서, 학용품, 물건 등을 그대로 옮겨놨다. 또 2학년 선생님들의 교무실도...

    1675호2026.04.21 06:00

  • [렌즈로 본 세상]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

    언제 온 줄 모르게 성큼 찾아오는 것이 봄이지만, 봄의 끝은 조금 더 눈에 보인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기 시작할 때다. 목련, 개나리, 벚꽃까지 차례차례 피었던 봄은 올해도 금세 끝난다. 해가 점점 길어지고 기온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한바탕 봄비가 내리고 나면 ‘벚꽃 엔딩’인 것을 알기에 시민들도 막바지 벚꽃 나들이를 즐기려 나온다. 지난 4월 6일 서울 여의도 윤중로를 찾은 시민들은 우산을 쓰고 벚꽃길을 걸었다. 고개를 들어도, 숙여도 벚꽃이 보였다. 아직 나무에 달린 꽃잎은 다행이었고, 바닥을 메운 꽃잎은 또 다른 봄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촉촉해진 꽃잎과 비에 섞인 흙냄새 사이를 걷던 시민들은 몇 걸음 못 가고 멈춰서 온통 벚꽃으로 둘러싸인 풍경을 돌아보곤 했다.

    1674호2026.04.14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