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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렌즈로 본 세상] 부처님 품은 봄비
    부처님 품은 봄비

    봄비가 내린 오후. 작은 빗줄기가 떨어져 뭉친 둥근 빗방울이 무언가를 비추고 있다. 하늘을 담기도 하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바쁜 모습을 비추기도 한다. 지난 5월 3일 봄비가 내린 도심 한복판의 자동차 유리창에는 조금 특별한 풍경이 맺혀 있었다. 유리창 너머 흐릿하게 흔들리던 것은 초파일을 앞두고 거리에 내걸린 연등이었다.비 오는 날의 연등은 맑은 날과는 다른 얼굴을 가진다. 선명하게 드러나기보다 빗물 속에서 번지고 겹치며 한층 부드러운 빛을 만들어낸다. 유리창 위에 맺힌 작은 물방울들은 저마다 작은 렌즈가 되어 분홍빛 연등을 잘게 품었다. 5월 24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그날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지만, 봄비에 젖은 연등은 초파일의 풍경을 미리 밝혀 주었다.

    1678호2026.05.12 06:00

  • [렌즈로 본 세상] 괜한 불편
    괜한 불편

    서울 종묘 영녕전에 좌석이 놓였다. 의자의 절반은 외국인 관광객이 채웠고, 나머지 절반쯤은 우리나라 시민들이 앉아 있었다. 지난 4월 26일 종묘에서는 조선시대 국가의례 가운데 여성이 참여한 유일한 의례인 묘현례(廟見禮)를 재현한 공연 <묘현, 왕후의 기록>이 열렸다. 숙종 29년인 1703년, 숙종의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가 치른 묘현례를 새롭게 풀어낸 창작극이다. 공연 안내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국가의 예법과 개인의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와 왕비의 자리에 오른 뒤 딸을 예전처럼 대할 수 없게 된 아버지 김주신과의 애틋한 이야기를 담았다.”공연이 시작되기 전에는 45분짜리 공연을 끝까지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무성영화 변사처럼 공연 안내를 맡은 배우의 대사를 듣고 나는 뒤돌아 영녕전을 나왔다. “이제 이야기가 시작되니, 배역 없이 서 있거나 역할 없는 단역들은 이만 무대에서 내려가라.” 누군가는 웃을 수도 있을...

    1677호2026.05.05 06:00

  • [렌즈로 본 세상] 지구의 날 하루라도 플라스틱 줄여요
    지구의 날 하루라도 플라스틱 줄여요

    ‘지구의 날’은 1969년에 발생한 미국 캘리포니아 해상 원유 유출 사고가 계기가 돼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됐다. 4월 22일이 56회째 되는 지구의 날이었다. 올해 주제는 ‘우리의 힘, 우리의 지구’였다. 국제기구나 정치권과 상관없이 지구를 위해 모두가 힘을 모으자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국제기구의 대응은 느리다. 유엔환경총회에서 177개국이 2024년까지 법적 구속력을 갖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마련에 합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내 폐플라스틱 배출량은 2023년 기준 1463만t이다. 10년 전보다 15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지구의 날을 하루 앞두고 찾은 경기도의 한 자원순환센터에는 플라스틱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쌓이고, 옮겨지고, 다시 분류되는 과정에서 거대한 언덕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드...

    1676호2026.04.28 06:00

  • [렌즈로 본 세상]“사랑해, 잊지 않을게”…12번째 봄
    “사랑해, 잊지 않을게”…12번째 봄

    세월호에 열두 번째 봄이 찾아왔다.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4월 15일 경기 안산시 단원고 4·16 기억교실에는 이른 아침부터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이들은 교실을 둘러보고 책상 위에 놓인 유품을 어루만지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참사에 대한 기억이 없는 초등학생들은 단원고 학생들의 꿈이 머물던 책상에 앉아, 안내 해설사로 활동하는 유가족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칠판 앞에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제주도에 도착했다면 환하게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단원고 학생들의 그림이 나타났다. 추모 영상이 끝나자 어린 학생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잊지 않겠다’라는 약속을 방명록에 적었다.단원고 4·16 기억교실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304명의 꿈과 삶을 기억하고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 사회 건설을 위해 설치됐다. 교실 내부에는 2학년 1반부터 10반까지 당시 학생들이 사용했던 책상과 의자, 교과서, 학용품, 물건 등을 그대로 옮겨놨다. 또 2학년 선생님들의 교무실도...

    1675호2026.04.21 06:00

  • [렌즈로 본 세상]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

    언제 온 줄 모르게 성큼 찾아오는 것이 봄이지만, 봄의 끝은 조금 더 눈에 보인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기 시작할 때다. 목련, 개나리, 벚꽃까지 차례차례 피었던 봄은 올해도 금세 끝난다. 해가 점점 길어지고 기온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한바탕 봄비가 내리고 나면 ‘벚꽃 엔딩’인 것을 알기에 시민들도 막바지 벚꽃 나들이를 즐기려 나온다. 지난 4월 6일 서울 여의도 윤중로를 찾은 시민들은 우산을 쓰고 벚꽃길을 걸었다. 고개를 들어도, 숙여도 벚꽃이 보였다. 아직 나무에 달린 꽃잎은 다행이었고, 바닥을 메운 꽃잎은 또 다른 봄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촉촉해진 꽃잎과 비에 섞인 흙냄새 사이를 걷던 시민들은 몇 걸음 못 가고 멈춰서 온통 벚꽃으로 둘러싸인 풍경을 돌아보곤 했다.

    1674호2026.04.14 06:00

  • [렌즈로 보는 세상] 6년의 기다림…되찾은 ‘평화의 소녀상’
    6년의 기다림…되찾은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싼 바리케이드가 6년 만에 열렸다.지난 4월 1일 서울 종로경찰서는 옛 주한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제1746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시위’에 앞서 소녀상 주변 바리케이드를 잠시 철거했다. 사방으로 막혀 있던 바리케이드를 치우자 활동가들은 소녀상 주변에 쌓인 낙엽을 치우고 소녀상을 닦았다. 평소에 가까이 가지 못했던 시민들은 소녀상 옆 의자에 앉아 함께 사진을 찍고 얼굴을 어루만지기도 했다.소녀상은 반대 단체의 집회로 인한 훼손을 우려한 정의기억연대 측 요청으로 2020년 6월부터 바리케이드에 둘러싸였다. 경찰 관계자는 “반대 단체 움직임을 고려해 바리케이드는 시위 시간에만 일시적으로 연다”며 “전면 철거는 4주 뒤 다시 판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673호2026.04.07 06:00

  • [렌즈로 본 세상] “미국의 침략전쟁에 우리가 왜 나서나”
    “미국의 침략전쟁에 우리가 왜 나서나”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과 이란의 보복 타격으로 촉발된 전쟁이 한 달을 맞았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전쟁이 불완전한 종전과 파괴적인 확전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미국의 군사적 압박만으로는 이란의 항복을 받아내기 어려우며,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미국의 글로벌 지배력 약화와 한국 등 동맹국의 안보 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전쟁은 한국의 외교·안보 상황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한미군 방공 전력 일부가 차출되면서 당장 대북 대비 태세에 부담이 커졌고, 이란이 장악한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에 함정을 보내달라는 미국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직면하고 있다.지난 3월 25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미국·이스라엘의 침략전쟁을 규탄하고 파병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조합원들은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으로 중동전쟁 위험이 고조되고,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명분으로 동맹국 파병을 압박하고 있다”며 “파병은 타...

    1672호2026.03.31 06:00

  • [렌즈로 본 세상] ‘노란 물결’ 위에 내려앉는 봄
    ‘노란 물결’ 위에 내려앉는 봄

    남도에 봄이 왔다. 봄의 전령 중 하나인 산수유꽃이 지리산 자락을 노란 물결로 뒤덮었다. 국내 최대 산수유 군락지로 알려진 전남 구례 산동면 일원에서 3월 14일부터 22일까지 ‘제27회 구례산수유꽃축제’가 펼쳐졌다.포근해진 날씨에 맞춰 꽃망울이 부풀어 올랐다. 반곡마을을 포함한 산수유 마을은 상춘객을 맞았다. 산수유꽃을 따라 마을과 들판을 걸으며 봄 정취를 즐기는 가족·친구·연인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어떤 꽃이 가장 활짝 피었는지 둘러보며 봄나들이를 했다.이번 축제의 주제는 산수유꽃의 꽃말인 ‘영원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영원한 사랑, 구례에 피어나는 노란 설렘’이었다. 행사 기간 풍년기원제를 비롯해 노래 공연과 버스킹, 꽃길 걷기, 산수유 차 무료 시음, 어린이를 위한 만들기 체험, 소원 적기 등이 진행됐다.구례군은 산수유꽃 축제 외에도 섬진강과 서시천 일대에 피는 300리 벚꽃길 등 다양한 봄꽃 명소를 중심으로 봄맞이에 나설 계획이다.

    1671호2026.03.24 06:00

  • [렌즈로 본 세상]일 해도 안 해도 손해…까맣게 타는 가슴
    일 해도 안 해도 손해…까맣게 타는 가슴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과의 전쟁이 발발한 지 일주일이 넘어가던 지난 3월 8일 인천 서구의 한 주유소 선간판에 표시된 경유 가격이 1ℓ당 2150원이었다. 휘발유보다 무려 165원 높은 가격.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 이유가 놀라웠다.“재고가 얼마 없어서 경유가 ‘바닥’나는 걸 막기 위해, 일부러 기름값을 높게 써놨죠.”주유소 인근 주차장에는 화물차와 대형 버스들이 줄지어 주차돼 있었다. 한 화물차 노동자는 “이란 사태 전 50만원 정도면 기름을 가득 채웠지만, 지금은 같은 양을 채우려면 60만~64만원이 든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오래 버티기 힘들 것”이라며 푸념했다. 주차장 한쪽의 다른 노동자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묵묵히 차량을 정비했다. 간간이 한숨 소리가 들렸다.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에 따르면 25t 대형 화물차는 유가가 300원 오르면 월 120만원 이상의 손해를 보게 된다. 지난 3월 12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화물차 노동자들은 ...

    1670호2026.03.17 06:00

  • [렌즈로 본 세상]‘진짜 사람 같네’…진격의 휴머노이드
    ‘진짜 사람 같네’…진격의 휴머노이드

    인공지능(AI), 로보틱스 기업들이 참여하는 ‘2026 스마트공장·자동화산업전(AW 2026)’이 지난 3월 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다. 산업용 로봇 세계 1위인 한국화낙, 협동 로봇 선도기업 유니버설 로봇, 물류 자동화 기업 긱플러스 등 글로벌 기업은 물론 현대글로비스, 로보티즈, 유진로봇 등 국내 기업이 대거 참여한 전시다.휴머노이드 로봇의 움직임은 빠르고 정확했다. 정교한 작업이든, 무거운 물건을 이동하는 작업이든 거뜬히 임무를 수행했다. 인간이 접근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활동할 수 있었다. 인간과 흡사한 모형의 관절 로봇은 사람과 악수하고, 포옹하고, 손바닥을 맞댔다. 관람객들은 자연스러운 로봇의 움직임을 보고 감탄했다. 휴머노이드 시연이 끝나자 관람객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난 것처럼 줄을 서서 로봇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머지않은 미래, 우리는 서류나 증명서 없이 인간과 로봇을 구분할 수 있을까? 어쩌면 길에서 만난 잘생긴 로봇에 반해 사랑에 빠질지도...

    1669호2026.03.10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