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산물의 재발견⑪수박조선 최고의 천재라고 할 허균은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26세에 문과에 급제한 이래 문장 시험에선 장원을 도맡아 했고, 외교술도 그를 따라올 이가 없어 중국 사신을 맞거나 사람을 보낼 때마다 그를 찾았다. 하지만 자유 분방하고 거침없는 생각과 행동 탓에 파직과 중용을 수없이 거듭했다. 불사(佛事)를 행한다거나, 관아에서 기생과 놀아나고, 매를 때리며 문초하다 사람을 죽게 하고, 공금을 횡령하고, 가짜로 책을 지어 다른 이에게 역모를 뒤집어 씌웠다는 등 참으로 다양한 탄핵을 받는다. 모함도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결국 50세에 역적의 우두머리로 능지 처참됐고, 조선왕조는 끝내 그를 복권시키지 않았다.이런 허균의 이력 가운데서 눈에 띄는 것은 광해2년(1610) 10월 별시 문과 전시의 대독관으로 시험을 감독하면서 조카와 조카사위를 부정 합격시켰다는 혐의다. 이 일로 허균은 함열과 부안 등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문집 대부분을 엮었다....
781호2008.07.0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