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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0자 인물비평]강삼재 전 한나라당 부총재
    강삼재 전 한나라당 부총재

    ‘총재’ 곁으로 간 ‘사무총장’ 이회창 전 총재에게 ‘총재’라는 직함이 늘 따라다니는 것처럼 강삼재 한나라당 전 부총재에게는 늘 ‘사무총장’이라는 직함이 붙어다닌다. 하지만 강 전 의원의 정치 이력을 들여다보면 그는 1995∼1997년 사이에 두 번에 걸쳐 사무총장직을 역임했다. 고작 2년 동안 사무총장직에 있었던 것을 두고 5선 국회의원에게 왜 ‘사무총장’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까.그의 정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 그는 집권당의 사무총장이었다. 1996년 15대 총선 당시 그는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에서 선거자금을 관리하는 사무총장이었다. 이때 선거자금으로 사용한 1100여억 원의 출처가 문제였다. 안기부의 자금이 집권당의 선거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는 혐의로 그는 2001년 기소됐다. 세칭 ‘안풍사건’의 주역으로 그는 2003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법정에서 그 자금이 안기부가 아니라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게 받았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그 결과 자신의 정치적 대...

    750호2007.11.20 00:00

  • [1000자 인물비평]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

    물러설 줄 모르는 ‘돌격대장’‘돌격대장’은 이재오 최고위원에게 걸맞은 별명이다. 그는 늘 앞에 있다. 조금이라도 한 발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다. 그를 보면 전쟁영화에서 고지탈환의 명령을 받고, 소대원을 이끌고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나서는 소대장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적의 기관총 사격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숙이지 않고 항상 앞장 서서 소대원을 이끌어 나간다. 그러나 그는 일개 전투소대의 지휘장교일 뿐, 명예는 언제나 작전명령을 내린 지휘관에게 돌아간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 최고위원은 10월 28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명박 후보를 인정하지 않고 아직도 경선 중인 걸로 착각하는 세력이 당 내에 있는데 이런 이들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설과 함께 박근혜 전 대표 측과의 연계설이 퍼지는 데 대한 이 후보 측의 불만을 이 최고위원이 총대를 메고 나서 발언한 것이다. 이 발언에 대해 박 전 대표 측 인사들은 발끈하고 나섰다. 박 전...

    749호2007.11.13 00:00

  • [1000자 인물비평]임인배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
    임인배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

    ‘사고’ 전과자 또 다시 입방아에 임인배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한나라당)이 또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10월 22일 국정감사 피감기관으로부터 단란주점 향응 접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임 위원장은 과기정위 소속 김태환 의원(한나라당), 류근찬 의원(국민중심당)과 함께 2차로 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신 것으로 확인됐다.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이 같은 사실이 보도를 통해 알려진 10월 26일 임 위원장은 이날 국정감사에 앞서 “국민께 사과를 드린다”며 “술자리와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위원회 차원에서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정감사장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이 해명을 촉구해 정회 소동이 벌어졌다. 과기정위는 지난 22일 대전 생명공학연구원에서 열린 대덕특구지원본부, 기초기술연구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천문연구원, 한의학연구원, 국가핵융합연구소, 과학기술연구원 등 7개 기관에 대한 국감을 마친 뒤 다음날 국감...

    748호2007.11.06 00:00

  • [1000자 인물비평]최돈웅 전 의원
    최돈웅 전 의원

    ‘차떼기’ 기억이 정계 복귀 발목 잡다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의 측근이었던 최돈웅 전 의원은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실세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는 이 후보와 경기고 동문이자 동기다. 불과 5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이미 사라진 정치인의 이름을 누구도 잘 기억해주지 않는다. 그의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인 ‘차떼기’란 말을 들으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다. 사실 ‘최돈웅’이라는 이름 석자보다 ‘차떼기’라는 석자가 더 잘 알려져 있다. 10월 17일 그의 이름이 뉴스거리로 떠올랐을 때도 사람들은 ‘차떼기’만 기억했다. 10월 15일 최 전 의원은 한나라당의 상임고문 임명장을 받았다. 그러나 17일 언론을 통해 그의 ‘정계 복귀’ 사실이 알려지자 자진 사퇴했다. 사흘 만에 복귀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 그는 SK로부터 100억 원을 받았다. SK 측은 쇼핑백에 ...

    747호2007.10.30 00:00

  • [1000자 인물비평]열린우리당 실패 ‘십자가’를 지다
    열린우리당 실패 ‘십자가’를 지다

    ‘죄송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김영춘 의원이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하기 위해 국회 기자회견장에 섰다.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이 모바일 투표로 마지막 희망의 끈을 잡으려는 순간, 뜻밖의 선언이 젊은 국회의원으로부터 터져나왔다. 주위의 절친한 정치인 몇 명을 제외하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선언이었다. 그의 메시지가 주위 사람들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은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처음 당선된 후, 전도가 유망한 국회의원으로 이름을 알린 그가 스스로 자신의 정치 생명을 잘라버린 것이다. 비록 현역 은퇴는 아니지만 18대 총선 불출마는 자신의 퇴로를 차단해버린 큰 결단이다. 그는 “누군가는 열린우리당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라고 총선 불출마의 이유를 밝혔다. 그는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지지를 보내주셨던 많은 국민에게 직업정치인인 제가 사죄의 뜻으로 바칠 수 있는 가장 큰 제물...

    746호2007.10.23 00:00

  • [1000자 인물비평]군 선·후배 신망 두터운 ‘꼿꼿한 행보’
    군 선·후배 신망 두터운 ‘꼿꼿한 행보’

    10월 5일 한 중앙 일간지 인터넷 홈페이지의 인물 검색 순위에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1위에 올랐다. 9월 한 달 동안 검색 순위를 번갈아 오르내렸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신정아씨 이름도 그의 ‘꼿꼿한 자세’에 밀려난 셈이다. 김 장관은 2007 남북정상회담 첫날 평양시내 4·25 문화회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할 때 고개를 숙이지 않고 손만 내밀었다. 이 광경은 깍듯이 인사한 김만복 국정원장의 모습과 대조를 이뤘다. 10월 4일 정상회담 마지막 날에도 김 장관은 특유의 ‘꼿꼿한 악수 자세’를 유지했다.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 정상이 남북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김 국방위원장이 남측 인사들과 악수할 때였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에 오랫동안 몸 담으면서 꼿꼿하게 악수를 나누는 것이 몸에 밴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의 야전교범에는 “손은 약간 힘을 주어 가볍게 잡고 상대방의 눈을 마주보며 자연스럽게 교환해야 하며, 손을 너무 흔들거...

    745호2007.10.16 00:00

  • [1000자 인물비평]‘신 후쿠다 독트린’ 기치 든 첫 父子 총리
    ‘신 후쿠다 독트린’ 기치 든 첫 父子 총리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내각이 출범했다. 한국인들에게 후쿠다 총리는 관방장관으로 익숙하다. 2000년 10월부터 2004년 5월까지 3년 7개월 동안 관방장관으로 활동해 일본에서는 역대 최장수 관방장관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의 이름은 아버지 ‘후쿠다’ 총리를 통해 한국인들에게 익숙해 있다. 그의 아버지인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전 총리는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총리직을 역임했다. 아버지 후쿠다는 총리 시절인 1977년 ‘후쿠다 독트린’을 발표,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포기하고 아시아 국가와 연대를 강조했다. 그의 장남인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내각 출범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은 ‘신 후쿠다 독트린’을 기대하고 있다. 아버지 후쿠다 총리의 행보를 따로 떼놓고, 아들 후쿠다 총리의 정치 역정만 보더라도 이 같은 기대치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2002년 관방장관 시절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북에도 깊이 관여했다. 납치 문제가 얽혀 있는 북한과의 외교에 대해서도 대화를...

    744호2007.10.09 00:00

  • [1000자 인물비평]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가짜 후배 때문에 공직 탑 무너지다국회 예결위 위원이었던 한 국회의원이 최근 집에서 부인과 ‘부부싸움’을 했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신정아씨와 부적절한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이 TV뉴스를 통해 보도되자, 의원 부인은 ‘사실일 것이다’라고 주장했고, 의원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변 전 실장의 기획예산처 장·차관 시절 예결위에서 그를 만나 잘 알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그를 자주 접한 정치권 인사는 이구동성으로 그와 관련된 보도 내용을 쉽게 믿지 못했다. 그를 알고 있는 불교계 스님들도 변 전 실장 관련 보도에 대해 고개를 흔들었다. “늘 조용하고 합리적인 분이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사건 초기 청와대 관계자는 물론, 노무현 대통령조차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는 사실도 그가 평소 쌓아온 인품과 관련이 있다. 그 자신도 “30년 공직생활을 바르게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743호2007.09.25 00:00

  • 이치범 전 환경부 장관

    참여정부 하차 ‘대통령 선거 운동가’로이치범 전 환경부 장관이 9월 4일 퇴임했다. 이해찬 후보의 캠프로 들어가기 위해서다. 현직 장관의 후보 캠프 행을 두고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퇴임식에서 이 전 장관은 “20대에는 학생운동에, 30대에는 사회운동에, 40대에는 환경운동에 뛰어들어 환경행정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의 20대 학생운동은 전설적인 민주화운동 활동가인 고 이범영 전 민청련 의장과 관련이 있다. 서울고 출신으로 서울대에 입학(74학번)한 이 전 장관은 이 전 의장의 고등학교·대학교 1년 후배다. 1980년대 이 전 의장이 이 전 장관의 집에서 잡혀 가기도 했다. 서울대의 학내 동아리인 농촌법학회에 들어간 것이나 민청련 외곽에서 활동한 것도 이 전 의장과의 인연 때문이다.하지만 이 전 장관이 자신의 이름을 사회에 알린 것은 40대 이후다. 그는 1993년 환경운동연합 중앙사무처 처장을 맡았다. 독일 유학 당시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742호2007.09.18 00:00

  • [1000자 인물비평]대통령과의 인연 ‘끈질긴’ 부산 386
    대통령과의 인연 ‘끈질긴’ 부산 386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정권 말기때만 되면 꼭 터져나와 대선 정국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는 것이 있다. 대통령 측근이나 가족 같은 권력층의 비리다. 이번 정권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던 참여정부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최측근 1명이 의혹에 휩싸였다.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세무조사의 무마 로비에 깊이 관여한 사실이 하나둘 드러난 것. 청와대조차 그의 행동에 대해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표현을 썼다. 한나라당에서는 검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 정 전 비서관의 의혹에 대해 특검 추진을 검토하겠다며 벼르고 있다.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 386 3인방(정윤재, 최인호, 송인배) 중에서 맏형 역할을 해왔다. 그는 부산대 총학생회장 시절인 1986년 교도소에서 당시 변호사인 노무현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이후 20여 년의 세월 동안 그는 노 대통령과 인연을 함께 했다. 1987년 부산지역의 6월 항쟁에서 정 전 비서관은 노 대통령...

    741호2007.09.1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