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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0자 인물비평]MBC 엄기영 앵커
    MBC 엄기영 앵커

    ‘영원한 앵커’ 최고경영자에 도전 '영원한 앵커’인 엄기영 앵커가 9시 뉴스데스크란 무대에서 내려간다. 엄기영 앵커는 1월 23일 임원회의에서 신임 사장 후보에 나서기 위해 앵커직을 사퇴할 뜻을 밝혔다. ‘MBC 9시 뉴스데스크’ 하면 바로 엄기영 앵커를 떠올릴 정도로 그는 MBC의 대표 앵커였다. MBC의 앵커로 정동영 전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 손석희 아나운서 등의 스타가 있었지만 그는 앵커의 대명사였다. 1989년 10월부터 1996년 11월까지, 그리고 2002년 1월부터 지금까지 그는 두 차례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았다. 2002년 초 만 50세의 나이로 다시 앵커 자리로 복귀할 때는 말이 많았다. MBC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이 ‘KBS 뉴스 9’의 시청률에 비해 큰 격차로 밀리면서 그는 보도본부장의 직책에서 앵커 자리를 맡았다. 뉴스 프로그램의 시청률 저하에 책임을 져야 할 보도본부장이 과연 앵커로 나서서 시청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이 많았...

    761호2008.02.05 00:00

  • [1000자 인물비평]김만복 국정원장
    김만복 국정원장

    ‘공채 출신 첫 수장’ 正道를 이탈하다 김만복 국정원장이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대화록을 유출한 것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이름이 특이해서 한 번 그의 이름을 들은 사람이라면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2003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1급)으로 임명되면서 정가에 떠올랐다. 당시 청와대 실세는 이종석 NSC사무차장(차관급)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퍼져 있을 때였다. 그래서 이종석계 인물로 제일 처음 꼽혔다. 북한을 전공하는 소장 진보학자인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한때 학원 사찰 업무를 맡았던 북한 관련 정보 전문가인 김 원장의 특이한 인연은 세종연구소에서 비롯했다. 그에게 세종연구소 행은 명예퇴직과 같은 ‘무덤’ 자리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전 장관에게 세종연구소는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요람’이었다. 이 전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한 후,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외교·...

    760호2008.01.29 00:00

  • [1000자 인물비평]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표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표

    갈아탄 배 ‘난파’ 구할 ‘선장’으로 대통합민주신당은 과반은 아니지만 아직 절반에 육박하는 의원을 보유하고 있는 다수당이다. 하지만 이 거함은 총선을 앞두고 침몰이 예고됐다. 40석도 겨우 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름은 거창하게 ‘대통합’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지만, 거함이 아니라 석 달 후 보트로 옮겨타야 할 형편이다. 총선체제에 들어가기 전 이미 탈당 행렬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껍데기만 거함인 이 배의 선장으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임명됐다. 지난해는 그에게 ‘고난의 해’였다. 한나라당 내에서 대선 후보로 부상하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후보에 밀려 3위를 전전하다, 결국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시베리아’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3월에는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걸고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스스로 ‘시베리아 행’을 택한 그에게 범여권 후보 중 1위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상품으로 주어졌다. 대세론을 바탕으로 그는 6월에 ...

    759호2008.01.22 00:00

  • [1000자 인물비평]김하중 주중대사
    김하중 주중대사

    중국 인맥 두터워 북한문제 대처 신속김하중 주중한국대사가 대사직을 6년 3개월째 수행하면서 역대 최장수 대사 4위에 올랐다. 김 대사는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1년 10월 주중한국대사로 발령받아 베이징에 부임한 이후 지금까지 대사로 근무하고 있다.그에게는 항상 ‘중국통’ ‘의전의 최고수’ ‘완벽주의자’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김 대사는 어려서부터 중국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1960년대 학창시절, 성적이 매우 우수했던 그는 남들이 선망하는 법대나 상경대가 아닌 서울대 중문학과를 택했다. 김 대사의 저서 ‘떠오르는 용 중국’의 서문을 보면 대학에 들어갈 때부터 대(對) 중국 외교에 대한 비전을 확실히 인식하고 입학했다고 써 있다. 그의 탁월한 혜안은 30여 년 후인 1992년 한·중수교로 증명됐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외무고시(1973년)에 합격해 외무부(현 외교통상부) 장관보좌관, 주일본대사관 참사관을 거쳐, 1992년 주중국대사관 (정무)공...

    757호2008.01.08 00:00

  • [1000자 인물비평]허경영 대선 후보
    허경영 대선 후보

    황당한 공약으로 인터넷 달군 ‘허본좌’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놀라운’ 득표율을 얻은 인물이 있다. 기호 8번 경제공화당 허경영 후보는 10만 표에 가까운 9만6756표를 얻어 전체 0.4%의 득표율을 올렸다. 물론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 당선자에 비하면 미미한 득표율이지만, 그의 이름에 비한다면 놀라운 성과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와는 불과 0.28%의 득표율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인제 후보는 0.68%의 득표율로, 모두 16만708표를 얻는 데 그쳤다. 새로운 진보를 내세웠던 한국사회당의 금민 후보조차 1만8223표(0.07%)로 그의 득표율과 차이가 많이 났다. 특히 허 후보는 전국에 걸쳐 골고루 득표했으며, 이인제 후보와 비교하면 일부 지역에서는 이인제 후보보다 표를 더 많이 얻었다. 이번 대선은 2002년 ‘인터넷 선거혁명’에 이어 ‘동영상 UCC 선거혁명’이 예고됐다. 하지만 선거법 규제 탓인지 ‘동영상 UCC’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런...

    756호2008.01.01 00:00

  • [1000자 인물비평] 최민희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최민희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집중포화 받은 ‘언론운동 투사’ 지난 11월 중순. 일부 신문이 최민희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을 집중 공격했다. 소위 방송위원회의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과 관련해 최 부위원장이 결정 과정을 ‘비민주적으로’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한 신문은 ‘두 얼굴의 언론운동 투사 최민희씨’라는 제목의 사설까지 냈다. “거리의 시민운동가 행세를 하던 최씨가 하루아침에 고급 승용차를 타는 고위 공직자로 권력을 받아먹는 것이 적절한 처신인지, 업무능력은 있는지를 두고….” 사설 중 눈길을 끄는 내용이다.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자리가 차관급 공인(公人)이라지만 인신 공격성 목소리를 담는 것이 적절한지는 아리송하다. 사설만으론 모자랐던지 이 신문은 최 부위원장의 수첩에 망원렌즈를 들이댔다. ‘열 받은 방송위 최민희 부위원장의 메모’라는 제목의 포토 기사 속에는 “앞으로 나도 ‘성질을 부리기’로 마음을 정했다”는 글씨가 눈에 띈다. 신문들이 원색적인 목소리를 담는 이유는 뚜렷하다. 바로 언론광고시장 때...

    755호2007.12.25 00:00

  • [1000자 인물비평]故 이일규 전 대법원장
    故 이일규 전 대법원장

    ‘사법민주화 토대’ 유산으로 남기다지난 12월 6일 대법원은 고 이일규 전 대법원장에 대한 법원장(法院葬)을 치렀다. 그간 개별법원 차원의 법원장은 있었지만, 대법원이 직접 법원장을 치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전 대법원장이 판사들에게 얼마나 특별한 인물이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지난 2일 별세한 이 전 대법원장은 1920년 12월 16일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일본 간사이대 법문학부를 중퇴한 후 1948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 1951년 판사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37년 동안 판사의 길을 걸었다. 그는 서슬 퍼런 군부독재정권 때 판사시절 대부분을 보냈다. 정보요원의 법원 출입은 예삿일로 통했던 그때, 군부정권은 재판마저 좌지우지하려고 애썼다. 그 시절, 이 전 대법원장은 소신판결을 위해 노력한 판사로 평가받는다. 그는 대법관으로 재직하면서 시국사범에 대한 중형선고에 10여 차례나 소수의견을 냈다. 특히 그는 1982년 당시 정보기관이 ‘기획해’...

    754호2007.12.18 00:00

  • [1000자 인물비평]곽성문 의원, 정치생명 건 ‘도박’
    곽성문 의원, 정치생명 건 ‘도박’

    곽성문 의원(대구 중·남)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 현역 의원이 한나라당을 떠나 이 후보 측으로 둥지를 옮긴 것은 곽 의원이 처음이다. 다음 날인 11월 30일에는 김병호 의원(부산진갑)이 그의 뒤를 이어 탈당해 이 후보 측으로 갔다. 두 의원 모두 지난 8월 당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도왔다. 곽 의원은 깃발을 들었고, 김병호 의원이 따라나선 모양이 됐다. 곽 의원은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차명재산이 8000억 원에 이른다는 소문이 있다”라는 발언으로 6개월의 당원권 정지라는 중징계를 당했다가 경선이 끝난 후 복권됐다. 같이 중징계를 당했다가 복권된 정두언 의원은 이명박 후보를 민 덕분에 선대위의 전략기획단 총괄팀장을 맡아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곽 의원은 패자의 길을 갔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하자마자 탈당해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곽 의원은 “경선 이후 승자가 패자를 단죄하려는 오만한 태도와 승자 독식을 당연시하는 독선적인 자...

    753호2007.12.11 00:00

  • [1000자 인물비평]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

    삼성 비자금 폭로 ‘구원투수’로 등판대선을 코앞에 앞두고 BBK 의혹 사건의 진실 규명이 핵폭탄이 되지는 않을지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또 다른 핵폭탄이 터졌다. 11월 19일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청와대 근무 당시인 2004년 1월 삼성전자 법무팀으로부터 현금 500만 원을 받았다가 돌려준 사실을 폭로했다. 이 기사를 접하자 국민들은 순간적으로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이름이 잘못 올라간 것이 아닐까 두 눈을 비볐을 법하다. 하지만 다시 기사를 보고 김용철과 성은 다르지만 이름은 같은 이용철 전 법무비서관이 새로운 사실을 밝혀 삼성 로비의 진실을 드러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묘하게도 ‘용철’이란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한국 제일의 기업 ‘삼성’을 상대로 칼을 뽑아든 셈이 됐다. 두 사람은 변호사로서 1958년생(김용철), 1960년생(이용철)으로 비슷한 연배다. 김용철 변호사는 고려대 법학과를, 이용철 전 비서관은 연세대 ...

    752호2007.12.04 00:00

  • [1000자 인물비평]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

    ‘떡값 구설’로 가시밭길이 ‘보인다’ 임채진 검찰총장 내정자가 차기 검찰총장에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11월 13일 인사청문회를 실시한 국회 법사위가 ‘조건부 적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인사청문회에서 나경원 의원(한나라당)은 ‘보인다’는 식의 검찰 표현을 문제삼았다. 지난 8월 한나라당의 경선과정에서 검찰은 도곡동 땅 의혹에 대해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모호한 결론을 내렸다. 나 의원은 2002년 대선과정에서 검찰이 “(이회창 후보의 장남인) 정연씨가 체중을 고의로 감량한 증거는 없지만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는 표현으로 대선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이날 나 의원은 검찰이 BBK사건에 대해서도 ‘보인다’는 식으로 발표할까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임 검찰총장 내정자는 차기 검찰총장에 임명될 것으로 ‘보이지만’,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임 내정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청문회를 바로 코앞에 두고...

    751호2007.11.2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