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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실에서] 핫플의 그림자
    핫플의 그림자

    유명 빵집인 런던베이글뮤지엄은 ‘오픈런의 성지’, ‘줄 서는 베이글집’으로 불립니다. SNS에는 매일 ‘인증숏’이 쏟아지고, 브랜드는 하나의 문화처럼 소비됩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줄 뒤에는 밥도 못 먹고 극심한 업무에 허덕인 청년 노동자가 있었습니다.“오늘 밥 못 먹으러 가서 계속 일하는 중.”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평범한 하소연처럼 보이지만, 그 말 뒤에는 장시간 노동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지난 7월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천점에서 일하던 스물여섯 청년이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유족들은 과로사라고 주장합니다. 키 185㎝, 체중 80㎏의 건강한 청년이었지만, 사망 전 일주일 동안 80시간을 일했고 사망 전날에는 15시간 동안 식사조차 하지 못한 채 매장 운영을 이어갔다고 합니다.회사에는 출퇴근 기록이 없었습니다. 유족은 휴대전화 문자, 카카오톡, 교통카드 내역으로 이 청년의 노동시간을 재구성했습니다. 노동자가 죽어야만 노동의...

    1652호2025.11.05 06:00

  • [편집실에서] 욕망이 아닌 불평등의 문제다
    욕망이 아닌 불평등의 문제다

    문재인 정부 시즌 2가 현실화하는 걸까요. 초강력 수요 억제를 중심으로 한 10·15 부동산 대책에 대한 여론 흐름이 심상치 않습니다. 정책 책임자들의 부동산 내로남불 기사가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걸 보면 그렇습니다. 갭 투자 형식으로 수십억원대의 경기 분당 아파트를 매입한 국토교통부 차관, 지역구에선 전세를 살면서 서울 잠실에 재건축 아파트를 갖고 있는 여당 원내대표, 대출 끼고 강남 아파트를 사 수십억원의 시세차익을 본 경제부총리 등. 공직을 맡기 전이거나 십수년 전 일어난 일들이지만, 내 집 마련의 길이 막혀 열 받은 사람들에게 이런 설명이 설득력 있게 들릴 리 없습니다. 불 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죠.낯설지 않은 장면입니다. 문재인 정부 때도 부동산가격이 치솟아 정부가 수요 억제책을 내놓으면 민심이 악화했고, 청와대와 정부 고위직의 다주택 보유·투기 의혹이 잇따라 터졌죠. 집을 두 채 이상 가지면 고위공직자의 결격 사유가 됐고, 1주택자가 되기 위해 시골에 있는 움막...

    1651호2025.10.29 06:00

  • [편집실에서] 웃으며 계엄을 논의했다
    웃으며 계엄을 논의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불법 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 3일 대통령실 내부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법정에서 공개됐습니다. 화면 속 인물들은 헌정질서가 무너지는 역사적 장면 한가운데 있었지만 그들의 표정엔 긴장도, 고민도 없어 보입니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웃었습니다.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당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지시 문건을 건네받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한참을 논의합니다. 영상에는 두 사람이 서류를 돌려보며 대화하고, 이 전 장관이 웃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 전 총리는 지난 2월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증인으로 출석해 “문건의 존재를 몰랐다”고 했지만, 너무나 뻔뻔한 거짓말이었습니다.최상목 전 경제부총리도 그간 “실무자로부터 쪽지를 받았지만 내용을 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영상은 최 전 부총리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문건을 건네받아 정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조속한 예비비 확보, 국회 관련 자금 차단, 비...

    1650호2025.10.22 06:00

  • [편집실에서]언젠가는 보물이 될 거야
    언젠가는 보물이 될 거야

    <개그콘서트>는 한때 저의 최애 TV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봉숭아학당’, ‘고음불가’, ‘감수성’ 같은 코너는 매주 일요일 밤 많은 웃음을 주었죠. 방청을 위해 KBS 별관 앞에서 몇 시간을 줄 서며 설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이 프로그램의 출발점에는 개그맨 전유성이 있었습니다. 대중에게는 ‘웃기지 않는 개그맨’ 정도로만 알려졌지만 <개그콘서트>를 기획한 사람, 수많은 후배를 무대에 세운 스승이 바로 그였습니다. 최근 그의 타계 소식과 함께 쏟아진 후배 개그맨들의 추모는 미처 알지 못했던 그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발인식 날 빗속에서 개그맨 조세호는 스승의 운구차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습니다. 김신영은 고인의 병실에서 나흘을 지내며 마지막을 함께했고, 그를 “나의 어른”이라 불렀습니다. 김신영과 전유성이 생전에 나눈 대화는 여운을 남깁니다.“저 이제 한물갔어요”, “한물 가고, 두물 가고, 세물 가면 보물이 되거든. 너는 보물이 될...

    1649호2025.10.08 06:00

  • [편집실에서] 제2의 윤석열 만드나
    제2의 윤석열 만드나

    요즘 더불어민주당의 ‘조희대 때리기’를 보고 있으면 문재인 정부 시절의 ‘추·윤 갈등’이 겹쳐 보입니다. 5년 전입니다. 취임 일성으로 검찰개혁을 내건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중대한 비위 혐의를 확인했다며 징계를 밀어붙였죠. 추 장관이 윤 총장에게 내린 직무 정지·정직 조치는 번번이 법원의 효력정지 가처분으로 제동이 걸립니다. 그즈음 조국 전 장관 가족의 자녀 입시비리 사건 1심 유죄 판결이 나오면서 검찰개혁의 명분도 흔들었죠. 역풍이 불었고, 이후는 모두가 아는 대로 윤석열 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의도는 좋았지만, 방법이 너무나 거칠었던 것이죠.다시 추미애 의원이 위원장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조희대 대법원장을 청문회 증인석에 세우려 합니다. 대법원이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이재명 당시 후보의 공직선거법 관련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것은 대선 개입이며, 이른바 ‘조희대·한덕수 등 4인 비...

    1648호2025.09.29 06:00

  • [편집실에서] 죽음을 소비하는 정치
    죽음을 소비하는 정치

    미국 극우 청년 활동가 찰리 커크가 총격으로 숨졌습니다. 그 소식은 국경을 넘어 국내 극우 진영의 추모 열기로까지 번졌죠.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 단체인 자유대학은 서울 숭례문광장과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 앞에 추모 공간을 마련하고 스스로 ‘상주’를 자처했습니다. 그들에게 커크는 단순한 청년 활동가가 아니라 ‘롤모델’이자 정치적 미래를 투사할 상징 같았습니다.미국의 반응은 더 노골적입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백악관에서 ‘찰리 커크 쇼’ 추모 방송을 이어갔고, JD 밴스 부통령은 “좌파 진영을 근절하기 위해 정부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도 전에 폭력의 책임을 ‘좌파’에 전가하며 정치적 보복의 기회로 삼은 것이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커크를 비난하는 외국인의 비자를 취소하겠다”는 발언까지 내놓았습니다. 추모가 증오와 적대의 동력이 돼버린 듯합니다.트럼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해 7월 유세 도중 총격을 당했을 때, ...

    1647호2025.09.24 06:00

  • [편집실에서] 김어준 논란이 말해주는 것
    김어준 논란이 말해주는 것

    지난 호에 나간 ‘공장장 가라사대-팬덤 권력’ 기사들에 대한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용기 있게 썼다”, “걱정이 될 정도로 좋은 기사였다”는 응원도 있었고, “열등감 폭발한 기사”, “기레기들의 김어준 죽이기” 같은 비난도 적지 않았습니다.그는 분명 권력이었습니다. 주간경향 기자들의 취재 과정에서 여당 의원들은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 자체를 회피했고, 미디어 전문가들도 자신의 코멘트가 기사에 인용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습니다. 기사가 나간 후 공감한다는 뜻을 전해온 의원들이 있었지만,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이는 곽상언 의원 한 명뿐이었습니다. 사내에서도 이런 기사 쓰면 구독자 더 떨어진다는 우려가 농담처럼 오갔습니다.이번 기획은 석 달 전쯤 부서 저녁식사 자리에서 시작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른바 ‘어심(김어준이 미는 정청래 후보)’, ‘명심(이재명 대통령이 미는 박찬대 후보)’ 논란이 불거지던 때였죠. 대화는 자연스레 김어준씨 유튜...

    1646호2025.09.17 06:09

  • [편집실에서] 정청래에 장동혁이라니, 어쩔 수가 없다
    정청래에 장동혁이라니, 어쩔 수가 없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이 최근 여러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벌써 5개월이 지났네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을 읽어가던 그의 한마디 한마디를 집중하고 지켜봤기에 오랜만의 인터뷰 기사에 눈길이 갔습니다. 특히 헌법재판관들이 탄핵심판 결정문을 합의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주심 재판관이 인용론과 기각론 양쪽 버전을 써놓고, 평의 때마다 재판관들이 쟁점별로 인용론과 기각론에 대한 비판과 보충 의견을 제시했다고 해요. 그러면 주심이 이를 반영해 다음 기일까지 다시 써오는 과정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비상계엄 요건이 안 되는데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니 위헌’이라는 인용론에 대해 ‘국회의 탄핵 남발과 예산 삭감 탓에 계엄을 선포했다는 피청구인 입장에서도 한 번 정당화해봐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고, 8명의 재판관이 이를 놓고 논의한 결과 ‘국회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정치로 풀어야지 병력을 동원하는 계엄을 하는 것은 선을 넘은 것’이...

    1645호2025.09.10 06:00

  • [편집실에서]자화자찬은 말자
    자화자찬은 말자

    ‘미치광이 전략’으로 전 세계 정상들을 멘붕에 빠뜨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구부정한 자세에 뚱한 표정으로 앉은 트럼프 대통령, 그 앞에서 비위를 맞추는 타국 정상의 모습이 ‘꿀잼’이라는 듯 쳐다보는 미 당국자들 앞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대표단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피스 메이커”, “북한 트럼프 월드 골프” 등 달콤한 말을 쏟아내며 트럼프의 표정을 살피는 이 대통령의 모습은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양국은 지난 7월 말 한국이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 펀드를 구성하고 1000억달러 상당의 미국산 에너지를 구매하는 등의 조건으로 미국이 한국에 부과한 상호관세율을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무역 합의안을 마련했죠.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뒤집지 않은 점,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직접 표명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하지만 개운치는 않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의 결...

    1644호2025.09.03 06:00

  • [편집실에서] 차별금지법과 여가부 효능감
    차별금지법과 여가부 효능감

    강선우 후보자 사퇴 이후 3주 만에 새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됐습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여성인권위원장을 지낸 원민경 여가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 출근 첫날 포괄적 차별금지법 도입에 대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사회 모든 구성원이 불합리한 차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사회적 약자의 근본을 보호할 구제 수단이 마련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과 의미가 매우 크다”며 국가인권위원회와 적극 협력하겠다고 했죠. 차별금지법 얘기만 나오면 고장 난 레코드처럼 사회적 합의 운운하며 빠져나가던 여타 정치인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추진 의사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반가웠습니다.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학력, 성적 지향, 종교, 피부색 등에 따라 고용이나 교육, 공공서비스 등의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유엔 인권이사회를 비롯해 국제사회의 법 제정 권고가 20년 가까이 이어지는 중이고, 국가인권위원회도 2006년에 이어 2...

    1643호2025.08.27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