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은 너무 늦었고, 한쪽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서광식·서기웅 부자 시집 <만리동 고개를 넘어가는 낙타>(2011)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시집에서 서울 만리동 고개는 이따금 미싱 소리만 들려오는 사막의 모래언덕으로 그려지고, 그곳에 사는 가족은 꿈속에서 에프킬라를 두려워하며 쫓기는 바퀴벌레가 되기도 한다. 만리동 마을 곳곳에 재개발 플래카드가 걸리고 ‘철거’ 알림장이 돌던 시절의 기억이다. 서울의 여느 재개발 구역처럼 만리동과 아현동은 도심 내부의 주변 지역으로서 급격한 변화만큼이나 상처의 서사도 있는 동네다.서울지하철 충정로역 6번 출구에서 300여m를 걸어가면 손기정체육공원으로 연결되는 언덕길이 나온다. 지금은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만리동2가와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아현뉴타운을 배경으로 한 손기정로에는 재개발 준비위원회 걸개를 건 사랑방을 비롯해 공인중개사무소, 작은 슈퍼, 가내수공업 형태의 봉제공장들이 눈에 띈다. 전장석 시인은 “막대그래프 ...
1674호2026.04.10 1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