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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한국여성 문학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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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26) 문화의 경계에서 글 쓰는 여자, 번역하는 여자
    (26) 문화의 경계에서 글 쓰는 여자, 번역하는 여자

    글 쓰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는 소녀들에게 전혜린이라는 이름은 건너뛸 수 없는 통과제의이다.¹ 전혜린의 유고 에세이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6)는 한 시절 문학소녀들의 책장에 어김없이 꽂혀 있던 필독서 같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소녀들은 문학을 사랑하게 됐고, 유럽의 한 도시를 동경하게 됐으며, 무엇보다 글을 읽고 쓰는 미래를 꿈꾸었다. 소설가 전경린은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이 당선됐을 때 지인이 붙여준 아호 ‘경인’ 앞에 ‘전’자를 붙인 필명을 쓰기로 결정한다. ‘안애금’에서 ‘전경린’으로 이름을 바꾸기로 했을 때 그의 마음에 들어와 있던 인물이 전혜린이다. 전경린은 자신이 전혜린의 에세이를 많이 읽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전혜린이 “소설을 한 편도 쓰지 못했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 자신이 “대신 써나간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해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전혜린에 대한 단행본을 쓴 김용언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문학소녀, ...

    1674호2026.04.10 14:44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25) 함락된  도시와 스톡홀름증후군의  여자
    (25) 함락된 도시와 스톡홀름증후군의 여자

    전병순(1929~2005)은 1960~1970년대에 <또 하나의 고독>, <독신녀> 등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대중소설 작가다. 이러한 까닭에 그가 1961년 한국일보 장편 현상 공모에 <절망 뒤에 오는 것>이라는 묵직한 작품으로 데뷔했다는 사실은 종종 잊힌다. <절망 뒤에 오는 것>은 문학사상 최초로 ‘여수·순천 10·19사건’(이하 여순사건)을 반공 국가의 공식 기억과 달리 “반란군”이 주도한 양민학살이 아닌 정부가 양민을 대상으로 자행한 국가폭력으로 초점화한 급진적인 작품이다. <절망 뒤에 오는 것>은 1950년대와 달리 문단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획득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전병순은 4·19 혁명으로 불어온 자유의 물결 속에서 강요된 침묵을 깨고 여순사건의 반인륜성을 폭로했다.전병순은 독자가 자신을 강서경과 동일시한다며 반감 혹은 두려움을 표했지만, 이 작품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허구가 덧...

    1672호2026.03.27 13:30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24) 연애 서사와 혁명 서사의 불편한 공존
    (24) 연애 서사와 혁명 서사의 불편한 공존

    1960년 4·19 시민혁명은 한국문학 장에 ‘청년-남성-지식인’ 주체를 혁명의 주인공으로 호명하며 그들의 고뇌를 문학 정전으로 구축했다. 하지만 이 견고한 문학 정전의 틈을 비집고 여성의 목소리로, 혹은 낯익은 대중소설의 양식으로 4·19 혁명 전후를 그린 작품들이 있다. 박경리의 <푸른 운하>·<노을 진 들녘>, 강신재의 <오늘과 내일>, 정연희의 <목마른 나무들>이 그러하다. 1963년 발간된 정연희의 장편소설 <목마른 나무들>은 혁명의 광장 밖에서 다른 방식으로 자유를 꿈꾸었던 여성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소설은 4·19 혁명을 경유하면서 여성들이 겪는 실존적 방황과 욕망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서사를 통해 4·19의 또 다른 풍경을 그린다.<목마른 나무들>은 연애 서사의 문법을 충실히 구현한다. 고아인 불우한 여성이 자신을 돌봐준 ‘아버지 같은’ 약혼자를 두고, 우연히 눈이 마주친 매력적인 남성에게 이...

    1670호2026.03.13 14:55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23) 여성의 욕망, 여성의 목소리
    (23) 여성의 욕망, 여성의 목소리

    김자림(金玆林·1926~1994)은 한국 최초의 여성 극작가다. 물론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나혜석, 박화성, 장덕조 같은 여성 작가가 희곡을 발표한 적은 있다. 그러나 이들은 기본적으로 화가이거나 소설가였지 전문적인 희곡작가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출판한 희곡 작품의 수가 적고 창작활동도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못했기에 여성 희곡사에 의미 있는 파장을 남기는 수준에까진 이르지 못했다.한국 여성 희곡사에서 본격적인 여성 희곡작가가 탄생한 것은 1959년이다. 김자림은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돌개바람’이 입선되고, 1961년 ‘유산’이 당선됨으로써 한국문학사에서 여성 극작가 부재의 시대를 종결시킨 최초의 인물이다. 또한 그는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국립극단에 작품을 올린 작가이기도 하다. 1966년 국립극단이 무대에 올린 김자림의 <이민선>(전세권 연출, 백성희·최불암·김금지·고설봉 등 출연)은 국립극단 사상 처음으로...

    1668호2026.02.27 13:12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22) 사랑의 불안을 탐색하는 여성 서사
    (22) 사랑의 불안을 탐색하는 여성 서사

    김지원(1942~2013)은 1997년에 ‘사랑의 예감’으로 제2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지만, 미국 이민자로 한국 문단에서 사실상 이방인적 위치에 있었다. 1970~1980년대 뉴욕의 한인 사회를 배경으로 한 김지원의 소설은 한국 여성이 1960~1980년대에 여성의 사회·정치·경제적 권리 확장을 요구하고 가부장제·성적 규범 같은 성차별 구조를 비판하며 확산한 ‘제2물결’과 조우하며 여성 문제를 파고든 결과였다. 한국 문단은 당시 산업화로 인한 사회적 병폐 해결과 민주화라는 역사적 과제 수행을 요구받고 있었고, 페미니즘을 부르주아 여성 운동으로 낙인찍어 경멸했기에 김지원의 문학은 너무 일찍 도착한 편지처럼 오랫동안 수신자를 기다려야만 했다.대중에게는 다소 낯선 작가인 김지원은 최정희와 김동환의 장녀로 문인 가족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영문과 재학 중인 1964년 1월 ‘여원’에 ‘늪 주변’이 당선돼 데뷔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1973년에 도미한 후인 1975년 ‘현대문학’...

    1666호2026.02.06 14:32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21) 일하는 신체, 쓰는 주체…여성 노동자 수기의 출발
    (21) 일하는 신체, 쓰는 주체…여성 노동자 수기의 출발

    석정남의 ‘불타는 눈물’이나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 같은 노동자 소설을 읽으면서, 또 주말이면 경인공단이나 구로동을 취재하면서 이런 것들을 놔두고 어떻게 그냥 지나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아직도 이루지 못한 ‘난장이의 꿈’: 조세희 ‘난쏘공’ 출간 30주년, 경향신문 2008년 11월 11일 기사 일부)<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출간을 회고하는 자리에서 작가 조세희는 1970년대 석정남과 유동우의 노동자 소설(엄밀하게는 수기)이 자신의 창작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이 인터뷰 기사에서 언급한 ‘불타는 눈물’은 ‘월간 대화’에 실린 석정남의 ‘어느 여공의 일기’의 일부이다. 제목처럼 온전히 스무 살 여성 노동자의 일기로만 이뤄진 이 수기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1976년 11월)와 ‘불타는 눈물’(1976년 12월)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됐다. ‘어느 여공의 일기’에서 발화한 여성 노동자 수기는 송효순의 <서울로 가는 길>(...

    1664호2026.01.23 14:59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20) 성적 수치에 맞서는 저항적 여성 주체의 출현
    (20) 성적 수치에 맞서는 저항적 여성 주체의 출현

    희곡작가 정복근은 <위기의 여자>(시몬 드 보부아르 원작, 오증자 번역, 정복근 각색, 임영웅 연출로 1986년 공연)의 각색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위기의 여자>는 극단 산울림의 개관 1주년 기념작으로 기획·공연됐는데, 애초 한 달 예정이던 공연은 130석 규모의 소극장에 200명이 넘는 관객이 몰리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이런 대중적 성공에 힘입어 극단은 두 달 후 공연을 재개해 7개월에 걸친 장기 공연을 성사시키는 신기록을 세운다.‘정복근-박정자-임영웅’ 트리오가 만들어낸 이 획기적 공연은 그간 한국사회에서 진지한 문화적 주체로 고려된 적이 없던 중년여성을 극장으로 끌어들여 이들의 목소리가 공론장에 울려 퍼지게 만든 문화적 사건이다. 삶의 의미를 가족 내 역할에 찾던 중년여성이 남편의 외도를 기화로 실존적 자아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텔레비전 불륜 드라마 양식의 보수성을 답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대 위 주인공이 자신에 대해...

    1662호2026.01.09 14:56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19) 냉전 권력의 심부 겨냥하는 여성 작가 출현
    (19) 냉전 권력의 심부 겨냥하는 여성 작가 출현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선언은 조선 사람이 자유민임을 실감하며 식민지에서 억눌렸던 꿈을 실현하기 시작한 기점이었다. 해외에 있던 독립운동가들이 귀환하고, 곳곳에서 선언문이 낭독되며 정치 조직이 꾸려졌다. 이렇듯 해방 공간의 역동성은 정치적 주체가 된 남성·청년의 도전과 모험의 서사로 읽히기 쉽지만, 해방은 식민지와 가부장제라는 이중 구속에 놓인 여성들에게 주어진 감격의 모멘텀이었다. “낡아 빠진 인고 속에서 뛰쳐나올 용기가 없다는 것인가. 선구자인 여학생들이 인형의 집을 못 뛰쳐나오면 누가 나올 것인가”(박대룡 ‘여학생과 노라’, 경향신문 1947년 1월 19일)라는 사설은 8·15의 시간성 속에서 여성들이 남자의 팔짱을 끼지 않고도 자립 보행할 수 있는 자율적 개인이 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월남 작가인 박순녀(朴順女·1928~)는 여학생의 가출 서사를 통해 일제강점기 신여성의 후예를 자처하는 해방 세대 여성들의 존재를 ...

    1660호2025.12.26 15:30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18) 가부장적 봉건 질서 파괴하는 여성 괴물과 여성 입법자의 탄생
    (18) 가부장적 봉건 질서 파괴하는 여성 괴물과 여성 입법자의 탄생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6년간의 창작 기간을 걸쳐 완성된 박경리의 <토지>는 전체 5부 25편 362장(序 포함)으로 돼 있다. <토지>가 그리는 세계는 거대하다. 공간 스케일의 측면에서 1부 ‘평사리’에서 시작된 서사는 용정, 하얼빈, 러시아, 일본으로 국경을 넘어 확장된다. 1부 1장 ‘서희’로 시작한 이 대하소설의 인물들은 최치수와 윤씨 부인이 이끄는 최참판댁 일가와 주변의 양반, 평사리의 민중, 밀정과 독립운동가, 신여성과 기생, 지식인과 사상가, 자본가와 장사꾼까지 다양한 계층과 직업군을 아우르며 그 수는 600~700명에 이른다. 시기적으로는 구한말부터 해방 직전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근대를 포괄한다. 말 그대로 <토지>는 공간과 시간을 날줄과 씨줄 삼아 다양한 인물의 네트워크를 지리적·계층적·시간적으로 촘촘하게 직조해낸 거대서사(grand narrative)다.이 글에서는 평사리를 배경으로 하는 1부와 용정을 ...

    1658호2025.12.12 14:43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17) 사막을 건너는 1인칭 레지스탕스 윤리
    (17) 사막을 건너는 1인칭 레지스탕스 윤리

    서영은의 <먼 그대>는 여성이 가부장적 남성 질서와 맺는 관계가 ‘굴종과 저항’, ‘종속과 해방’의 이분법적 틀로 단순화될 수 없는 기이한 도착성을 띨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흔치 않은 소설이다. 1970~1980년대 초남성적 권위주의 국가에 의해 억압적 근대화가 진행돼 온 한국사회에서 국민은 남녀를 가릴 것 없이 사회적으로 거세된 존재나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남성들은 억압적 정치체제를 무기력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거세를 부인하기 위해 더욱 강한 남성성으로 재무장하고자 했으며, 여성들은 그 남성성을 보조하는 수동적 위치에 머무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지를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여성이 남성 질서에 맞서 싸우는 투쟁의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시 한국사회에서 소수의 해방투사를 제외한 다수의 여성에게 직접 투쟁의 길은 크게 열려 있지 않았다. 이런 사회적 조건에서 서영은 소설의 여성 인물은 마조히즘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한다....

    1656호2025.11.28 1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