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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한국여성 문학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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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32) ‘삐라’를 뿌리는 여자들
    (32) ‘삐라’를 뿌리는 여자들

    1945년 해방은 조선이 일제 식민지로 전락함으로써 지연된 여성해방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여성들이 정치의 광장에 뛰어든 극적 사건이었다. 해방이 되자 남북한 양측은 ‘부녀국’을 설치하고 남녀평등법을 발포하는 등 여성해방을 국가의 과제로 제시했다. 오랫동안 사적 가부장제의 그늘에서 자율적 개인이 될 수 없었던 여성들이 공공정책의 대상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각성한 여성들은 민족해방의 물결 위에 올라타 여성해방을 위한 정치 투쟁에 나섰다. 김말봉(1901~1961)의 <카인의 시장>(<화려한 지옥>(1954)으로 개작 단행본 출간)은 여성의 인간화를 부르짖으며 ‘삐라’를 뿌리는 여성들이 등장했던 해방의 역사를 보여준다.김말봉은 1901년 경남 밀양의 농가에서 태어나, 그만 딸을 낳게 해달라는 뜻의 말봉(末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소학교에 들어가 미국인 여교사에 의해 비로소 자신이 ‘여성’임을 인지했을 만큼 남복(男...

    1687호6시간 전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31) 강신재 ‘해방촌 가는 길’···감각의 발견과 양공주의 재현
    (31) 강신재 ‘해방촌 가는 길’···감각의 발견과 양공주의 재현

    강신재(1924~2001)는 1949년 ‘문예’에 단편소설 ‘얼굴’과 ‘정순이’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 2001년 작고하기까지 60여편의 단편소설과 30여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한 다작의 작가다. 여성 작가로는 최초로 자신의 대표작 전집(강신재대표작전집, 삼익출판사, 1974)을 발간하고,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1982)과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1983)으로 선임될 만큼 문학 장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한 드문 사례에 속한다.일제강점기 1세대 신여성 작가들이 뛰어난 문학적 역량과 각성된 여성의식을 갖고 있었음에도 작품 없는 작가라는 조롱거리가 되고 작품보다 사생활과 관련된 스캔들로 더 소비됐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작가로 산 시간 동안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문인이자 여성 지식인으로 활동했다. 더욱이 1960년대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은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등단 초기 감각적 문체의 ...

    1684호2026.06.19 15:37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30) 전후 국민국가의 젠더 정치와 비국민 여성의 수난 서사
    (30) 전후 국민국가의 젠더 정치와 비국민 여성의 수난 서사

    최정희의 <녹색의 문>은 일제 말기와 해방기,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의미심장한 시기를 배경으로 이상적 삶을 동경하던 여학생이 섹슈얼리티를 훼손당하고, 애인과 남편의 변심으로 인한 수난을 겪으면서 단단한 어머니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여성 성장 서사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한국문학의 주요 플롯인 여성수난사와 여성 성장 서사의 궤적을 따라가는 듯하면서도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그리고 가부장적 질서에 미세한 균열을 내는 젠더 정치학을 수행하고 있다.여학생 시절 주인공 유보화는 “하늘에 문 달린 집 보리밭처럼 푸른 문(門) 안에 살고 있는 어느 나라 왕자와 같은 눈이 서늘한 남자와”의 연애를 꿈꾼다. 조선어 사용이 금지되고, 신사참배가 일상화된 식민지 현실은 흐릿한 배경으로 존재할 뿐 유보화는 낭만적 연애를 꿈꾸면서 막연히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며 성장기를 보낸다. 그런 그녀가 동경 여자미술학교로 유학을 가서 우연히 하...

    1682호2026.06.05 14:49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29) 흔들리는 남성성과 지식인 여성의 주체성 확보
    (29) 흔들리는 남성성과 지식인 여성의 주체성 확보

    4·19를 빼놓고 한국 문학사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4·19는 깨어 있는 시민의 등장을 알린 사건이자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집합적 노력이 독재체제를 무너뜨린 역사적 쾌거다. 그러나 4·19는 곧바로 5·16에 의해 고립되고 억압된다. 1960년대에 대한 문화론적 분석을 시도한 권보드래와 천정환은 “4·19는 밥(경제)과 장미(민주주의)를 동시에 문제 삼아야 할 근대혁명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건이었고, 5·16은 그 보충으로서 불가피한 시간이었다”고 진단한다. 무엇보다 “5·16이 돼버린 4·19”를 만든 것은 당대 대중의 욕망과 선택이었다. 당대 대중은 자유 대신 밥을 받아들임으로써 근대 발전의 민족(주의)적 가능성 쪽에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민족(주의)적이면서 열렬히 서구를 추종했고, 경제개발의 이데올로기가 속물과 졸부를 낳았음에도 저항 의식과 인문적 교양이 함께 커가는 이율배반을 보이기도 했다.5·16이 돼버린 4·19가 배경1960년대 한국사회가...

    1680호2026.05.22 14:41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28)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28)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1959년에 발표된 <표류도>는 1956년에 30세의 나이로 <계산>, <흑흑백백>으로 데뷔해 경력이 길지 않은 박경리를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박경리는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처녀 공출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결혼했지만 한국전쟁기 서대문형무소에서 허무하게도 남편 김행도를 떠나보냈다. 작품들은 그 후 여성 가장이 돼 거둔 수확이었다. 지역 도서관의 소개 글이 말해주듯이 세상은 이 작품을 “세상이 용납하지 않는, 이른바 불륜의 사랑”을 그린 대중소설로 부른다. S대 사학과 출신으로 다방 ‘마돈나’를 경영하는 강현회가 불륜의 사랑에 빠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 소설은 6.25 전쟁의 트라우마에 노출되는 한편으로, 벌거벗은 생존주의가 만연한 전후의 현실에서 여성 지식인의 구원을 향한 길 찾기에 관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금괴 밀수를 저지른 범죄자가 해방 후 우국지사로 둔갑해 부와 권력을 추구하고, 다...

    1678호2026.05.08 14:37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27) 미친년이라는 여전사에 대하여
    (27) 미친년이라는 여전사에 대하여

    규수작가의 대명사로 통하는 한무숙은 정신병리적인 여주인공을 그린 작품을 다수 발표했다. 그의 두 번째 창작집의 표제작 ‘축제와 운명의 장소’(1962)는 자기 스스로를 실제보다 크게 과장, 과대평가하는 망상에 사로잡힌 “미친년” 전옥희 여사에 관한 이야기다. “저항을 잃은 마흔아홉이라는 여자”지만 그는 위대한 남자와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조증 환자처럼 퇴원을 해 새로운 사업에 착수하고 “이상의 남성을 찾”겠다는 계획과 기대에 부푼다. 실제의 그는 죽음을 앞둔 폐암 말기의 환자다. 가족이 없는 그는 무료로 진료를 받는 대가로 신약의 부작용 여부를 테스트 당하는 시료환자(施療患者)이자 부검이 예비된 살아 있는 시체다. 친구들은 거추장스러운 그를 병원의 가장 싸구려 병실에 의탁했지만, 그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인생의 위대한 목적을 가진 사람처럼 고상하고 품위가 있다. 작가는 이런 전옥희를 어리석고 허영심 많은 존재가 아니라 ...

    1676호2026.04.24 15:09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26) 문화의 경계에서 글 쓰는 여자, 번역하는 여자
    (26) 문화의 경계에서 글 쓰는 여자, 번역하는 여자

    글 쓰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는 소녀들에게 전혜린이라는 이름은 건너뛸 수 없는 통과제의이다.¹ 전혜린의 유고 에세이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6)는 한 시절 문학소녀들의 책장에 어김없이 꽂혀 있던 필독서 같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소녀들은 문학을 사랑하게 됐고, 유럽의 한 도시를 동경하게 됐으며, 무엇보다 글을 읽고 쓰는 미래를 꿈꾸었다. 소설가 전경린은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이 당선됐을 때 지인이 붙여준 아호 ‘경인’ 앞에 ‘전’자를 붙인 필명을 쓰기로 결정한다. ‘안애금’에서 ‘전경린’으로 이름을 바꾸기로 했을 때 그의 마음에 들어와 있던 인물이 전혜린이다. 전경린은 자신이 전혜린의 에세이를 많이 읽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전혜린이 “소설을 한 편도 쓰지 못했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 자신이 “대신 써나간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해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전혜린에 대한 단행본을 쓴 김용언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문학소녀, ...

    1674호2026.04.10 14:44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25) 함락된  도시와 스톡홀름증후군의  여자
    (25) 함락된 도시와 스톡홀름증후군의 여자

    전병순(1929~2005)은 1960~1970년대에 <또 하나의 고독>, <독신녀> 등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대중소설 작가다. 이러한 까닭에 그가 1961년 한국일보 장편 현상 공모에 <절망 뒤에 오는 것>이라는 묵직한 작품으로 데뷔했다는 사실은 종종 잊힌다. <절망 뒤에 오는 것>은 문학사상 최초로 ‘여수·순천 10·19사건’(이하 여순사건)을 반공 국가의 공식 기억과 달리 “반란군”이 주도한 양민학살이 아닌 정부가 양민을 대상으로 자행한 국가폭력으로 초점화한 급진적인 작품이다. <절망 뒤에 오는 것>은 1950년대와 달리 문단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획득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전병순은 4·19 혁명으로 불어온 자유의 물결 속에서 강요된 침묵을 깨고 여순사건의 반인륜성을 폭로했다.전병순은 독자가 자신을 강서경과 동일시한다며 반감 혹은 두려움을 표했지만, 이 작품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허구가 덧...

    1672호2026.03.27 13:30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24) 연애 서사와 혁명 서사의 불편한 공존
    (24) 연애 서사와 혁명 서사의 불편한 공존

    1960년 4·19 시민혁명은 한국문학 장에 ‘청년-남성-지식인’ 주체를 혁명의 주인공으로 호명하며 그들의 고뇌를 문학 정전으로 구축했다. 하지만 이 견고한 문학 정전의 틈을 비집고 여성의 목소리로, 혹은 낯익은 대중소설의 양식으로 4·19 혁명 전후를 그린 작품들이 있다. 박경리의 <푸른 운하>·<노을 진 들녘>, 강신재의 <오늘과 내일>, 정연희의 <목마른 나무들>이 그러하다. 1963년 발간된 정연희의 장편소설 <목마른 나무들>은 혁명의 광장 밖에서 다른 방식으로 자유를 꿈꾸었던 여성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소설은 4·19 혁명을 경유하면서 여성들이 겪는 실존적 방황과 욕망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서사를 통해 4·19의 또 다른 풍경을 그린다.<목마른 나무들>은 연애 서사의 문법을 충실히 구현한다. 고아인 불우한 여성이 자신을 돌봐준 ‘아버지 같은’ 약혼자를 두고, 우연히 눈이 마주친 매력적인 남성에게 이...

    1670호2026.03.13 14:55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23) 여성의 욕망, 여성의 목소리
    (23) 여성의 욕망, 여성의 목소리

    김자림(金玆林·1926~1994)은 한국 최초의 여성 극작가다. 물론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나혜석, 박화성, 장덕조 같은 여성 작가가 희곡을 발표한 적은 있다. 그러나 이들은 기본적으로 화가이거나 소설가였지 전문적인 희곡작가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출판한 희곡 작품의 수가 적고 창작활동도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못했기에 여성 희곡사에 의미 있는 파장을 남기는 수준에까진 이르지 못했다.한국 여성 희곡사에서 본격적인 여성 희곡작가가 탄생한 것은 1959년이다. 김자림은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돌개바람’이 입선되고, 1961년 ‘유산’이 당선됨으로써 한국문학사에서 여성 극작가 부재의 시대를 종결시킨 최초의 인물이다. 또한 그는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국립극단에 작품을 올린 작가이기도 하다. 1966년 국립극단이 무대에 올린 김자림의 <이민선>(전세권 연출, 백성희·최불암·김금지·고설봉 등 출연)은 국립극단 사상 처음으로...

    1668호2026.02.27 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