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주간경향

연재

이주영의 연뮤덕질기
  • 전체 기사 66
  • [이주영의 연뮤덕질기](26) 불안과 연대 사이의 당당함, 진화하는 여성서사
    (26) 불안과 연대 사이의 당당함, 진화하는 여성서사

    “남자애들이 머리카락이 짧다고 나더러 페미(페미니스트)래.”사춘기 절정의 중3 딸아이가 무심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젠더 갈등이 중3 교실에서도 진행 중인가 싶어 걱정이 앞선다. ‘젠더 차별과 불평등을 인식하고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정도로 해석하는 ‘페미니스트’가 언제부터 부정적 의미로 통용됐을까? ‘여성의 인권만’ 옹호하는 사람으로 오인해서? 헤어스타일과 페미는 또 무슨 상관인가?창작 초연 뮤지컬 <벤자민 버튼>(조광화 작·연출, 심새인 협력연출, 이나오 작곡, 문수호 퍼펫 디자인)은 첨예해지는 젠더 갈등에 대한 처방전 같은 작품이다. 나이가 거꾸로 드는 희소병에 걸린 벤자민은 아홉 살 노인이다. 클럽을 떠돌며 아빠와 노래하는 동갑내기 소녀 블루와 친구가 되면서 장애와 고독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친부에게 버려진 블루는 트라우마로 사랑을 믿지 못한다. 벤자민을 양육한 마마의 재즈클럽이 망하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벤자민이 징집되는 동안 블루는 ...

    1581호2024.05.31 16:00

  • [이주영의 연뮤덕질기](25) 괜찮아, 달리지 않는 연습이 필요해
    (25) 괜찮아, 달리지 않는 연습이 필요해

    “이건 이 이야기의 결말이자 나의 최후이다. 투데이는 며칠 전까지 안락사가 결정된 경주마였다. 나는 폐기를 앞둔 기수였다. 난 떨어지고 있다. 내 이름은 콜리다. 브로콜리의 색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뮤지컬 <천개의 파랑>(천선란 원작·김한솔 극작·김태형 연출·박천휘 작곡)은 주인공인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콜리의 마지막으로 문을 연다. 경주마 투데이를 타고 달리는 콜리의 독백은 모든 서사를 압축한 듯 상징적이다.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상하좌우로 움직이는 대형 LED(발광다이오드) 패널 영상과 서라운드 음향은 경마장으로 관객을 이끈다. 홀로 질주하던 투데이와 콜리는 어느새 경주마들 사이에 들어선다. 시속 100km 신기록 보유 경주마 투데이와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이야기의 시작이며 마지막이기도 하다.뮤지컬 <천개의 파랑>은 기획단계부터 화제였다. 같은 원작의 연극 <천개의 파랑>(천선란 원작·김도영 각색·장한새 연출)과...

    1579호2024.05.20 10:14

  • [이주영의 연뮤덕질기](24) 각자의 정의가 벌이는 혈투?
    (24) 각자의 정의가 벌이는 혈투?

    마녀사냥(witch hunt)은 ‘특정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운다’는 의미로 쓰인다. 중세시대 종교적인 ‘심판’을 빌미로 이단 혹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박멸하는 수단이었다. 학문적으로는 18세기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지만 사실상 21세기에도 마녀사냥은 공공연하다. 생각과 입장이 다른 이들을 숙청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임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화려함의 극치일 거라 상상했던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미하엘 쿤체 극작·로버트 요한슨 연출·실베스터 르베이 작곡)는 마녀사냥으로 귀결된다. 왕당파 주적으로 지목돼 프랑스 대혁명 당시 남편 루이 16세와 함께 단두대의 이슬이 된 마리 앙투아네트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만화, 게임 등으로 트랜스미디어(transmedia·매체 특성을 넘나들며 세계관을 공유하는)된 실존 인물이다.새롭게 들여다보는 앙투아네트너무 유명해서 더 알아야 할 내용이 있을까 ...

    1576호2024.04.26 16:00

  • [이주영의 연뮤덕질기](23) 관객 참여가 이끄는 더 나은 삶
    (23) 관객 참여가 이끄는 더 나은 삶

    ‘프리쇼’는 요즘 공연계에서 흔하다. 극이 시작되기 전 배우들이 관객들과 어우러져 연주하고 춤추며 흥을 돋운다. 객석을 돌아다니거나 관객 옆에 미리 앉아 있는다. 작품 중간중간 서사 안에 들어가 간단하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례도 다반사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사라지는 ‘탈경계 공연장’ 풍경이다.연극 <초선의원>(오세혁 작·변영진 연출)은 관객 반응이 작품의 동력이다. 작품 속 스포츠 경기 관중으로, 선거 유세 유권자로, 노동쟁의 중인 노동자로 동참해 손바닥이 아프도록 손뼉을 치거나 연호하게 이끈다.노무현 전 대통령을 오마주한 작품이지만 과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신파는 아니다. 9명의 출연진은 115분 공영시간 내내 250석 남짓한 무대에서 서로 부딪히지도 않고 날렵하게 뛰어다닌다. 마라톤과 양궁, 레슬링 등 12개 종목이 서사 안에 스며들어 시대상을 풍자하는 매개가 된다. 요즘 유행하는 신체연극(physical theater·신체 움직임으...

    1574호2024.04.17 06:00

  • [이주영의 연뮤덕질기](22) 연극인 캠프 ‘프로젝트 3일’,  뜨거운 꿈의 연대
    (22) 연극인 캠프 ‘프로젝트 3일’, 뜨거운 꿈의 연대

    지난 3월 23일 오후 2시. 서울 강북구 오래된 상가 지하 연습실에 비범한 외모의 청년들이 모였다. 근황 인사도 없이 그들은 바로 ‘연극을 왜 하는가?’, ‘관객에게 내 연극을 왜 보여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주어진 2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예정에 없던 소그룹별 토론도 추가됐다. 연극을 좀 하는 사람, 연극을 좀 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프로젝트 3일-그 후 3일’ 포럼 현장이다.시작은 지난 3월 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진행된 ‘프로젝트 3일’이다. 강훈구(공놀이클럽), 김수정(극단 신세계), 김정(프로젝트 내친김에), 오세혁(네버엔딩플레이), 정진새(극단 문) 등 6인이 제안하고 함께 이끈 이 ‘연극인 캠프’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모집 공고가 뜨자 몇 시간 만에 120여명이 몰려 조기 마감됐다. “모두의 연극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3일간의 캠프로 연습이자 토론이자 공연이다. 연극인들이 모여 이틀 밤낮 연습하고 토론해 사흘째 하나의 연극을...

    1572호2024.04.03 10:55

  • [이주영의 연뮤덕질기](21) 런던 ‘접수’한 인형 조종자들
    (21) 런던 ‘접수’한 인형 조종자들

    “연극 <이웃집 토토로>(이하 토토로)와 뮤지컬 <겨울왕국>이 너무너무 궁금해요.” 언제부터인가 중2 아이가 노래를 했다. 수많은 명작 라이선스 무대극이 한국에 상연됐지만, 두 작품은 언제 들어올지 소식이 없다. ‘연뮤덕(연극과 뮤지컬을 매일 관람하다시피 하는 마니아)’ 아이와 전쟁을 멈추기 위해 매일 함께 공연 보기를 택한 필자도 궁금한 공연이다. 사춘기 절정 소녀와 갱년기 막바지 ‘다시 소녀’인 필자의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행은 이렇게 시작됐다.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와 함께 세계 공연계의 양대 산맥인 런던 웨스트엔드는 무대극 마니아들의 성지로 불린다. 세계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뮤지컬 <레미제라블>·<마틸다>·<라이온 킹>·<위키드>·<백 투 더 퓨처>·<해밀턴>, 연극 <해리포터, 저주받은 아이> 등은 수십 년에서 5년 이상 웨스트엔드 장기 상연에도 항상 매진이었다....

    1570호2024.03.20 06:00

  • [이주영의 연뮤덕질기](20) 정상과 증상…상처 직시하기
    (20) 정상과 증상…상처 직시하기

    ‘병은 소문내라’는 말이 있다. 치료법을 찾는 과정을 통해 같은 처지의 환우들과 동병상련을 나누기 위해서다. 치료는 병을 직시하고 통증과 진지하게 마주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상’과 ‘증상’ 사이, ‘낙인’과 ‘표식’ 사이에서 방황한다. 증상을 인정하지 않고 환자라는 낙인을 두려워하며 작은 병을 큰 병으로 키우는 경우는 흔하다. 특히 마음과 뇌에 문제가 생기면 전문 병원을 찾는 것부터 큰 장벽이다.조현병 엄마를 돌봐야 하는 고등학생 사라의 고백과 방황을 담은 연극 <이상한 나라의, 사라>(원인진 작·최치언 연출)는 수많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조현병은 유전인가요? 치료하면 나아지나요? 완치도 가능한가요? 언뜻 보면 우문(愚問) 같지만 ‘병을 소문내지 않기로 한’ 대다수가 겪는 두려움의 실체다. <이상한 나라의, 사라>는 영상 이미지를 곁들인 렉처 퍼포먼스(Lecture Perfor...

    1567호2024.02.28 06:00

  • [이주영의 연뮤덕질기](19) ‘국면 전환’…무대예술로 드러나는 목소리
    (19) ‘국면 전환’…무대예술로 드러나는 목소리

    공연 관람은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실감 여행이다. 객석에 들어서 무대를 바라보는 순간 관련 오브제들이 프로시니엄 아치(proscenium arch·무대와 객석을 구분하는 아치)에 설치된 것을 발견하면 심박수가 한층 뛰어오른다.뮤지컬 <일 테노레>는 프로시니엄 아치에 커다란 조명기기가 가득 들어차 있다. 공연을 다루는 메타 공연임을 드러내는 요소다. <드라큘라>는 오래된 시신 같은 조각상들이 무대 전체를 두르고 있다. 객석에 앉으면 오싹해진다. <마리 퀴리>는 야광 초록으로 덧칠된 실험실을 통해 퀴리 부인이 발견한 라듐 원소를 시각화했다. 라듐과 방사선에 대한 흥미를 돋우는 설정이다. 연극 <템플>은 창문과 사다리가 텅 빈 공간 여기저기에 걸려 있다. 자폐 스펙트럼 증상을 보이는 주인공의 소통을 다루는 작품임을 시사한다.현재 상연 중인 이 작품들은 내용도 장르도 모두 다르지만, 시대를 거슬러 소신껏 목소리를 낸 주...

    1565호2024.02.08 05:30

  • [이주영의 연뮤덕질기](18)관객 크리티컬? 관객 해방!
    (18)관객 크리티컬? 관객 해방!

    관객과 공연은 적대적 공생관계인가? 아니면 친화적 상생관계인가? ‘관객 크리티컬’(관극에 방해되는 행위를 일컫는 신조어·이하 ‘관크’)과 ‘시체관극’(시체처럼 움직이지 않고 주위에 방해되지 않는 관극 문화를 일컫는 신조어) 문제가 또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공연 성수기인 연말연시라 관크와 시체관극의 고충을 토로하는 경험담도 SNS에 자주 올라온다.앞 좌석 관객이 허리를 숙여 시야가 가려진다거나 공연 중 휴대전화를 켜 방해가 된다는 정도의 관크 비판은 그래도 이해되는 수준이다. 바스락거리는 외투 소리나 몸 상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숨소리마저 참기 어렵다는 등의 관크 비판을 보면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가족과 큰맘 먹고 좋은 공연을 보러왔는데 마음만 상했다는 글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아 필자 역시 등을 반드시 객석 등받이에 붙이고 움직일 때 소리가 나는 외투는 가급적 피한다. 소음 유발 장식이 있는 가방 등은 사물함에 맡...

    1562호2024.01.15 06:00

  • [이주영의 연뮤덕질기](17)장강의 앞물결이 뒷물결에게
    (17)장강의 앞물결이 뒷물결에게

    매일 공연장에서 살다시피 했는데도 쏟아지는 작품을 다 보지 못했다. 지난 한 해는 팬데믹 이후 와신상담해온 작품이 봇물 터지듯 한 시기였다. 입소문에 이끌려 하루에도 두세 편씩 관극하는 날이 많았다. 한국 공연계의 창의적인 토대와 다양성, 창작진들의 열정이 고루 담긴 창작 초연 작품만 대충 정리해도 수십 편이 넘는다. 한국뮤지컬어워즈(이하 어워즈) 본선 후보작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2024년 1월 15일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리는 어워즈는 국내 최대규모의 뮤지컬 축제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2023년 한국 뮤지컬 시장 규모는 2019년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40% 수직 상승했다. 뮤지컬 티켓 판매액이 4300억원이 넘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거대 산업인 영화와 OTT 규모가 급감한 데 비해 뮤지컬 시장은 급상승했다. 올해 어워즈에 접수된 편수만 해도 주연상 285명, 조연상 245명, 신인상 69명, 창작자 530명, ...

    1560호2024.01.01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