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거리에서 “빨갱이는 가라”고 외치는 모습은 실로 괴이하다. 그들이 들고 있는 조악한 플래카드들은 60여 년 전 군부독재 시대를 연상케 한다. 거짓 뉴스 등으로 촉발된 혐중 시위 또한 점입가경이다. 새로운 양상의 ‘혐오’들이 정치권과 야합하며 점점 괴기스러운 연대를 이루기 시작한다. 이제 진지하게 그들만의 논리를 들여다보고 불통의 장벽에 균열을 가해야 할 때다. 마침 혐오의 본질인 불안과 경계, 차별을 소재로 한 공연들이 다양하다. 마녀사냥을 다룬 <시련>과 <라파치니의 정원>, 경계에 있는 이들을 다룬 <베를리너>와 <랑데부> 등은 혐오를 상쇄하는 코어 근육인 교류(transaction)와 접촉(contact)의 힘을 돌아보게 한다.<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잘 알려진 아서 밀러가 1953년 발표한 희곡을 윤색한 연극 <시련>(신유청 연출·김진숙 번역·윤성호 윤색·이소영 안무·이태섭 무대·강지...
1626호2025.04.25 1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