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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과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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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물의 과거사](15)‘이불솜’과 산골 마을의 ‘핏빛 성탄’
    (15)‘이불솜’과 산골 마을의 ‘핏빛 성탄’

    죽음에서 태어난 아이. 채홍달(1950년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조용한 산골 마을을 덮친 ‘학살’의 피바람. 총알은 만삭의 여인도 가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몸을 관통한 총알. 하지만 어머니는 시신 더미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나왔다. 상처에서 계속 뿜어져 나오는 피를 무엇으로든 막아야 했다. 그때 생각난 것이 ‘이불솜’이었다.“(어머니가) 만삭의 몸으로 피를 철철 흘리면서 친정으로 가다가 중간에 고모집이 있어서 들렀는데, 이불솜을 뭉쳐가지고 총상 입은 곳에 집어넣었대요.”(채홍달 인터뷰·2022. 2. 19.)어머니는 그렇게 지혈을 하고 가까스로 목숨을 지켰다. 그리고 13일 뒤 채홍달을 낳았다. 경북 문경시 산북면 석봉리 석달마을. 24가구 127명의 주민이 오순도순 살아가던 산골 마을이었다. 1949년 12월 24일, 한 무리의 군인이 마을에 나타나면서 ‘사건&rsqu...

    1550호2023.10.20 10:44

  • [사물의 과거사](14)식어버린 ‘생일밥’…‘머리 센 소년들’은 괭이바다가 서럽다
    (14)식어버린 ‘생일밥’…‘머리 센 소년들’은 괭이바다가 서럽다

    “그때는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땐데, 언젠가는 (아버지가) 돌아올 끼다, 생일날 되거든 밥이라도 한 그릇 떠놓고 기다려보자…. 그렇게 ‘살아 있다’ 하는 희망만 가지고 살다가….”(경남 창녕군 보도연맹 학살사건 유족 노원렬 인터뷰, 유튜브 <다큐몹> 2023. 6. 8.)정성껏 지은 생일밥 한 그릇이 다 식어가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해, 그다음 해도 마찬가지였다. 주인 없는 생일밥을 한쪽에 챙겨두고, 가족들은 텅 빈 그리움만 수저로 떠올렸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소용없었다. 할아버지는 아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제 생일밥이 아니라 제삿밥을 올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는 차마 아무도 꺼내지 못했다.1950년 여름. 노원렬은 열세 살, 아버지는 서른 살이었다. 이들이 살던 곳은 경남 창녕군 고암면 우천리. 아버지가 논에서 구슬땀을 쏟고 있을 때, 아버지를 찾아온 남자...

    1545호2023.09.08 11:24

  • [사물의 과거사](13)‘비석 파편’이 품은 그해 여름
    (13)‘비석 파편’이 품은 그해 여름

    조각난 돌무더기가 들어 있는 유리함.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자’가 새겨진 돌덩이들도 보인다. 오른쪽에는 멀쩡한 모습의 위령비가 서 있고, 유리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5·16군사정권에 의해 파괴된 ‘百祖一孫之地(백조일손지지)’ 묘비의 파편.”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직후부터 예비검속(혐의자를 미리 잡아 놓는 일)과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다. 적에게 부역할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미리 ‘정리’한다는 명분.하지만 좌익 활동과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들도 ‘의심’만으로, 때로는 사적인 원한이나 복수심만으로 희생됐다. 구금에서 처형까지 이어지는 과정 역시 적법절차를 무시한 채 진행됐다. 조직적이고 전국적인 ‘전쟁범죄’로 희생된 민간인의 수는 100만 명까지 추산된다.제주도 역시 피바람을 피하...

    1540호2023.08.04 11:21

  • [사물의 과거사](12)또렷한 ‘은반지’와 서산 부역혐의자 학살
    (12)또렷한 ‘은반지’와 서산 부역혐의자 학살

    세월이 흘렀지만, 그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7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비록 그 옛날의 반짝임은 사라졌지만, 흙도 아니고 ‘뼈’도 아닌 빛깔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은반지. 어느 집 여인이었을까. 상류층 집안 아니었을까. 어쩌다 이곳까지 와서 땅속에 묻혔을까. 은반지가 끼워져 있던 손가락은 이미 뼈까지 썩어 사라졌다. 남아 있는 은반지의 주인은, 사라진 손가락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대답할 리 없는 질문을 마음으로 던져본다.충남 서산시 갈산동 176-4번지, 봉화산 교통호 현장.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5월 10일부터 약 20일간 이곳에서 유해발굴 조사를 진행했다.1950년 한국전쟁 중 인민군 점령기에 인민군이 전투를 대비해 파놓은 교통호. 하지만 군·경이 서산 지역을 수복한 뒤, ‘부역혐의자’로 지목된 민간인들이 이곳에서 학살됐다.&ldq...

    1536호2023.07.07 11:29

  • [사물의 과거사](11)‘출석부’ 속 결석 학생이 ‘간첩교사’ 증언했다고?
    (11)‘출석부’ 속 결석 학생이 ‘간첩교사’ 증언했다고?

    ‘출석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출석부를 본 경찰과 검찰도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 체했다. 그들이 원한 건 진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임무는 오직 ‘간첩교사’를 만들어내는 일이었을 뿐. 그렇게, 강성호에게 32년간의 악몽이 시작됐다.1989년 5월 24일, 스물일곱 살 햇병아리 일본어 교사 강성호는 그날도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를 찾는 사람이 있으니 “교무실로 와보라”는 전갈이 왔다. 교무실에는 덩치 좋은 남자 2명이 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정체는 대공과 형사들이었다.그들은 강성호에게 경찰서로 같이 가자고 말했다. 놀란 강성호를 “학생 일 때문에 그렇다. 잠깐이면 된다”고 안심시켰다. 강성호가 수업 중이라 못 간다고 하자, 교장 허락도 다 받아뒀다고 못을 박았다. 강성호는 꿈에도 몰랐다. 그를 고발한 장본인이 바로 교...

    1531호2023.06.02 11:29

  • [사물의 과거사](10)코발트광산 ‘도장’에 적힌 3500개 이름 중 하나
    (10)코발트광산 ‘도장’에 적힌 3500개 이름 중 하나

    단서는 도장 하나, 이름 석 자뿐이었다. 이름 박봉우(朴奉羽). 아마도 대구나 경북 경산, 청도 어딘가에 살던 사람. 그리고 1950년 여름 갑자기 사라져 영영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사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비극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열쇠가 거기 있었다.2007년 경북 경산시 평산동 폐(廢)코발트광산. 유해발굴 조사단의 눈에 도장 하나가 들어왔다. 진흙과 돌, 유해 조각들이 뒤엉켜 있는 곳에서 발견된 길이 3.4㎝의 나무도장. 도장집의 가죽은 이미 썩어 사라졌고, 도장집의 금속 테만 남아 있었다. 도장에 새겨져 있던 글자가 바로 ‘朴奉羽(박봉우)’. 1950년 그곳에서 숨을 거둔 누군가의 이름이었다.일제강점기 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만든 코발트광산은 폐광 뒤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장소로 ‘활용’됐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부터 9월 사이, 이곳 코발트광산 갱도와 인근 대원골에서 최...

    1526호2023.04.28 10:56

  • [사물의 과거사](9)환영 대신 ‘장작’ 매질…이 어부들에게 국가란
    (9)환영 대신 ‘장작’ 매질…이 어부들에게 국가란

    1972년 강원 속초시청 앞 어느 여관. 방 입구에는 참나무 장작개비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아직 여름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9월. 겨울이었다 한들 군불을 지필 리도 없는 여관방에 장작이 왜 있을까. 여닫이문을 열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 많은 장작의 용도를 알게 됐다.“무릎을 꿇고 앉으니 다짜고짜 무릎을 발로 짓밟았으며, ‘이 빨갱이 같은 새끼야’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 장작개비로 수없이 맞았다. (…) 북한에서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했다. 지령을 받은 게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거짓말을 한다고 계속 구타가 이어졌다.”(설악신문 ‘납북귀환어부 진실규명 이야기 13’, 엄경선 전문기자, 2022. 6. 27)그는 어부였다. 조업 중 납북됐다가 1972년 9월 7일 속초항으로 돌아온 납북귀환어부 160명 중 한명. 정부는 이들이 속초항에 도착하기도 전에...

    1519호2023.03.10 11:13

  • [사물의 과거사](8)‘쌀’을 달라… 가창골에 묻힌 외침
    (8)‘쌀’을 달라… 가창골에 묻힌 외침

    “배고파 못 살겠다! 쌀을 달라!”대구부청(지금의 대구시청) 앞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소리쳤다. 그중에는 여성과 어린이들도 있었다. 1946년 초부터 이어진 이 처절한 행렬에는 ‘기아(飢餓)시위’ 또는 ‘기민(飢民)시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쌀을 달라’는 외침이 바로 10월항쟁의 출발이었다.1946년 9월 하순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전국적으로 일어난 뒤, 10월 1일과 2일 대구에서 주민봉기의 형태로 10월항쟁이 발생했다. 시위는 10월 6일까지 경북으로 번졌고, 12월 중순까지 남한 전 지역으로 확산됐다.당시 대구·경북 인구의 4분의 1인 약 77만명이 시위에 참여했고, 남한 전체에서는 약 230만명이 동참한 것으로 추산되는 10월항쟁. 그 출발점에는 ‘쌀’이 있었다. 영천성당의 프랑스 출신 신부 루이 델랑드(한국명 남대영)가 쓴 일기...

    1513호2023.01.27 14:37

  • [사물의 과거사](7)‘방패연’ 타고 날고팠던 선감도 소년들
    (7)‘방패연’ 타고 날고팠던 선감도 소년들

    그 섬의 작은 나루터는 내게 ‘바람’으로 기억된다. 지난해 이맘때였다. 초겨울 바다에서 불어오는 날쌘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리게 했던 날. 방패연 하나 하늘로 줄을 풀어놓는다면 훨훨 잘도 날겠다 싶은 바람이었다. 하지만 40년 전 섬에 살던 소년들에게 그 바람은 그렇게 낭만적으로 기억되지 못했다. 이제는 노인이 돼버린 소년의 몸이 덜덜 떨렸다.“여기만 오면 원래 몸이 떨려.”(2021. 11. 23. 인터뷰)김영배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 그가 선 선감나루터는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아동들이 배에서 내려 처음으로 섬에 발을 디디는 곳이었다. 지금은 간척지 위에 펜션촌이 가지런히 자리 잡은 섬, 선감도. 이 섬이 ‘이름을 잃어버린’ 소년들로 가득하던 때가 있었다.일제강점기인 1941년 경기도 사회사업협회는 기부금 50만원으로 선감도 전체를 사들였다. 이듬해 조선감화령 등에 근거해 부랑아 ...

    1508호2022.12.16 11:30

  • [사물의 과거사](6)보도연맹 학살과 ‘고무신’···애도에 자격이 필요한가
    (6)보도연맹 학살과 ‘고무신’···애도에 자격이 필요한가

    2007년 충북 청원군 ‘분터골’ 유해발굴 현장. 57년 만에 땅 위로 나온 고무신 한짝에 사람들의 눈길이 집중됐다. 밑창에 선명하게 찍힌 세 글자 ‘大同江(대동강)’. 고무신의 상표였다. 이 상표를 추적하면, 57년 전 이 고무신을 신고 분터골까지 와서 이곳에 삶의 마지막 발자국을 남긴 ‘그 사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 터였다.‘대동강’의 정체는 1956년 발간된 <충북연감>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당시 청주에 있던 ‘청주합동고무신공업사’의 상표. 1948년 개업한 이 공업사는 직원 약 160명 규모의 큰 공장이었다. ‘大同江’ 세 글자가 찍힌 고무신 한짝은 분터골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청주 주민이거나 그 가까이에 살았을 거라는 점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물증’이 됐다.(<청원 국민보도연맹...

    1504호2022.11.18 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