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샤워의 준비물은 미국 드라마 <오피스>다. 나는 매일 샤워를 할 때마다 미국 드라마 <오피스>를 본다. 그것은 거의 정해진 의식 행위에 가깝다. 휴대전화를 쥐고, 화장실에 간다. <오피스>를 틀고, 샤워기를 튼다. 어느 날은 무작정 샤워기를 틀고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생각했다. 뭔가 아닌데, 이게 샤워가 아닌데. 잠시 후에 답을 찾았다. <오피스>가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다. 바디 워시는 없어도 되지만, 칫솔질쯤 하루 걸러도 되지만, <오피스>는 그렇지 않다. 몇 시즌의 몇 화가 됐든지, 마이클의 씩씩한 목청이 들려오지 않으면 샤워는 시작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뭔가 단단히 고장 난 샤워를 한 지가 벌써 몇 년이 흘렀다.<오피스>는 2005년부터 2013년까지 방영한 미국의 대하(?) 시트콤으로, 미국의 스크랜턴이라는 소도시의 작은 제지회사 직원들의 일상을 담은 코미디 드라...
1552호2023.11.03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