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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의 시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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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수의 시톡](18)시에 스민 그림을 읽다
    (18)시에 스민 그림을 읽다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세잔의 아틀리에’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언덕길에 있는 소박한 집이었지요. 1층에는 아트숍과 폴 세잔의 일생을 소개하는 영상실, 2층에는 작업실이 생전 그대로 보존돼 있었습니다. 작업실에는 사과 같은 정물과 이젤, 기다란 작업용 사다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물감이 묻은 작업복과 외투, 모자와 화구가 담긴 가방도 그대로 있어 마치 세잔이 잠깐 외출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장면을 시로 쓰고 싶었지만, 아직도 미완으로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는 쓰겠지요.19편 시에 다양한 미술작품 표현1982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김용옥 시인(1954~)의 여섯 번째 시집 <미술관 점경(點景) 일지>는 제목이 암시하듯, 도슨트 경험을 시로 쓴 것입니다. 도슨트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서 전시작품을 설명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 시인은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겠지요. 오랜 ...

    1513호2023.01.27 14:35

  • [김정수의 시톡](17)조춘호 침몰 사건을 아시나요
    (17)조춘호 침몰 사건을 아시나요

    ‘여울’이라는 말, 참 좋아합니다. 개울가에 쪼그려 앉아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니까요. 여울의 ‘여’는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 ‘울’은 여가 만들어낸 물의 흐름과 소리일 것입니다. ‘울다’라는 말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그 소리는 ‘여’가 우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희덕 시인은 시 ‘여, 라는 말’에서 “잊혀진 것들은 모두 여가 되었다”며 “망각의 물결 속으로 잠겼다”고 했습니다. 망각의 물결 앞에서 아버지를 목 놓아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억울함과 분노로 출렁이는 바다1990년 ‘문학공간’으로 등단한 조정애 시인(1947~ )의 다섯 번째 시집 <일출보다 큰 사랑>의 맨 앞에 놓인 시는 ‘조춘호 여객선 침몰사건...

    1509호2022.12.23 11:36

  • [김정수의 시톡](16)원색의 팔레트에서 묻어나는 생동감
    (16)원색의 팔레트에서 묻어나는 생동감

    ‘오래’라는 말에는 여러 결의 색깔이 스며 있습니다. 손때가 묻은 물건에선 애착이, 안방에 걸린 흑백사진에선 저릿하고도 아련한 그리움이, 낡은 간판에선 먼지 쌓인 추억이, 무너진 성벽에선 영욕이, 한결같이 지지해주는 사람에게선 친근한 믿음이, 그리고 누렇게 바랜 책에선 삶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오래된 것들은 필연적으로 낡습니다. ‘오래’는 물리적인 시간이고, ‘낡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물건이 헐고 허름해지는 것입니다. 색이 바래는 것이지요. 시도 오래 묵히면 물건처럼 낡습니다.등단 28년 만에 펴낸 첫 시집등단한 지 28년 만에 첫 시집을 내다니, 늦어도 한참 늦었지요. 이번에 <알바니아 의자>를 펴낸 정정화 시인(1973~ ) 이야기입니다. 1994년 제1회 ‘시와반시’ 신인상을 받은 나이가 스물두 살입니다. 엄청 이른 나이에 등단하고, 엄청 늦게 첫 시...

    1505호2022.11.25 14:28

  • [김정수의 시톡](15)세상에 선한 폭력은 없습니다
    (15)세상에 선한 폭력은 없습니다

    고백하자면,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동생과 싸워 회초리를 들었는데, 자기 잘못이 아닌데 왜 맞아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지요.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것을요. 아이들은 싸우며 크는데 그것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회초리를 든 것이지요. 아이들을 처음 키워보는 초보 아버지의 실수담이지만, 늘 마음에 가시처럼 박혀 있습니다. 세상에 선한 폭력은 없습니다. 정당화될 수도 없고요. 폭력은 그 자체로 나쁘기 때문입니다.폭력에 저항하는 시 운동김승일 시인(1981~ )의 <나는 미로와 미로의 키스>를 읽기 전까지 폭력은 음지의 산물인 줄 알았습니다. 낮보다는 밤, 정면보다는 뒷면, 탁 트인 곳보다는 후미진 곳 등 보는 눈이 많은 데서는 아무래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잖아요. 아니더군요.시 ‘D의 몽타주’에 의하면 “밝은 곳에서도/ 폭행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

    1503호2022.11.11 15:05

  • [김정수의 시톡](14)나는 한글로 시를 쓰는 라라입니다
    (14)나는 한글로 시를 쓰는 라라입니다

    어떤 기억은 보푸라기 같습니다. 평소 가지런하다가도 옷의 거죽에서 가늘게 털이 부풀어 성가시게 하는 것이 보푸라기니까요. 내면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잊힌 기억이 어느 날 불쑥 솟아올랐는데 좋은 기억은 아닐 것입니다. 뭐 그렇다고 특별히 나쁜 기억도 아니겠지요. 라라(1989~ )의 신간시집 <나는 빛을 걷는다>를 읽는데, ‘이 시집은 한국문학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 한국문학의 정의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낮은 지층에 잠들어 있던 토론의 기억이 이 시집을 읽으며 보푸라기처럼 부풀어 올랐던 것이지요.“나는 무궁화 열차가 좋다”권영민 전 서울대 교수는 저서 <한국문학이란 무엇인가>(열화당·2021)에서 한국문학을 “한국 민족에 의해 한국어를 기반으로 형성 발전해온 문학”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한국문학은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한민족 삶의...

    1497호2022.09.30 11:06

  • [김정수의 시톡](13)산중에선 무섭고 외로울 틈이 없어요
    (13)산중에선 무섭고 외로울 틈이 없어요

    오지탐방이 유행한 적 있지요. ‘오지(奧地)’의 사전적 의미는 바닷가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의 깊숙한 땅이라네요.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 아쉽습니다. 오지의 다른 말은 ‘두메’쯤 되겠지요. 사람이 살지 않는 데를 ‘두메산골’이라 하진 않잖아요. 사람이 살아야 오지인 게지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으니 교통은 불편하고, 사는 환경도 열악하겠지요. 강원도 정선 덕산기계곡 깊숙이에 소설가 겸 시인 강기희와 동화작가 유진아 부부가 운영하는 ‘숲속책방’이 있습니다.46년 만의 귀향, 그리고 폐암대도시의 책방도 어려운데, 깊은 산골의 책방 유지가 가능할까요. 하긴 도시나 산골이나 안 되는 건 마찬가진데 장소가 그리 중요할까요. 오히려 호기심이나 희소성 때문에 더 찾아올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정선에 왔다가 들르기도 하고, 대도시에서 일부러 찾아...

    1493호2022.08.26 15:10

  • [김정수의 시톡](12)“내 시는 불가능한 꿈만 꾸는 것일지도”
    (12)“내 시는 불가능한 꿈만 꾸는 것일지도”

    불은 뜨겁고, 뱀은 징그럽습니다. 불에 손을 대면 화상을 입고, 뱀을 만지면 물리겠지요. 불이 뜨겁고 뱀이 무서운 줄 모르는 어린아이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만지려 할 것입니다. ‘호기심 천국’인 어린아이에게 불이나 뱀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미지의 존재니까요. 태어나 처음 접해보는 새롭고도 신기한 것이니 본능적으로 호기심이 발동하는 건 당연하지만 리스크가 따르겠지요. 그런 호기심이 없었다면 아이의 지적 성장도 멈추고, 인류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시인은 어린아이의 호기심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글자는 정말 멋진 뱀과 지렁이들이구나”10년 전, 시인과 시인 사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엄마인 김향지 시인은 등단 8년 만인 지난해에 첫 시집 <얼굴이 얼굴을 켜는 음악>(문학동네)을 냈고, 아빠인 정재학 시인은 세 번째 시집 이후 8년 만에 네 번째 시집 <아...

    1489호2022.07.29 14:16

  • [김정수의 시톡](11)이 땅에 홀로 살아남은 티라노의 속울음
    (11)이 땅에 홀로 살아남은 티라노의 속울음

    눈으로 보고 겪은 것은 다 추억이 됩니다. 슬며시 눈을 감으면 아련히 풍경이 펼쳐집니다. 같이 뛰놀던 골목을 떠올리면, 금방 동네 조무래기들의 웃음으로 가득 찹니다. 추억은 과거의 기억을 소환해 눈앞에 펼쳐놓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괜히 친근한 것이 있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했지만 책에서, 영화에서 본 공룡입니다. 공룡은 인간이 존재하기 전에 살았습니다. 돌 속에 남아 있는 공룡의 뼈를 통해 공룡의 형태를 알 수 있습니다. 용암에 다 타버린 살과 털은 그저 상상할 뿐이지요. 상상은 현실을 재현하거나 왜곡할 수도 있지만, 꿈을 꿀 수 있게 해줍니다. 평생 그 꿈을 품고 살아가지요.시인의 길은 순수로 기억되는 마음 장마 초입에 신박(신기하면서도 참신)한 시집 한권을 받았습니다. 무서우면서도 우스운 티라노사우루스 그림이 표지 중앙에 떡하니 그려져 있는데, 꼭 들어가야 할 제목이나 저자도 없었습니다. 위쪽에는 로고가 들어가 있습니다. 시집이라는 선입견 없이...

    1485호2022.07.01 14:51

  • [김정수의 시톡](10)내가 서 있는 공간이 바로 중심입니다
    (10)내가 서 있는 공간이 바로 중심입니다

    ‘시골’이라는 말에선 구수한 된장 냄새가 납니다. ‘깍쟁이’로 대표되는 도시 이미지와 달리 순박함과 순정함이 느껴지지요. 또 은근 ‘고향’의 정겨움이 스며 있어 왠지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하지만 ‘시골시인’이라는 말에선 변방의 쓸쓸함과 소외, 자의식이 묻어납니다. 영문 이니셜과 결합되니 소소한 비밀이라도 숨겨져 있는 듯한 느낌을 주네요. 비밀스러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눈앞에 미로정원이 막아설 것 같고, 정원의 미로 속으로 들어가면 쉽게 출구를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늦은 봄에 발간한 시집 <시골시인-J>를 받아든 느낌이 그랬습니다. 하긴 시를 읽으면, 미로 속에서 헤매는 것 같긴 합니다.만민이 평등한 ‘시의 세상’을 꿈꾸며<시골시인-J>는 고주희, 김애리샤, 김효선, 허유미 등 제주에서 활동하는 여성 시인 4명이 발간한 ...

    1481호2022.06.03 11:23

  • [김정수의 시톡](8)타계 18년 만에 발간한
    (8)타계 18년 만에 발간한 <윤중호 시전집: 詩>

    책장에 꽂혀 있어야 어울릴 것 같은 두툼한 책을 받아들면 은근히 부담스럽습니다. 그 책이 전집이라면 첫 장을 펼치기도 전에 몸이 긴장합니다. 한 사람이나 같은 종류, 혹은 같은 시대의 저작을 한데 모아 출판한 전집을 읽는다는 것은, 정현종 시인이 시 ‘방문객’에서 노래했듯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올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숭고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 순간 그 사람의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합니다.다르지 않은 엄니의 행상길과 시인의 길제목이 왜 <윤중호 시전집: 詩>(이하 시전집)일까요. ‘윤중호 시전집’이야 당연하지만, 하고 많은 제목 중에 ‘시(詩)’라는 지극히 평범한 제목을 전면에 내세웠을까요...

    1471호2022.03.28 1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