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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플라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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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우재의 플라이룸](37)반도체 깡패와 의치한약수
    (37)반도체 깡패와 의치한약수

    미국 반도체지원법을 총괄 지휘하는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지난 2월 23일 조지타운대 강연에서 “반도체법의 최종 목표는 첨단 반도체 기술을 지닌 모든 기업이 연구개발과 대량 생산을 하는 세계 유일한 나라가 미국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며칠 전 발표된 이 법의 1차 세부 사항에는 ‘초과이익 공유’, ‘영업기밀 제공’, ‘군사 협조 우선’ 등의 독소 조항이 담겼다. 국방예산이 1000조원에 이르는 천조국 미국에서 겨우 50조~70조원 규모의 생산 보조금 지원 법안을 만들어 아시아 국가들이 지난 반세기 동안 축적해온 반도체 기술을 통째로 빼앗아가겠다는 이 발상에 조선일보까지 나서 미국을 ‘반도체 깡패’로 규정하고 나섰다.과거 미국은 세계대전 종전 직후 브레턴우즈 체제를 구축하며 달러를 세계 기축통화로 만들었다. 이어 1970년대 만성적 무역 적자와 베트남전 비용...

    1519호2023.03.10 11:13

  • [김우재의 플라이룸](36)AI와 종말, 저항, 희망
    (36)AI와 종말, 저항, 희망

    대통령도 신년사에 챗GPT를 사용했다고 한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잠든 사이 조용히 세상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미국 빅테크 회사들은 챗GPT의 공개에 자극받아 오랫동안 준비 중이던 자신만의 인공지능을 공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이에 따라 향후 IT업계의 지형도가 크게 변화할 것임은 분명하다. 단순히 몇몇 직업이 사라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인간이 유일하게 우월하다고 믿었던 지성의 영역, 특히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고 쓰는 능력에 기반을 둔 모든 인간 활동에 거대한 규모의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세상은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글쓰기의 종말과 교육의 저항 가장 먼저 위협을 느낀 직종은 교사들이었다. 적당한 주제와 질문만 주면 완벽하게 영어로 된 에세이를 써주는 인공지능의 탄생에 미국 교사들은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학생들이 마음만 먹으면 더 이상 예전처럼 몇 시간씩 걸려 에세이를 쓸 필요가 없다. 게다가 인공지능이 쓴 글을 인간이 구분해낸다는 건 ...

    1515호2023.02.10 11:37

  • [김우재의 플라이룸](35)챗GPT와 한국 정치
    (35)챗GPT와 한국 정치

    한국사회는 정치권의 자극적인 뉴스로 시끄럽지만, 지난 몇 주간 세계에선 지구를 몇 번이나 바꾸고도 남을 혁명적인 여러 기술이 발표됐다. 구글은 양자 프로세서에서 시공간을 통과하는 베이비 웜홀 구현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우주정거장 톈궁이 완성됐고, 첫 원정대가 6개월간의 임무를 마치고 무사 귀환했다. 미국 정부는 상온핵융합으로 에너지 생산의 실용화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발표했다. 혁명은 매일 벌어지는 중이다.인공지능의 발전엔 특이점이 왔다. 미드저니(Midjourney)는 글쓰기 명령만으로 엄청난 수준의 그림을 몇 초 만에 그려주는 인공지능 서비스다. 미드저니로 그린 그림이 미술전에서 수상하면서 과연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을 작품으로 인정해야 하느냐는 논란이 일었다. 그리고 불과 두 달 전, 그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우리 삶을 바닥에서부터 바꿔버릴지 모를 인공지능이 등장했다. 그 이름은 챗GPT(ChatGPT)다.정부가 관여하지 않는 게 혁신이다챗GPT...

    1511호2023.01.06 14:17

  • [김우재의 플라이룸](34)사이비 전성시대
    (34)사이비 전성시대

    ‘비슷하지만 아닌 것’을 사이비(似而非)라고 한다. 무엇을 사이비라 부르려면 단순히 가짜가 아니라, ‘진짜인 척하는 가짜’여야 한다. 이미 공자와 맹자의 시절에도 향원처럼 사이비한 자들이 한 집단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인정됐다. 공자와 맹자가 사이비한 자들을 혐오한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세상을 어지럽힐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서구에는 사이비에 해당하는 단어로 ‘수도(pseudo)’가 있다. 근대과학의 발상지인 서양에선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구획’하는 문제가 철학의 오래된 고민이었다. 영어로는 ‘수도사이언스(pseudoscience)’, 우리말로는 ‘유사과학’ 혹은 ‘사이비과학’으로 번역되는 가짜 과학의 문제 또한 유사과학이 과학을 사칭해 공공에 피해를 입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문...

    1507호2022.12.09 11:25

  • [김우재의 플라이룸](33)사퇴로 해결 말고 사태 해결을 하라
    (33)사퇴로 해결 말고 사태 해결을 하라

    실험실은 작은 사회다. 어느 사회나 그렇듯, 실험실에서도 끊임없이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한다. 실험실의 문제는 여러 층위로 나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실험실 프로젝트와 관련된 것들이다. 실험실은 프로젝트를 수행함으로써만 그 본질적인 연구의 기능을 충족한다. 따라서 실험실에서 발생하는 문제 중 가장 긴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일은 프로젝트 수행에서 벌어지는 각종 실수와 오류다.하지만 연구를 수행하는 주체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다. 실험실은 작은 사회다. 이 말은 20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조직 안에서도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인간관계의 문제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인간의 문제를 프로젝트의 문제와 독립해 생각하면 할수록 결국 인간의 문제에서 누적된 오류가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결국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실험실 관리의 중요한 분야가 되는 셈이다.리더는 책임지는 사람이다학위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한국 교수는 책임...

    1502호2022.11.04 11:16

  • [김우재의 플라이룸](32)디지털 혁신? 공공연구기관 현실을 보세요
    (32)디지털 혁신? 공공연구기관 현실을 보세요

    1년간 정부출연연구소(이하 정출연)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IT 환경이 정말 열악했다. 일단 와이파이가 없다. 국가정보원이 금지해 연구자들은 와이파이 자체를 사용할 수 없다. USB 사용도 금지돼 있다. 그러니 데이터를 옮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구글, 네이버, 아마존 클라우드 등은 아예 사용이 불가능하고, e메일도 기관 e메일이 아니면 사용 자체가 불가능하다. 카톡도 텔레그램도 모두 막혔고, 메신저 프로그램 대부분이 작동하지 않는다. 국가연구기관이니 인터넷보안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건 보안 때문에 연구환경이 완전히 망할 수준이다.상황이 이러니 클라우드 데이터로 공유되는 국제유전체 컨소시엄 연구나 브레인 커넥톰(connectome) 연구는 꿈도 꿀 수 없다. 젊은 연구원들은 어떻게라도 연구를 해보려고 스마트폰 무제한 데이터를 이용해 컴퓨터에 연결하고, 나이든 연구원들은 아예 첨단 연구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심지어 과학기술 관련 데이터센터가 ...

    1498호2022.10.07 14:01

  • [김우재의 플라이룸](31)표절과 학문의 유지
    (31)표절과 학문의 유지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라 불리는 신평 변호사가 김건희 여사의 논문에 대해 “사회과학 논문에서 표절이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발언이 논란이 되자 “우리가 인문사회과학 계열의 논문을 쓸 때는 항상 연구결과로 나온 것을 토대로 해서 읽어보고 거기서 나오는 생각을 담아서 논문을 쓰는 것”이며, 따라서 “좀 철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 어떤 인간의 사유가 다른 인간의 기초적인 사유를 전제하지 않고는 될 수가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사유의 기반을 참조하는 행위와 문장을 통째로 베끼는 행위 사이에는 어떤 교집합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자는 모든 학문의 방법론적 기반이지만, 후자는 도둑질이기 때문이다.논문 도둑질과 기득권의 영어 실력 김건희 여사는 총 3편의 논문을 출판했다. 2편은 박사학위과정 시절인 2007년 ‘한국디자인포럼’에 실렸고, 1편은 박사학위 논문이다. 이중 &lsq...

    1493호2022.08.26 15:17

  • [김우재의 플라이룸](30)제임스 웹, 과학을 수호하는 관료
    (30)제임스 웹, 과학을 수호하는 관료

    우주망원경의 이름이 된 제임스 웹은 우주과학자도, 기술자도 아닌 공무원 출신의 나사(NASA) 국장이었다.미국발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한국사회가 백척간두에 선 지금도, 한국 매체들은 혼탁한 정치뉴스로 대부분의 지면과 방송시간을 채운다. 그나마 좋은 소식을 다루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과학기술과 관련된 미담들이다. 최근 허준이 교수의 필즈메달 수상 소식이 좋은 사례다. 한국사회에서 시민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오는 소식 대부분은 과학기술 영역에 속해 있다.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서 과학기술은 정치와 경제에 종속된 하부영역일 뿐이다. 한국 모든 뉴스의 마지막은 스포츠와 연예뉴스가 장식한다. 과학기술 분야의 일상적인 소식이 뉴스에 보도되는 일은 없다. 한 사회가 보여주는 가치의 우선순위는 해당 사회의 미래를 결정한다. 한국사회는 과거와 현재의 정치·경제적 사건들을, 미래의 과학기술적 비전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제임스 웹과 누리호 7월 11일...

    1489호2022.07.29 14:16

  • [김우재의 플라이룸](29)반도체 백년지대계
    (29)반도체 백년지대계

    한국의 국민총소득 대비 연구개발비는 세계 1위다. 지난 수십년, 한국정부는 연구개발에 엄청난 세금을 쏟아부었다. 정권이 바뀌고 정치가 무능했어도, 한국사회는 과학기술에 국가의 미래가 걸려 있다는 신념을 놓지 않았다. 과학기술은 자원 빈국인 한국이 국제정치의 패권경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다. 심각해지는 미중 패권경쟁의 중심에서 과학기술은 더 이상 환상을 좇는 낭만이 아니라 수천만 국민의 삶을 보장할 냉엄한 현실이다.교육부의 목적이 첨단분야 인재양성이라고 단언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아마 이런 인식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짧은 정치인 경력을 반도체연구소 방문으로 시작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초대 장관 또한 반도체 전문가로 골랐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삼성 반도체공장 방문에 동행하면서 대통령은 과학기술에 국운이 걸린 외교전쟁을 목격했다. 그는 분명 반도체가 한국의 유일한 살 길이라는 인식을 하게 됐을 것이다.BK21과 이공계 기피의 ...

    1487호2022.07.15 14:30

  • [김우재의 플라이룸](28)논문의 자격
    (28)논문의 자격

    윤성로 서울대 교수팀의 논문 표절 사건으로 학계가 어수선하다. 윤성로 교수는 보통의 과학자가 아니다. 올해 12명만 뽑는 기초과학 ‘리더연구자’로 선정돼 향후 국가로부터 매년 8억원 규모의 연구비를 9년 이내 최대 72억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과학자다. 게다가 그는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물론이고 역대 정권 모두가 과학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쳐온 인공지능 분야의 권위자다. 그의 연구과제는 인공지능 기반 메타버스 연구다. 한마디로 말해 윤 교수는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최고 과학자이자 한국에서 가장 유행하는 연구 분야 권위자이며, 문재인 정부에서 4차산업혁명위원장을 지낸 인물이다.학회의 자격이번 사건은 유튜브에 익명의 계정이 올린 7분 16초짜리 영상에서 촉발됐다. 익명의 트위터 계정이 이 유튜브 영상을 학회 계정과 표절된 논문의 저자들에게 알리면서 학회는 즉시 논문을 철회하고 조사에...

    1485호2022.07.01 1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