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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플라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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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우재의 플라이룸](47)초파리의 내장과 줄기세포
    (47)초파리의 내장과 줄기세포

    인간의 복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이 놀라운 장기는 종종 ‘제2의 뇌’라고 불린다. 소네트를 작곡하거나 방정식을 풀지는 못하지만, 이 복잡한 생물학적 경이로움은 우리의 전반적인 건강과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제2의 뇌’라는 타이틀은 장의 벽 내에 거주하는 놀라운 밀도의 신경세포에서 비롯된다.소장신경계라 불리는 이 복잡한 네트워크는 약 5억 개가 넘는 뉴런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는 두뇌 뉴런 수의 0.5%에 이르고, 뇌의 일부인 척수 및 기타 말초신경계의 다섯 배에 이르는 규모다. 소장신경계는 미주신경을 통해 두개골에 있는 ‘대뇌’와 양방향으로 의사소통해 소화, 영양소 흡수, 장 운동성을 제어한다. 본질적으로 우리의 장은 음식을 처리하고 내부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임무에 집중된 자체 의식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우아한 이진체계: 초파리 유전학의 구원자들1901년, 20세기의 벽두에 미국 뉴욕시의 컬럼비아대학에서 토머스 헌트 모건이 고전유전학이라 불렸던 초파...

    1562호2024.01.18 06:00

  • [김우재의 플라이룸](46)비틀스와 다윈
    (46)비틀스와 다윈

    자주 순방길에 오르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영국을 방문해 의회에서 한 연설이 화제다. “영국엔 비틀스와 베컴이, 한국엔 BTS와 손흥민이 있다”는 그의 한 마디로 의회는 웃음바다가 됐다. 발언의 전문은 “영국이 비틀스, 퀸, 해리 포터, 그리고 데이비드 베컴을 가진 나라라면, 한국은 BTS, 블랙핑크, <오징어게임>, 그리고 손흥민을 가진 나라”이니, 양국이 가진 문화의 매력을 바탕으로 서로 협력하고 인적 교류를 하자는 내용이었다.다음날 열린 한-영 최고과학자 과학기술 미래포럼에 참석한 윤 대통령은 “과학자들의 도전과 헌신이 인류 문명의 근간이 됐으며, 과학은 늘 인류 공동의 번영과 협력을 지향한다”고 강조한 후, 특히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면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아이작 뉴턴의 말을 인용해 양국의 최고 과학자들이 양국의 젊은 연구자들에게 거인의 어깨가 돼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과학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좋은 일이다.영국...

    1557호2023.12.11 07:05

  • [김우재의 플라이룸](45)과학 없이 살기
    (45)과학 없이 살기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객관적인 틀에서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우리는 14.26기가파섹, 즉 465광년의 관측 가능한 우주의 한 은하계 속에 존재하는 태양계의 행성, 지구에 살고 있다. 지구는 지금으로부터 약 45억 년 전에 태양계의 일원으로 탄생했다. 최초의 지구는 핵, 맨틀, 지각으로 나뉘는 과정에서 최초의 해양과 대기를 형성했다. 지구상에 최초의 생명이 출현한 것은 약 30억 년 전쯤으로 추측되는데, 그 최초 생명의 형태는 RNA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을 구성하는 물질 중에서 유전과 생명활동 모두를 수행할 수 있는 분자는 RNA가 유일하기 때문이다.빅뱅에서 인간까지, 인간이 그나마 우리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불과 몇백 년 전 인류의 역사에 등장한 근대과학 덕분이다. 우주의 역사는 물리학과 천문학이, 물질의 역사는 화학이, 지구의 역사는 지질학이, 생명의 역사는 생물학이 각각 인간의 위치를 알려주는 교사의 역할을 해왔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비밀이 ...

    1553호2023.11.14 07:00

  • [김우재의 플라이룸](44)RNA의 꿈
    (44)RNA의 꿈

    DNA와 RNA는 모두 핵산으로 분류되는 생체 분자다. 세상에 먼저 생겨난 핵산은 RNA였다. 대부분의 진화이론가는 지구에 최초로 생겨난 생명체는 RNA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 ‘RNA 세계 가설’에 따르면, 지구 초기에는 RNA가 단백질과 함께 생명체의 기본 구성 요소였으며, RNA는 단백질을 합성해 스스로 복제하고 진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RNA의 기능이 점차 DNA와 단백질로 분화돼 오늘날과 같은 DNA-RNA-단백질 세계가 탄생하게 됐다. RNA가 단백질 합성, 유전정보 저장 및 전달, 자기 복제 등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예측의 근거다.다윈은 유전적 대물림의 방식과 유전물질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종의 기원>을 집필했다. 완벽주의자이자 소심했던 다윈이 자신의 이론에 유전의 원리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은 그가 ‘게뮬’이라는 황당한 유전자 이론을 ...

    1548호2023.10.06 11:06

  • [김우재의 플라이룸](43)여왕의 DNA
    (43)여왕의 DNA

    얼마 전 ‘왕의 DNA’라는 단어가 화제가 됐다. 교육부 공무원이 아이 담임선생님에게 쓴 편지에 등장한 이 단어로 인해 학부모의 교권침해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DNA’라는 단어는 한국사회에서 물리학의 ‘중력’이나 ‘관성’처럼 일상어가 된 생물학 용어다. 정치인들도 심심찮게 DNA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며칠 전 윤희숙 전 의원은 칼럼 제목을 ‘민주당의 대중 굴종 DNA’라고 지었고, 김진애 전 의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태도를 두고 “(윤 대통령과) 같은 DNA”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정치인들에게 DNA라는 단어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나 성향을 의미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 한국사회에서 DNA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어감으로 사용된다.왕의 DNADNA라는 단어야 문제 될 이유가 없다. 더 큰 문제는...

    1544호2023.09.01 10:56

  • [김우재의 플라이룸](42)꿀벌과 응애의 공진화
    (42)꿀벌과 응애의 공진화

    현재 인류의 사망원인 1위는 심장질환이다. 2위가 암, 3위는 고혈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근대과학과 현대의학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기 전까지 인류의 사망원인 1위는 전염병이었다. 얼마 전까지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의 늪에 빠져 있었으니 천연두, 페스트, 스페인독감 등 전염병이 인류의 역사를 바꾼 사실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의 역사이기도 하다.가축화된 다른 종들처럼 꿀벌 역시 전염병에 취약하다. 꿀벌을 위협하는 기생충은 다양하다. 이중 가장 흔한 기생충이 ‘꿀벌응애(Varroa destructor)’다. 꿀벌응애는 집먼지진드기와 가까운 곤충의 일종이다. 꿀벌응애는 꿀벌과 생활사를 공유하며, 애벌레와 일벌의 혈액을 빨아먹고, 꿀벌의 면역력을 떨어뜨리며, 바이러스를 전염시켜 꿀벌을 죽인다. 꿀벌응애는 서양종 꿀벌(Apis mellifera)의 봉군(집단)붕괴 현상과도 깊은 연관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1540호2023.08.04 11:21

  • [김우재의 플라이룸](41)꿀벌의 사회면역과 공유 RNA
    (41)꿀벌의 사회면역과 공유 RNA

    꿀벌을 진사회성 곤충이라 부른다. 인간도 사회적 동물이지만, 진사회성 종은 아니다. 진사회성의 세 기준은 첫째, 세대의 중첩, 즉 군집에 적어도 두 세대의 개체가 공존할 것, 둘째, 협동적 양육, 즉 군집 구성원들이 양육을 위해 협력할 것, 셋째, 생식 노동의 분업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첫 번째 조건을 만족하고 두 번째 조건에 근접했지만 세 번째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므로 진사회성이 아니다. 즉 인간은 지구상에 나타난 사회성의 최고점에 위치하는 존재가 아니다.사회면역 코로나19 팬데믹 내내 우리는 집단면역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신 접종자의 숫자가 임계점에 도달하면, 바이러스가 더 이상 퍼지지 않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됐지만, 여전히 우리는 집단면역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2011년 코로나바이러스의 집단면역이 불가능한 5가지 이유로, 불명확한 백신의 전염 방지 효과, 백신 보급의 불균형,...

    1536호2023.07.07 11:28

  • [김우재의 플라이룸](40)꿀벌의 멸종위기…유전학이 줄 희망
    (40)꿀벌의 멸종위기…유전학이 줄 희망

    꿀벌은 지구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모기와 초파리도 지구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이자 꿀벌과 같은 곤충이지만,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곤충보다 꿀벌의 존재에 감사한다. 꿀벌은 꽃가루를 수분시켜 식물의 번식을 돕는 곤충이다. 그리고 꿀벌처럼 식물의 수분을 돕는 곤충과 동물은 많다. 그중에는 파리와 모기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유독 꿀벌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꿀벌이 꿀을 생산해 인간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랑은 대부분 이기적이며 편향적이다.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물질적 존재를 벗어나 감정을 느낄 방법이-현재로서는-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꿀벌은 인간이 기르는 식물의 3분의 1을 수분(受粉)시킨다. 인간이 먹는 과일, 채소, 곡물 대부분은 재생산 과정에서 꿀벌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꿀벌이 수분시키는 식물의 가치는 연간 175조4000억원으로 추정된다. 꿀벌은 토양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꿀벌이 꽃가루를 옮기면서 토양에 질소와 인산...

    1531호2023.06.02 11:29

  • [김우재의 플라이룸](39)약탈적 학술지와 인공지능
    (39)약탈적 학술지와 인공지능

    인공지능(AI) 개발의 선구자, 제프리 힌튼 교수가 AI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돌연 구글을 퇴사했다. 그의 경고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인공범용지능(AGI)에 가까워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챗GPT가 아직까지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꾸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이나 아이폰 역시 하루아침에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았다. 그 변화의 속도를 가늠하는 건 어렵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챗GPT의 등장으로 뒤바뀐 세상이 비가역적일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다른 세상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IT업계가 AI 개발을 두고 벌이는 경쟁의 치열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들의 AI 개발 경쟁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돈 때문이다. 따라서 학계는 AI를 둘러싼 윤리적 논란으로 뜨겁다. 하지만 AI 윤리학의 발전속도는 결코 AI의 발전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일론 머스크나 몇몇 학자들의 의견처럼 6개월간 AI 개발을 잠시 멈추자고 선언하는 것이...

    1527호2023.05.05 12:20

  • [김우재의 플라이룸](38)AI, 인문학 그리고 과학
    (38)AI, 인문학 그리고 과학

    우리 삶에 가까이 다가온 인공지능의 엄청난 발전을 목도 중이다. 오픈AI사의 챗GPT가 촉발한 인공지능혁명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미드저니 등의 인공지능 생성기는 사용자가 원하는 그림을 순식간에 그려낸다. 일러스트 디자이너와 의상모델 등의 직업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콜센터 상담직원, 사무원, 프로그래머, 기자, 회계사, 통역사 등 반복업무를 수행하는 직업은 물론 의사, 약사, 변호사, 통계 연구원 등의 전문직도 위태롭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거대한 변화가 벌어진 건 분명하다.제프리 힌튼과 인공지능의 기초 바야흐로 AGI, 즉 ‘인공 범용 지능’의 시대에 가까워지고 있다. AGI는 모든 상황에 적용 가능한 AI를 말한다. 인공지능의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튼 캐나다 토론토대학 교수는 앞으로 20년 안에 AGI가 구현된다고 말한다. 그는 인공지능 연구의 겨울(침체기)에도, 끈질긴 신경망 연구를 통해 딥러닝의 시대를 열...

    1523호2023.04.07 11:45